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재벌2세인 친구가 있다.
뭐, '친구'라고까지 하기엔 좀 그렇고, '천적'이라고 표현하는게 더 맞을 듯 싶다.
남들은 '잘 통하는 사이'라고 말하지만 우린 만나기만 하면 서로 씹기 바쁘고 - 물론 남들이 봤을때 애교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강도를 조절하느라 무진 애를 쓴다 - 뒤돌아서면 뒷담화 까느라 더 바쁘다.
왜 이런 사이가 됐는진 잘 모르겠다.
어찌 어찌 하다보니 그렇게 됐고, 뭐 재수없다거나 기분나쁘다는 생각을 안 하니까 서로 더 열심히 씹게 되었다.
이런 천적사이지만 둘이 맘이 맞을때가 종종 있는데,
바로 '책'에 대해서다.
요즘 재밌게 읽은 것, 읽어볼 만한 것, 소장하면 좋은 것 등등을 얘기 할땐 '천적'이 '동지'가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저 눔이 나에게 책을 선물할 땐, 더더욱 진한 동지애를 발휘한다.
책 선물보다 더 찐한 동지애를 느낄 때도 있는데, 재벌2세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맛있는걸 잘 사준다는 거다.
가끔 좀 거나~하게 먹고 싶으나 돈이 없을 때, 기분전환을 위해 드라이브를 하고 싶으나 차가 없어 우중충하게 있을 때, 저 눔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짠~ 하고 나타나서 기사도 정신을 한껏 발휘한다. 그리곤 끝에 한마디 한다. "넌 드라이브 시켜 줄 남자도 없냐? 하긴 그 승질에 옆에 붙어 있는 놈이 이상한거지"
이렇듯 서로 아웅다웅하던 우리도 결혼과 동시에 연락이 뜸해졌다.
그러다 오늘 2년만에 통화를 하게 됐다.
재벌 2세 답게 마지막 시험을 쳤단다. - 저 눔은 법대생으로 사법고시를 쳤으나 매번 7점 또는 8점 이렇게 10점 이내의 점수차이로 낙방을 했고, 마지막 1번의 시험기회를 남겨놓고 결혼을 했고,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더니 요번에 그 마지막 기회를 써먹었나 보다.
그래서 한 마디 해 줬다.
"그래 니 승질만으론 벌써 법관했지(내가 아는 법대생들 중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좀 이기적이다 싶은 사람들이었다. 성격 좋다, 인간성 좋다는 사람들은 끝내 다른 직업을 택했다) 암튼 재벌 2세라 좋긴 좋다. 결혼두 했는데 1년동안 돈 안 벌고 공부해도 이혼 안 당하고"
ㅋㅋㅋ
암튼, 서로 열심히 씹다가 전화를 끊었다.
근데, 끊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제부턴 좀더 친하게 지내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 저 눔이 요번에 덜컥~ 합격한다면~ -_-;;;
에이~ 좀 잘해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