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에 대한 기록이다. 첫장은 아우슈비츠를 포함한 네개소의 수용소 체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잡혀와서 굶주림과 추위와 중노동 그리고 부족한 수면을 또한 계속되는 모멸감 속에서 죽음을 코 앞에 둔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왜 살아야 하는가? 현재의 고통에는 어떤 뜻이 있을까? 이런 것들을 고민하며 기록했던 논문을 남겨야할 이유, 이 생활을 알리기 위해 작가는 야훼의 말씀을 간직하고 아내를 떠올리고 면도를 하며 자신에게 긴장을 유지하고자 했다. 두번째 장에서는 로고테라피의 주 개념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 사례와 설명을 더하고 있다. 세번째는 비극에 대한 낙관으로 고통에서 의미를 찾아 그로인해 삶의 힘을 다시금 갖도록 하고 있다. 각자의 삶에 시련은 다가온다. 그 시험을 중심으로 성찰할 때 삶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성육신과 부활에 관한 영국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 여왕 윌리엄스의 설교이다. 글을 보면서 한국과 비교되는 것은 정치경제적 현실 속에 말씀이 어떻게 적용되고 느껴지는가이다. 갈수록 개인적 차원에서 국지적으로 소시민적 삶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복음을, 로마황제의 완벽한 폭압속에 처한 팔레스타인에서 성육신은 무엇이고 빌라도에 넘겨져 십자가형을 받고서 부활했다는 것이 당대 독재자들에게 어떤 도전을 주고 고난 속에도 하느님에 대한 경건함을 이어가던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희망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벽이 창이 된 변화, 부활의 기쁨이 생생한 신앙의 신비로 성장할 수 있는 화두를 이 책은 던져준다.
김중혁 작가가 글쓰는 이들에게 건네는 안내서로 보인다. 어떻게 작가가 될 수 있어요.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아요. 하고들 진지한 답답함을 가진 이들에게 나는 어떻게 과정을 밟아왔는지, 그 과정에서 함께 한 도구들은 어떤 것들로 변화되었는지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다만 그림에 대한 것만 특색있는 모습으로 다가오는데 웹툰이 만화의 영역인지 크게 작가의 범위에 드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마지막 글귀 체스턴의 “하고 싶은 일이라면 서투르게라도 할만한 가치가 있다”라는 문장이 글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위로와 도전을 준다. 책상에 앉는 노력과 무엇이든 글감을 생활 속에서 끌어 포착하는 시도들을 한결 쉽게 하게되었다.
특이한 제목의 글이다. 최근 언어의 온도를 보면서 내가 사용하는 글이나 말이 주는 영향에 대한 생각을 했었다. 책의 전반을 아우르는 말을 비워내면서 자신의 말그릇을 깊게 그리고 넓게 키워내는 것이 마음에 각인된다. 세파에 다 귀찮다는듯이 상처를 주는 말들을 가족에게 또는 상대적으로 약자에게 했던 기억들도 부끄럽게 떠오른다. 이제 나의 내면을 새롭게 해야할 과제를 가진다. 먼저 때마다 가지고 있는 감정을 인지하고 관계 속에 짜여진 선입견과 선이해를 넘어 보다 여유있는 품을 만들어가야겠다. 그리고 내게오는 이들에게 보다더 느끗하게 기다리며 공부하듯 그들의 삶을 경창해야겠다. 내어놓은 자신들의 얘기 속에서 정리할 수 있는 힘을 발견할 수 있도록 바라봐야겠다. 듣고 확인하고 보다 명료화할 질문을 더하며 말을 통한 사귐의 세계를 새로이 해야겠다.
김중혁 소설가의 장편을 처음 만났다. 농담이라고 하기에는 진지함과 의미를 담은 이야기다. 사별후 자식을 두고 떠난 엄마, 그리고 전남편에게난 형 이일영과 두번째 남편에게서 난 동생 송우영에 대한 단편들이 서술되다 만나고 화해한다. 무엇때문에 엄마는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것인지 알려주지 않았지만 작가는 근거리를 속보로 걷듯이 매끄럽고도 자연스럽게 매듭을 연결하고 있다. 쉽지 않은 배다른 형제간,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관계에서 적절한 거리와 소통을 보여주었다. 코메디언이란 직업적 상상력과 유머 섞인 표현들로 긴장이 가득했던 장면들이 한층 편하게 이완되고 따뜻한 이미지를 만들어갔다. 삶을 가벼운 농담으로 바라본다면 여유롭게 서로를 바라볼 공간이 생길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무한한 우주를 떠올리고 상하가 없는 공중을 상기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