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된 사나이 - 새번역판 그리폰 북스 6
알프레드 베스터 지음, 김선형 옮김 / 시공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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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9_ 텔레파시로 통제된 사회에서 윤리적 감각은 비뚤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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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당신들의 나라 - 1%를 위한 1%에 의한 1%의 세상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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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20’이라는 대립항은 종전까지 우리 사회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계층 간 대립구도의 상징과도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수년간 계층 불평등이 지속되더니 80은 99%로, 20은 1%로 그 격차가 더욱 커졌다. 이젠 사회적 불평등과 부당함의 문제가 절대적 다수와 최소수간의 문제로 악화된 것이다. 2011년 미국과 세계 경제 시장을 충격에 몰아넣은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대의 구호가 실지로 문제 삼은 것도 이런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였다. 특히 미국은 1%가 국가 연간소득의 52%를 차지하는 나라다. 결함이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그 시스템이 유지된다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이라 느껴질 지경이다. 사회의 총체적인 불평등이 단순히 윤리적 불쾌감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불공정한 부의 문제는 사회 전반에 불안과 위험 요소로 자리 잡게 된다. 바로 서평작인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오! 당신들의 나라』는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미국사회에 내재된 문제점을 낱낱이 분석한 책이다.

 

미국 칼럼니스트인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국내에 『긍정의 배신』이라는 자기계발서의 비평서로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이미 미국에서는 특유의 유머와 날카로운 비판이 어우러진 칼럼으로 잘 알려졌다. 일종의 칼럼 모음집인 『오! 당신들의 나라』은 주로 미국 사회의 불평등하고, 비열하고, 비정상적인 세태를 꼬집어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문제를 점잔빼고 분석하는 기존의 칼럼과는 거리가 멀다. 에런라이크는 주로 상대방을 비웃고 조롱하는 것으로 비평의 지형을 획득한다. 이를테면, 미국의 의료보험 문제를 꼬집으면서 그녀는 이렇게 주장한다. “동물 의료보험을 모든 어린이들에게 개방하라!”고. 이 허황된 주장의 근거로 그녀는 애완동물과 미성숙한 아이의 사회적·생물학적 유사함을 나열한다. 물론 그녀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곤란하다. 항상 사회적 비용의 효율성, 경제성을 문제 삼는 보수 정치를 비웃을 요량으로 꺼낸 말이니까. 이처럼 에런라이크는 책의 곳곳에서 촌철살인의 유머감각을 발휘한다. 그러나 엄연히 그 유머는 사회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되었음이 알 수 있다. 그녀가 취한 방식을 움베르토 에코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세상의 부자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방법’이라고 할까.

 

월가의 시위가 있기 2년 전에 나온 이 책의 말미에 에런라이크는 이런 말을 한다. “(빈곤층과 중산층이) 이제는 우리 사회의 다수가 되었고,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영향력을 사용할 날도 머지않았다”고. 지금 시점에서 이 예언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1%의 부자들은 여전히 사회의 부를 향유하고 있고 변혁은 미온해 보이지만, 그 앞에 절대다수인 99%의 우리가 서 있다. 그렇다면, 변혁도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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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당신들의 나라 - 1%를 위한 1%에 의한 1%의 세상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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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8_ 세상의 부자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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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
최성일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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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은 한계가 분명한 글이다. '서적에 대한 비평과 평가'라는 목적성이 분명한데다가, 서평이 발표되는 매체의 특성이 서평을 신작에 대한 소갯글 정도로 제약하는 풍토도 있다. 이른바 '주례사 서평'이 탄생한 것도 그런 배경이 한몫한다. 그렇다고 서평이란 글이 의미 없지 않다. 일간지 귀퉁이의 짤막한 신간 소개에 비하면, 적어도 서평은 읽는 이로 하여금 해당 서평 책을 직접 읽고 싶게끔 하는 어떤 '마법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 않은가. 서평은 한계가 분명한 글인 만큼, 어떤 내용으로 그 한계가 채워지느냐가 중요해진다. 따라서 서평에도 '고수'가 있기 마련이다. 비록 인터넷의 발전은 서평 쓰기의 문텩을 대폭 낮추긴 했지만, 서평의 고수임을 자처할 수 있는 이들은 얼마 안 된다. 『 한 권의 책』의 저자인 최성일은 아마도 그 고수 중 일인자가 아닐까 싶다. 

