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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버스터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하루에 8시간을 잔다고 가정했을 때, 인간은 인생의 3분의 1을 잠으로 소비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인생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저 무의미한 시간 소비에 불과한 것일까? 생산과 소비의 면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다. 능동적인 행동이 결여된 시간이자 의지가 없는 무방비한 시간으로써 잠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렇지만 잠을 완전히 의미 없는 시간으로 치부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가 소설의 줄거리를 그녀 자신의 꿈에서 따온 것처럼, 많은 작가들은 꿈에서 영감을 얻는다. 이렇게 보면 왜 인간이 인생의 절반에 달하는 시간을 잠으로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격렬한 의문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모종의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낙관적인 대답을 하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잠을 그저 필요악의 의미로 보는 시각도 거세다. 사당오락이라 했던가. 하루 1시간의 수면시간 차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는 인식이 수험생들에게 팽배하다. 어디 그뿐인가. 정열적 지배자 나폴레옹은 10-20분의 선잠에 의지해 피로를 풀고 밤낮 없이 야망을 불태웠다고 한다. 이렇게 세세히 파고들지 않아도 밤을 새워 무언가를 했을 때 그 결과에 상관없이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니 일상생활에서도 수면은 경계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이렇게 상반된 입장을 오가는 잠의 효용을 따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니, 그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겠다. 그 보다는 그 시간이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것에 주목하자. 또한 효과적 고문 방법으로 잠을 재우지 않는 것이 꼽히는 것처럼 인간은 그 개인적인 시간을 보장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우리는 꿈을 꾼다.
인간의 잠에 대한 의문과 같이 꿈 역시 미지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현실의 자신을 반영하면서도 물리적, 윤리적 기준에 의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 어떤 위락시설에 비할 수 없는 인생의 즐거움이다. 그런데 이 즐거움에 제동을 거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악몽이다. 현실에서 위축된 자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되거나 현실과는 상관없지만 맨 정신에 상상조차 힘든 잔인하고 추악한 사건이 일어나는 꿈. 악몽은 미지의 세계에 숨어있는 천 길 낭떠러지다.
영화 나이트메어의 프레디가 설치는 악몽에서 꿈은 개인의 범주를 벗어나 자신이 사냥감이 된 사냥터로 돌변한다. 이 책, <드림 버스터>(프로메테우스. 2007)의 세계관이 이와 같다. 지구와는 다른 세계 '테-라‘에서 행해진 실험이 거대한 폭발로 실패한다. 이로 인해 그곳엔 깊은 구멍이 뚫리고 이것이 지구와 테-라를 이어주는 통로가 된다. 구멍의 존재가 달갑지 않기에 하루 빨리 메우는 것이 상책이지만 그 실험의 모르모트였던 대단한 범죄자들이 사념화되어 지구로 도주한 것이 문제가 된다.
실험의 목적인 육체의 한계에서 벗어난 자유를 얻은 테-라의 범죄자들은 틈이 있는 지구인의 꿈속을 지배하려한다. 이것이 성공하면 결국 정신이 지배하는 육체까지 조정할 수 있게 된다. 드림 버스터는 바로 이 테-라에서 탈주한 범죄자들을 쫓는 현상금 사냥꾼을 말한다. 그 중에서 소설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주인공 셴은 고참 드림 버스터와 함께 일본을 담당하고 있는 16세의 소년으로 그가 쫓는 범죄자 중 어머니가 끼어 있다는 녹녹치 않은 사연을 품고 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이야기는 개개의 사건과 그 사건마다의 인물이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고, 그것이 이어져 전체를 이룬다. 요컨대, 요즘 인기 몰이를 하고 있는 시즌 식 미국드라마처럼 소설은 한 편의 이야기로 맺어지지만 그것이 모여 한 시즌이 되며 단락 지어진 이야기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실마리가 전체의 결말을 암시하며 궁금증을 더해간다. 만약 시작에서 결말까지 선형적으로 나열된다면 <드림 버스터>의 무대가 되는 호기심 어린 세계는 자칫 지루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장황한 초기 인물 묘사에 진이 빠져 책장을 덮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을 작가는 조금씩 나눠 전체 소설의 군데군데에 흩뿌림으로써 독자의 흥미를 팽팽히 유지한다.
이와 더불어 이 소설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재미를 주는 것에는 작가 특유의 현실에 대한 날카로움이 일조하고 있다. 마치 만화와 같은 상상력이 창조한 세계의 SF소설에서도 그녀의 그 재능은 빛을 잃지 않는다. 물론 지구를 지키는 외계 용사의 인간미 넘치는 내면과 현상금 사냥꾼의 방탕함이 합쳐진 캐릭터라든지 꿈에 투영된 쓸쓸한 현대인의 상처 등의 소재가 그리 새로울 것은 없고, 그 속에 사회의 문제를 대입시켜 적당한 감동과 해답을 주는 것 역시 창조적 시도는 아니다. 하지만 이 구태의연한 배경에 짐작대로 흐르는 글이 그것의 속성인 재미를 잃지 않으면서 현대 사회의 문제의식을 전달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이것은 단지 작가를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팬의 편협한 판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나 용두사미 되지 않는 탄탄한 완결성과 복잡한 전개에도 맥락을 잃지 않는 그녀의 작품은 소설의 기본 틀인 서사구조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만으로 맹목적 찬사를 보낼만하다. 때문에 2권의 마지막 장을 아쉬워하며 아직 출간되지 않은 뒷이야기를 즐겁게 기다리는 경험을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