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들의 바다 그늘 중편선 2
윤신우 지음 / 그늘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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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떠한 시간이든 단 한 번만 지나올 수 있다. 과거라는 것은 그 속성 자체로 이토록 견고해, 되돌리거나 다시 살아볼 수 없다. 누군가가 당신을 만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돌려받지 못할 영원한 한 순간을 내어주는 것. 그렇기에 인간에게 있어 이 단 한 번의 시간들 속에 머무는 삶이란, 인연이란 더없이 소중하고 의미 있는 무엇이다.

이것을 깨닫는 지점은 각자에게 다르지만, 그것을 본질이라 부른다면 인간이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이 삶이기도 하겠다.

『이름들의 바다』에는 바다를 닮아, 바다처럼 깊은 인물 해수가 등장한다. 그녀에게는 사람을 깊이 있게 느끼고, 그 온도를 몸소 느끼는 감각이 있다. 우리 각자에게도 어쩌면 그녀와 같은 예리한 감각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렇게 타인과 나를 구분하고, 혹은 누군가를 상처 입히기도 끌어안기도 하면서 삶은 채워진다.

기억은 참으로 모호하여, 기억하는 것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의 구분조차 실제와는 다르다. 잊고 있었다고 여겼던 기억들이 불현듯 어제 일처럼 되살아나기도 하고, 반대로 알고 있었다고 감각했던 것들은 어느덧 무뎌져 처음의 것과는 전혀 다른 무엇이 되기도 한다.

어떤 시간 속에서 붙잡을 수 있는 것이 비록 아주 사소한 장면의 파편일지라도, 잊지 않았다는 의식은 자신을 이루는 온전한 매개가 된다. 한 번도 그것들을 보고, 듣고, 알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는 또 다른 나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의식은 그렇게 자신을 이룬다.

누군가를 이름으로 부르고, 내게 이름이 있듯 우리에게는 각자 자신만의 고유함이 있다. 같은 이름이라도 어떤 이의 얼굴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우리가 온전한 자신으로 여겨지는 데에는 이름 이상의 무엇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단편적인 실마리들만으로는 한 사람을 느끼기에 턱없이 부족해, 어쩌면 그 누구도 끝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닐까 무력해진다. 그리고 그것이 나 자신이라면 어떨까. 자신조차 온전히 알 수 없어, 알 수 없는 또 다른 누군가를 붙들고 나아가기를 기대하는 것 역시 삶일 것이다.

누군가를 온전히 알아본다거나 구원한다는 일은 어쩌면 터무니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 불가능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오래된 고민이며, 끝내 열리지 않는 문과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그리고 타인에 대해 이해하려는 시도는 아름답고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된다.

『이름들의 바다』는 끝내 스스로를 품고 나아가 타인까지 품을 수 있는 문 앞에 우리를 세운다. 우리 모두가 단 한 번의 시간을 살아내고, 단 하나의 이름을 지닌 아름다운 존재임을 상기시키는 특별한 소설이다.

바다처럼 깊고 짙은 꿈의 무의식과 현재가 맞물려 하나의 바다를 이룬다.
그 바다에서 우리는 오래, 조용히 유영한다.
그것이 어떤 온도와 깊이를 지닌 바다인지 가늠해보며.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바다를 결국 마주하게 되리라는 예감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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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객관 - 과잉 정보의 시대, 본질을 보는 8가지 규칙
키코 야네라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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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통계를 얼마나 신뢰하는가?
당신은 확률을 얼마나 믿는가?

이러한 수학적 기법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 것보다는 적용되었을 때 더 나은 선택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는 동의하게 된다. 예컨대 어떤 바이러스의 치명률이 2%라고 제시되는 경우와 0.01%라고 말해지는 경우는, 그 수치의 크기만으로도 개인의 판단은 물론 사회 전체의 불안과 대응 방식까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숫자는 실제로 중요하다. 그것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행동을 유도하는 판단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정확한 수치를 도출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더 많은 데이터, 더 정교한 모델, 더 과학적인 분석이 있다면 불확실성은 제거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직관과 객관》은 이 익숙한 기대에 제동을 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의 복잡성을 인식하고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어떻게 사고하고 결정할 것인가이다.