최성일은 『출판저녈』을 시작으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서평을 전문으로 썼던 출판 평론가다. 십여년간 서평을 전문적으로 쓰면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한 덕분에, 그 내공이 쌓이고 쌓여서 국내외 218명 사상가의 주요저작을 일별하는,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전5권)』이라는 전대미문의 성과를 내놓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단순 서평 모음집인 『한 권의 책』은 다소 밋밋한 것도 같다. 하지만 서평이야말로 저자의 본령인 만큼, 이 책엔 저자의 본색이 담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성일의 서평은 책을 비판하는 데 있어서 거침없다. 장성익은 발문에서 저자를 이렇게 평했다. "그는 입장과 관점이 분명한 사람이었고, 그것을 글에서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 그것이 가지는 일종의 위험부담을 익히 알고 있을 터인데도, 책을 대하는 그의 그런 태도는 한결같앗다." 그런 저자의 비평의식은 책 속에서 쉽게 발견된다. 이를테면, 천정환의 『근대의 책읽기』에 대한 서평을 살펴보면, "이 책의 실증이 그리 탄탄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빈곤한 자료로 무리한 추론을 감행해 해석의 과잉을 빚기도 한다"고 비판한 대목이 있다. 논리와 합리에 기반한 그의 비판은, 독자로서 전혀 불편하지 않다. 평자로서 저자가 지닌 미덕이다. 

저자 최성일은 마흔넷의 이른 나이에 뇌종양으로 별세했다. 그게 올해 7월의 일이다. 『한 권의 책』이 그의 유고작인 셈인데, 그런 이유로 이 책의 서문은 저자가 아닌 그의 아내가 썼다. 아내의 글엔 "책을 볼 때는 적어도 손을 씻고 봐야 한다"고 말했던 저자의 독서관을 비롯한 생전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평의 교본과도 같은 이 책을 읽으며 독자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저자의 인간적 모습을 아내의 글에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권의 책』은 고 최성일이 쓴 책이지만, 그의 아내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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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낙원 - 현대 도시 문화와 삶에 대한 성찰
정윤수 글.사진 / 궁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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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라고 꼭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사유만 하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철학자들은 예의 사려 깊은 태도와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가 사는 현실의 주변부를 고찰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로부터 시작된 철학자들의 산책자로서의 전통은, 그들의 사유가 오히려 서재보다 길 위에서 더 활발함을 대변해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섰던 공간과 길이 철학적 사유의 촉발점이 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이를테면, 발터 벤야민의 경우 ‘도시’는 매혹적인 사유의 공간이었다. “어떤 장소를 이해하려면 동서남북에서 다가가 보아야 하며, 동서남북으로 떠나가 보아야 한”다는 그의 말로써, 우리는 길 위 철학자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인공낙원』의 저자인 정윤수는 철학자는 아니다. 오히려 문화평론가라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한데, 그렇다고 그에게 철학자란 직명이 과분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여러 매체를 통해 발표한 바 있는 그의 글을 읽어 보면, 우리가 사는 시대와 공간에 대한 어떤 의미있는 성찰에 도달할 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를 도시의 철학자라고 한들, 공간과 인공물에 대한 그의 사유의 의미가 크게 과장되거나 퇴색하진 않을 것이다. 

서평작인 『인공낙원』은, 저자가 글의 소재로 즐겨 삼곤 했던 ‘인공 공간’에 대한 사유를 본격적으로 담았다. 부제는 ‘현대 도시 문화와 삶에 대한 성찰’인바, 저자는 인공 공간도 인공 공간이지만, 그보단 인공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 삶의 궤적에 더 방점 찍고 있다. “도시는 거대해졌고 인간은 왜소해졌다. 인공 공간은 찬란한 빛을 발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점점 주눅들고 있”다는 그의 말 속엔, 도시의 ‘인공낙원’을 바라보는 문제의식이 전적으로 드러난다.  

저자는 우리 일상의 풍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인공의 공간들을 찾아다녔다. ‘역사성의 회복’이라는 당위를 들며 재정비된 ‘광화문 광장’, 현대인의 물신적 상징이 된 ‘멀티플렉스 극장’, 한국 중산층의 욕망이 구현된 ‘모델 하우스’, 더이상 어두운 골목길에 숨지 않은 ‘모텔’ 등, 특히 거대하고 우리의 삶과 문화를 잘 대변해주는 인공 낙원의 모습을 담아냈다. 머리론 사유를, 손으론 글을, 다리론 경험을, 눈으론 사진을 담았으니, 이만한 성찰의 결과도 드물다.  

인공 낙원에 살고 있는 이들의 삶이 다분히 인공적인 가치와 행복으로 전도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저자는 인공 낙원을 대면하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하지만, 예외로 서울 월드컵 경기장만큼은 느슨하게 바라본다. 아마도 저자는 월드컵 경기장에서 경험하는 어떤 뜨거운 열정을 통해서, 현대인의 탈출구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인공의 낙원이라고 하더라도, 그 속에 인간적 삶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이 ‘현대의 도시에서 과연 인간적 삶이란 가능한가?’에 어떤 근원적인 질문도 대답도 내놓지 않지만, 그 모습을 꼼꼼히 기록함으로써 인간적 삶의 가부를 넌지시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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