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서툰 사람들 - 불가해한 상실 앞에 선 당신을 위한 심리학자의 애도 강의
고선규 지음 / 아몬드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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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열 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이들을 ‘가상의 내담자’로 상담실에 초대해, 각기 다른 방식의 죽음과 상실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의 상실을 고백하듯 풀어내고, 저자는 그 이야기에 응답하며 애도의 결을 따라 대화를 이어 나간다. 위로나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 이 형식은 독자로 하여금 타인의 슬픔을 안전한 거리에서 바라보게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사유와 맞닿게 한다.

열 편의 영화 중 몇 편은 이미 보았던 작품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애프터썬〉을 다루는 장에서 하나의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영화를 볼 당시 나는 의식적으로 밝은 장면들에 머물러 있었다. 아버지와 딸이 함께 보낸 짧고도 아름다운 시간, 햇빛과 웃음, 여행의 기억들이다. 이 영화가 결국 상실과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그 결말을 애써 밀어내고 ‘기억할 만한 순간들’에 더 의미를 두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상실보다 추억을, 죽음보다 아름다움을 붙잡으려 했다.

이것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두 가지 의미와 연결된다. 하나는 우리가 죽음과 상실을 늘 나와는 조금 떨어진, 제3자의 일처럼 상상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죽음과 상실은 정작 자신의 일이 되기 전까지는 감각할 수 없으며, 가까운 이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은 결코 대비하거나 익숙해질 수 없는 사건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수많은 문학과 영화, 뉴스 속에서 죽음을 접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이야기’로 존재할 뿐 ‘사건’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실제 상실 앞에서는 늘 무방비 상태로 서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슬픔을 극복의 대상으로만 다루지 않으며, 애도에 어떤 정답이 있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슬픔은 이해의 대상이자 배워야 할 인간의 경험으로 이야기된다. 사고, 질병, 자살, 존엄사 등 죽음의 방식에 따라 애도의 양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같은 상실을 겪었더라도 각자의 애도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슬픔의 크기나 속도가 아니라, 그 슬픔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언어와 관계, 그리고 시간이 주어지는가 하는 문제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애도가 개인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저자의 시선이다. 죽음은 본질적으로 관계적 사건이며, 상실의 고통은 혼자 견딜 수 있을지 몰라도 회복은 결코 혼자 해낼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슬픔을 개인의 감정 관리 문제로 다루고, ‘이제 괜찮아져야 한다’는 말로 애도를 서둘러 끝내려 한다. 죽음과 상실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빠르게 정리해야 할 문제처럼 취급한다. 그러한 슬픔이 흐를 수 없는 사회야말로 사별자를 고립시키는 사회임을 지적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애프터썬〉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이제 그 영화는 아름다운 기억과, 동시에 상실 이후의 삶을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이야기로 남아 있다. 아마도 이것이 이 책이 독자에게 남기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변화일 것이다.

상실 이후의 삶을 생각할 언어를 건네는 것.

우리는 살아가며 반드시 누군가의 죽음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과 애도에 관해서는 거의 배우지 못한 채 살아간다. 《슬픔이 서툰 사람들》은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준비된 대화이다. 위로를 서두르지 않고, 슬픔을 고정하지 않으며,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이 책은 슬픔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다. 죽음이 삶을 파괴하는 사건으로만 남지 않도록, 상실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할 사람들을 위해 세심하게 곁을 내어주는 책이다.

#슬픔이서툰사람들 #심리학 #상담심리 #북스타그램 #도서추천

*도서증정 @almondbook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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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 세상의 중심이 된 바다의 역사
찰스 킹 지음, 고광열 옮김 / 사계절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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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가 아니라 연결을 서술하는 역사
— 찰스 킹, 『흑해: 세상의 중심이 된 바다의 역사』

찰스 킹은 기존의 고정된 육지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유동성의 ‘바다’를 하나의 역사적 주체로 복원한다. 『흑해: 세상의 중심이 된 바다의 역사』는 경계가 아니라 연결의 공간을, 변방이 아닌 세계사가 교차해 온 흑해를 조명한다. 이 책에서 바다는 충돌의 무대이기 이전에 오랜 시간 사람과 물자, 언어와 신앙이 오가던 교류의 통로였다.

저자가 흑해의 역사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지역사를 넘어,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형성되고 재구성되는 연결망이며, 선을 긋는 경계(boundary)가 아니라 여러 정체성이 겹치고 섞이는 변경(frontier)이다. 흑해 연안은 오랫동안 단일한 정체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이 축적된 공간이었고, 그 복합성은 근대 이전까지 자연스러운 질서로 작동했다.