책에서 인용되는 버락 오바마의 말은 이 딜레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늘 확률을 따져야 했다.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아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확률이 70%, 어떠한 방안이라도 택했을 때 문제가 해결될 확률이 55%, 의도한 대로 정확히 해결될 확률은 0%였다.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효과가 전혀 없을 확률은 30%,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확률도 15%나 되었다.”

이 숫자들 앞에서 명확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은 미뤄질 수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 역시 하나의 결정이며, 그것 또한 확률을 가진다. 통계나 확률, 수학적 이론이 결론을 대신 내려주지는 않는다. 데이터는 판단을 돕는 도구일 뿐, 책임을 대신 져주지 않는다.

《직관과 객관》은 다음 세 가지 태도를 제시한다. 과학적 관점을 유지하며 증거를 수집할 것. 신중함을 잃지 않되, 세상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인정할 것. 그리고 정보가 불완전하더라도 행동해야 함을 받아들일 것. 이는 확신을 요구하는 태도가 아니라, 확신이 부재한 상태에서 어떤 사고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저자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고 성급한 결론에 매달리는 존재임을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우리는 표본의 크기를 무시하고, 인과와 상관을 혼동하며, 작은 숫자에도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다. 직관은 빠르지만 자주 우리를 속인다. 숫자가 만능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숫자 역시 그것을 해석하는 인간의 편향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이 말하는 ‘객관성’은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고, 확신을 유보하며, 숫자 뒤에 놓인 인간과 맥락을 함께 고려하려는 접근이다. 도구적 이성이 모든 것을 계산 가능한 대상으로 환원하려 할 때, 저자는 인간을 향한 고려 없이는 어떠한 사회적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고 말한다.

《직관과 객관》은 통계를 잘 다루는 여러 방법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일상의 문제들에 대입해 볼 수 있는 유쾌한 사례들로 가득하다. 동시에 이론을 넘어, 불확실한 세계에서 사유하는 인간으로 남는 방법을 제시하는 사려 깊은 안내서이기도 하다.

불확실성은 제거해야 할 오류가 아니라, 우리가 끝내 살아가야 할 조건이다. 그 조건 앞에서 생각을 바로 세우고, 최선의 선택지를 향해 나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정보 과잉시대에 우리가 어떤 태도로 질문 앞에 서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저자가 제시하는 사례들은 무척 흥미로워 책에 재미를 더한다. 새로운 관점을 다각도로 발견할수 있는 유익한 책이다.

#직관과객관 #확률과통계 #북스타그램 #책추천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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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의 마음 - 도망친 곳에서 발견한 기쁨
정고요 지음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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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을 다니던 때, 나에 대한 연민이 가장 짙었던 시절.
어른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는 가장 젊었지만, 마음만은 이미 닳아 있던 시기였다.
안산에서 학동까지 긴 전철 노선을 오가며 출퇴근을 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만 하는 일로 받아들이며,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칸에서 나와 닮은 피로한 얼굴들을 마주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지 묻거나 다른 선택지를 떠올릴 여유는 없었다.

그 무렵 나를 붙잡아주던 순간은, 전철이 동작을 지날 즈음 열리는 풍경이었다.
갑갑하고 어두운 회색이 걷히고, 한강의 물빛이 시야에 들어오는 그 찰나.
나는 생각했다. 이 복잡한 서울에서 긴장된 삶을 버텨낼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한강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멀리서도 한강의 물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감정을 느슨하게 하고 쌓인 불만을 거둬갔다. 닫힌 열차 안에서 그 풍경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조금은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왜 강릉에 살며 바닷가의 산책을 찬미하는지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자연은 본래 그런 힘을 지닌 것인지도 모른다. 그 앞에 시선과 몸을 잠시 내어놓는 것만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위안이 찾아온다.

팬데믹 시기, 시대의 힘에 기대어 스스로를 더욱 고립된 생활로 몰아붙이던 때에도 내게 위안을 주던 풍경이 있었다. 내 방 창문 밖에는 제법 크고 높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나는 그 나무 한 그루로 그날의 날씨를 알았고,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느꼈다. 차를 마시며 나무를 오래 응시하는 시간은 매일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았고, 마음을 다듬고 또 하루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나무는 든든한 친구가 되었다.

마흔을 넘겨 화가로 살게 되면서 산책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나는 매일 산책의 호화로움을 누린다.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삶의 순간들은 더없이 소중해지고, 그것들은 어느새 풍부한 영감으로 옷을 갈아입고 그림이 되었다.

