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두렵지 않은 어른이 된다는 것 - 고전의 샘에서 길어 올린 품격의 언어
김이섭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P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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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말을 차갑게 하는 상대에게 “혹시 T세요?”라고 묻곤 한다. 나 역시 T 유형인 한 사람으로서, MBTI라는 도구가 때로는 고맙게 느껴진다. 누군가의 말이 왜 그렇게 들렸는지, 그 사람은 왜 그런 방식으로 표현하는지를 성격 유형이라는 틀 안에서 이해해보려는 시도는 관계를 단번에 해결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여지를 남긴다.

실제로 어머니들 커뮤니티에서는 아이를 이해하는 데 MBTI가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많다고 한다. “왜 우리 아이는 저럴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할까”라는 질문 앞에서, 성급한 판단 대신 잠시 멈춰 서게 만드는 장치가 우리에게는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사람들이 MBTI를 묻는다는 것은, 상대를 분류하고 재단하기보다는 조금 더 잘 알고 싶다는, 이해를 향한 서툰 질문일지도 모른다.

상대를 이해하고 대화를 이어가는 일은 어렵다. 마음을 정확히 전달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말은 언제나 의도와 다르게 도착한다. 특히 가깝고 소중한 관계일수록 더 조심스러워지고, 동시에 더 쉽게 어긋난다. 그래서일까. 오래된 고전부터 수많은 현자들이 한결같이 ‘말’에 대해 이야기해온 이유는, 말이 단순한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삶의 중요한 태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사자성어와 고전의 문장들이 등장한다. 말은 신중해야 하고, 경청은 중요하며,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상처 입히기도 한다는 사실들이다. 처음에는 이 간결하고 익숙한 문장들이 쉽게 읽히고, 다소 평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절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간극이야말로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임을 깨닫게 된다.

말을 아끼는 것, 말하기 전에 여러 번 생각하는 것, 상대를 존중하며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전에 상황을 헤아리는 것. 말은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가 될 수도 있고, 오래 남는 위로가 될 수도 있으며, 말 한마디로 사람을 얻기도 잃기도 한다는 사실. 이 모든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처럼 읽힌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자주 말 앞에서 흔들리고, 말한 뒤에야 후회하며, 말로 관계를 망가뜨리는가. 그렇기에 이 문장들은 사라지지 않고,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어 우리 앞에 다시 놓인다.

논어에서 이순(耳順)은 공자가 예순이 되었을 때의 경지를 가리킨다. 나이 예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귀가 순해졌다는 고백이다. 이는 다양한 말을 접해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그 말에 담긴 맥락과 의도를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공자와 같은 현인조차 오랜 시간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야 그 경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듣고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하게 한다. 결국 말의 깊이는 요령이 아니라 삶의 시간 속에서 쌓이고, 자신을 다스릴 줄 알 때 비로소 무게를 갖게 된다.

《말이 두렵지 않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처럼 어려운 말의 문제를 다시 사유하게 한다. 말이 두렵지 않다는 것은 말의 무게를 알기에 쉽게 입을 열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책을 덮고 나면 말을 하기 전 잠시 멈추게 되고, 고요히 비운 뒤 진실로 전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말이 곧 사람이 되는 순간을 우리는 이미 수없이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고전의 언어를 빌려, 익숙하지만 잊혔던 말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하는 사유의 시간을 건넨다.

#말이두렵지않은어른이된다는것 #인문에세이
#도서추천 #서평 #북스타그램

*도서증정 @snowfoxbooks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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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플
글라피라 스미스 지음, 권가람 옮김 / 바람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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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을 함께하던 두 마리의 개를 모두 떠나보냈지만, 두 아이와 함께하며 분명히 알게 된 것이 있다. 그들은 삶의 주변부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가장 약해질 때 곁에 남아 있던 위안이었고 가족이었으며,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을 살아낸 실제였다. 우리가 품을 수 있는 사랑의 크기와 보살핌의 온도, 그리고 말없이 건네지는 위로가 무엇인지 알려준 가장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삶은 늘 느슨하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빡빡하고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일상의 리듬 속에서, 소중한 존재일수록 오히려 자주 잊힌다. 함께 산책하던 시간도, 잠든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던 순간도 ‘당연한 하루’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레 밀려난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은 고스란히 남아 사라지지 않는다. 때때로 그들을 외면했던 우리의 모습까지 함께 남아, 미안함과 그리움이 공존한다.

