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칵테일 -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상큼한 세계사가 온다!
역사의수수께끼연구회 지음, 홍성민 옮김, 이강훈 그림, 박은봉 감수 / 웅진윙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주당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음주에 대한 각종 기호가 있다. 삼겹살에는 소주라든가 맥주에는 치킨이 좋다와 같은 궁합에서부터 여러 경우의 순서로 여러 종목의 술을 마셨을 때 숙취의 차이 등, 경험을 통해 암암리에 체득된 것이 고집이 된 까닭이다. 그런데 이 고집에 의해 당최 선택하지 않는 주종(酒種)이 있으니, 그 중 하나가 칵테일이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일단 효과에 비해 고가라는 점 때문이다. 칵테일에 취할 정도 자금이면 소주로는 응급실 근처까지 갈 수 있고, 굳이 술에 돈을 쏟자면 더 비싸지만 위스키를 선택하는 쪽이 왠지 후회가 없다. 물론 취한다는 것 외의 요인(분위기라든가)으로야 칵테일이 비교우위를 차지할 수 있겠지만 어중간하다는 편견을 씻을 수 없다. 이게 다 고주망태가 되어야만 마신 것 같아 직성이 풀리는 우리네 음주문화 때문이다.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세계사에 대한 우리의 문화 역시 술 문화와 유사한 면이 있다. 중, 고등학교 시절 시험을 위해 배웠던 세계사는 암기과목이라는 오명을 쓰고 별표의 개수에 따라 중요도를 나눠 힘들게 외워야 했던 재미없는 과목에 불과했다. 이렇게 접했으니 세계사라는 이름부터 광범위한 학문에 흥미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 유리잔에 소주 한 홉을 부어 연신 마셔대면 그 끝은 구토와 꼴도 보기 싫은 빈 병만 남듯 연도, 인물과 지명, 그리고 사건의 요약을 억지로 머릿속에 쑤셔 넣은 세계사 지식 역시 종래엔 모조리 토해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에, <세계사 칵테일>(웅진윙스. 2007)은 이 책에 꽤나 어울리는 제목이다. 칵테일에 다소 얕보는 인식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술이라고 하기도 음료라 하기도 마땅치 않은 칵테일의 이미지와 같이 이 책은 세계사에 한껏 취하기엔 도수가 낮다. 또한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는 사건을 시원하게 풀어줄 것처럼 끄집어내기만 하고 결론이 빈 강정 같아지는 부분도 눈에 밟힌다.

하지만 즐길 수 있다. 세계사하면 연상되는 숨 막히는 암기과목의 허울을 벗어버린 신나는 칵테일 쇼는 무엇보다 독자를 즐겁게 한다. 더불어 가십거리가 되기 십상인 흥미유발 위주의 사건이 모여 세계사의 큰 줄기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은 무시 못 할 장점이다. 또한 이 책은 이미 세계사란 술을 잘못 마셔 구토를 경험한 기성세대나 억지로 구역질을 참아내며 마시는 중에 있는 청소년, 모두에게 유효하다. 세계사하면 주량불문 나이불문하고 구토를 유발하는 고약한 술이라는 편견을 희석시키기 때문이다.

독한 술과 음료의 조화로 독특한 맛을 내는 칵테일을 즐기듯 세계사에 빠져보자. 억지로 외우거나 이견이 분분한 하나의 사건을 무턱대고 파고들다 곤드레만드레 되지 말고 적당히 취해보자. 가끔 마시는 술이라면 신선하게 즐기고 매일 마시는 주당이라면 한 번쯤은 쉴 겸 칵테일을 즐겨보자. 현란한 색상과 가벼운 느낌의 이 술은 마셔보지 않으면 그 맛을 짐작키 어려우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림 버스터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하루에 8시간을 잔다고 가정했을 때, 인간은 인생의 3분의 1을 잠으로 소비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인생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저 무의미한 시간 소비에 불과한 것일까? 생산과 소비의 면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다. 능동적인 행동이 결여된 시간이자 의지가 없는 무방비한 시간으로써 잠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렇지만 잠을 완전히 의미 없는 시간으로 치부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가 소설의 줄거리를 그녀 자신의 꿈에서 따온 것처럼, 많은 작가들은 꿈에서 영감을 얻는다. 이렇게 보면 왜 인간이 인생의 절반에 달하는 시간을 잠으로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격렬한 의문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모종의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낙관적인 대답을 하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잠을 그저 필요악의 의미로 보는 시각도 거세다. 사당오락이라 했던가. 하루 1시간의 수면시간 차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는 인식이 수험생들에게 팽배하다. 어디 그뿐인가. 정열적 지배자 나폴레옹은 10-20분의 선잠에 의지해 피로를 풀고 밤낮 없이 야망을 불태웠다고 한다. 이렇게 세세히 파고들지 않아도 밤을 새워 무언가를 했을 때 그 결과에 상관없이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니 일상생활에서도 수면은 경계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이렇게 상반된 입장을 오가는 잠의 효용을 따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니, 그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겠다. 그 보다는 그 시간이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것에 주목하자. 또한 효과적 고문 방법으로 잠을 재우지 않는 것이 꼽히는 것처럼 인간은 그 개인적인 시간을 보장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우리는 꿈을 꾼다.

