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낙원 - 현대 도시 문화와 삶에 대한 성찰
정윤수 글.사진 / 궁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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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라고 꼭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사유만 하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철학자들은 예의 사려 깊은 태도와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가 사는 현실의 주변부를 고찰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로부터 시작된 철학자들의 산책자로서의 전통은, 그들의 사유가 오히려 서재보다 길 위에서 더 활발함을 대변해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섰던 공간과 길이 철학적 사유의 촉발점이 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이를테면, 발터 벤야민의 경우 ‘도시’는 매혹적인 사유의 공간이었다. “어떤 장소를 이해하려면 동서남북에서 다가가 보아야 하며, 동서남북으로 떠나가 보아야 한”다는 그의 말로써, 우리는 길 위 철학자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인공낙원』의 저자인 정윤수는 철학자는 아니다. 오히려 문화평론가라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한데, 그렇다고 그에게 철학자란 직명이 과분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여러 매체를 통해 발표한 바 있는 그의 글을 읽어 보면, 우리가 사는 시대와 공간에 대한 어떤 의미있는 성찰에 도달할 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를 도시의 철학자라고 한들, 공간과 인공물에 대한 그의 사유의 의미가 크게 과장되거나 퇴색하진 않을 것이다. 

서평작인 『인공낙원』은, 저자가 글의 소재로 즐겨 삼곤 했던 ‘인공 공간’에 대한 사유를 본격적으로 담았다. 부제는 ‘현대 도시 문화와 삶에 대한 성찰’인바, 저자는 인공 공간도 인공 공간이지만, 그보단 인공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 삶의 궤적에 더 방점 찍고 있다. “도시는 거대해졌고 인간은 왜소해졌다. 인공 공간은 찬란한 빛을 발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점점 주눅들고 있”다는 그의 말 속엔, 도시의 ‘인공낙원’을 바라보는 문제의식이 전적으로 드러난다.  

저자는 우리 일상의 풍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인공의 공간들을 찾아다녔다. ‘역사성의 회복’이라는 당위를 들며 재정비된 ‘광화문 광장’, 현대인의 물신적 상징이 된 ‘멀티플렉스 극장’, 한국 중산층의 욕망이 구현된 ‘모델 하우스’, 더이상 어두운 골목길에 숨지 않은 ‘모텔’ 등, 특히 거대하고 우리의 삶과 문화를 잘 대변해주는 인공 낙원의 모습을 담아냈다. 머리론 사유를, 손으론 글을, 다리론 경험을, 눈으론 사진을 담았으니, 이만한 성찰의 결과도 드물다.  

인공 낙원에 살고 있는 이들의 삶이 다분히 인공적인 가치와 행복으로 전도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저자는 인공 낙원을 대면하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하지만, 예외로 서울 월드컵 경기장만큼은 느슨하게 바라본다. 아마도 저자는 월드컵 경기장에서 경험하는 어떤 뜨거운 열정을 통해서, 현대인의 탈출구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인공의 낙원이라고 하더라도, 그 속에 인간적 삶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이 ‘현대의 도시에서 과연 인간적 삶이란 가능한가?’에 어떤 근원적인 질문도 대답도 내놓지 않지만, 그 모습을 꼼꼼히 기록함으로써 인간적 삶의 가부를 넌지시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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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낙원 - 현대 도시 문화와 삶에 대한 성찰
정윤수 글.사진 / 궁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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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7 한마디로, 발로 쓴 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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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
최성일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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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아내가 쓴 이 책의 서문을 꼭 읽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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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키 바트만 - 19세기 인종주의가 발명한 신화
레이철 홈스 지음, 이석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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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는 인간이 발명한 가장 끔찍한 것들 중 하나다. 유럽인들이 바다를 건너 새로운 땅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신체적 특징을 가진 원주민들을 만나게 된다. 다른 인종 간의 만남은 역사적인 경이로 기록될 수도 있었다. 유럽인은 그러는 대신 원주민을 하등인간으로 정의 내리고, 정복하고 착취했다. 인종주의는 새로운 땅과 인종을 정복 가능하게 만드는 합리화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신의 계시, 과학적 탐구, 영토 확장에 대한 제국적 욕망 등, 당대의 건전하지 못한 모든 사상들이 인종주의를 뒷받침했다. 아프리카가 쌓아온 오랜 문명을, 유럽인들은 삽시간에 망가트렸고, 검은 피부의 아프리카 인들을 자신의 발아래 놓았다. 피부색은 다르지만 같은 인간임을 유럽인들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사르키 바트만’은 그런 인종주의가 낳은 끔찍한 신화다. 남아프리카 코이산족의 처녀였던 사르키는 유럽인들에 의해 노예로 끌려갔다. 비록 노예이긴 했지만, 그녀의 고향 땅 케이프타운에서 생활이 그리 끔찍했던 것은 아니었다. 자유민 흑인 밑에서 유모로 일했고, 군가대 군인과 가정을 꾸미기도 했다. 하지만 노예상은 매력적인 외모의 사르키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녀를 아프리카 희귀종으로 포장하여 런던에서 인종 전시(freak show)를 계획한 것이다. 
 