찰스 킹이 특히 날카롭게 해체하는 것은 ‘민족(nation)’이라는 개념이다. 현재의 민족 중심 역사 서술은 오래된 실체를 복원하는 작업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근대에 발명된 범주일 뿐이다. 민족이라는 틀은 복잡한 삶의 층위를 지워버리고, 하나의 이름 아래 수많은 목소리를 침묵시킨다. 흑해 연안의 역사에서 저자는 언어와 종교, 생활양식이 유동적으로 교차하던 시기를 통해 민족 이전의 세계가 결코 혼란이나 미개함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그러한 혼종성과 개방성이 폭넓은 문화적 생성의 조건이었다.

이 책은 흑해의 약 2700년에 이르는 역사를 한 권에 담아내며, 흑해의 역사가 ‘단일한 정체성’이 아니라 ‘혼종성의 축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드러낸다. 대홍수 신화의 기억에서 시작해 고대 그리스 도시와 주변 민족의 공존, 실크로드의 해상 종착지로서의 역할, 오스만 제국의 내해로 기능하던 시기까지 흑해는 늘 섞이고 연결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의 남진과 근대 국가의 형성, 민족국가의 탄생은 이 유연한 공간을 점차 분할하고 고정시키기 시작했다. 강제 이주와 집단적 트라우마는 그 과정에서 발생한 필연적 결과였다.

찰스 킹은 이러한 역사를 통해 기독교와 이슬람, 유럽과 아시아,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이 얼마나 취약한 개념인지 드러낸다. 실제 흑해 연안의 삶에서 언어는 뒤섞였고, 종교는 공존했으며, 정체성은 상황과 관계에 따라 변화했다. 과거의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바다를 건넜고, 타자를 이해하며 다중 정체성 속에서 살아갔다.

이 책이 도달하는 결론은 근대 이후 민족과 국민국가가 이해의 진보가 아니라, 연결을 상실한 역사적 전환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민족 중심의 서사는 타자를 구분하고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애초에 섞여 있던 문화를 억지로 분리해 단일 정체성이라는 추상으로 환원한다. 국경의 고정은 이동과 공존의 기억을 지우고, 그 자리에 배타적 정체성과 자국 중심의 이해관계를 남겼다.

『흑해』의 2700년 역사는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경계와 구분이 얼마나 최근의 산물이며, 동시에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 보여준다. 이러한 통찰은 현재를 향한 하나의 질문으로 압축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는가. 이 책은 한 바다를 둘러싼 방대한 세계의 역사이자, 앞으로의 역사를 다시 만들어갈 하나의 가능성이다.

지금의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게 이동하고,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연결되며, 마치 국경과 시대의 장벽이 허물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표면 아래에는 오히려 더 첨예한 대립과 자국 중심주의, 각자도생의 논리가 깊게 스며 있다.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고립되어 있고, 삶의 의미는 이전보다 더 불분명해졌다. 찰스 킹이 지적하듯, 역사는 거대한 이념이나 명확한 서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은 수많은 개인들의 이동, 우연한 만남, 느슨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이 책은 그 연결의 역사를 되짚으며,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믿었던 세계가 사실은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었음을 상기시킨다. 단절된 듯 보이는 지금 또한 과거와 같은 흐름 위에 놓여 있으며, 분열의 시대에 연결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한다. 의미는 언제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시 연결을 상상하는 순간 비로소 되살아난다.

#흑해 #흑해세상의중심이된바다의역사 #찰스킹
#세계사 #도서추천

*도서증정 @sakyejul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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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제17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스즈키 유이 지음, 이지수 옮김 / 리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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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모든 이야기와 사유가 보이지 않는 실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에 이르게 된다. 문 하나를 열고 또 다른 문을 지나, 결국 하나의 거대한 문 앞에 서 있는 느낌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반복되는 사랑의 서사, 언제나 존재해온 전쟁과 차별, 그리고 각자의 시대를 가장 암울한 시대로 인식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자아상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안에 내재된 긍정과 연대, 희망의 감정은 또 다른 이야기로 변주되어 이어지며 계속해서 삶을 말한다.

