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언제나 서양 철학 - 2,500년 전부터 지금 이 순간에도
황헌 지음 / 시공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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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쉽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다루기 어려운 철학의 추상적 개념을 서양사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이해를 돕는다. 나아가 철학이 인간 사유의 산물이자 시대적 필연이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철학은 언제나 현실과 분리된 관념의 세계에 존재해 온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 실상은 전쟁과 혁명, 종교와 권력, 기술과 제도의 변화 속에서 인간이 삶을 이해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선택한 사고의 방식이었다. 철학은 현실을 외면한 사변이 아니라, 시대의 문제 앞에서 인간이 선택한 가장 깊은 응답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해 중세와 근대, 현대에 이르는 철학의 흐름은 질문의 이동으로 읽힌다.

혼란의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가 등장하고, 국가 권력의 필요성을 사유한 홉스의 시대를 거쳐 인식의 중심을 인간에게로 옮긴 칸트의 전환,
그리고 붕괴의 시대 속에서 삶을 긍정하려 했던 니체에 이르기까지,

철학은 늘 질서가 흔들리는 순간에 치열하게 탄생했다. 혼란의 시기일수록 인간의 사유가 오히려 더 크고 깊어졌다는 사실을 여러 역사적 장면을 통해 분명히 보여준다.

저자가 철학자의 생애와 당대의 역사적 사건을 함께 서술하는 방식은 이 책에 설득력을 더한다. 철학자의 사상은 개인의 삶과 시대적 경험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그들의 질문은 개인적 고민이자 동시에 집단적 불안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러한 접근은 철학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벽을 낮추고, 철학을 ‘배워야 할 지식’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사유’로 받아들이게 한다.

역사적 사실이 배경으로 단단히 뒷받침되다 보니, 철학은 추상성을 잃고 생동감을 얻으며 서양사 역시 사상이라는 내적 동력을 통해 보다 입체적으로 읽힌다. 그 결과 독자는 서양사와 철학사를 동시에 조명하며 두 영역을 함께 이해하게 된다.

『답은 언제나 서양 철학』은 인간이 시대마다 어떤 질문을 던져왔고, 그 질문에 어떻게 응답해 왔는지에 대한 역사를 보여준다.

철학과 서양사를 동시에 이해하고 싶은 독자, 혹은 철학이 어렵게만 느껴졌던 독자에게 이 책은 친절하면서도 충분한 지적 안내서가 될 것이다.

저자의 명쾌한 문장을 따라 술술 읽다 보면, 어느새 어렵기만 했던 서양사와 철학이 한눈에 그려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답은언제나서양철학 #철학 #서양철학 #북스타그램 #서양철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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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박유인 지음 / 하움출판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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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만 있거나 혹은 불행만 있다면
그것 역시 너무 견디기 어려운 것이기에
삶은 우리를 그 사이 어디쯤에 안착시킨 것이 아닐까

행복만 있다면 마냥 좋을까 싶은지 물으면
어쩐지 그것 역시 해답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차오르고
이내 감당 가능한 불행만이 주어지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 삶이기도 하다.

시인의 시는 삶의 그 사이 어디쯤에서 쓰인다.
마냥 불행스러운 일도 마냥 행복만한 일도 아닌
그 자체로 살아지는 것에 대한 지난한 마음들.

많이 아파했고 사랑했던 수많은 이별의 그림자 속에서
나이 들어 아로새겨진 그리움은 시로 쓰인다.

지나감을 떠올리면 측은하고 어리석던 자신과
꼭 그만큼 닮아 측은한 대상의 삶이 함께 흘러 시가 된 마음이 있다.

과거는 매일 한 발짝 길어지고 미래는 한 발짝 짧아지지만
살아낸 만큼 이유로 남으니

산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산다는건대단한일이다 #하움출판사 #시집추천 #북스타그램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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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지 못해 닳은 사랑
히코로히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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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드라마의 인상적인 대사를 기억한다.
“나쁘지 않은 정도로는 사랑할 수 없다는 거지.
근데 좋은 점은 하나도 없는데 사랑에 빠지는 경우도 있어.”

사랑의 시작은 무엇으로 결정되는 걸까.
그리고 그 끝은 또한 무엇으로 정해질까.
좋아하고 싶던 대상과는 수없이 빗겨가던 일들이
어째서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던 대상과는 매번 이토록 쉬울까.

연애에서만큼은 시작할 때 빛나던 모든 것들이
시간이 쌓일수록 비에 젖은 눅눅함처럼 빛을 잃는다.
설렘은 익숙함이 되고, 배려는 의무로, 기다림은 외로움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어느 순간 나조차 알지 못하던 내가 불쑥 튀어나와
상대를 시험하고, 상처 주고, 상처받기를 반복한다.

