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의 연애법칙 61
Dr.굿윌 지음, 박금영 옮김 / 이젠미디어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나는 남자다. 마초적이지는 않지만, 태생이 수컷. 사실 이런 책이 기획된다는 것 자체에서 느끼는 반응은 ‘의아함’이다. 솔직히 남자만큼 그 속이 다 보이는 단순미련한 존재들이 어디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콩에 많은 분들이 쓰신 리뷰들을 통해 알게된 것은, 이 책이 기획된 시장조사 결과! “단순한 남자의 속성을 모르는 구나.. 그게 여성과 달라서 여성으로 하여금 상상하기 어렵구나..” 하는 지점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같은 남자가 보는 남자의 속성임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단순하게 이분법적인 사고도 엿보이는 내용도 있지만, 한편 내가 모르는 나의 부분.. 정말 그런거야? 하면서 새삼스러웠던 부분이 있기도 했다.

가령, 성욕에 지배되는 동물이고 첫눈에 여자가 자신의 섹스 상대인지 아닌지 알아본다는 법칙이 있는데, 이것은 의역해보았을 때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솔직히 예쁘고 귀여운 여자를 보고도 왠지 여자같지 않다 느껴질 때가 있다. 이는 생각에서 하는 게 아니라, just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작가의 지적대로 성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게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해서 읽다가 보면, 정말 의아해 하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된다는 것! 이렇게 촘촘히 필터링을 하고, 덫을 놓아두면 어느 남자가 통과하겠는가 하는가? 반대로 과연 이렇게 촘촘히 덫을 놓아두면 통과하는 여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이런 남자는 안된다가 아니라, 이런 남자여도 나쁜것만은 아니다 라고 같은 의미를 금 열린 표현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말한마디에 그 사람의 인생과 성품이 드러난다고 단정짓는 저자의 논리가 조금은 우습다. 예를 들어, 자신이 인기가 많다고 자랑하는 것이 곧 여자를 물건 취급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것이 인기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 여자 앞에서 호기를 부리는 남자의 애정표현이라는 점은 왜 모르는지 모르겠다. 소위 허풍과 허세를 부리는 것이 결국 잘 보이기 위해서 하는 액션인데, 그 톤&매너에 대한 고민 없이 무미건조하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이렇다라고 정해놓은 것은 글쎄..

일본인 작가라는 점에서 일본이라는 문화적 유사성과 특수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남성을 지나치게 단순화 시켰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또,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남자로 하여금 그러한 액션을 취한 것은 바로 여자 본인이라는 점 역시 인정하고 책을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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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 ㅣ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1
제러미 시프먼 지음, 임선근 옮김 / 포노(PHONO)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외재적으로 이 책의 구성을 보자면, 공을 들인 흔적이 군데군데 보인다. 그래서 저자는 서문에 이 책의 구성에 대해 궁리한 흔적을 남겨 놓았다. 일반 독자들에게 보다 생애 이야기와 음악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 위해 8장이라는 섹션을 두어 flow를 만들었고, 2 : 1 정도로 비율을 정했으며, 전문 용어들은 따로 용어집에서 풀어 설명하였다. 또, 음악과의 전기에서 생애와 작품을 양분해서 다루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음악만을 벼로의 장에서 ‘간주곡’ 형식으로 사이사이에 끼어 넣었다. 더불어 독자들이 음악 이야기만을 원한다면 생애 이야기만을 끝까지 읽지 않고도 앞으로 되돌아가 음악 이야기를 읽어도 되게끔 해놓았다. 많은 전기 작가들이 실패한 방식인 상상에 의한 장면 설정을 피하는 대신 그 대안으로 가능한 대목에서는 당사자들을 내세워 그들 자신의 표현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게 만듦으로서 주관적인 ‘해석’을 거듭한 것보다도 그 시대 상황을 보다 풍부하고 흥미진진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외재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을 미리 해두는 것은 이유가 있다. 바로 그만큼 모차르트의 삶이 “드라마틱”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어보기 전까지 모차르가 이토록 "드라마틱'한 세상에서 '드라마틱한" 생애를 살았는지 몰랐다.