책은 책으로 이어진다. 한 권의 책 속 인용문은 또 다른 책으로 이끌고, 그 책을 펼치면 다시 더 오래된 문장과 마주한다. 몇 단계만 건너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간관계처럼, 책 또한 따라가다 보면 결국 같은 뿌리에 닿아 있다는 인상을 남긴다. 고립된 문장은 없고, 완전히 독립된 사유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이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고, 듣고, 경험하고, 사유하는 경유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책, 더 넓게는 말과 글이라는 언어의 매개 안에서 이루어진다. 공통의 역사와 언어를 공유하든, 전혀 다른 문화권에 속해 있든 인간은 학습과 교류를 통해 지식과 감각을 확장해왔다. 언어와 글, 문화의 이동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앎에 대한 욕구’를 효과적으로 충족시켜온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창작자들은 어떨까. 어떤 작가도 완전히 최초라고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이미 말해진 것들 위에서 글을 쓰고, 이미 그려진 것들 위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창작이란 전혀 없던 무언가를 처음 만들어내는 일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같은 문장을 다른 리듬으로 말하고, 같은 사유를 다른 온도로 해석하며, ‘나는 이렇게 느꼈다’고 고백하는 변주는 충분히 창작적이다. 실제로 느낀 감각과 실존적 감동이 새로운 표현으로 정직하게 담긴다면, 감동은 다시 전해진다. 그 반복의 과정이야말로 역사와 문화를 이어온 또 하나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바로 이 연결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소설이다. 고전과 명언, 문학사에 남은 문장들을 지식의 장식으로 소비하지 않고, 살아 있는 이야기 속으로 끌어와 다시 호흡하게 만든다. 인용과 반복, 번역과 해석이 어떻게 새로운 문학이 될 수 있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내며, 밝고 긍정적인 서사와 생활감 있는 위트는 고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거리감을 자연스럽게 허문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을 말하려면 그 이전에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일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이미 지나간 과거에 머물며, 미래를 미리 알 수도, 다른 역사를 실제로 살아볼 수도 없다. 이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간극 때문에 역사와 문화, 문학은 서로를 향해 연결되고 반복되며,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삶 또한 끊임없이 새로 쓰인다.

결국 이 소설이 남기는 질문은, 이미 말해진 세계의 총합이 아니라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들, 아직 쓰이지 않은 문학의 무수한 가능성들이 아닐까.

그런 가능성을 실제의 문학으로 밀어 올린 이 젊은 작가의 시도가, 2025년 아쿠타가와상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진다.

#괴테는모든것을말했다 #아쿠타가와상수상작 #북스타그램
#서평 #ゲーテはすべてを言った

*이 서평은 구매한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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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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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출장으로 처음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함께한 동료는 나를 포함해 네 명이었다. 우리는 식당과 카페에서 자리를 잡는 일부터 자주 어색해졌다. 일본에는 바(bar) 형태의 좌석 배치가 많았고, 1인 좌석이 유독 눈에 띄었다. 혼자 식사하는 사람들, 창을 향해 앉은 자리들. 결국 우리는 나란히 줄지어 앉아 식사를 해야 했고, “일본은 마주 보고 밥 먹기가 어렵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나누었다.

그때 이미 일본의 1인 가구 비율은 30%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 1인 가구는 아직 낯선 존재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한국과 일본을 구분하던 이 풍경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1인 가구는 특정 국가의 특성이 아니라 세계적 보편이 되었고, 우리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혼자의 삶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렇게 세상은, 서로를 마주하고 앉기에는 어려운 장소가 되어갔다.

김수영의 『필연적 혼자의 시대』는 이 변화의 이면을 추적한다. 이 책은 1인 가구의 증가를 개인의 취향이나 가치관의 변화로 단정 짓지 않는다. 우리가 정말로 혼자를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이미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에 놓여 있었던 것은 아닌지를 조명한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는 결여된 사회망과 관계의 결핍이다. 충분한 소득이 있어도 식생활은 무너지고, 삶은 편리해지지만 돌봄은 사라진다. 돈은 삶의 질로 전환되지 않고, 다시 노동을 지속하기 위한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가족이 수행하던 돌봄과 연결의 기능은 사라졌지만, 이를 대체할 사회적 장치는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 개인은 독립과 동시에 감당해야 할 위험 앞에서도 혼자가 되었다.

오래된 편견은 혼자의 삶이 언제나 자발적 선택으로 인식된다는 사실이다. 『나 혼자 산다』와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1인을 위한 상품과 서비스가 늘어나며, 혼자는 자유와 독립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스스로를 책임지는 성숙한 사회인의 이미지. 그러나 저자는 이 자부심의 이면을 드러낸다. 지금 시대의 자유는 종종 초과 노동과 자기 관리로 흡수되고, 관계 없는 시간은 곧 일할 수 있는 시간으로 환원된다. 개인화는 해방이 아니라, 가장 효율적인 자기 착취의 형식이 되기도 한다.

가장 씁쓸하게 다가온 장면은 고독사에 대한 인식이다. 1인 가구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 이후의 모습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집, 늦게 발견되는 몸, 그리고 그 장면이 자신의 삶 전체를 설명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이는 개인의 불안이라기보다, 개인화된 사회가 아직 마련하지 못한 안전망의 공백이다. 누구나 혼자가 될 수 있는 사회에서 고독사는 더 이상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은 1인 가구와의 대화 속에서 많은 실질적 대안의 실마리를 제공하며 우리 시대의 과제를 분명히 한다. 혼자 살아도 고립되지 않는 사회, 가족이 아니어도 돌봄이 가능한 관계, 시장과 가족 사이의 새로운 연결. 우리에게는 공동의 안전망이 필요하다.

