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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좋은 일 - 책에서 배우는 삶의 기술
정혜윤 지음 / 창비 / 2018년 5월
평점 :
어린 시절 책이라는 숲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책이 주는 상상력이라는 자양분을
마음껏 먹으며 자랐다.
그러다 공교육 시스템에 진입하면서
점수를 위한, 오로지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책읽기
더 정확하게 말하면 교과서만 보는
영양 불균형의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사회로 나오면서
그나마 쌓아 둔 양분들을 모조리 다 빨리고
기아 상태로 허덕이며 지냈다.
그러다
정말 뜻밖의 좋은 일을 만났다.
사실 만난 것은 뜻밖의 일이고 우연이지만
좋은 일이자 인연,
이건 운명이다.
영양실조로 현기증에 비틀거리는 내 영혼에
긴급 수액을 투여해 주는 책을 만났으니.
삶이라는 것은
어쩌면 지지부진하고 지리멸렬함 속에서
끊임없이 다치고, 좌절하는 전쟁인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른 게 아닌
방어와 공격을 할 수 있는
'무기'
작가는 무기가 필요한 절박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 나 자신의 초라함 때문
“다른 누구도 아니라 나 때문에,
내 말 때문에, 내 속마음 때문에, 나의 생각 없음 때문에
스스로 초라해진다.
나의 말은 세상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 뜻밖의 좋은 일, 정혜윤, 41쪽 -
둘째, 삶의 무거움 때문
“우리는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종종 초인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인간이 되기 위해 인간을 견뎌야 한다.
삶은 상상만큼 빛나지 않는다.
이렇게 편안하지 않은 마음으로
노동을 하고 아침을 맞고 바쁘게 일상을 유지하고 살아내는 것이
경이롭기까지 할 때도 있다.
삶이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힘을 내는 인간들이 신비롭다.”
- 뜻밖의 좋은 일, 정혜윤, 44쪽 -
셋째, 현재와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
“즉, 누군가 책의 문장을 되뇌면서
인생의 방향성을 정한다는 바로 그 사실이었다.
너무나 놀라웠다.
그렇게 되면 미래는 더이상 알 수 없는 미래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미래일 수 있다.
적어도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어떤 행동은 하지 않으려 할지,
어떤 경향성을 가지고 살지는 알 수 있는 미래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안다면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 뜻밖의 좋은 일, 정혜윤, 51쪽 -
"삶이 쉬운 것이었다면 기술도 무기도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나 자신의 초라함도 견디기 힘든데
삶이 주는 무게까지 더해지니 이건 압사당해 죽기 딱 좋은 형편이다.
그러다 "내게도 인생의 한 문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좋은 책은 꽉 물고" "교양이나 지식이 아닌 삶을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준비"로
책 읽기를 하기로 한다.
“이렇게 책은 나에게는 삶을 위한 무기가 되어버렸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니 언제나 빛나는 무기였다.”
- 뜻밖의 좋은 일, 정혜윤, 53쪽 -
그리고 책 중에서도 '좋은 책'
즉, 좋은 무기를 이렇게 선별해 놓았다.
“좋은 책을 읽은 독자는 멍해진다.
말문이 막히고 머리가 하얗게 된다.
잠시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비우고 채운다.
그렇게 자신을 비우면서, 새로운 것으로 채우면서
우리에게 좋은 일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눈으로 읽지만 두번째는 삶으로 읽으면서
가까운 미래에 전에는 할 수 없던 일을 할 수 있게 되더라도
전혀 놀랄 것이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좋은 책은 좋은 친구나 다름없다.
장 자끄 쌍뻬는 우리는 고독하지만
그러나 친구가 있어서 균형을 잡고 멀리 갈 수 있다고 했다.
좋은 책은 그 글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세상이 달라 보이게 한다.
좋은 책은 인간은 비탄, 슬픔, 고통에 침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재료로
뭔가 - 비탄, 슬픔, 고통을 다른 일로 바꾸는 일, 이를테면 시 또는 한편의 글 - 를
만들고 있는 중이란 것을 알려준다.
좋은 책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확대, 반복,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세상에 대해서 말하려고 애쓴다.
좋은 책은 어디선가 진실은 이야기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민감하게 만든다.
좋은 책은 문제와 사태를 다루는 데 있어 내 방식과는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사태를 보는 다른 눈, 제 3의 눈을 가질 수 있게 나를 돕는다.
좋은 책은 다른 사람의 생각 속에서 장차 내 생각이 될 것을 찾아내고
다른 것을 느끼도록 자극하고 다른 일을 해보도록 격려한다.
좋은 책은 누군가 이미 용기를 냈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좋은 책과 만나는 어떤 특별한 순간, 서러운 마음도 자아도 사라지고
'이건 진짜다, 진짜 멋지다'라는 마음과 가벼운 한숨, 벅찬 가슴만 남는다.”
- 뜻밖의 좋은 일, 정혜윤, 58-60쪽 -
작가가 적어내려간 '책이라는 무기 사용후기'에
자신의 사용후기를 덧대어 보고 싶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책을 들고 있는 누군가에게
그게 그냥 책이 아니라 '무기'라고
당신을 살려 주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고,
공격으로부터 방어해주는 빛나고도 강력한 무기임을 알려주고 싶다.
“책에서 읽은 것을 현실에서도 만들어보려고 시도하면서,
책을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살아내려고 하면서,
마치 사랑이 한순간의 꿈이 아닌 것처럼
감동과 깨달음을 한순간의 일로 만들지 않을 수 있고,
일시적인 기쁨을 오래가는 기쁨으로,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 수 있다.”
- 뜻밖의 좋은 일, 정혜윤, 57쪽 -
책 속 문장들이 어떻게 무기가 되는지
전쟁이라는 삶 속에서 어떻게 그 무기를 사용하는지
책을 살아내는 이야기를 읽고 나면
'뜻밖의 좋은 일'이라는
'좋은 책'을, '좋은 무기'를
하나 손에 들게 된 든든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내가 믿고 보는 작가라고 감히
이야기해 볼 수 있는 책.
'뜻밖의 좋은 일'이
당신에게도
뜻밖의 좋은 책을 만나는 좋은 일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