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편집장 - 말랑말랑한 글을 쓰기는 글렀다
박현민 지음 / 우주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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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이슈>란 잡지를 좋아한다. 지하철 입구나 거리에서 판매하는 걸 우연히 구매했는데, 그걸 파는 사람이 홈리스고, 잡지 수익금의 상당 부분이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데 쓰인다고 했다. 그리고 TV에서도 (다큐 3일이었던가) 홈리스 판매원의 3일을 본 적이 있기에, 길거리에서 만나면 매번은 아니어도 틈날 때마다 구매를 해서 보곤 했다. 그저 '착한 일'에 나도 동참한다는 생각으로 처음엔 구매했지만, 실제로 <빅이슈>를 보면서 재미있고 흥미로운 기사가 많아서 만족했다.

 

<나쁜 편집장>(박현민 지음 / 우주북스 / 2019>은 <빅이슈>의 박현민 편집장이 쓴 에세이로, 편집장으로서의 고민과 보람, 그 외 다양한 경험을 일기처럼 편하게 써내려간 책이다. 내가 자주 보는 그 <빅이슈>의 편집장이라니, 읽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왜, <나쁜 편집장>일까. 제목부터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왜 이렇게 제목을 붙였는지 알게 되었다. '착한 잡지를 만드는 나쁜 편집장'. '착한 일'에 숨어서 대충 만드는 잡지 말고, 양질의 콘텐츠를 만드는 '나쁜 편집장'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나 할까.

 

한 달에 두 번. 격주간지를 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너무 어려운 일이다. 월간지도, 격월간지도 잡지사는 전쟁터가 된다고 들었는데, 격주간지라면 오죽하겠는가. 그렇다고 인력이나 자본이 풍부해서, 여러 팀을 돌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 그 어려움은 보지 않아도 불보듯이 알 수 있다. 그런 잡지를 '빵꾸 없이' 꾸려간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저자가 더 위대하게 보인다. 한 권의 잡지를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지... 과연 숨쉴 틈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바쁘게 사는 인생이 보였다.

 

 

 

그래도 그 '바쁨' 사이에서도 박현민 편집장이 놓치지 않는 게 '어떻게 하면 홈리스 판매원의 수입원을 더 높여줄 수 있을까'라고 하니, 이건 <빅이슈> 편집장이기에 추가된 또 하나의 고민일 것이다. 양질의 콘텐츠를 고민하는 데에도 머리가 터질 텐데, 홈리스의 판매고를 높이기 위한 고민도 어마어마할 터. 하지만 이 일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분명 저자가 자신의 일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로 맡을 수 없는 중책으로 보였으니까.

 

 

 

<나쁜 편집장>을 읽으면서 좋았던 건, 글의 첫 문장과 삽화였다. 오랜 기자 생활과 잡지 편집장으로서의 연륜이 담긴 '글맛'이 좋았다. 첫 문장의 임팩트가 끝까지 살아 있어서 몰입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저자의 친구인 이용혁 디자이너가 그렸다는 손그림 역시, 이 책이 갖고 있는 '날것'의 느낌과 잘 맞았다.(에필로그에서 두 사람의 인터뷰를 보면서, 내 생각과 딱 맞아떨어진 것을 보고 신기할 정도)

 

  

예전에 직장을 다니면서 지하철 출구에서 자주 접했던 <빅이슈>를, 내가 퇴사 후 3년 간의 공백이 생기면서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 특히 서울을 떠나 경기도로 오면서 내 동선에는 <빅이슈>가 없었다. 이제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왔고, 회사 앞 지하철역에 파는 <빅이슈>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보면서, 그리고 때마침 회사에 돌아오게 되면서 결심한 것이 있다. 한 달에 두 번 나오는 이 잡지를, 꼭 사서 보겠다는 결심. 그게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데 쓰여서 뿌듯하기도 하지만, 잡지 자체로서의 콘텐츠도 훌륭하니까. 게다가 나는 <빅이슈> 편집장이 쓴 책까지 읽었으니, 마음의 거리가 훨씬 가까워진 듯하다.

 

<나쁜 편집장>이 만드는 <빅이슈>를 계속 보고 싶다.

 

 

인간은 모두 각자의 '우주'를 가지고 있다. 좋고 나쁨을 가르는 취향, 옳고 그름을 가늠짓는 가치관, 그 밖에 모든 다양한 사고들이 복잡하면서도 그 나름의 원칙을 가진 채로 얽혀 있는 미지의 공간. 인간의 삶이란 자신의 우주를 탐험하면서 평생토록 그것을 확장 혹은 축소하는 일련의 과정들의 연속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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