살면서 이리도 휘둘리기를 자처한 적이 또 있을까.

무엇에 이끌려 연애를 하고
무엇에 이끌려, 그 사람으로 세상을 단정 짓게 되는 걸까.
여러 번 반복해도 여전히 제멋대로 휩쓸리고 욕망하며 상처받고 울지언정 사랑을 다시 찾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연애적 사랑을 명확히 정의 내릴 수 있었다면 세상은 좀 더 살기 쉬웠을까.
평범한 대화의 끝이 어째서 연애의 탈을 쓰면 불가침의 영역을 그렇게도 쉽게 넘어설까.

사랑은 왜 우리를 더 솔직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가장 비겁하게 만드는 걸까.

연애를 하다 보면 드라마틱한 낭만보다 삶과 맞닿아 있는 관계라는 지점에서 더 많은 감정이 남는다. 크고 선명한 사건보다 차마 말로 다 꺼내지 못한 감정의 잔여들, 애써 무시했던 불편함,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이름 붙일 수 있는 마음의 마모들.

『닿지 못해 닳은 사랑』은 끝내 서로에게 닿지 못한 채 지속되었기에 닳아버린 마음의 기록이다.

절제된 결말은 사랑 앞에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최선만큼이나 압축적이다.
다 꺼내어 보여줄 수 없어 증명되지 못한 순간들.
스스로도 정의 내릴 수 없어 방황한 감정들은 이 책을 통해 선연하게 떠오르고, 생활감 있는 익숙한 상황들은 문장의 힘을 빌려 비로소 이름을 얻는다.

화려한 장면보다 마음에 남는 것은 아주 평범한 순간들이다.
말하지 못한 말, 늦어버린 타이밍, 이해받고 싶었으나 끝내 설명되지 않은 마음들. 이 소설은 미화된 사랑을 과감히 덜어내고 내내 감춰두었던 익숙한 감정을 불러온다.

닿을 수 없어 증명을 잃은 감각들이 닳아버릴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기어코 다시 사랑 앞에 선다.

여전히 사랑을 향해 기울어지는 마음을
누가 설명할 수 있을까.

#닿지못해닳은사랑 #문예춘추사 #연애소설
#일본소설 #시마세연애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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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메뉴는 서연정입니다
송다현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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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따뜻하고 맛있는 밥과 사람 냄새 짙은 온기가 가득하다. 겨울밤에 읽고 있자니 식욕은 절로 돌고 마음은 몽글해지며 따스한 기억들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 자리에 잘 지어진 식사가 놓이는 것만으로 묵은 감정마저 녹아내리는 이 마법 같은 순간들은 우리의 마음을 이완시키고 삶에 친밀성을 더한다.

책에 등장하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얼마나 다정한지, 음식도 언어로 이렇게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한그릇에 담긴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눈앞에 소박하지만 더없이 근사한 한 상이 차려지며 읽는 내내 침을 몇 번이나 삼켰다.

가장 따뜻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늦은 주말 오후, 어머니의 도마를 두드리는 칼질 소리가 귓속을 간지럽히고 구수하고 알큰하게 풍겨 오던 된장찌개의 냄새가 코를 자극하며 기분 좋게 기지개를 펴던 기억.

그 순간에는 오늘 하루는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이 함께했다. 방 안에 누운 채로도 나는 집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누군가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정성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은 온기로 완성된 하나의 완전함처럼 느껴졌다.

음식은 늘 말을 대신했다. 괜찮다는 말, 걱정하지 말라는 말, 힘내라는 말이 식탁 위에 놓였다. 그릇에서 김이 오르고 수저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면 세상은 잠시 크기를 줄였고, 밖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든, 식사 앞에서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었다.

식사는 언제나 하루의 끝이자 시작이다. 밥을 먹는 동안 실패한 날도, 별다른 일이 없던 날도 모두 같은 무게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어머니와 식탁은 이유를 묻지 않았고, 그저 자리에 앉아 있기만 하면 흐트러진 마음은 고요해지고 삶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우리에게 저녁상이 기다려진다는 감정은 단순한 기대 이상이다. 그것은 삶이 아직 나를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확신이다. 나를 무장 해제시키는 냄새와 온기, 그리고 아무 설명 없이 허락되는 쉼을 우리는 따스한 한 끼의 식사로 맞이한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은 대개 이렇게 소박하고 다정한 소리와 냄새의 형태로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생각하기 전에 이미 몸이 기억해 내는 장면들. 우리가 식탁 앞에서 정성스러운 음식으로 온기를 채운 만큼, 삶은 충분히 다정한 무엇이 된다.

