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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 사육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승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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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의 숨 막히는 경쟁이라는 틀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한 줄기의 비를 촉촉이 내려주듯이 문학은 그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다.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그와 같은 감성에 빠질 수 있다.

 

에드거 앨런 포는 문학작품은 독자가 앉은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짧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책은 오에 겐자부로의 단편들을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그의 작품을 시간의 배열에 따라 읽는 것은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나이를 먹음에 가지고 있던 생각 자체도 변화지만 글도 변하는 것 같다. 나 또한 장편도 좋지만 예전보다 단편 또는 중편을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단편을 멀리한 이유는 특별히 없지만 제일 컸던 것은 작가의 함축적인 시공간의 표현을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스물세 편의 작품들은 초기·중기·후기 세 시기로 나뉘어 실려 있다. 그의 초기 단편들로는 「기묘한 아르바이트」와 「사육」을 비롯하여 우익 극단주의자들과 좌익 지식인 및 예술가들 양쪽에게 공격받은 「세븐틴」, 『개인적인 체험』의 또 다른 결말을 보여 주는 「공중 괴물 아구이」까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발표된 여덟 작품을 골랐다. 중기 단편들로는 『‘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조용한 생활』『하마에게 물리다』 같은 1980년대와 1990년의 연작에서 열한 편을 골랐는데, 이 작품들에서는 생과 사의 절실함이 압도적인 생생함을 띠고 중층적으로 전개되며, 오에가 평생 동안 문학으로 극복하고자 애쓴 삶의 명제들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후기 단편들로는 「마고 왕비의 비밀 주머니가 달린 치마」를 비롯하여 1990년대에 걸친 네 편을 골랐다.

 

또한 그는 일단 쓴 것을 계속 고쳐 나가며 내용이나 문체를 확정 지어 가는 습관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했다. 오에는 평소에도 일관되게 퇴고야말로 소설가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해 왔는데 그의 말을 요즘 실감하고 있다. 노 작가의 글쓰기의 습관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그 작업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이 수반이 되는지 알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기묘한 아르바이트」는 개 사육장이라는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주인공을 통해 현실의 사회적인 문제점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사육 당하는 개들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하게 한다. 정부의 일방적인 권력에 제대로 된 대항도 한 번 못하는 우리 민초들의 이야기를 대신하고 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한다. 하물며 개들이야, 인간들이야. 속에서 끌어 오르는 분을 속절없이 삭일 수밖에 없는 개들의 모습에서 우리들의 모습이 보인다. 우중충하고 아무 기력이 없는 개들의 모습에서. 그는 사르트르와 실존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는데 암울한 상황에서 저항의 의지조차 품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동시대의 젊음을 ‘감금 상태’로 해석한 독특한 작품들로 선명한 색채를 지니고 있다.

 

또한 그는 장애를 가진 아이와 살아간다는 현실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켜 소설로 씀으로써 스스로를 상대화하여 현실을 일단락 짓고 앞으로 내디디는 힘을 얻게 했다. 그리고 이를 소재로 삼은 『개인적인 체험』을 발표했는데 이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말 그대로 자신의 경험을 소설에 반영한다는 것은 쉽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웬만한 용기가 없으면 속에 있는 비밀을 그대로 책에 담기는 어려운 법이다.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인류 구원과 공생을 역설하는 작가의 모습은 우리가 배워야 할 모범 답안이 아닐까 싶다. 서두에 말 했듯이 짧은 이야기를 읽는 재미를 요즘 느낀다. 단막극의 묘미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이런 인생의 단편들이 모이면 대 서사시인 장편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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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윤동주 시인이 연희 전문 졸업 기념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출간하려 했던 19편의 시를 1부로 묶었고, 그 외의 발표된 시와 동시 87편은 2부로 묶어 총 106편의 시를 실었으며, 산문 5편을 3부로 묶어 수록하였다. 또한 시인의 생애와 시 세계를 자세한 해설로 추가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도록 하였다.

 

요즘 영화에서도 인기를 모으고 있는 윤동주에 대한 책이다. 3월에는 그의 시를 감상해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갔다.

 

 

 

 

 

 

 

  

'작가의 말'을 통해 밝히고 있듯, 윤대녕은 수년 전부터 '도시 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해왔다. 가족의 해체를 비롯, 삶의 기반을 상실한 채 '난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음을 주시해왔던 터이다. 결국 타인과의 유대가 붕괴됨으로써 심각하게 정체성 혼란의 문제를 앓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이들을 통해 작가가 '새로운 유사 가족의 형태와 그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 결과물이 바로 <피에로들의 집>이다.

 

‘가족의 해체’라는 단어만으로 관심이 증폭되었다. 이야기가 어떻게 전재될지 궁금하다.