인간의 잠에 대한 의문과 같이 꿈 역시 미지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현실의 자신을 반영하면서도 물리적, 윤리적 기준에 의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 어떤 위락시설에 비할 수 없는 인생의 즐거움이다. 그런데 이 즐거움에 제동을 거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악몽이다. 현실에서 위축된 자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되거나 현실과는 상관없지만 맨 정신에 상상조차 힘든 잔인하고 추악한 사건이 일어나는 꿈. 악몽은 미지의 세계에 숨어있는 천 길 낭떠러지다.

영화 나이트메어의 프레디가 설치는 악몽에서 꿈은 개인의 범주를 벗어나 자신이 사냥감이 된 사냥터로 돌변한다. 이 책, <드림 버스터>(프로메테우스. 2007)의 세계관이 이와 같다. 지구와는 다른 세계 '테-라‘에서 행해진 실험이 거대한 폭발로 실패한다. 이로 인해 그곳엔 깊은 구멍이 뚫리고 이것이 지구와 테-라를 이어주는 통로가 된다. 구멍의 존재가 달갑지 않기에 하루 빨리 메우는 것이 상책이지만 그 실험의 모르모트였던 대단한 범죄자들이 사념화되어 지구로 도주한 것이 문제가 된다.

실험의 목적인 육체의 한계에서 벗어난 자유를 얻은 테-라의 범죄자들은 틈이 있는 지구인의 꿈속을 지배하려한다. 이것이 성공하면 결국 정신이 지배하는 육체까지 조정할 수 있게 된다. 드림 버스터는 바로 이 테-라에서 탈주한 범죄자들을 쫓는 현상금 사냥꾼을 말한다. 그 중에서 소설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주인공 셴은 고참 드림 버스터와 함께 일본을 담당하고 있는 16세의 소년으로 그가 쫓는 범죄자 중 어머니가 끼어 있다는 녹녹치 않은 사연을 품고 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이야기는 개개의 사건과 그 사건마다의 인물이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고, 그것이 이어져 전체를 이룬다. 요컨대, 요즘 인기 몰이를 하고 있는 시즌 식 미국드라마처럼 소설은 한 편의 이야기로 맺어지지만 그것이 모여 한 시즌이 되며 단락 지어진 이야기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실마리가 전체의 결말을 암시하며 궁금증을 더해간다. 만약 시작에서 결말까지 선형적으로 나열된다면 <드림 버스터>의 무대가 되는 호기심 어린 세계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장황한 초기 인물 묘사에 진이 빠져 책장을 덮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을 작가는 조금씩 나눠 전체 소설의 군데군데에 흩뿌림으로써 독자의 흥미를 팽팽히 유지한다.

