니체의 대표작을 워낙 어렵다는 말들로 인해, 이진우 교수의 EBS 특강과 백승영 교수의 강의를 듣고 백교수의 권고에 따라 '이 사람을 보라'와 '우상의 황혼'을 읽고서 차라투스트라를 잡았다. 니체학회에서 번역한만큼 정확한 번역으로 도움이 되었으나 디오니소스적인 글의 흐름, 곧 생성과 몰락의 반복이 신화에 대한 이해를 거친 후 나아졌으며, 그리스도교 도덕에 대한 공격도 한편에 있어서 예수에 대한 니체의 긍정적 해석과 혼재되게 느낀 점도 있었다. 책 말미에 있는 정동호 교수가 해설한 부분이 영원회귀를 말하면서 대지에 대한 사랑으로 허무주의를 탈피하고 현세부정과 내세의존, 둘다를 비판하고 현실을 긍정하고 운명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인간형-위버멘쉬를 향한 삶, 힘에의 의지 및 가치 전도 등을 의미있게 살펴봤다. 차라투스트라는 운명적인 삶의 고뇌 속에서도 웃음을 읽지않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즐겁게 살아가기를 그리고 끊임없이 상승하려는 지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교 도덕과 그리스적 이성의 원리에 대한 항변을 담는다. 그런 것들이 황혼에 이르렀고 삶의 실재와 본능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수할 수 있으며 가식없는 것이다. 삶에의 의지로서 일상의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열정을 태울 영원한 삶을 위해 나아가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니체의 자서전으로 자신에 대한 입장과 그 간에 써왔던 글들에 대한 감상도 적고 있다. 아버지와 가족에 대한 회상,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과 그리스도교적인 도덕의 위선과 거짓을 대비적으로 보여준다. 종말적 인간과 위버멘쉬를 비교하며 참된 인간존재에 대해 논하며 차라리 본능에 충실한 디오니소스를 운명을 긍정하며 사랑할 줄 아는 존재로 세우고 있다.
천로역정과 같이 신앙의 지향과 정수를 보여주는 책이다. 매일 새롭게 다가오는 현실과 과거부터 쌓인 나의 죄성은 주인공인 두려움처럼 존재할 수 있다. 주님이신 목자는 두려움에게 슬픔과 고통을 동반자로 세워줬다. 일상은 그렇게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고통이 상존하는 과정이다. 그속에서 신앙은 주를 바라봄과 동행으로 더 높은 곳을 향하는 길인 것이다. 그리고 기쁘게 받아들임과 사랑으로 참아냄으로 걸음걸음을 상승하는 흐름을 만들어낸다. 주목할 것은 나를 바라보는 주님의 시각이다. 절름발이이고 못생긴 두려움이 아니라 사슴같은 날랜 다리와 아름다운 얼굴로 곧 바뀌어질 형상으로 변화된 모습을 지금도 보신다는 점이다. 두려움이 은총과 영광으로, 슬픔과 고통이 기쁨과 평화로 가는 속에서, 나의 본능적 사랑에서 주님의 사랑으로 변모함으로 나의 주변과 세상에 우러나오는 실천을 할 수 있다.
세상에 대한 관심, 삶에 대한 통찰, 사람에 대한 애정들이 익살과 해학으로 따뜻하고도 유쾌하다. 역시 동시라는 영역이 가지는 발랄함과 경쾌함이 일상 속의 한 장면 한 장면들을 순수의 눈으로 보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것에 삶의 진한 배려나 도움의 손길로 느껴지기도 한다.
넌 어느 지구에 사니? 라는 제목처럼 자기가 위치한 곳에 대한 관조가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연결하고 접목하여 새롭게 하나하나를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