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 웅진 모두의 그림책 46
고정순 지음 / 웅진주니어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번의 경험으로도, 울지 않겠다는 다짐으로도,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엔 극복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그것은 사랑하는 존재와의 이별.
살아있음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이별해야 하는 우리지만, 어쩌면 우린 늘 눈에 보이는 이별만 내 것이라고 여겼는지 모른다.

고정순 작가의 <잘 가>는 어떤 이별에 우리의 무심함과 혹은, 우리 자신이 직접적인 가해자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특히나 우리가 한낱 즐거움을 위한 수단으로 곁에 둔 동물들. 이유없이 삶을 강탈당한 그들은 사는 동안 자유롭게 숨쉬고 뛰어보지도 못한 채 아픈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리고 여전히 끝나지 않는 비명 소리.
작가는 미안한 마음으로 우는 대신, 떠나간 생명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그들을 위한 자장가를 불러 준다.
모두 함께 부르는 애달픈 노래가 그들에게 닿기를, 그곳에서 평안하기를, 우리를 용서하기를…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멍한 눈으로 허공을 보며, 아릿한 마음을 추슬러 본다.
나도 모르게 품안에 책을 꼬옥 안고 있으니, 떠나간 사랑했던 존재들이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눈물이 맺힌 걸까.. 어느새 뿌예진 눈앞에 어른거리는 너무나 보고픈 존재들, 그리고 이름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생명들.

나는 조용히 기도한다.
더이상 아프지 않은 곳에서 평안하라고.
너를 기억하겠다고,
언젠가 그곳에서 만나면 꼬옥 안아주겠다고,
그리고 너무 미안하다고…

작가가 그림책 작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절에 그렸다는 그림들은, 당장 벽에 걸어도 좋을만큼 한 장 한 장 아름답고 책의 매무새는 훌륭하다.

오늘, 글과 그림이 설명하기 어렵게, 슬프도록 아름다운 그림책 고정순 작가의 <잘 가>를 만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먹어요
고정순 지음 / 웃는돌고래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 세상 모든 게 부조리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거의 모든 문제에서 말이다.
그 중에서 가장 나를 어렵게 했던 질문은, ‘다른 생명을 먹어야(죽여야) 사는 우리가 모든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였다.’ 그렇다고 비건이 되고 싶은 것도(하지만, 식물도 생명인데), 그럴 자신도 없었기에(그리고 그것 역시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에) 그저 때때로 올라오는 질문을 모른 체하며 지내왔다.
그러던 오늘, 애정하는 고정순 작가의 서정적 논픽션?!(낯설다는 생각은 잠시 뿐, 그녀가 늘 지금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이 깊은 관심을 가진다는 걸 아는 순간 음식에 관한 그녀의 이야기가 무척 궁금해져서 <우리는 먹어요>를 보았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내가 외면해 온 오랜 고민에 대한 답을 주었다,
‘자연스러움’과 ‘감사’!
다른 생명으로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숙명을 가진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져야할 태도와 마음은 ‘죄책감’과 ‘포기’가 아니라,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자연스러움), ‘감사’하는 마음인 것이다.

논픽션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 책을 통해 음식에 관한 정보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음식과 생명에 관한 작가의 질문을 만나고 함께 생각하고 , 길을 잃을 때면 가까이 다가와 빛을 밝혀 주는 그녀, 고정순을 만나게 될 테니까. ^^

철학, 필로소피는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나는 이 책에 ‘음식과 생명에 관한 아름다운 철학 그림책’ 이란 이름표를 달아 주고 싶다.
그리고 오늘 점심은 소박하고 먹을 만큼의 음식을 차리고, (신을 넘어 음식을 만든 생명 모두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려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비둘기
고정순 지음 / 만만한책방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정순 작가의 작품이 좋은 건, 매순간 진실하고 간절한 작가의 마음이 글과 그림 속에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생의 정면보다는 이면을, 빛보다는 어둠을 바라보는 그녀가 그 안에서 건져 올리는 반짝이는 희망에 언제나 진한 위로를 받는다.


그녀의 모든 작품을 사랑하지만, 이 책 <나는, 비둘기>의 첫 장을 펼치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고

나도 모르게 아름답다’다고 말하며 책을 덮었다.