 

 

 

 

작가 제니퍼 니븐은 여덟 번째 작품이자 첫 번째 성장 소설인 <핀치&바이올렛

>에서 섬세하고 상처 입은 두 젊은 남녀의 극적인 첫 만남부터 이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은 러브 스토리를 신선하고 재미있게 그려 냈다. 특히 남녀 주인공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독특한 전개로 "솜씨 좋은 스토리텔러"라는 호평을 이끌어 내며 현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바틀릿 고등학교에서 문제를 달고 사는 핀치와 불의의 사고로 언니를 잃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바이올렛, 두 젊은이가 종탑의 꼭대기에서 우연히 만난다. 이들은 서로의 상처와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면서 진정한 친구로 거듭난다. 곳곳을 누비며 세상을 보고 듣고 경험함으로써 핀치와 바이올렛은 자연스레 진실된 서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솜씨 좋은 스토리텔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013년 맨부커상 수상작. 별빛처럼 찬란하게 펼쳐지는 치밀하고 세련된 역사 미스터리. 황금을 둘러싼 그릇된 탐욕과 엇나간 운명을 그리고 있다. 1866년, 크게 한몫 잡겠다는 생각으로 금을 찾아 뉴질랜드에 도착한 남자, 무디. 그날 저녁, 그는 황량한 금광 마을 호키티카의 허름한 호텔 흡연실에서 자신도 모르게 12명의 남자로 구성된 비밀 모임에 끼어들게 된다.

 

실종된 젊은 갑부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창녀, 외딴 오두막에서 살해된 부랑자의 집에서 발견된 어마어마한 양의 금. 삶에서 밀려나 세상의 끝으로 모여든 남자들의 이야기를 듣던 무디는 어느새 인간의 운명과 황금이 별자리처럼 얽혀드는 미스터리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간다. 12개의 별자리를 닮은 12명의 남자와 12개의 진실. 삶의 마지막 희망을 비추는 찰나의 빛과 그 소멸의 이야기

 

<플라나리아>는 나오키상 수상 당시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야마모토 후미오의 대표작이면서, 한일 양국의 독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단편소설집이다. 야마모토 후미오는 <플라나리아>에 수록된 다섯 편의 단편을 통해 모든 것이 불확실한 현대인의 삶 속에 자리 잡은 불안 심리를 군더더기 없이 명료하고 냉철한 시각으로 재치 있게 형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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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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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는 성경 속에 있는 인물을 또 끄집어냈다. 베스트셀러인 성경을 가지고 그 나름대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재구성한 이 소설은 인간과 신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있고 그러므로 해서 인간의 본연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탐구하게 하는 힘이 실려 있는 소설이다. 우리가 아는 카인은 동생인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죄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추방을 당한다. 죄인인 카인이 주인공이 되어 그의 시선으로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이야기한다. 소설을 쓰려면 여러 가지 시각과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들었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그것을 재확인하고 있다.

 

그런 카인에게, 그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은 너그럽지 않고 심술궂은 냉혹한 신으로 보였을 것이다. 우리는 부모의 속내를 모르고 대들 때가 있다. 부모는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며 야단을 치거나 혼을 낸다. 하지만 자식은 그것도 모르고 화를 내며 색안경을 끼게 된다. 그런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서 해소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계속 누적되는 경우가 있다. 카인도 마찬가지였다. 카인에게 비춰지는 하나님의 형상은 결코 너그럽지도 자애롭지도 않았다. 아들을 희생으로 바치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아브라함이 받는 모습과 하늘에 닿고자 거대한 탑을 짓는 사람들을 향해 여호와가 허리케인으로 한 일, 여호와가 미래에 무엇을 바라게 될지 알지도 못하는 아이들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들 위에 벌로 불과 유황을 내리는 광경 그리고 시나이라고 불리는 산의 기슭에 모인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다가 그 죄로 죽임을 당하는 사건과 이스라엘이라고 알려진 군대에 속한 병사 서른여섯 명을 감히 죽인 도시와 마지막 어린 아이까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그 주민, 또 여리고라고 부르는 다른 도시와 그 성벽이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 몇 개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로 무너지고 안에 있던 모든 것-남녀, 노소, 심지어 소, 양, 나귀까지 다 죽은 사건 등을 직접 경험하는 카인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되묻기에 이른다.

