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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둘기
고정순 지음 / 만만한책방 / 2022년 2월
평점 :
고정순 작가의 작품이 좋은 건, 매순간 진실하고 간절한 작가의 마음이 글과 그림 속에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생의 정면보다는 이면을, 빛보다는 어둠을 바라보는 그녀가 그 안에서 건져 올리는 반짝이는 희망에 언제나 진한 위로를 받는다.
그녀의 모든 작품을 사랑하지만, 이 책 <나는, 비둘기>의 첫 장을 펼치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고,
나도 모르게 ‘아름답다’다고 말하며 책을 덮었다.
작가의 작품 속 주인공은 모두 그녀의 분신이다. 어디서 올지 모르는 위기 앞에서 퉁퉁 부은 눈으로 다시 가드를 올리는 빨간 주먹, 언젠가 도착할 죽음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의 길을 떠난 산양이 그랬듯이, 이 작품의 주인공 비둘기도 그러하다.
잘린 날개와 다리로 뒤뚱거리며 걷는 비둘기는 수많은 좌절을 지나 뚜벅뚜벅 느린 걸음을 내딛는 비둘기. 그의 꿈은 오직 다시 자유롭게 나는 것이었다.
희미한 도시의 배경 속을 뒤뚱거리며 힘차게 걷는 비둘기에게서 슬픔이 느껴지다가도 다시 날기 위해 계단을 오르내리는 비둘기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힘내! 하며 외치며 비둘기를, 어쩌면 나를 힘껏 응원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보기 싫은 존재였던 비둘기를, 그리고 나 자신을 조용히 끌어안아 주었다.
작가의 작품은 한결같이 우리는 모두 ‘같은 삶을 살아 내는 존재’임을 알려 준다. 어떤 삶도 희극일 수만은 없는 우리에게 감춰 둔 고통을 마주하게 하고, 또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힘을 준다.
자신의 목을 조일지도 모르는 검은 비닐봉지가 비둘기에게는 희망이었다. 그 안에 바람이 차올라 둥실 몸이 떠오르는 순간 비둘기는 온힘을 다해 날아오를 것이다. 이제, 때가 되었다.
“바람은 적당했고, 연습은 충분했습니다. 비둘기는 남은 한 발을 굴려 있는 힘껏 뛰었습니다.”
나는 이 아름다운 문장에서 또다시 숨을 멈췄다.
‘제발, 살아서 다시 높이 날아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