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플
글라피라 스미스 지음, 권가람 옮김 / 바람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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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을 함께하던 두 마리의 개를 모두 떠나보냈지만, 두 아이와 함께하며 분명히 알게 된 것이 있다. 그들은 삶의 주변부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가장 약해질 때 곁에 남아 있던 위안이었고 가족이었으며,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을 살아낸 실제였다. 우리가 품을 수 있는 사랑의 크기와 보살핌의 온도, 그리고 말없이 건네지는 위로가 무엇인지 알려준 가장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삶은 늘 느슨하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빡빡하고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일상의 리듬 속에서, 소중한 존재일수록 오히려 자주 잊힌다. 함께 산책하던 시간도, 잠든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던 순간도 ‘당연한 하루’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레 밀려난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은 고스란히 남아 사라지지 않는다. 때때로 그들을 외면했던 우리의 모습까지 함께 남아, 미안함과 그리움이 공존한다.

그래픽노블 『트러플』은 바로 그 외면의 시간 속에서도 묵묵히 곁을 지키며 위안이 되어주었던 강아지 트러플의 이야기를 다룬다. 노부부의 삶 속에 들어온 트러플의 시선을 통해, 이 책은 인간의 시간과 개의 시간,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랑의 결을 교차해 보여준다. 트러플의 삶은 짧지만, 그 짧음 안에는 한 인간의 생애와 맞닿아 있는 수많은 감정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 책의 그림은 마치 누군가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스케치북을 오래된 상자에서 꺼내 조심스럽게 펼쳐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손에 묻어날 것처럼 생생한 선과 질감, 감각적인 원색과 흑백의 교차는 삶의 특정 순간들을 압축해 우리 앞에 놓는다. 사람의 세계가 모노톤으로 그려질 때, 트러플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오히려 밝고 다채롭다. 역설적으로 그 색채는 인간이 놓쳐온 감정과 온기를 대신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정말 같은 세상을 보고 있었을까. 같은 공간에 머물렀음에도, 같은 시간을 살아왔음에도 어쩌면 사랑은 서로에게 다른 빛으로 그려졌을지도 모르겠다. 늙어가는 몸과 회피로 익숙해진 마음, 그리고 곁에 있었기에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존재들. 이 책은 특별한 사건 없이도 삶이 얼마나 많은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그리고 그 감정의 상당 부분이 말 없는 존재들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일깨운다. 덧없이 지나가는 매일의 순간들이 사실은 더없이 찬란한 삶 그 자체였음을 상기시킨다.

트러플이 환한 꽃밭을 달려가는 마지막 장면은 이별의 슬픔보다는, 트러플이 전해준 온기 가득한 삶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잊고 지내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리고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고 떠났는지를 되묻게 하며 따스한 감동으로 채워진다. 『트러플』은 세상의 모든 개들과, 그들이 가르쳐준 사랑을 천천히 되새기게 만드는 아주 다정한 기록이자 눈부신 삶의 색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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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증정 @barambooks.kr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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