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위반 - 나쁜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묻는다
박용현 지음 / 철수와영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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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쇠고기 파동에 의해 촛불 시위 문화가 전국적으로 확산할 무렵, 반대 진영의 가장 강력한 논리는 촛불 시위대가 위법 행위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집시법’에 따라 집회 장소와 시간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시위의 규모가 커지다 보면 자연스레 사전에 신고한 장소를 이탈하거나, 시간을 넘기기 일수다. 그럴 때마다 경찰은 법의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고 시위대의 위법성을 비난하곤 했다. 헌법에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명시되있음에도, 그들에겐 공공의 안녕과 법질서의 수호가 더 큰 명분이 된다. 불행히도, 이는 고전적이면서도 강력한 화법이다. 미국도 이와 비슷한 논리로 시위대를 처벌한 전례가 많다. 1963년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햄시에서 시민권을 주장한 한 한 무리의 흑인 시위대가 법의 처벌을 받게 됐다. 당시 대법관이었던 윌리엄 브레넌은 다음과 같은 소수의견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는 소요사태와 시민 불복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정작 중요한 문제에서 주의를 돌려서는 안 된다. 그 중요한 문제란 국가가 도로나 인도를 통제할 권한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법이나 결정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일이다.” 브레넌의 이 소수의견을 빌어서 박용현 기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어떤 법이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면, 그 법을 위반하는 행동은 정당할 수 있다.” 그 행동에 이름 붙이자면, ‘정당한 위반’이라 할까.


서평작인 『정당한 위반』은 박용현 기자가 <한겨레 21> 편집장 시설에 쓴 칼럼을 묶은 글이다. 그 시기가 2008년부터 2011년이니,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퇴보’가 적나라하게 담겼음은 부득이한 일이다. 일반적인 칼럼 모음집이 시의성이 떨어지거나, 내용의 통일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지만, 『정당한 위반』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뚜렷한 편이다.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미국 노트러데임대학 로스쿨 과정을 이수한 주간지 기자라는 특이한 이력에서 알 수 있지만, 그는 주로 우리 사회의 ‘법’을 문제 삼고 있다. 특히 「P의 항변」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읽어보면 법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칼럼에서 저자는 “사법고시는 왜 안 봤어?”라는 질문에 에두르다 결국 이렇게 실토한다. “권력에 굴종하고 그러면서 권력을 지향하는 게 법조인의 DNA 같다. (…) 이 땅의 모든 법조인이 법조인임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그러면서 법조인이 아닌, 그들을 비난하는 칼럼을 쓰는 지금의 직업을 가진 것에 의기양양함을 드러낸다.


법을 배우는 것이 정의를 배우는 일이어야 하고, 법의 집행이 정의의 집행이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나쁜 세상은 그 정의를 회색의 망토로 감추고 있다. 저자는 저 회색의 두툼한 망토 속에서 그가 배웠던 상식을 끄집어내는 일을 본분으로 삼은 듯하다. 그것이 나쁜 세상을 살아가는 ‘그’와 소통하려는 흔적이자 연서라고. 맥락상 수취인 ‘그’는 마땅히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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