이와 더불어 이 소설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재미를 주는 것에는 작가 특유의 현실에 대한 날카로움이 일조하고 있다. 마치 만화와 같은 상상력이 창조한 세계의 SF소설에서도 그녀의 그 재능은 빛을 잃지 않는다. 물론 지구를 지키는 외계 용사의 인간미 넘치는 내면과 현상금 사냥꾼의 방탕함이 합쳐진 캐릭터라든지 꿈에 투영된 쓸쓸한 현대인의 상처 등의 소재가 그리 새로울 것은 없고, 그 속에 사회의 문제를 대입시켜 적당한 감동과 해답을 주는 것 역시 창조적 시도는 아니다. 하지만 이 구태의연한 배경에 짐작대로 흐르는 글이 그것의 속성인 재미를 잃지 않으면서 현대 사회의 문제의식을 전달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이것은 단지 작가를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팬의 편협한 판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나 용두사미 되지 않는 탄탄한 완결성과 복잡한 전개에도 맥락을 잃지 않는 그녀의 작품은 소설의 기본 틀인 서사구조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만으로 맹목적 찬사를 보낼만하다. 때문에 2권의 마지막 장을 아쉬워하며 아직 출간되지 않은 뒷이야기를 즐겁게 기다리는 경험을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월 2 - 밥이 하늘이오
허수정 지음 / 시골생활(도솔)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2권 이야기
천주교를 서학이라, 난세를 파고들어 야욕을 심고자하는 서구 열강의 폭력으로 여기는 배경에서 얻을 수 있는 개인적인 거부감과 동학의 가르침에 일방적 가치를 둔 것에 대해 느꼈을지도 모를 반감 이상으로 인간 최시형에게 매력을 느꼈다면 뒤이은 2편을 즐길 준비가 된 것이다.
 
백성의 입장에서 동학이란 고된 현실에서도 충만함을 얻게 해주는 활력소이지만 조정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입지를 뒤흔들 재앙일 테니 그에 대한 핍박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에 국가를 위태롭게한 최제우는 참수를 당하고 그 지척의 도인들 역시 화를 면치 못한다. 하지만 모든 역사에서 그랬듯 배부른 세도가는 결코 유능한 소방수가 못된다. 동학은 엄중한 처벌로 그 불길이 잡힌 듯 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숨죽인 불꽃으로 나마 활활 타오르게 되고 그 구심점에 해월이 있었다.
 
하나의 문장에 대해 개인마다 이견이 있는 것처럼 동학의 가르침 역시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그 행동이 다르다. 고통 받는 백성이 늘어난 만큼 동학도 그 세를 불리지만 덩치가 커질수록 최초의 가르침은 변질된다.
 
동학이 탄생한 것이 글을 배운 자, 아니 글을 배울 수 있는 자가 아닌 자를 밟고 서는 차별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동학이 최시형의 가르침에서 어긋나 화를 자초한 것은 역차별에서 기인한다. 다시 말해, 반상과 남녀노소 등 일상의 차별을 없애고 평등이라는 가치를 획득하고 자하는 노력이 기존의 세도가들에 대한 일방적인 증오로 변질된 것이다. 해월에 대해 도올 김용옥이 간디와 비교해 위대한 분이라 칭송한 것은 해월이 진정한 평등을 위해 아래에서 힘써왔기 때문이다.
 
차별을 철폐하고자 또 다른 차별을 낳는 것이 바로 역차별이다. 해월은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 즉 무의미한 증오를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잘못된 사회는 전복되는 것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단순히 전복될 뿐이라면 불평등의 구조를 유지한 채 계층간의 이동만 이룬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에 해월이 가지는 그리고 동학이 가지는 가치가 있다. 진정한 평등을 실현하는 것은 차별에서 역차별로의 이동이 아닌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해월 최시형. 때문에 그의 가르침은 지나간 역사의 사실이 아닌 여전히 유효한 깨달음이요 가르침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월 1 - 그대가 하늘이오
허수정 지음 / 시골생활(도솔)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평등이 과연 실현될 수 있는 것인가? 존재하지 않는, 그저 추상적인 의미에 그치고 마는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은가?
 
우리가 사회에 대한 좌절과 개인간의 시기로 괴로움을 맛보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와 개인 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 뿌리에는 평등에 대한 인식이 가로놓여 있다. 개인의 평등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를 살고 있음에도 말이다. 사회는 점점 가진 자에게 편리한 백화점이 되어가고 행복의 기준이 되어버린 부의 실현은 극단에 놓이게 되었다.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고 그렇지 못한 자는 더 잃을 수밖에 없는 사회. 이것은 신자유주의 논리의 맹점으로 어쩔 수 없이 수용하기에는 너무도 잔인한 현실이다.
 