걷는 동안 삶의 크고 작은 문제를 대하는 나만의 속도를 알게 되었고, 계절마다 어김없이 색을 달리하는 자연의 질서 속에서 하루하루를 정직하게 나아갈 힘을 얻었다. 산책에서 만나는 것들은 이름이 없어도 스스로를 증명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 경이롭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머리가 조금 복잡해질 때면 바로 산책을 나선다. 그러면 이내 머리가 맑아지고, 생각을 넘어선 어떤 명료함을 만나 선명해지는 삶을 본다. 그 풍경은 조금 흐리거나 어둡거나 서늘한 날에도 만족과 기쁨의 감각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산책길을 따라 사람들을 만나고, 꽃과 동물을 만난다. 여러 시간의 바다를 만나고, 정고요 그녀도 만난다. 산책 친구가 생긴 것처럼, 이 정답고 고요한 마음의 산책은 자연에 대한 찬미이자 동시에 소란스러운 삶 속에서 선택해 마주할 수 있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깨닫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산책자의 마음을 통해 자연과 이어지고, 산책길에서 자신을 깊이 만나는 기쁨의 시간을 누리기를 바란다.

“나는 산책하며 삶을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_쇠렌 키르케고르

“산책은 하루를 구원하고, 삶을 조용히 되돌려준다.”
_헤르만 헤세

“절망은 앉아서 깊어지고, 산책하며 견딜 수 있게 된다.”
_에밀 시오랑

#산책자의마음 #정고요 #에세이 #예스24리뷰어클럽 #리뷰어클럽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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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애나 일러스트 리커버)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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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남자가 있다. 사이 바움가트너, 그의 이름이다.
그는 모나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살아온 사람이다. 큰 욕망 없이, 그러나 성실하게, 타인에게 가능한 한 친절하려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런 그에게 10년 전, 바닷가에서 아내가 사고로 사라진다. 40년을 함께 해온 사람을 잃는 일은 한순간이었고, 그 이후의 삶은 상실을 안은 채 계속된다.

다르고도 닮았던 두 사람은 모두 글쓰기를 사랑했다. 바움가트너에게 아내는 삶의 동반자이자 가장 친밀한 타자였다. 그녀가 사라졌을 때 곁에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일은 고통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삶이 멈추지는 않았다.

노년기에 접어든 그의 일상은 단조롭다. 그러나 그 단조로움 속에서 기억은 뜻밖의 방식으로 되살아난다. 타버린 냄비에서 시작된 사소하고 무심한 장면들 속에서, 이미 사라졌다고 여겼던 기억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왜 하필 지금일까. 어쩌면 그동안 기억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불러올 수 없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이제서야 감당할 수 있게 되었기에, 기억은 다시 그에게 도착한다.

한 사람의 삶은 수많은 우연으로 이루어진다. 바움가트너와 그의 아내의 만남 또한 그러했다. 단 한 번의 우연이 아니라, 그 우연을 다시 확인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우연들. 만약 그 순간들이 어긋났다면 그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그 우연은, 다른 어떤 삶의 가능성보다도 압도적인 의미를 지녔다. 아내와 함께한 생애는, 가질 수 없었을 수많은 삶의 가능성을 단번에 넘어설 만큼 충분히 가치 있었다.

폴 오스터는 이 소설에서 바움가트너의 2년 남짓한 시간을 따라가지만, 그 안에는 그의 전 생애가 응축되어 있다. 바움가트너 개인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부모와 형제, 아내의 삶까지 자연스레 마주하게 된다. 단편적인 이야기들의 연결은 오히려 한 사람의 생을 더 온전하게 드러낸다.

이 소설은 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많은 타인의 삶과 얽혀 있는지, 얼마나 많은 우연의 층위에서 비로소 하나의 생으로 완성되는지를 보여준다.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결말이다. 바움가트너의 끝은 또 하나의 시작처럼 열려 있다. 기억의 미로를 통과한 끝에서, 예기치 못한 우연은 다시 한 번 그를 삶의 다른 방향 앞에 세운다. 상실 이후에도 삶은 여전히 무언가를 건네며, 그는 그 앞에서 새로운 삶의 긴장을 느낀다.

