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백혈병의 진실 세트 - 전2권 - 사람 냄새 + 먼지 없는 방 평화 발자국
김수박.김성희 지음 / 보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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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언론이 다루기 껄끄러워 하는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죽음을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현장의 기록이면서 한 편의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것이 오늘날의 르포 문학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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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가드닝 - 우리는 총 대신 꽃을 들고 싸운다
리처드 레이놀즈 지음, 여상훈 옮김 / 들녘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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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가드닝』
리처드 레이놀즈 / 들녘 / 13,000원

 

스페인어로 ‘작은 전쟁’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게릴라’는 현대에 들어서는 사회 전반에 매우 광범하게 사용된다. 그렇다고 해도 정원을 가꾼다는 의미의 ‘가드닝’과의 조합은 다소 생소할 수밖에 없다. 정원을 가꾸는 작은 전쟁이라니? 그러나 엄연히 지구촌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다.

 

이 게릴라 전쟁은 역사적으로 유서 깊지만, 오늘날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004년 영국 런던에서의 일이다. 리처드 레이놀즈라는 30대 청년이 아파트 화단에 무단으로 꽃을 심었고, 꽃이 자라는 사진을 GuerrillaGardening.org라는 웹사이트를 열어 올렸다. 리처드 레이놀즈가 내건 게릴라 가드닝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남의 땅을 불법으로 꽃밭으로 가꾸는 것.’ 그에 동조한 동지들은 전세계에서 나타났고, 각자의 전장(꽃을 심을 땅)에서 게릴라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물론 손엔 총대신 꽃이 들고서. 『게릴라 가드닝』은 그 작은 전쟁들의 기록이며, 앞으로 게릴라 가드너가 될 동지들을 위한 작은 안내서이자, 전세계 게릴라 가드너들의 경전인 셈이다.


법을 준수하는 일반적인 시민의 감성으로서는, 아무래도 불법으로 남의 땅에 꽃을 심는다는 게릴라 가드너의 방법이 좋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리처드 레이놀즈는 자신이 불법을 저지르는 게릴라가 된 것은 전적으로 런던의 수많은 지하보도와 천박한 쇼핑센터, 번잡한 자동차도로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황량한 땅에 꽃을 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게릴라 가드너가 전장으로 삼는 땅은 그냥 남의 땅이 아니다. 공유지면서 관리되지 않는 땅, 버려진 땅들이야 말로 그들의 전장이다. 게릴라 가드너들은 땅의 주인이나 단체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땅자체와 거기 버려진 쓰레기들과 싸운다.


이 전쟁은 사람들 끼리의 싸움이 아니라, 환경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레이놀즈는 이것이 모두가 승자인 전쟁이라고 말한다. 비록 허가 없이 조성된 꽃밭이라고 하지만, 황량한 도시에서 꽃밭은 언제나 환영받는다. 냉담했던 지역공동체도 게릴라 가드너들의 활동에 동의하고, 행정기관들도 도시의 무허가 꽃밭을 합법화하기 시작했다. 뉴욕과 암스테르담, 벤쿠버를 비롯한 많은 도시의 게릴라 가든이 지역민의 환영 속에 공동체 쉼터로 자리 잡기도 했다.

 

레이놀즈는 이런 작은 승리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계속될 것이라 말한다. 꽃밭을 가꾸는 건 많은 정성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비효율과 낭비를 혐오하는 현대사회에서 가드닝은 그 자체로 전쟁일 수밖에 없다. 레이놀즈는 게릴라 가드닝이 건강한 지구를 향한 더 큰 책임을 떠맡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저 꽃을 심고 가꾸는 것으로 그 책임을 다할 수 있다면, 게릴라 가드닝은 참전할만한 가치가 있는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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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게임을 한다 -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게임에 대한 심층적 고찰
제인 맥고니걸 지음, 김고명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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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게임을 한다』
제인 맥고니걸 / RHK / 18,000원

 

게임을 둘러싼 여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여성가족부가 청소년 게임 중독을 예방한다는 목적으로 처음 ‘셧다운제’를 제안했을 때만 해도 그게 일종의 정치적 제스쳐로 보였다. 그러나 불리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여성가족부는 ‘청소년 셧다운제’를 기어이 현실화시켰다. 그 실효성을 따져봐야 할 시점에, 이번엔 교과부가 게임을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보수언론은 게임을 학교폭력이나 유발하는 사회악 정도로 취급하면서 정부의 발언에 힘을 싣기도 했다.

 

정책과 규제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여 실효가 있다고 판단되면, 규제를 계속 유지하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폐지하면 된다. 그 과정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도 사회가 진일보하는 대가로 치면 결코 비싸다고 할 수 없다. 정작 문제는 게임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제자리 걸음 하는 것이다. 게임을 하면 뇌가 손상되어 생각없는 좀비나 폭력적인 괴물이 된다는 사회의 인식은 거의 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저정도 인식 수준이라면, 우리가 기껏 게임에 대해 논할 수 있는 거라곤 ‘우리 사회에서 게임을 허용하느냐 금지하느냐’ 하는 일차원적인 이야기뿐이다. 비단 청소년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이미 게임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순전히 낭비로 여길 것인가, 아니면 거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을 것인지는, 결국 그 사회의 문화적 포용력을 드러내는 일이다. 게임은 정녕 그럴만한 가치도 없는 문화인가? 

