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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살과의 전쟁이라는 말에서 나타난, 다이어트와 전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것은 현재 우리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도시 곳곳에 헬스클럽이 미용실만큼 우후죽순 늘어나있고 트레이너가 유망직종으로 각광을 받는다. 또한 과체중으로 인한 질병에 가계 의료비가 증가하고 이를 겨냥한 의료기관이나 보험 상품 등도 자연스레 늘어나고 있다.
문제의식은 이미 제기되었다. 살찐 만큼 병들어가고 있는 사회의 모습에 질려있다. 하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이 문제의식이라는 것은 막연하고 매우 편협하다.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확대해석해봐야 지역의 테두리에 국한된다. 그래서일까. 살찌는데 그악스러워함에도 불구하고 TV에서는 경쟁적으로 별미 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인기를 끌고 실로 무서운 가격대의 고급식당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런 우리에게 굶어죽는 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식 자체가 어렵다. 같은 땅의 북쪽에 기아에 시달리는 동포를 두고서도 말이다. 오히려 배불러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 않는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 2007)는 앞서 나열한 배부른 우리에게 인류의 두 배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절반이 굶고 있는 모순된 현실과 그 배경을 알려준다. 여태껏 기아보다는 전쟁이나 환경오염의 문제를 중차대한 문제로 생각하며 기아를 의식의 뒤편으로 미루어놓은 우리에게 말이다.
작가의 논지를 따르다 보면 기아에 대한 무관심의 원인은 먼저 교육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이미 현실의 당면 과제를 외면한 교육의 허세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지만 기아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하다. 이유인 즉, 교육이 기아를 우리와 먼 어느 빈민국에서만 일어나는 동떨어진 일로 치부하는데 반해 기아를 해결하기 위한 미진한 노력(구호단체나 국제기구 등)의 성과를 과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세계화 추세에 발맞추려 안간힘을 써야하는 지금, 타지의 내전과 기아를 위해 군대를 파병하거나 여러 국제단체에 참여하고, 식량원조와 기술이전을 하는 등의 노력은 여러 매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또한 그 노력을 미진하다고 비난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이 희망적인 노력에 비할 수 없이 심각함에도, 희망적 여론이 그것을 전복시켜 탄생한 낙관주의적 무관심이다. 이런 시선으로는 현실을 직시할 수 없다. 아니, 시선이라 할 수 없이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 무관심의 자신을 알았으니 이를 청산하고 태도를 바꾸면 문제는 서서히 해결의 실마리를 내놓을 것인가? 이 역시 낙관론에 젖은 예상처럼 보인다. 앞서도 언급했듯 인류의 두 배 가까이를 먹일 수 있는 식량 생산량에도 기아가 발생하는 것을 방관한 것이 무관심의 낙관론이었다면, 변화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는 것에는 구조적 결함이 숨어있다.
이윤을 위해 움직이는 다국적 기업과 자국의 이득을 최우선시하는 마찬가지의 국가에서 식량은 부를 위한 파워게임에 이용된다. 때문에 식량 생산이 풍부한 국가의 잉여생산물은 적절한 가격에 재분배되지 못하고 경제 전쟁의 총탄이 된다. 실제로 이 총탄은 차곡차곡 쌓여 이윤을 위해서는 어디든 겨눌 수 있는 무기이다.
경제적 이익 추구에 따른 폐해를 자유주의 시장원리의 맹점으로 제쳐둔다손 치더라도 강대국의 정치적 이점에 따른 횡포는 어떤 면에서 봐도 이해되지 않는다. 그들의 산업화 역사만큼 오래된 식민지 정책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강대국의 입장에서만 합리적인 세계시장 형성을 고려할 때, 그들에게 식민지였던(어떤 면으로는 여전히 식민지인) 국가의 값 싼 노동력은 여전히 버릴 수 없는 금광이다. 때문에 식민 지배를 벗어난 빈민국이 자립해 독립적인 시장을 구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침략으로 자급자족의 농업 기반을 식민지 정책으로 인한 특화농업에 희생당하고, 이제는 그 특화의 경제성마저 무너졌음에도 지배체제의 속성은 변하지 않았다. 또한 노선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빈민국의 지도층을 실각시키는 보이지 않는 검은 손을 휘두르는 일을 잊지 않고 있다.
이 책은 필자가 아들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설명하고 분량 역시 부담이 없지만 편안히 책장을 넘길 수 없다. 오히려 활자가 품고 있는 감당키 어려운 무게에 짓눌릴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눈앞에 현실만이 현실인 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아가 그 삶의 방식은 교묘히 합법의 그늘에 가려 있지만 엄연히 어긋난 몇 강대국의 횡포를 무감각하게 한다.
굶주리는 세계의 절반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임이 틀림없는 것처럼 그것을 외면하거나, 자연의 법칙인양 자위하고, 심하게는 우월감의 근거로 삼는 굶지 않는 나머지 절반의 의식 역시 모순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순은 여전히 통용되며 이대로 가다간 문제의식조차 제기되지 않는 하나의 일반적 현상으로 자리 잡을 위험마저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이 한 권의 책에 마땅한 해결책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왜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지에 대한 의문조차 아득한 우리에게 적어도 이 불균형의 문제를 의식의 수면위로 올려 줄 경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일이 그렇듯 기아문제 역시 그에 대한 의문을 갖는 작은 시도가 좋은 출발이 될 것임이 분명하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