그래픽노블 『트러플』은 바로 그 외면의 시간 속에서도 묵묵히 곁을 지키며 위안이 되어주었던 강아지 트러플의 이야기를 다룬다. 노부부의 삶 속에 들어온 트러플의 시선을 통해, 이 책은 인간의 시간과 개의 시간,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랑의 결을 교차해 보여준다. 트러플의 삶은 짧지만, 그 짧음 안에는 한 인간의 생애와 맞닿아 있는 수많은 감정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 책의 그림은 마치 누군가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스케치북을 오래된 상자에서 꺼내 조심스럽게 펼쳐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손에 묻어날 것처럼 생생한 선과 질감, 감각적인 원색과 흑백의 교차는 삶의 특정 순간들을 압축해 우리 앞에 놓는다. 사람의 세계가 모노톤으로 그려질 때, 트러플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오히려 밝고 다채롭다. 역설적으로 그 색채는 인간이 놓쳐온 감정과 온기를 대신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정말 같은 세상을 보고 있었을까. 같은 공간에 머물렀음에도, 같은 시간을 살아왔음에도 어쩌면 사랑은 서로에게 다른 빛으로 그려졌을지도 모르겠다. 늙어가는 몸과 회피로 익숙해진 마음, 그리고 곁에 있었기에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존재들. 이 책은 특별한 사건 없이도 삶이 얼마나 많은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그리고 그 감정의 상당 부분이 말 없는 존재들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일깨운다. 덧없이 지나가는 매일의 순간들이 사실은 더없이 찬란한 삶 그 자체였음을 상기시킨다.

트러플이 환한 꽃밭을 달려가는 마지막 장면은 이별의 슬픔보다는, 트러플이 전해준 온기 가득한 삶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잊고 지내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리고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고 떠났는지를 되묻게 하며 따스한 감동으로 채워진다. 『트러플』은 세상의 모든 개들과, 그들이 가르쳐준 사랑을 천천히 되새기게 만드는 아주 다정한 기록이자 눈부신 삶의 색채다.

#트러플 #그래픽노블 #도서추천 #북스타그램 #그림책추천

*도서증정 @barambooks.kr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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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서툰 사람들 - 불가해한 상실 앞에 선 당신을 위한 심리학자의 애도 강의
고선규 지음 / 아몬드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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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열 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이들을 ‘가상의 내담자’로 상담실에 초대해, 각기 다른 방식의 죽음과 상실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의 상실을 고백하듯 풀어내고, 저자는 그 이야기에 응답하며 애도의 결을 따라 대화를 이어 나간다. 위로나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 이 형식은 독자로 하여금 타인의 슬픔을 안전한 거리에서 바라보게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사유와 맞닿게 한다.

열 편의 영화 중 몇 편은 이미 보았던 작품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애프터썬〉을 다루는 장에서 하나의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영화를 볼 당시 나는 의식적으로 밝은 장면들에 머물러 있었다. 아버지와 딸이 함께 보낸 짧고도 아름다운 시간, 햇빛과 웃음, 여행의 기억들이다. 이 영화가 결국 상실과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그 결말을 애써 밀어내고 ‘기억할 만한 순간들’에 더 의미를 두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상실보다 추억을, 죽음보다 아름다움을 붙잡으려 했다.

이것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두 가지 의미와 연결된다. 하나는 우리가 죽음과 상실을 늘 나와는 조금 떨어진, 제3자의 일처럼 상상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죽음과 상실은 정작 자신의 일이 되기 전까지는 감각할 수 없으며, 가까운 이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은 결코 대비하거나 익숙해질 수 없는 사건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수많은 문학과 영화, 뉴스 속에서 죽음을 접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이야기’로 존재할 뿐 ‘사건’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실제 상실 앞에서는 늘 무방비 상태로 서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슬픔을 극복의 대상으로만 다루지 않으며, 애도에 어떤 정답이 있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슬픔은 이해의 대상이자 배워야 할 인간의 경험으로 이야기된다. 사고, 질병, 자살, 존엄사 등 죽음의 방식에 따라 애도의 양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같은 상실을 겪었더라도 각자의 애도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슬픔의 크기나 속도가 아니라, 그 슬픔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언어와 관계, 그리고 시간이 주어지는가 하는 문제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애도가 개인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저자의 시선이다. 죽음은 본질적으로 관계적 사건이며, 상실의 고통은 혼자 견딜 수 있을지 몰라도 회복은 결코 혼자 해낼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슬픔을 개인의 감정 관리 문제로 다루고, ‘이제 괜찮아져야 한다’는 말로 애도를 서둘러 끝내려 한다. 죽음과 상실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빠르게 정리해야 할 문제처럼 취급한다. 그러한 슬픔이 흐를 수 없는 사회야말로 사별자를 고립시키는 사회임을 지적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애프터썬〉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이제 그 영화는 아름다운 기억과, 동시에 상실 이후의 삶을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이야기로 남아 있다. 아마도 이것이 이 책이 독자에게 남기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변화일 것이다.

