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절대 내 마음 몰라
파트릭 코뱅 지음, 김이소 옮김 / 달리 / 2005년 4월
절판


아빠가 성냥불을 켜자 아빠의 얼굴이 순간 밝아졌다. 마치 뭔가가 번쩍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니까 아빠가 입에 문 담배 끝에서 불꽃이 타고 있는데도 더 어두웠다. 그럴 때면 나는 몽상에 빠져든다.
나는 이런 몽상의 순간이 정말 좋다. 수많은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카우보이, 알록달록한 색깔, 음악, 방콕에서 코끼리 떼에 둘러싸여 있는 아빠와 나.-28쪽

"떠나기 전에 생각을 못 했어"
아빠는 빙그레 웃더니 자닌 아줌마를 바라보았다.
'커피 한 잔씩 할까?"
아줌마가 그러자고 했다. 나는 정말 기뻤다. 이런 것이 바로 세심한 배려이다. 나는 아빠의 이런 배려를 높이 평가한다. 우리 아빠는 "차 세워. 저 녀석이 오줌 누고 싶대"하는 사람들하고는 다르다. 아빠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커피 한 잔씩 할까?"하지 않는가. 내게 오줌을 누게 하려고 그런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지만 이 얼마나 세심한 배려인가.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는 건 정말 좋다. 태양은 빛나고 우리는 시골에 간다. 야호, 정말 신난다. 인생은 아름답다. 정말 아름답다. 그런데 차는 언제 세우는 것일까?-34쪽

전체적으로 보면 내 인생은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복잡하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집을 떠났을 때가 제일 힘들었는데, 그것은 엄마가 집에 없어서라기보다는 건물 관리 아줌마와 옆집 아줌마들이 나를 볼 때마다 짓는 얼굴 표정 때문이었다. 아줌마들은 마치 내가 홍역이라도 앓는 것처럼 나를 측은하게 여겼다. 사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엄마하고 있을 때보다 아빠하고 있을 때가 더 편했다.
물론 엄마 없이 지내는 게 늘 그렇게 좋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슬픈 얼굴을 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엄마는 이미 집을 떠났다. 이게 현실이다.-103쪽

"너 사과를 먹는 거냐, 아니면 입을 벌리고 멍하니 있는거냐?"
정ㅁ라 잔인한 사람이다. 이렇게 중간에서 다 깨 버리니까 아빠와 함께 있으면 꿈도 맘대로 꿀 수 없다.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아빠는 그 말에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열한 살짜리는 생각할 권리도 없다고 여기는 건가.-150쪽

아빠에게는 정말 안된 일이다. 하지만 나도 이제 더 이상 포기할 수 없다. 일단 한다고 했으니 반드시 할 것이다. 이건 확실하다.
꽃을 갖다 놓을까?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다. 내게는 온통 암흑뿐일 텐데 꽃이 있건 없건 무슨 상관이람.
하지만 내가 암흑에 있게 될지 어쩔지도 알 수가 없다. 잠을 자는 동안을 암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색깔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이틀 뒤면 아무것도 아닌 것 속에 있게 되는 것이다.-29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