이 책은 그 다정함을 온전히 품고 있어, 매 에피소드마다 아름다운 기억을 불러오고 맛있는 식사가 눈앞에 생생히 그려진다. 에피소드마다 묵묵히 자리를 잡은 서사는 계절과 사람이 마주한 인정 어린 한 끼의 풍경을 담아내며, 깊은 삶의 다정함으로 몸속 안쪽 깊숙이까지 온기를 전한다.

책을 덮고 나니 오늘 식탁 앞에 앉는 일이 조금 더 특별해진다. 그 안온함과 감사함이야말로 삶을 껴안는 가장 다정한 처방이었음을 비로소 알아차린다.

#오늘의메뉴는서연정입니다 #책추천 #미다스북스 #북스타그램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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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관하여 - 시몬 베유와의 대화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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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에 반쯤 물이 차 있다. 이는 곧 반쯤 비었다고도 볼 수 있다.
컵에 반쯤 물이 찬 것인지, 비어 있는 것인지를 따져 묻는 일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보려 하는가이다. 그리고 무엇을 보든 실제는 실제로 작용할 뿐이다. 여전히 컵에는 물이 반쯤 차 있을 수도, 비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한 소녀의 신에 대한 대답을 좋아한다.

“마리아, 네가 나에게 신이 어디에 계시는지 말해 주면 오렌지를 하나 주마.”
그러자 소녀는 이렇게 답한다.
“신이 어디에 안 계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주교님께 오렌지를 두 개 드릴게요.”

이 우화 속에는 신을 증명하려는 모든 질문이 무의미함을 보여 준다. 신은 좌표가 아니며, 위치로 가둘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묻는 방식 자체가 이미 신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소녀는 너무도 단순하게 드러낸다.

우리가 믿음이라 부르는 것들은 대체로 증명되지 않는다. 사랑도, 행복도, 의미도, 성공도 그렇다. 붙잡으려는 순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정의하려는 순간 생동을 잃는다. 신 역시 그렇다. 그래서 신에 대한 질문은 종종 신이 아니라 질문하는 인간의 태도 자체를 말한다.

한병철의 신에 대한 해석에서 신은 더 이상 초월적 존재로 군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시몬 베유의 사유를 따라 신을 비워짐의 방식으로 불러온다. 가득 차 있기를 멈출 때, 스스로 중심이라 믿는 자리를 내려놓을 때, 그 빈 공간에 자리를 채우는 어떤 것. 그것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주의를 요구하는 상태에 가깝다.

그의 사유는 불교의 공(空)과도 맞닿는다. 있음과 없음은 대립하지 않는다. 없기에 가능해지고, 비워졌기에 드러난다. 채우려는 욕망이 강할수록 멀어지고, 내려놓을수록 가까워진다. 신은 그렇게 의지의 끝에서가 아니라 주의의 시작에서 발견된다.

신에 관해 읽는다는 것은 실은 삶을 읽는 일에 가깝다. 인간이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려 하는지, 무엇을 비우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지, 그리고 언제 비로소 침묵 속에서 자신을 마주하는지를 묻는다. 신은 답이 아니라 방향이며, 목적지가 아니라 삶을 향한 태도다. 신은 삶과 닮았다. 그것은 인간이 끝내 외면할 수 없는 질문에 가깝다.

결국 신은 누군가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모든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 믿음, 행복, 사랑,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그러나 그것들을 소유하려는 순간 우리는 그것에서 멀어지고, 주의를 기울일 때에만 비로소 가까워진다. 비워야 채워진다는 오래된 역설은 신에 대한 사유를 통해 다시 삶의 언어로 돌아온다.

신은 어쩌면 우리 삶에 관하여, 혹은 인간에 관하여 존재하는 어떤 형식일지도 모른다.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요청되는 질서.

컵이 비었는지 찼는지를 가르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흔들림의 경계에 머물 수 있는 용기다. 그곳에서 우리는 판단을 멈추고, 소유하려는 손을 거두며, 주의를 기울인다. 그렇게 머무를 때 의미는 설명 없이 떠오르고, 신은 증명 없이 마주된다.
신은 찾는 대상이 아니라, 주의를 다할 때 스스로 드러나는 삶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대화가 떠오른다.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너나 나,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어.
그건 상대를 이해하고 함께 나누려는 시도 안에 존재할 거야.
대답은 그런 시도 안에 존재해.”

#신에관하여 #한병철 #김영사 #서평단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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