혼자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인간의 조건은 여전히 관계에 있다. 오래전 일본에서 마주 보고 식사하기 어려웠던 그 풍경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누군가는 오늘도 홀로 식탁 앞에 앉는다. 그러나 그 고독이 개인의 선택이나 책임으로만 남겨져서는 안 된다.

책을 덮으며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제목을 가져온 존 던의 시가 떠올랐다.

『누구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고, 대양의 일부이니. 한 덩이 흙이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 땅이 그만큼 작아지며, 곶이 줄어들거나 그대의 벗과 그대의 땅이 줄어들어도 매한가지이다. 누군가의 죽음이 나의 생명을 감소시키는 것은, 내가 인류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지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니』

『필연적 혼자의 시대』는 우리가 혼자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결코 혼자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인간은 고립된 단위가 아니라,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받는 연결된 존재다. 누구의 삶도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다시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를 묻는,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필연적혼자의시대 #김수영 #다산초당 #서평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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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 삶과 문학, 읽고 쓰기에 관한 네 번의 강의
제임스 우드 지음, 노지양 옮김, 신형철 해제 / 아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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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우리가 분명 보았지만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평가는 작품 속에서 발견한 의미를 전하며 우리가 지나쳤던 장면과 감정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이끈다. 사람들은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다른 깊이로 받아들이며, 때로는 ‘본다’는 행위를 넘어서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비평은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나 소설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하도록 돕고,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삶을 확장시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예술과 문학에서 중요한 가치는 정직성이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표현으로 완성된 작품이라도 어딘가 이질적으로 느껴지고 마음 깊이 닿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는 작가가 전달하려 했던 감각과 경험에 대한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교하고 화려한 표현이라도 진정성이 담겨 있지 않다면 오래 기억되기 어렵다. 창작은 작가가 세계를 바라보며 느꼈던 감각과 해석을 다시 표현하는 과정이며, 그 출발점이 되는 경험과 감정에 얼마나 충실한지가 작품의 생명력을 결정한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말처럼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려면 먼저 자신을 감동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제임스 우드의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은 이러한 예술의 정직성과 관찰의 의미를 문학이라는 영역에서 섬세하게 탐구한 책이다. 우드는 비평을 단순한 분석이 아니라 문학을 통해 삶을 더 깊이 바라보게 만드는 또 하나의 창조적 행위로 이해한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은 ‘세부 사항’이다. 우리는 어떤 순간을 기억할 때 거대한 사건이나 결론보다 특정한 냄새, 누군가의 표정, 그날의 공기와 같은 사소한 감각들을 더 선명하게 떠올린다. 우드는 문학이 바로 이러한 세부 사항을 통해 삶의 질감을 포착한다고 말한다. 세부 사항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삶의 감각과 경험을 재현하는 문학의 핵심 요소이며, 이를 통해 작품은 현실과 닮은 표현을 넘어 ‘삶다움(lifeness)’이라는 상태에 도달한다.

삶다움이란 단순히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감각과 존재의 밀도를 전달하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억과 감각은 쉽게 희미해지지만, 문학은 사라져가는 순간들을 붙잡아 다시 생명력을 부여한다. 그는 작가가 세상을 진지하게 관찰하는 행위를 삶을 죽음으로부터 구해내는 깊은 의미로 해석한다.

얼마전 영화 『먼 훗날 우리』를 보며 시대적 낭만과 서툴렀던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되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예술과 문학은 이처럼 우리의 기억과 감정을 다시 불러내는 매개가 된다. 그것은 사라져가는 순간들을 붙잡고 삶의 결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인상 깊은 통찰 중 하나는 인간이 결국 자신의 기억을 끊임없이 다시 써 내려가는 존재라는 관점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과거를 반복적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하면서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서술하는 내면의 작가이자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드는 문학을 특정 작가의 영역으로 한정하지 않고 인간 존재 자체로 확장시킨다.

좋은 비평은 작품을 다시 살아나게 만드는 행위라고도 강조한다. 비평가는 작품을 통과해 또 다른 언어로 확장시키는 사람이라는 관점은, 읽기와 쓰기가 서로를 끊임없이 확장시키는 창조적 순환임을 보여준다.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은 문학을 이야기하는 책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관한 책이다. 우리는 수많은 순간을 무심히 지나치며 살아가지만, 문학은 그 순간들이 지닌 의미를 다시 발견하게 만든다. 문학은 또 다른 삶을 경험하게 하는 동시에 우리가 이미 살아가고 있는 삶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다.

제임스 우드의 문장들은 삶을 확장한다. 그리고 그 확장은 우리가 더 섬세하게 보고, 더 깊이 느끼며, 더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정말로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에가장가까운것 #제임스우드 #인문에세이
#jameswood #도서추천

*이 서평은 구매한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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