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미트 패러독스
강착원반 지음, 사토 그림 / 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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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좀비들과 공존동생을 하는 새로운 사회, 올랜도 제국에서는 이렇듯 살아 있는 시체와 사람이 더불어 사는 예사스럽지 않은 풍경이 펼쳐진다. 사망 후 최대 30일 이내에 다시금 살아나 좀비가 된다는 익숙한 플롯은, 그러나 좀비가 과연 살아 있는 존재인지 명확한 지침이 없다는 점에서 ‘부활’이라 칭하기에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다. 물론 그 부분은 이내 서브플롯으로 자리해 극의 후반부를 최대치의 흥미로 수놓는다.

한편, 이곳 사회에서 좀비는 값싼 노동력으로 치부되어 전형적인 차별의 온상이 된다. 기형적인 외형과 먹지도, 자지도 않는다는 개성적인 면이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돌연변이처럼 보였으리라. 이에 두 개체는 더불어 사는 모양새 안에서 눈에 띄지 않게 서로의 구역을 설정한다. 상대를 향한 혐오로 무장한 각 구역 안에서 그들은 컵 안에 담긴 물과 기름처럼 나뉨을 자처한다.

공존과 차별이 아래위로 맞물린 이곳에서, 변호사 골드는 좀비인 동생 실버, 친좀비파 귀족 가문 출신 릴리와 함께 좀비들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인간 우월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인 좀비들의 권리 신장에 앞장서는 그들은, 예상대로 고행의 가시밭길을 걷는다.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길. 그 길을 기어코 걸어간 인간 골드는, “앵무새 죽이기”의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를 연상시켰다. 백인 변호사 핀치가 인종적 편견이 상식으로 치부되던 백인 우월주의 사회에서 비난을 무릅쓰고 흑인 톰을 변호했듯 말이다.

그 노력을, 혹자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낮잡아 보더라도 지금껏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온 건 일말의 가능성을 믿고 차별을 깨부수고자 노력한 이들이었다.

깔끔한 작화 아래 탄탄한 구성과 개성적인 인물들이 수놓은 감동적인 이야기.
그 녀석 참 걸작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힌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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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와 너트, 세상을 만든 작지만 위대한 것들의 과학 - 현대사회를 떠받치는 7가지 발견과 발명 스토리
로마 아그라왈 지음, 우아영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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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마주하는 물건에 과학을 접목하면 그 물건의 쓰임은 무궁무진해진다. 물론 단 한 번의 접목으로 끝이 난다면 우리는 그 물건에 관한 여러 중요한 발견을 놓칠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이렇다.바퀴가 도자기 제작이라는 최초의 제한적인 역할만 수행했다면, 이동수단으로서 바퀴의 역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과학이 스스로 위대함을 입증할 수 있는 건, 매일 보던 풍경을 낯설게 보며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눈앞의 무언가를 다시 발명하느라 지금 이 순간에도 귀중한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한편, 자연 세계를 연구하여 자연의 기본 법칙을 도출하는 과학은, 새로운 기술을 구축하여 실제적인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공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공학은 자신의 위대한 업적을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물건(을 구성하는 소재)으로 스스로를 증명해왔다. 그 많은 물건들을 뛰어넘고도 남을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반복하면서 말이다. 못, 자석, 끈, 바퀴, 스프링, 렌즈, 펌프는 모두 공학을 만나 일상에서 눈부신 혁신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그것들은 무지함과 당연함 속에 가려져 이내 혁신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으로 탈바꿈했지만.