 

서평작인 『누구나 게임을 한다』의 저자 제인 맥고니걸은 오랫동안 게임의 긍정적 측면을 연구해 왔다. 일반적으로 게임에 몰입하는 것을 일종의 ‘현실 도피’로 여긴다. 맥고니걸은 그를 인정하면서도, 더 나아가 게임에 몰입하는 것이 현실에 대한 ‘의도적’ 도피며, ‘유익한’ 도피 행위라고 말한다. 그녀는 게임을 그저 긍정적으로 보는 정도로 머물지 않는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자면, ‘현실은 망가졌고, 이제 우리는 게임으로 현실을 고쳐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모든 게임은 ‘목표’, ‘규칙’, ‘피드백 시스템’, ‘자발적 참여’라는 4가지 본질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현실과 비교해 게임은 목표가 명확하고, 규칙이 논리적이며, 피드백은 확실하고, 자발적 참여가 보장된 것이다. 우리가 게임에 더 잘 몰입하는 원인도 거기에 있다.


우리는 게임을 통해 비교적 쉽게 목표에 도전하며, 피드백을 얻기 위해 기꺼이 협력하고 협동한다. 실패하더라도 곧장 재도전하고, 순전히 내적인 만족감을 위해 게임을 즐긴다. 중요한 것은 게임을 하면서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과 만족감이 비단 게임이라는 가상현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가시간에 즐긴 한두 시간의 게임을 통해 얻은 긍정적 감정과 경험이 현실을 충만하게 만들기도 한다.

 

맥고니걸은 궁극적으로 게임 본질적인 특징인 목표와 규칙, 피드백, 자발적 참여와 같은 요소를 현실 속에 도입함으로써, 현실을 게임처럼 몰입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맥고니걸은 게임이 아닌 현실의 온·오프라인에서 여러 명이 함께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대체 현실 게임’, ‘세계 변화 게임’의 사례를 제시하고,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맥고니걸의 주장은 현실에서 게임의 역할을 다소 과장한 감이 없지 않다. 그녀 자신이 게임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그만큼 게임의 잠재력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네덜란드 역사가 요한 호이징하는 “모든 놀이에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맥고니걸은 그 ‘의미’를 찾기 위해 미래학 연구에 뛰어들었다. 『누구나 게임을 한다』는 게임의 ‘의미’를 찾는 중간 연구 결과라 할 만하다. 그에비해 우리는 게임의 나쁜 점에만 너무 골몰하고 있다. 그러다 게임이 지닌 가능성을 완전히 놓쳐버리는 게 아닐까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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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게임을 한다 -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게임에 대한 심층적 고찰
제인 맥고니걸 지음, 김고명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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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13_ 맥고니걸은 보수적 사회라면 꿈도 못 꿀 문화적 소양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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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평 - 퇴짜 맞은 명저들
빌 헨더슨, 앙드레 버나드 지음, 최재봉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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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악평을 남기기란 쉽지 않다. 그 책이 소위 말하는 ‘고전 명작’이라면 더욱 그렇다. 책을 읽고 혹시 가졌을 법한 안 좋은 감상도 ‘고전’이라는 아우라 앞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독자 개인이 책에 대한 솔직한 감상을 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이젠 솔직한 감상평에 용기를 가져도 될 것 같다. 빌 헨더슨과 앙드레 버나드의 『악평』에 따르면, 오늘날 위대한 명작들이라고 불리는 작품들도 출간 당시에는 굴욕적인 악평을 당하는 일이 허다했다니 말이다. 사실 논쟁의 소지가 다분한 작품들, 이를테면 플로베르의 『마담 보봐리』나 블라디미르의 『롤리타』, 로런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같은 경우 당대에 많은 찬반논쟁을 불러 일으켰음은 우리도 예사롭게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헤밍웨이나 스콧 F.피츠제럴드, 마크 트웨인같은 작가 역시 악평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니, 순진한 독자로서는 그저 놀랄 뿐.


저명한 편집자이자 작가인 빌 헨더슨과 앙드레 버나드는 여러 매체를 통해 발표된 ‘악평’들을 한데 모았으며, 거기에 작가들끼리 주고받은 편지에 오간 사적인 ‘뒷담화’와 갖은 이유로 출판을 거절하는 출판사의 ‘거절편지’까지 추가했다. 제목그대로 ‘악평’ 모음집인 셈인데, 그렇다면 왜 하필 ‘악평’인 것일까?


칭찬만을 늘어놓은 ‘착한’ 서평은, 비록 그 찬사가 충분히 그럴만 하다고 해도 독자입장에선 그리 매력적으로 읽히진 않는다. 서평으로서 칭찬은 너무 당연하고, 예측 가능한 반응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평은 항상 독자의 예상 밖에 서 있다. 예상 밖의 서평은 읽는 재미도 재미지만, 혹시 감상을 방해할지도 모르는 명작의 ‘아우라’를 없애줌으로써 좀 더 솔직한 감상을 가능하게 만든다. 세상에 완전무결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악평』은 새삼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것이다.


몇몇 악평들은 악감정이 지나쳐서 다소 부당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악평들은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리고 가끔은 평범한 독자인 우리의 감상을 정확히 대변해 주기도 한다. 제임스 조이스의 악명 높은 소설 『율리시스』를 읽은 버지니아 울프는 “산만하고, 허세가 많고, 상스럽다”고 평한바 있다. 위대한 작가인 그녀도 그렇게 느꼈다니, 우리도 악평을 아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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