상실 이후의 삶을 생각할 언어를 건네는 것.

우리는 살아가며 반드시 누군가의 죽음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과 애도에 관해서는 거의 배우지 못한 채 살아간다. 《슬픔이 서툰 사람들》은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준비된 대화이다. 위로를 서두르지 않고, 슬픔을 고정하지 않으며,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이 책은 슬픔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다. 죽음이 삶을 파괴하는 사건으로만 남지 않도록, 상실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할 사람들을 위해 세심하게 곁을 내어주는 책이다.

#슬픔이서툰사람들 #심리학 #상담심리 #북스타그램 #도서추천

*도서증정 @almondbook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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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 세상의 중심이 된 바다의 역사
찰스 킹 지음, 고광열 옮김 / 사계절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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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가 아니라 연결을 서술하는 역사
— 찰스 킹, 『흑해: 세상의 중심이 된 바다의 역사』

찰스 킹은 기존의 고정된 육지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유동성의 ‘바다’를 하나의 역사적 주체로 복원한다. 『흑해: 세상의 중심이 된 바다의 역사』는 경계가 아니라 연결의 공간을, 변방이 아닌 세계사가 교차해 온 흑해를 조명한다. 이 책에서 바다는 충돌의 무대이기 이전에 오랜 시간 사람과 물자, 언어와 신앙이 오가던 교류의 통로였다.

저자가 흑해의 역사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지역사를 넘어,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끊임없이 형성되고 재구성되는 연결망이며, 선을 긋는 경계(boundary)가 아니라 여러 정체성이 겹치고 섞이는 변경(frontier)이다. 흑해 연안은 오랫동안 단일한 정체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이 축적된 공간이었고, 그 복합성은 근대 이전까지 자연스러운 질서로 작동했다.

찰스 킹이 특히 날카롭게 해체하는 것은 ‘민족(nation)’이라는 개념이다. 현재의 민족 중심 역사 서술은 오래된 실체를 복원하는 작업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근대에 발명된 범주일 뿐이다. 민족이라는 틀은 복잡한 삶의 층위를 지워버리고, 하나의 이름 아래 수많은 목소리를 침묵시킨다. 흑해 연안의 역사에서 저자는 언어와 종교, 생활양식이 유동적으로 교차하던 시기를 통해 민족 이전의 세계가 결코 혼란이나 미개함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그러한 혼종성과 개방성이 폭넓은 문화적 생성의 조건이었다.

이 책은 흑해의 약 2700년에 이르는 역사를 한 권에 담아내며, 흑해의 역사가 ‘단일한 정체성’이 아니라 ‘혼종성의 축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드러낸다. 대홍수 신화의 기억에서 시작해 고대 그리스 도시와 주변 민족의 공존, 실크로드의 해상 종착지로서의 역할, 오스만 제국의 내해로 기능하던 시기까지 흑해는 늘 섞이고 연결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의 남진과 근대 국가의 형성, 민족국가의 탄생은 이 유연한 공간을 점차 분할하고 고정시키기 시작했다. 강제 이주와 집단적 트라우마는 그 과정에서 발생한 필연적 결과였다.

찰스 킹은 이러한 역사를 통해 기독교와 이슬람, 유럽과 아시아,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이 얼마나 취약한 개념인지 드러낸다. 실제 흑해 연안의 삶에서 언어는 뒤섞였고, 종교는 공존했으며, 정체성은 상황과 관계에 따라 변화했다. 과거의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바다를 건넜고, 타자를 이해하며 다중 정체성 속에서 살아갔다.

이 책이 도달하는 결론은 근대 이후 민족과 국민국가가 이해의 진보가 아니라, 연결을 상실한 역사적 전환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민족 중심의 서사는 타자를 구분하고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애초에 섞여 있던 문화를 억지로 분리해 단일 정체성이라는 추상으로 환원한다. 국경의 고정은 이동과 공존의 기억을 지우고, 그 자리에 배타적 정체성과 자국 중심의 이해관계를 남겼다.