폴 오스터의 소설에서 신은 늘 주사위 놀이를 한다. 우주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우연을 준비해 둔다. 『바움가트너』는 그가 평생 써온 우연과 기억, 허구와 상상력에 대한 사유가 가장 친절하고 애틋한 형태로 응축된 마지막 인사처럼 느껴진다.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자리에서, 그는 삶이 여전히 연결 속에 있으며, 그 연결이 끝내 우리를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삶이 가진 수많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 앞에는 언제나 여러 선택지가 놓여 있고,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미래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바로 그 가능성과 불확실성이 삶을 의미 있게 한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처럼, 우리에게도 당장 내일 삶을 송두리째 흔들 우연의 법칙이 작동할지 누가 알겠는가.

그렇다면 기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삶은 여전히 수많은 우연의 층위 위에 놓여 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아직 완결되지 않은 가능성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바움가트너 #폴오스터 #장편소설 #소설추천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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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가 사랑하는 그는 누구인가?
카트린 벵사이드.장이브 를루프 지음, 박명숙 옮김 / 열림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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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한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나탈리 포트만의 대사가 오래 남아 있는 영화, 클로저.

“보여줘.
사랑이 어디 있어?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어.”

이 문장은 사랑을 말하면서도
정작 그 실체를 한 번도 붙잡아 본 적 없는 사람의 호소처럼 느껴진다.

클로저 속 인물들은 사랑을 한다고 믿지만,
끊임없이 확인하고 상대를 몰아붙인다.
그들이 끝내 알고 싶었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두려움에 떨며 울고, 매달리고, 집착하며
붙잡으려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가 사랑하는 그는 누구인가?』는 이러한 사랑에 대한 오래된 질문을 세심하게 파고든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결핍이 있다.
그리고 비슷한 결핍을 지닌 누군가와 만났을 때,
우리는 그 결핍을 서로에게 투사한다.
상대를 이해한다고 느끼는 순간, 혹은 이해받았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사랑에 빠진다.
마치 오래 찾던 이상을 발견한 것처럼 들뜨고, 그 들뜸은 곧 상대를 더욱 친밀하고 소유된 존재로 착각하게 만든다.

그때의 사랑은 타인을 향한 사랑이라기보다
‘결핍이 잠시 채워진 나 자신’을 사랑하는 감정에 가깝다.
그래서 관계는 점점 요구와 확인의 구조로 변한다.
사랑받고 있는지, 여전히 선택받고 있는지, 변하지 않았는지를 끊임없이 재확인한다. 클로저의 인물들이 그러했듯이.

이 책은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서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핍을 메우기 위해 상대를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고독을 인정한 두 사람이 나란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사랑은 동일화가 아니라 관계이며, 소유가 아니라 공존이라고 말한다.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사랑을
우리는 왜 그토록 증명하려 드는 걸까.
아마도 사랑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에 대해 확신에 찬 말을 하는 사람들조차 사랑에 실패한 경험은 있어도, 완성된 사랑을 살아본 경험은 없을지 모른다.
사랑에는 결말이 없고, 완성이라는 상태 또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의 의미는 무한하다.

내가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말을 하는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 사랑은 타인을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향하고 있는가.

클로저가 사랑의 욕망을 통해 이 질문을 던졌다면,
이 책은 철학적이고 깊은 사유를 통해 같은 질문 앞에 우리를 세운다.

사랑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으며, 명확히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불확실함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붙잡으려 애쓰고 있는지,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지점은 어디인지를 책을 통해 상기하게 된다

어쩌면 사랑은 사랑받고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저 스스로에 대한 진실함이, 사랑할 수 있는 태도와 맞닿아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유한한 존재에게 무한한 것을 바랄 수는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서 어떻게 사랑을 배울 수 있을까.
누군가를 인정하지 않고서 어떻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와 당신 사이에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의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사랑은 나의 것도 당신의 것도 아니다.
나와 당신 사이, 그 무한한 틈.
사랑은 언제나 그 사이에 있다.

(*이 책에는 사랑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유와 고찰이 있다.
사랑에 대해 정의할 수 없음은 사랑이 모든 걸 정의할 수 있음과도 같다. 사랑의 무한한 의미를 철학적 사유로 만날 수 있는 깊고 아름다운 책이다.*)

#누군가를사랑할때내가사랑하는그는누구인가 #철학 #사랑
#북스타그램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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