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와 무늬
최영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5월
구판절판


닮지 않으려 발버둥칠수록 우리는 서로를 닮아갔다. 한 지붕 밑에서 엉겨 덜그덕거리는 가족이라는 낡은 푸대자루, 다 해져 실밥이 뜯어지고 구멍이 뚫린 천막 안에서 우리는 우리에 갇힌 짐승들처럼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었다. 지긋지긋한 넝마를 찢고 탈출할 날을 따로따로 꿈꾸었다. 가족이라는 허울을 유지시킨 건 엄마의 끝없는 희생이었다. 아버지와 딸들이 구질구질을 빠져나오려 획책하는 밤에 엄마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누더기를 홀로 깁고 꿰맸다. 깨어진 조각들을 눈물과 땀으로 봉합해 겉으로라도 정상적인 가정을 만들고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278쪽

소설 속에서 하나로 섞인 두 개의 죽음이 의미를 찾아간다.
신호등 앞에 서있어도 파란 불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344쪽

사십해의 비바람에 상처의 톱날이 무디어졌다. 어느덧 하나둘 늘어난 잔주름에 묻히는 손톱자국이 때로 아쉬우니-감추고 싶었던 흉터가 지금 뭇 얼굴들 속에서 번쩍, 나를 알아보는 무늬가 되었다. 어디에서건 나를 드러내는 서명처럼.-3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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