지금의 시대를 운운하기 전에 우리의 역사는 불평등을 그러니까 엄연한 계급을 인정해왔다. 사농공상이 바로 그것이다. 글을 배우는 자, 글을 깨친 자를 섬기는 자가 계급에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그 외의 계급을 철저히 속박해왔다. 문제는 이 잘못된 구조 자체에도 있지만 글을 배우고 의미를 깨치려는 자가 그 배움을 사회에 환원하지 않고 자기만족에 빠지거나 나아가 능동적으로 백성을 갈취하는데 있다. 이로써, 이 소설 <해월>(도솔오두막. 2007)의 배경이 되는 조선말의 사회는 글을 배운 선한 자가 민중을 이끈다는 것이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며 종말을 맞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 평등한 시선으로 세상을 구하려 했던 동학에 몸 바친 스승들의 이야기가 아로새겨져 있다.
 
1권 이야기
<해월>은 동학의 뿌리이자 진정한 의미의 실천가인 최시형의 호이다. 이 호는 ‘바다를 비추는 달빛과 같이 온 세상을 두루두루 살피라’는 의미로 동학의 창시자이자 해월의 스승인 최제우가 지어준 것이다. 소설 1편의 주요한 흐름은 동학이 세상에 등장해 바로서는 과정을 그리는데 있다. 도탄에 빠진 팔도를 둘러보고 그 자신도 익히 경험한 사회의 그릇된 구조에서 백성들을 구하고자 최제우는 동학의 이념을 세운다. 이에 많은 사람이 그 뜻을 좇으니 해월 또한 그의 제자 중 하나이다.
 
최시형이 누구인가. 천한 신분에 가로막혀 사회의 불평등을 몸소 느낀 인물이다. 몸집은 왜소하나 기골만은 장대했던 그였기에 자신에게 그토록 잔인한 삶을 살면서도 어깨 너머로 글을 익혔다. 허나 글을 익히면 익힐수록 어긋난 한계만을 체감할 뿐이었으니 술과 담배로 소일하게 된다. 이 때 접한 것이 동학이요, 그 창시자가 하늘이 맺어준 스승, 최제우였으니 그는 크게 감복하여 동학을 통해 세상을 보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며 이를 통해 얻은 깨달음으로 이웃을 구휼하고자 한다.
 
이렇게 최제우와 최시형의 인연, 그리고 동학으로 이름을 남긴 여러 인물과 조선말 역사를 쥐고 흔든 흥선 대원군 이하응을 위시한 세도가들이 1편에 소개된다. 물론 여기에 일조하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이다. 한 시대의 역사에 크게 이름을 남긴 인물들 간의 관계의 연결, 단순한 역사적 사실과 현실에도 효용이 있는 가르침 간의 간극, 이 두 가지에 작가의 상상력이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요컨대 교과서의 몇 줄에 지나지 않아 독자에게 의미가 적었던 역사가 생생한 가르침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1편의 역할은 바로 최시형의 가르침이 현실에 닿을 수 있는 포석을 쌓는데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살과의 전쟁이라는 말에서 나타난, 다이어트와 전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것은 현재 우리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도시 곳곳에 헬스클럽이 미용실만큼 우후죽순 늘어나있고 트레이너가 유망직종으로 각광을 받는다. 또한 과체중으로 인한 질병에 가계 의료비가 증가하고 이를 겨냥한 의료기관이나 보험 상품 등도 자연스레 늘어나고 있다.

문제의식은 이미 제기되었다. 살찐 만큼 병들어가고 있는 사회의 모습에 질려있다. 하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이 문제의식이라는 것은 막연하고 매우 편협하다.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확대해석해봐야 지역의 테두리에 국한된다. 그래서일까. 살찌는데 그악스러워함에도 불구하고 TV에서는 경쟁적으로 별미 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인기를 끌고 실로 무서운 가격대의 고급식당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런 우리에게 굶어죽는 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식 자체가 어렵다. 같은 땅의 북쪽에 기아에 시달리는 동포를 두고서도 말이다. 오히려 배불러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 않는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 2007)는 앞서 나열한 배부른 우리에게 인류의 두 배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절반이 굶고 있는 모순된 현실과 그 배경을 알려준다. 여태껏 기아보다는 전쟁이나 환경오염의 문제를 중차대한 문제로 생각하며 기아를 의식의 뒤편으로 미루어놓은 우리에게 말이다.