알면 알수록 놀라운 공학의 역사에서, 개인적으로 스프링은 예상했던 그 쓰임을 넘어 귀중한 철학마저 떠올리게 했다. 힘이 가해져 모양이 변할 때 에너지를 저장하고, 힘이 제거되면 에너지를 방출하는 형태. 그 작동 원리에 대한 촘촘한 이해 없이도 활이나 총과 같은 무기의 형태로 이미 나름의 쓰림을 하고 있었던 스프링은, 후에 건물, 스튜디오, 콘서트홀과 같은 구조물에 자리하여 음향 간섭을 배제하는 식으로 소음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스프링은
인간의 정신 건강의 지름길이 되어 주었다.
스프링은
충격이 가해지면 부서지고, 찢어지는 다른 것과는 달리 충격에 강해지는 돌연변이였다. 돌연변이는 언제나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스프링은
그 본래의 역할을 통해 조용하지만 강인한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절대 없어서는 안될 존재를 말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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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과 헤어지는 법 - 도둑맞은 내 시간을 되찾는 30일 플랜
캐서린 프라이스 지음, 박지혜 옮김 / 갤리온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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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은 행동 통제력이 상실되어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임에도 불구하고 강박적으로 갈구하게 되고..." (노먼 도이치, "기적을 부르는 뇌")

✔스마트폰에 관한 불편한 진실. 그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걸 제공하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새롭고, 예측 불가능한 보상을 건네는 스마트폰에, 그래서 더 자주 손이 갔던 걸지도 모르겠다. 새로움은 지루한 일상에 복복한 향기와 함께 질펀한 재미마저 선사하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숨 막히는 불안을 느낄 때면 마치 과자 CM송의 가사 일부처럼 절로 스마트폰에 손이 가는 나를 뒤늦게 알아채곤 한다. 무서운 건 술자리에 얼굴만 비추고 오겠노라 다짐해놓고선 어느덧 덥썩 한 자리를 차지해 '부어라, 마셔라!' 외치고 있듯 반짝거리는 스크린을 들여다보다 몇 시간 훌쩍 지나가는 일이다. 정말이지 공포가 따로 없다.

"서로 연결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대상들 사이의 연결점을 잇는 능력이 발달할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 역시 발달했을 가능성이 크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내는 힘, 우리가 흔히 통찰이라고 부르는 그것은 오히려 지루할 때 얻는 경우가 많다. 생각이 겹겹이 이어지고, 이를 기워 붙이다 스쳐가는 통찰을 완전히 붙잡기까지 스마트폰은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생각을 이어가려고 하면 불쑥 얼굴을 들이밀고 방해만 했으니 녀석을 향한 분노가 치솟아오르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스마트폰과 관계를 다시금 정립하자고 마음을 확고하게 먹었다. 혹시 이번에도 마음만 굴뚝이었냐고? 절대 그렇지 않다. 영혼의 단짝인 그 녀석과 적당한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지금, 저자가 제시한 여러 사례가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 사례들 가운데 내가 차용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스테이프리' 앱을 설치해 하루 중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과 횟수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2. 스마트폰에 손이 가는 나를 마주할 때 www 상기하기
1) what for : 무엇을 얻자고 스마트폰에 손을 뻗냐구요
2) why now : 왜 하필 지금 스마트폰에 손을 뻗냐구요
3) what else : 스마트폰 말고 손 뻗을 대상은 없나요

3. 스마트폰에 리마인더 부착하기. 참고로 나는 폰 케이스 안쪽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스마트폰의 초대에 매번 응할 필요는 없다.'

4. 스마트폰 제한 시간 설정하기
: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 오후 1시 반에서 2시 반 사이, 오후 10시 반에서 11시 반 사이 등 평소 가장 자주 사용하는 시간대를 제한 시간으로 지정하자 하루 중 스마트폰 사용시간이 상당히 줄었음을 알 수 있었다.

🙏@woongjin_readers 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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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작은 세계에서 발견한 뜻밖의 생물학 - 생명과학의 최전선에서 풀어가는 삶과 죽음의 비밀 서가명강 시리즈 35
이준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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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애타게 부르짖던 좋은 학술서란, 특히 과학을 다룬 도서에서, 바로 이런 종류가 아니었을까. 글이 난삽하여 지적 호기심을 조금 채워보기도 전에 진을 다 빼는 그런 책 말고 어려운 용어도 그 순간에는, 비전공자라도 이해할 수 있게 교정에 힘을 기울인 책. 자신이 일군 연구 성과를 은근하게 뽐내고자 주제를 벗어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대신 독자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여러 사례를 재미있게 제시한 책. 저자가 다음에 낼 책을 기다리게 하는 책. 결론은 이 책이 생물학에 문외한인 나에게 아주 친절했다는 것.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또다시 안 읽고 배길 자신이 없다.