아프리카 인으로서는 그리 특이한 경우가 아니었지만, 유럽인들의 눈에는 그녀의 엉덩이를 비롯한 몸매가 비정상적으로 커다랗게 보였다. 전신 스타킹을 신고, 기린 가족을 걸치고, 가면을 쓰자 그녀는 육감적인 매력을 지닌 검은 비너스로 변했다. 전시 기획자는 그녀를 ‘호텐토트의 비너스’라고 선전했다. 호텐토트는 코이산족을 저열하게 부르는 명칭이었다. 이상하고 불안정한 것, 성적으로 변태적이란 의미도 있었다. 유럽인들에게 사르키는 관음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커다란 엉덩이와 긴 음부를 구경하고 관찰했다. 엉터리 과학자들은 그녀의 몸매를 ‘불량한 진화의 증표’라 여겼다. 그녀는 동물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 아닌 인간 취급을 받으며 치욕스런 삶을 살았고, 그렇게 죽었다. 


그녀가 사후에 밀랍으로 박제되어 파리의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되었다는 사실은 인류역사의 지울 수 없는 끔찍한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저널리스트인 레이철 홈스는 철저한 사료조사를 통해 남아프리카에서 영국, 다시 프랑스로 건너간 사르키 바트만의 비극적 삶을 추적했다. 이 책은 그동안 막연하게 알려졌던 사르키의 삶을 자세히 묘사한다. 


그녀는 한 인종이 다른 한 인종에게 휘두른 폭력의 상처로 남았다. 그리고 그 상처는 기억되어야 한다. 남아공의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는 프랑스에 사르키의 반환을 요청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용서할 수 있지만 잊지는 않겠다.” 인종주의란 이름의 차별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그녀를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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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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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운동이 지금처럼 산발적이고, 또 그 여파가 치명적인 시기는 없었다. 물론 여기서 대중운동이 반드시 거리의 가두행진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대의 대중운동은 훨씬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방식, 말하자면 인터넷 공간에서 더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여론 형성은 주류 언론의 그것을 뛰어넘기 일 수다. 과거의 카페와 광장이 대중운동에 기여했던 역할을 인터넷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에 의한 대중운동의 진정한 대중화에도 장단이 있다. 접근이 쉬워지고 소통이 활발해진 만큼, 각자의 입장에 더 잘 몰입하게 됐다. 그리고 과몰입은 무비판적인 맹신을 낳기 마련이다. ‘황우석 사태’는 대중운동의 맹신이 낳은 대표적 사례에 해당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전문가와 언론이 제시하는 의문에 대항해 오히려 황우석의 편을 들었다. 그의 사기행위가 낱낱이 밝혀지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황우석의 꿈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황우석 사태에서 보인 대중의 맹신은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어떤 집단적인 최면이 그들로 하여금 황우석을 맹신하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밖에. 


미국의 부두 노동자였던 에릭 호퍼는 ‘종교운동이 되었건 사회혁명이 되었건 민족운동이 되었건 모든 대중운동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련의 특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대중운동이 파급되는 과정에 비슷한 심리유형의 사람들이 대중운동을 맹목적으로 지지한다는 점이다. 에릭 호퍼는 이들 맹신자들의 유형을 살펴보고 그들의 심리 상태를 파악했다. 가난한 사람, 부적응자, 이기적인 사람, 야심가, 소수자, 권태에 빠진 사람, 죄인. 에릭 호퍼는 이들을 맹신자들의 유형으로 손꼽았다.  


에릭 호퍼의 이 책은 대중의 비정상적인 심리상태에 기반한 전체주의를, 사회학적인 맥락에서 파악하려 했던 한나 아렌트나 에리히 프롬과는 크게 다르다. 에릭 호퍼는 대중운동이 유발되는 사회 구조의 문제점을 밝히는 대신, 사람들이 대중운동에 맹신하는 심리 상태를 파악하려 했다. 그는 맹신자들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그들이 기꺼이 대중운동에 목숨을 바치며 뛰어드는 것은 대중운동 속에서 자신들의 불완전함을 해소할 희망을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호퍼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맹신자들은 현실에서 도피하여 희망을 꿈꾸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운동에 대한 에릭 호퍼의 생각이 완전히 옳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 책은 엄밀한 태도로 논리를 전개하는 사회학 책이 아니다.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이라는 부제처럼, 『맹신자들』은 논리가 아닌 단상으로 대중운동의 실체 파고든다. 어떤 부분에선 획기적이지만 또 어떤 부분에선 진부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호퍼가 자신의 이론 속에서 대중운동에 대한 도덕적인 평가를 (은영 중에) 회피하기 때문에, 대중운동에 대해 그가 부정적으로 생각했다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 그는 대중운동이 지닌 변혁의 역동성을 오히려 긍정하는 여지를 보인다. 노골적인 무신론이 종교에 대한 무관심보다 더 훌륭하다고 말한 치혼 주교의 말을 빌려서 말이다.
우리는 에릭 호퍼가 이 책을 썼던 1940년대보다 훨씬 더 대중운동과 밀접한 시대를 살고 있다. 한동안 우리나라의 정치계를 뒤흔들었던 ‘안철수 현상’도 어느 정도 안철수 개인에 대한 우리의 맹신이 한몫했음을 고백하자. 우리는 대중운동의 맹신자가 아니라 비판적 지지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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