 

사실 나는 기독교인으로 이 소설의 내용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처럼 《우리 동네 아이들》라는 소설을 쓴 나지브 마흐푸즈도 모세오경에 있는 성경속의 인물과 줄거리를 작가의 상상력과 주제의식을 가지고 도출해냈다. 그는 선과 악에서 악은 반드시 패하게 된다는 주제를 성경속의 인물과 배경 속을 비유해서 그의 생각을 피력했다. 하나님께 내쫓기고 나서 신의 본질에 의문을 제기하는 카인의 모습은 하나님의 엄격한 기준으로 잰다면 매일매일 죄를 짓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과 같다. 이처럼 주제 사라마구가 제시하는 것도 신과 대항하는 인간으로서의 카인보다는 인간 본연의 방향성을 재조명해보는 차원에서 과연 우리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를 일깨워 주고 있다. 나지브 마흐푸즈가 말한 ‘선과 악’과 주제 사라마구의 ‘죄’는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라는 측면에서 같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매일매일 죄를 짓는 카인과도 같다. 그렇지만 카인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그처럼 하나님을 저버려서는 인간사를 정상적으로 살 수 없다. 신은 존재하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의심하기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연약함을 알고 우리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카인처럼 믿음을 져버리는 일이 없도록 이 세상 전투에서 승리를 해야 한다. 그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절실히 느꼈고 ‘죄’와 ‘믿음’에 대해서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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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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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인 삶을 어떻게 개척할 것인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내 삶의 운명이 결정된다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또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쳐 지나가는 정념이 수면 아래에서 잠자코 있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과 같은 운명적인 삶을 내가 짊어진다면 과연 나는 그 무게를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한 운명을 수긍하기보단 분노가 속에서 끊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용암이 분출되듯이 올라오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도대체 누가 이런 가혹한 삶을 부여했을까.

 

이 책은 한 가족이 30년간 있었던 일대기를 그렸다. 부모에게 있었던 절망적인 삶이 자식에게 전이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웠다. 슬픔 이전에 절망이 떠오르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토요일 밤, 한 주의 고된 일상을 위로해줄 사랑의 열기로 들떠 있던 16세 소녀 로레타는 남자 친구 버니 멀린과 사랑을 나누지만, 다음 날 새벽 오빠 브룩에게 총을 맞은 버니의 시체를 곁에서 발견한다. 황망한 가운데 도움을 청한 경찰 하워드 웬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임신한 로레타는 당연한 수순인 듯 하워드와 결혼하여 웬들 일가가 된다. 운명의 장난은 여기서부터 시작이 된다. 잘못 꿰어진 단추는 처음부터 다시 끼어야 하는데, 이미 엎질러진 운명의 손짓을 어떻게 되돌릴 수가 있겠는가. 그게 로레타의 자식, 줄스와 모린에게까지 영향이 끼칠 줄이야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이런 절망적인 운명이 올 줄이야.

 

로레타의 아들 줄스는 진작부터 집에서 뛰쳐나가 디트로이트 변두리를 떠돌아다닌다. 그는 자동차와 돈, 도박, 희망 없는 사랑, 무의미한 폭력에 휩싸인다. 줄스에게 총을 쏜 연인 네이딘이나 줄스 자신에게 사랑은 모든 생의 가치를 무화하는 것이었다. 줄스는 결국 마약을 하고 애인에게 성매매를 시키는 등 타락을 하고,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기에 이르러서는 살인을 저지른다. 딸인 모린은 줄스가 가졌던 부정적 환경에 더해 가사 노동과 가정 폭력의 희생양이 되기까지 했다. 그녀가 택할 수 있는 수단은 매춘이었다. 이 때문에 가해진 무자비한 폭력에 모린은 거의 2년간 혼수상태에 빠져든다. 소설 끝부분에서 모린은 대학 강사 랜돌프와 결혼해서 디트로이트 교외의 안전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그토록 갈망해오던 안정된 가정을 꾸린 상태다. 하지만 줄스는 새로운 꿈을 좇아 서부로 떠나기로 하고 모린 앞에 나타난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으니 가족과 단호히 결별하겠다는 모린에게 줄스는 “하지만 모린, 너도 ‘그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야?”라고 되묻는다.

 

