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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관하여 - 시몬 베유와의 대화 ㅣ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5년 12월
평점 :
컵에 반쯤 물이 차 있다. 이는 곧 반쯤 비었다고도 볼 수 있다.
컵에 반쯤 물이 찬 것인지, 비어 있는 것인지를 따져 묻는 일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보려 하는가이다. 그리고 무엇을 보든 실제는 실제로 작용할 뿐이다. 여전히 컵에는 물이 반쯤 차 있을 수도, 비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한 소녀의 신에 대한 대답을 좋아한다.
“마리아, 네가 나에게 신이 어디에 계시는지 말해 주면 오렌지를 하나 주마.”
그러자 소녀는 이렇게 답한다.
“신이 어디에 안 계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주교님께 오렌지를 두 개 드릴게요.”
이 우화 속에는 신을 증명하려는 모든 질문이 무의미함을 보여 준다. 신은 좌표가 아니며, 위치로 가둘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묻는 방식 자체가 이미 신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소녀는 너무도 단순하게 드러낸다.
우리가 믿음이라 부르는 것들은 대체로 증명되지 않는다. 사랑도, 행복도, 의미도, 성공도 그렇다. 붙잡으려는 순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정의하려는 순간 생동을 잃는다. 신 역시 그렇다. 그래서 신에 대한 질문은 종종 신이 아니라 질문하는 인간의 태도 자체를 말한다.
한병철의 신에 대한 해석에서 신은 더 이상 초월적 존재로 군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시몬 베유의 사유를 따라 신을 비워짐의 방식으로 불러온다. 가득 차 있기를 멈출 때, 스스로 중심이라 믿는 자리를 내려놓을 때, 그 빈 공간에 자리를 채우는 어떤 것. 그것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주의를 요구하는 상태에 가깝다.
그의 사유는 불교의 공(空)과도 맞닿는다. 있음과 없음은 대립하지 않는다. 없기에 가능해지고, 비워졌기에 드러난다. 채우려는 욕망이 강할수록 멀어지고, 내려놓을수록 가까워진다. 신은 그렇게 의지의 끝에서가 아니라 주의의 시작에서 발견된다.
신에 관해 읽는다는 것은 실은 삶을 읽는 일에 가깝다. 인간이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려 하는지, 무엇을 비우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지, 그리고 언제 비로소 침묵 속에서 자신을 마주하는지를 묻는다. 신은 답이 아니라 방향이며, 목적지가 아니라 삶을 향한 태도다. 신은 삶과 닮았다. 그것은 인간이 끝내 외면할 수 없는 질문에 가깝다.
결국 신은 누군가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모든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 믿음, 행복, 사랑,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그러나 그것들을 소유하려는 순간 우리는 그것에서 멀어지고, 주의를 기울일 때에만 비로소 가까워진다. 비워야 채워진다는 오래된 역설은 신에 대한 사유를 통해 다시 삶의 언어로 돌아온다.
신은 어쩌면 우리 삶에 관하여, 혹은 인간에 관하여 존재하는 어떤 형식일지도 모른다.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요청되는 질서.
컵이 비었는지 찼는지를 가르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흔들림의 경계에 머물 수 있는 용기다. 그곳에서 우리는 판단을 멈추고, 소유하려는 손을 거두며, 주의를 기울인다. 그렇게 머무를 때 의미는 설명 없이 떠오르고, 신은 증명 없이 마주된다.
신은 찾는 대상이 아니라, 주의를 다할 때 스스로 드러나는 삶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대화가 떠오른다.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너나 나,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어.
그건 상대를 이해하고 함께 나누려는 시도 안에 존재할 거야.
대답은 그런 시도 안에 존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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