작가의 작품 속 주인공은 모두 그녀의 분신이다. 어디서 올지 모르는 위기 앞에서 퉁퉁 부은 눈으로 다시 가드를 올리는 빨간 주먹, 언젠가 도착할 죽음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의 길을 떠난 산양이 그랬듯이, 이 작품의 주인공 비둘기도 그러하다.

잘린 날개와 다리로 뒤뚱거리며 걷는 비둘기는 수많은 좌절을 지나 뚜벅뚜벅 느린 걸음을 내딛는 비둘기. 그의 꿈은 오직 다시 자유롭게 나는 것이었다.

희미한 도시의 배경 속을 뒤뚱거리며 힘차게 걷는 비둘기에게서 슬픔이 느껴지다가도 다시 날기 위해 계단을 오르내리는 비둘기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힘내! 하며 외치며 비둘기를, 어쩌면 나를 힘껏 응원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보기 싫은 존재였던 비둘기를, 그리고 나 자신을 조용히 끌어안아 주었다.

작가의 작품은 한결같이 우리는 모두 같은 삶을 살아 내는 존재임을 알려 준다. 어떤 삶도 희극일 수만은 없는 우리에게 감춰 둔 고통을 마주하게 하고, 또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힘을 준다.

자신의 목을 조일지도 모르는 검은 비닐봉지가 비둘기에게는 희망이었다. 그 안에 바람이 차올라 둥실 몸이 떠오르는 순간 비둘기는 온힘을 다해 날아오를 것이다. 이제, 때가 되었다.

 

바람은 적당했고, 연습은 충분했습니다. 비둘기는 남은 한 발을 굴려 있는 힘껏 뛰었습니다.”

 

나는 이 아름다운 문장에서 또다시 숨을 멈췄다.

제발, 살아서 다시 높이 날아 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안의 소란
고정순 지음 / 여섯번째봄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난히 깊고 아름다웠던 가을이 저물 즈음, 내내 궁금했던 작품을 만났다. 그림책 작가이면서 에세이스트인 고정순 작가가 청소년 노동을 소설로 쓴 <내 안의 소란>.

 

소설은 일터에서 아빠를(아빠는 청소년 노동자였다) 잃은 소녀 무연의 시선을 따라 무연과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엮어 내며 우리 안에 존재하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는 소외된 존재들을 보여 준다.

이야기는 화자이면서 주인공이기도 한 무연의 의식을 따라 자유롭게 시간을 넘나들면서 부모의 학대로부터 도망쳐 미혼모로 살아야 했던 엄마 소연, 어린 나이에 일터에서 소리 없이 사라져버린 아빠, 아빠에게 버려지고 생리대가 없어서 피 묻은 속옷을 쿠키 상자 속에 숨겨야 했던 소란, 그리고 아빠를 잃고 친구마저 잃어야 했던 무연의 이야기들이 씨실 날실이 되어 얽히고설키다 결국엔 하나의 조각보로 완성된다. 조각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삶을 살아 내는 소년들의 얼굴을 새겨 넣으며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작가의 마음이 보인다.

 

읽는 내내 어쩐지 작가의 일기를 훔쳐보는 느낌이었다. 무연은 물론이고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에 작가 자신의 심장 일부를 조금씩 떼어 주었고, 덕분에 그들은 각각 생생하게 살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주인공 무연은 평소에 제법 어른스러운 척하지만, 절친 소란에게 질투를 느끼기도 하고, 엄마와 싸우고 며칠 동안 말을 안 하고, 아빠 없는 아이란 걸 들키기 싫어서 아빠는 시인이고 멀리 출장을 갔다는 거짓말을 하는 아이면서 할머니와 손을 잡고 춤을 추면서 수다를 떨 줄 아는 능청스러움을 갖고 있는 애처로우면서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무연의 또 다른 자아처럼 보이는 소란은 물론이고, 소연, 송 여자, 심지어는 무연의 비밀을 터뜨려 버린 얄미운 양민혜까지도 그녀가 애처로워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그녀의 전하지 못한 진심을 담아 각각 이야기를 쏟아낸다.

특히,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며 소리 없이 사라져버린 무연의 아빠, 영무의 존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청소년 노동 문제의 현실을 아프게 보여 준다.

무겁고 아픈 이야기이지만, 마치 작은 술집에서 작가와 술잔을 마주하고 그녀가 낮은 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듯 생생하고 가깝다.