이러한 운명에 맞닥뜨릴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 풍토가 사회 저변에 깔려 있다면 누구나 불을 보듯 뻔히 쳐다만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피해자가 있으면 가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가해자를 ‘기득권자’로 피해자를 ‘소수의 개인’이라고 비유해도 무방하리라 본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는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우리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누구든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겸손하지 않은 자이거나 무지몽매한 자이다. 그만큼 우리는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해서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은 ‘절망의 세습’이었다. 부와 권력의 세습과는 다르게 절망의 세습은 사람을 피폐하게 함은 물론이고 한 사람의 인생을 넘어 한 가정의 파탄을 초래케 했다. ‘운명’이라는 ‘절망의 세습’을 끊기 위해 우리는 몸부림을 치고 벗어나려 하지만 발버둥을 치면 더 옭아매는 그물처럼 그 효과는 미미하다. 그렇다고 무방비로 상태로 그냥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기에 운명을 뒤엎는 묘책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소극적인 자세에서 적극적인 자세로 변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우리도 그들이 생각하는 ‘그들 중에 하나’가 되지 않아야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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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낙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불안한 낙원
헤닝 만켈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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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선거 유세가 한창이다. 전철을 타려는 입구에서 선거유세를 하는 이들을 만나곤 한다. 살며시 몸을 움츠려서 그들이 건네주는 명함을 모른 채 하거나 적극적으로 싫다는 손짓을 하고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는다. 그들은 평소에는 잘 나타나지 않다가 선거철에만 잠시 나타나는 철새와 같다. 그들도 한 철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초리로 지나가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유세를 펼치고 있다. 그들의 공약이 어떻든 나는 관심이 없다. 공허한 메아리만 되어 돌아오는 그들의 말에 누가 공감을 하겠는가. 그들의 말이 지켜진다면 모를 일이지만, 우리도 경험을 통해 그들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그 중에 진정성을 가지고 사회를 한 번 바꿔 보겠다고 해서 나오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옥을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보다 더 어려운 게 현실임을 감안한다면, 과연 누가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인지조차 모를 때가 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그들의 기득권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갖은 아양을 떨면서 머리를 숙여가면서 그러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소설 ‘불안한 낙원’도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 시기와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지 사람 마음 속에 있는 권력에 대한 욕심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같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한나는 자신의 궁핍한 삶을 해결하기 위해서 아프리카로 향한다. 하지만 그곳은 낙원이라기보다는 지옥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보고 들은 참혹한 현실은 이를 방증하고도 남는다. 그녀의 시선에 보여 지는 세상은 백인인 그곳 토착민인 흑인을 노예로 부리고 남자가 여자를 함부로 대하는 말 그대로 평등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이방인 한나가 보기에 그곳은 흑인과 백인 모두 서로에 대한 두려움을 지닌 채 인간의 얼굴을 잃어가는 사회다. 백인들은 현재의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흑인들은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포르투갈 령 동아프리카의 로우렌소 마르케스라는 항구 도시였다. 그녀는 한 호텔에 묵었는데 그곳에서 병을 얻고 호텔 여인들의 도움으로 회복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곳은 유명한 매움 굴이었고 그녀를 도와 준 여인들도 매춘부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남자와 결혼을 한다. 불안한 낙원에서 더 이상 혼자 살아 갈 자신이 없던 한나는 매음굴 주인과 애정 없는 결혼을 하지만 몇 달 만에 다시 미망인이 되고 만다. 이제 남편으로부터 물려받은 매음굴과 여자들에 대해 무한한 책임감을 갖게 된다. 더 이상 아프리카에 사는 무기력한 백인 여자가 아니어야 함을 깨닫기 시작한 그녀는 나름의 원칙과 기준으로 흑인 여자들을 대변하기 시작하고, 백인과 남성이 지배하는 폭력적 세계의 부조리에 서서히 눈을 뜬다.

 

그곳에서 갖은 악행을 저지르는 백인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길이 이 아프리카 땅에서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나는 정당한 이유가 있었음에도 투옥되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한 흑인 여인을 구명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한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백인 사회는 그런 그녀를 비난한다. 지배자로서 지켜야 할 그들만의 원칙을 깨트리고 동족을 배반했기 때문이다. 한나는 흑인들로부터도 소외된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그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애를 쓰는 그녀를 지지할 수 없다. 매음굴의 주 고객인 백인들의 보이지 않는 보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기득권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 소설에서 보듯 백인은 기득권자들이었고 흑인들은 피지배자들이었다. 자신들의 땅에서 이방인들에게 지배를 받으며 갖은 수모를 겪는다. 이 소설의 배경이 100년 전이라고는 하지만 그러한 행태는 지금 현실에도 존재한다. 서두에 말한 것처럼 한 번 기득권을 부여잡은 사람들은 그것을 다시 획득하기위해 비굴한 모습조차 참으며 그들이 원하는 목표를 쫒는다. 기득권 자체 문제라기보다는 그 수위가 문제이다. 인간관계에서 남보다 우위에 서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자들은 그것을 쉬이 놓지 못한다. 원래부터 자신들에게만 맞는 옷인 양 절대 벗지를 못한다. 그게 자신들을 옭아매는 덧인지도 모르고 덥석 무는 격이다. 이 소설을 통해서 권력 뒤에 있는 무서운 공포를 보았다. 그것은 흑인들이 갖고 있는 노예 의식이고 패배의식이다. 그들도 그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1프로의 기득권자와 99프로의 피지배자, 그게 아직도 음습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각성해야 한다. 이 책을 통해서 그걸 느낄 수 있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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