돌연변이가 생물학, 그 가운데 유전학과 발생학에서 아주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는 점이 감명적이었다. 돌연변이란 쉽게 말해 원본과 달라지는 것을 말하는데, 보통과 ‘다름’이 생명현상 연구에 상당한 도움이 되는 셈이다. 돌연변이의 빈도는 비록 낮을지라도, ‘낮음’과 ‘다름’ 덕에 돌연변이는 오히려 귀하신 몸이 되었다. 셀 수 없이 많은 개체들이 복제를 거듭하는 와중에 아주 드물게 드러난 실수 하나로 돌연변이는 태어난다. 매우 낮은 확률로 일어나는 그것이 외려 진화의 동력이 된다는 점은 내게 시사하는 바가 상당했다.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생물학자들은 되레 다름을 호기심과 끈기를 지닌 채 바라보며 인간을 위해 공헌하고 있다는 점이 기존에 생물학에 갖고 있던 좁쌀만한 관심을 비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생물학이 이렇게나 재미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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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지는 마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3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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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때 그 말에 기대어 지금껏 소설을 쓰는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마음을 함께 좋다고 말해줬던 사람들.”

 

국밥을 먹고 배불뚝이가 되어 나오는 길이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을 주인에게 건네는 연인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누군가는 고대했을 그 말을 무색하게도 나는 주인에게 안녕히 계세요라는 한마디만 거들었을 뿐이다. 맛있다는 말을 전하는 게 그리도 어렵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상대는 온종일 좋은 기분에 휩싸일 게 자명했다.

 

읽어야 할 텍스트가 환풍기 속 케케묵은 먼지처럼 한가득 쌓여있을 때, 글을 읽는 행위를 이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떤 글은 마치 자동 레이더가 그곳에만 빨간 불빛을 비추듯 시선을 사로잡았다. ‘글이 너무 좋아서 오래 머물다가요.’ 그 한 마디를 알록달록한 박스에 포장해 건네고 싶어 글을 여러 번 썼다 지웠다. 그러다 이내 포기하고 저장 버튼만 꾹 누르고 다음 글을 읽어내려갈 때가 많았다.

 

아무리 말하기의 기술을 익혀도 어떤 마음의 이유는 말하고 설명하는 게 버겁고 막막하다.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면 마음의 좁고 깊은 부분을 펼쳐야 해서 힘든 고백처럼 느껴진다.”

 

글로 펼치면 마음과는 다르게 오히려 가벼워보인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 기억이 있다. 마음의 좁고 깊은 부분을 펼쳐 글로써 세상 밖으로 내보일 때 내가 오래도록 간직한 그 마음이 온전히 표현되지 못할까 두려워 꾹꾹 눌러삼킬 때가 많았다. 물론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표현하지 못할 때가 훨씬 많긴 했지만.

 

내 마음이 지옥이면 나와 연결된 온점의 마음도 그럴 테니까. 온점과 연결된 다른 사람의 삶도 같이 절망에 빠질 테니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책 속의 말을 나는 이제야 알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이에게 전해질 내 마음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비단 내 마음이 나만의 것이 아닌 듯하다. 마음 자체에도 본성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알게 모르게 나누어진다는 것. 그래서 마음을 관리하고 길들이는 게 중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나눌 거라면 좋은 마음을 나누고 싶으니까.

 

소설가가 세상에 펼쳐낸 내밀한 이야기. 자꾸만 버스의 하차벨을 누르고 싶어지는 이야기의 향연에 책장을 덮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이번에는 미루지 않고 꼭 전하고 싶었던 그 말. ‘글이 좋아서 오래 머물다 가요. 정말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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