『흑해』의 2700년 역사는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경계와 구분이 얼마나 최근의 산물이며, 동시에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 보여준다. 이러한 통찰은 현재를 향한 하나의 질문으로 압축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는가. 이 책은 한 바다를 둘러싼 방대한 세계의 역사이자, 앞으로의 역사를 다시 만들어갈 하나의 가능성이다.

지금의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게 이동하고,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연결되며, 마치 국경과 시대의 장벽이 허물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표면 아래에는 오히려 더 첨예한 대립과 자국 중심주의, 각자도생의 논리가 깊게 스며 있다.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고립되어 있고, 삶의 의미는 이전보다 더 불분명해졌다. 찰스 킹이 지적하듯, 역사는 거대한 이념이나 명확한 서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은 수많은 개인들의 이동, 우연한 만남, 느슨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이 책은 그 연결의 역사를 되짚으며,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믿었던 세계가 사실은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었음을 상기시킨다. 단절된 듯 보이는 지금 또한 과거와 같은 흐름 위에 놓여 있으며, 분열의 시대에 연결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한다. 의미는 언제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시 연결을 상상하는 순간 비로소 되살아난다.

#흑해 #흑해세상의중심이된바다의역사 #찰스킹
#세계사 #도서추천

*도서증정 @sakyejul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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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제17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스즈키 유이 지음, 이지수 옮김 / 리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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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모든 이야기와 사유가 보이지 않는 실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에 이르게 된다. 문 하나를 열고 또 다른 문을 지나, 결국 하나의 거대한 문 앞에 서 있는 느낌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반복되는 사랑의 서사, 언제나 존재해온 전쟁과 차별, 그리고 각자의 시대를 가장 암울한 시대로 인식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자아상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안에 내재된 긍정과 연대, 희망의 감정은 또 다른 이야기로 변주되어 이어지며 계속해서 삶을 말한다.

책은 책으로 이어진다. 한 권의 책 속 인용문은 또 다른 책으로 이끌고, 그 책을 펼치면 다시 더 오래된 문장과 마주한다. 몇 단계만 건너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간관계처럼, 책 또한 따라가다 보면 결국 같은 뿌리에 닿아 있다는 인상을 남긴다. 고립된 문장은 없고, 완전히 독립된 사유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이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고, 듣고, 경험하고, 사유하는 경유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책, 더 넓게는 말과 글이라는 언어의 매개 안에서 이루어진다. 공통의 역사와 언어를 공유하든, 전혀 다른 문화권에 속해 있든 인간은 학습과 교류를 통해 지식과 감각을 확장해왔다. 언어와 글, 문화의 이동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앎에 대한 욕구’를 효과적으로 충족시켜온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창작자들은 어떨까. 어떤 작가도 완전히 최초라고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이미 말해진 것들 위에서 글을 쓰고, 이미 그려진 것들 위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창작이란 전혀 없던 무언가를 처음 만들어내는 일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같은 문장을 다른 리듬으로 말하고, 같은 사유를 다른 온도로 해석하며, ‘나는 이렇게 느꼈다’고 고백하는 변주는 충분히 창작적이다. 실제로 느낀 감각과 실존적 감동이 새로운 표현으로 정직하게 담긴다면, 감동은 다시 전해진다. 그 반복의 과정이야말로 역사와 문화를 이어온 또 하나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바로 이 연결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소설이다. 고전과 명언, 문학사에 남은 문장들을 지식의 장식으로 소비하지 않고, 살아 있는 이야기 속으로 끌어와 다시 호흡하게 만든다. 인용과 반복, 번역과 해석이 어떻게 새로운 문학이 될 수 있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내며, 밝고 긍정적인 서사와 생활감 있는 위트는 고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거리감을 자연스럽게 허문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을 말하려면 그 이전에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일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이미 지나간 과거에 머물며, 미래를 미리 알 수도, 다른 역사를 실제로 살아볼 수도 없다. 이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간극 때문에 역사와 문화, 문학은 서로를 향해 연결되고 반복되며,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삶 또한 끊임없이 새로 쓰인다.

결국 이 소설이 남기는 질문은, 이미 말해진 세계의 총합이 아니라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들, 아직 쓰이지 않은 문학의 무수한 가능성들이 아닐까.

그런 가능성을 실제의 문학으로 밀어 올린 이 젊은 작가의 시도가, 2025년 아쿠타가와상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진다.

#괴테는모든것을말했다 #아쿠타가와상수상작 #북스타그램
#서평 #ゲーテはすべてを言った

*이 서평은 구매한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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