작가의 논지를 따르다 보면 기아에 대한 무관심의 원인은 먼저 교육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이미 현실의 당면 과제를 외면한 교육의 허세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지만 기아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하다. 이유인 즉, 교육이 기아를 우리와 먼 어느 빈민국에서만 일어나는 동떨어진 일로 치부하는데 반해 기아를 해결하기 위한 미진한 노력(구호단체나 국제기구 등)의 성과를 과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세계화 추세에 발맞추려 안간힘을 써야하는 지금, 타지의 내전과 기아를 위해 군대를 파병하거나 여러 국제단체에 참여하고, 식량원조와 기술이전을 하는 등의 노력은 여러 매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또한 그 노력을 미진하다고 비난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이 희망적인 노력에 비할 수 없이 심각함에도, 희망적 여론이 그것을 전복시켜 탄생한 낙관주의적 무관심이다. 이런 시선으로는 현실을 직시할 수 없다. 아니, 시선이라 할 수 없이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 무관심의 자신을 알았으니 이를 청산하고 태도를 바꾸면 문제는 서서히 해결의 실마리를 내놓을 것인가? 이 역시 낙관론에 젖은 예상처럼 보인다. 앞서도 언급했듯 인류의 두 배 가까이를 먹일 수 있는 식량 생산량에도 기아가 발생하는 것을 방관한 것이 무관심의 낙관론이었다면, 변화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는 것에는 구조적 결함이 숨어있다.

이윤을 위해 움직이는 다국적 기업과 자국의 이득을 최우선시하는 마찬가지의 국가에서 식량은 부를 위한 파워게임에 이용된다. 때문에 식량 생산이 풍부한 국가의 잉여생산물은 적절한 가격에 재분배되지 못하고 경제 전쟁의 총탄이 된다. 실제로 이 총탄은 차곡차곡 쌓여 이윤을 위해서는 어디든 겨눌 수 있는 무기이다.

경제적 이익 추구에 따른 폐해를 자유주의 시장원리의 맹점으로 제쳐둔다손 치더라도 강대국의 정치적 이점에 따른 횡포는 어떤 면에서 봐도 이해되지 않는다. 그들의 산업화 역사만큼 오래된 식민지 정책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강대국의 입장에서만 합리적인 세계시장 형성을 고려할 때, 그들에게 식민지였던(어떤 면으로는 여전히 식민지인) 국가의 값 싼 노동력은 여전히 버릴 수 없는 금광이다. 때문에 식민 지배를 벗어난 빈민국이 자립해 독립적인 시장을 구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침략으로 자급자족의 농업 기반을 식민지 정책으로 인한 특화농업에 희생당하고, 이제는 그 특화의 경제성마저 무너졌음에도 지배체제의 속성은 변하지 않았다. 또한 노선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빈민국의 지도층을 실각시키는 보이지 않는 검은 손을 휘두르는 일을 잊지 않고 있다.

이 책은 필자가 아들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설명하고 분량 역시 부담이 없지만 편안히 책장을 넘길 수 없다. 오히려 활자가 품고 있는 감당키 어려운 무게에 짓눌릴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눈앞에 현실만이 현실인 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아가 그 삶의 방식은 교묘히 합법의 그늘에 가려 있지만 엄연히 어긋난 몇 강대국의 횡포를 무감각하게 한다.

굶주리는 세계의 절반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임이 틀림없는 것처럼 그것을 외면하거나, 자연의 법칙인양 자위하고, 심하게는 우월감의 근거로 삼는 굶지 않는 나머지 절반의 의식 역시 모순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순은 여전히 통용되며 이대로 가다간 문제의식조차 제기되지 않는 하나의 일반적 현상으로 자리 잡을 위험마저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이 한 권의 책에 마땅한 해결책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왜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지에 대한 의문조차 아득한 우리에게 적어도 이 불균형의 문제를 의식의 수면위로 올려 줄 경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일이 그렇듯 기아문제 역시 그에 대한 의문을 갖는 작은 시도가 좋은 출발이 될 것임이 분명하기에 말이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18 22:02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갈라파고스 2007년 11월 도서목록에 있는 책으로 2007년 11월 8일 읽은 책이다. 관심분야의 책들 위주로 읽다가 알라딘 리뷰 선발 대회 때문에 선택하게 된 책인데, 이런 책을 읽을 수록 점점 내 관심분야가 달라져감을 느낀다. 총평 물질적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이 책에서 언급하는 "기아의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막연하게 못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