 

이렇게 그녀가 잊지 않기 위해 소환한 무영, 소란, 무연은 어느새 나의 마음속에 다른 이름으로 깊게 자리 잡았다. 책을 읽기 전 나는 잘 모르는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3자로 함께 공감하고 다정하게 들어줄 수 있지만, 사실은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아이들, 그리고 사람들. 하지만 무연을 만나면서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내 주변에 있는 너무도 평범한(그렇게 보이는) 아이들, 하지만 자세히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수없이 많은 그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나도 이제, 뜨거운 찜통 안에서 흐물거리지 않도록 호빵을 지켜 주는 종이처럼(매번 나를 놀라게 하는 고정순표 은유이다) 누군가에게 작지만 기대고 싶은 존재로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작가의 첫 소설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풀고 연결하는 솜씨에 혀를 내두르고 만다. 아마도 수십 번 뒤엎고 다시 짓기를 반복했을, 그리고 기어이 완성하며 울음을 터뜨렸을 작가의 마음과 수고를 만난 듯하여, 그 울음 앞에 작은 손수건을 내 주고 싶다.

 

냉면을 좋아해.”라고 말하는 소란의 입 모양을 좋아해서, 고무줄을 씹어도 냉면 맛이 난다면 좋아할 거라는 무연처럼,

고정순 작가의 맛이 담긴 글이라면 그림책이든, 만화책이든, 에세이든, 소설이든 무조건 좋아하게 될 것 같다. 그녀의 단단한 글 사이사이를 비어져 나오는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다정한 위로가 주는 힘을 달리 이겨 낼 재간이 없으니 말이다.

 

나는 오늘 (그녀의 작품에 감히 순서를 매길 수 없지만) 내 마음속 책장 가장 높은 자리에 주저 없이 <내 안의 소란>을 두었다.

 

 

 

 

" ...왜 그런 거 있잖아. 입으로는 잔소리하는데, 눈은 다정하게 날 바라보는 그런 사람. 너네 엄마 그런 사람이잖아." ..살기 위해 센 기억을 밀어 낸 아이 명소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무 씨의 달그네
고정순 지음 / 달그림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전 우연히 <가드를 올리고>를 보고 마음을 빼앗겼고, 

작가를 좀더 알고 싶은 마음에 이전 작품을 찾아보다가 놀랍게도? 그림책이 아닌 에세이를 만났다. <안녕하다>.
어두운 밤하늘에 오묘한 빛을 내며 떠 있는 달을 올려다 보고 있는 한 마리 양이 그려진 표지가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표지에 오래 머물렀던 기억이 난다.
이후 <어느 늙은 산양 이야기>에서 <안녕하다>로 눈인사를 나눈 그녀, 

산양 씨를 다시 만났다. 이번엔 노란 달과 함께였다. 
‘아! 또 달이네. 아마도 작가는 달을 좋아하나 보다.'

이후 작품 속에서 그녀를, 그녀의 생각을, 꿈을 좇은 덕분인지, 이번에 만난 <무무 씨의 달그네>에서는 달을 사랑하는 그녀, 무무 씨를 단박에 알아챘다. (뿌듯~^^)

책 속에는 각자의 꿈을 위해 달로 떠나는 사람들이 나온다.
현실을 피해 떠나는 사람, 그저 달이 좋아서 떠나는 달풍 씨... 

그들은 달로 떠나기 전에 구두를 닦는다. 마음속에 품은 꿈이 구두처럼 반짝이기를 바라면서. 

무무 씨는 사랑하는 달로 가는 대신, 떠나는 사람들의 구두를 닦아 준다.


다른 이들의 꿈을 응원하며 구두를 닦아 주는 무무 씨에게 마음이 간다.

달에서 신을 구두를 닦아 주는 건, 사랑하는 달을 지키기 위한 무무 씨의 사랑법이 아니었을까. 

작가의 이전 어느 작품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그림에서, 달을 향한 그녀의 숨길 수 없는 마음이 보인다. 

그리고 무언가를 깊이 사랑할 때 그녀의 사랑법도...

다정한 편지글로 써 내려간 <무무 씨의 달그네>는 사랑에 관한 은근한 고백이며, 어쩌면 고정순 작가, 그를 가장 많이 닮은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무무 씨가 달을 기다리듯 그녀가 글로, 그림으로 전하는 이야기를 기다린다. 
그녀가 오늘도 밤새우며 정성껏 만들어 주는 책그네를 타면서 말이다.




"달에 가면 달을 볼 수 없잖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