모차르트의 시대는 그의 음악 세계의 완벽한 질서, 충만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그가 태어난 해는 ‘7년 전쟁’에서 많은 유혈 사태가 일어났고, 여러 세대에 걸쳐 유지되어 오던 사회적 차별과 정치적 계급 질서에 이의를 제기했고, 그 결과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를 갈라놓았던 부와 권력의 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모차르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신성로마제국을 공동통치했던 황후 마리아 테레지아의 개혁과 그의 아들 요제프 2세가 시도한 개혁이 서로 달라 세대를 걸쳐 나라가 흔들려야만 했던 것이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시작한 개혁이 전적으로 정치적인 편의에 의한 것이었다면, 요제프 2세의 개혁은 이상주의라 할 적으로 평등주의를 주창하여 기존의 헤게모니를 갖고 있던 권력층으로부터 반발에 부딪혔다.

모차르트는 이러한 상황에서 푸른 미래를 꿈꿨을 것이다. 당시의 음악가의 지위라고는 영화 <왕의 남자>의 광대처럼, 방랑 악사로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었고, 귀족의 궁정에서나 성직자의 궁정에서 하인으로 분류되어 생활하는 게 그나마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러한 왕의 평등주의는 모차르트와 그를 신동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부귀영화를 기대했던 그의 아버지에게는 푸른 꿈을 꿀 수 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요세프 2세의 대부분의 용감한 개혁실험은 불발에 그쳤고, 이는 토지를 소유한 귀족들이 부와 권력을 한꺼번에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처음부터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788년 터키와의 전쟁으로 세금과 군비가 증가하고, 1789년에 잃어난 프랑스 혁명과 당시 프랑스 여왕이었던 요제프의 여동생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까지 시행되자 요제프 2세가 세운 거의 모든 계몽주의적 법안들이 폐기되었고, 실패로 귀결되었다. 그러자 지성과 예술적 자유의 보루였던 빈은 한 순간에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모든 예술가와 지식인, 학자들의 입지는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결국 48세로 요제프가 세상을 뜨고, 그의 개혁은 폐기처분되었으며 그로부터 2년이 채 못 되어 모차르트는 35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천하의 인물도 난세 앞에 영웅으로 우뚝 솟았지만, 난세 앞에 결국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운명이라는 건 역사가 증명하는 우리 사회가 아닌가 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이렇듯,이 책은 난세 속에서 신화를 꿈꾼 음악가의 생애와 음악 이야기이다. CD와 함께 모차르트를 되짚어본 이 책은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나는 가수다” 등의 음악프로와 “오디션”프로그램과 겹쳐져 묘하게 다가온다. 난세가 영웅을 만들지만, 난세가 결국 그 영웅을 잃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현재가 난세인가? 그렇다면 오늘날의 영웅은? 오늘날의 뮤지션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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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아, 쉿! -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행복한 사랑 연습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박현미 옮김 / 다산북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사랑이 불편해지는 세 가지 이유(욕망, 분노, 미망)에 대해 인간 근본적인 의식에 대해 정리했다.

2장에서는 연애를 하며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심리의 변화 및 실망에 대한 부분을 다뤘다.

3장에서는 사랑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해결 방법을 구체적으로 다루었으며,

4장에서는 치유로 명상하는 방법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했다.



스님이 쓰신 사랑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사랑'의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남녀간의 사랑도 사랑이겠지만, 부부 사이, 부자 사이 등등 으로 말이다. 의역하자면 그 범위가 넓어지겠지만, 굳이 따져본다면 이 책은 남녀사이의 사랑에 집중하고 있다.




메시지는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 그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문제가 겪으며 상대방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해’를 가한다는, 의도와 다른 결과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준만큼 받고 싶다는 확인 작업에 앞서 주는 것에 조금 더 집중하라는 것이었다.



최근에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라는 책을 읽어서일까? 스님의 책에서와 공통점이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의 경우, 남을 사랑하기 전에 앞서 자신을 먼저 충분히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희생이 곧 사랑이 아니고, 이에 앞서 자신을 사랑한 후에 상대를 사랑해야 희생이라는 명목으로 퍼올리는 사랑의 샘이 메마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정리되는 ‘사랑’이라는 것은 감성적인 에너지라는 점이다. 무한히 퍼낼 수 있는 듯 하지만, 오히려 지하자원처럼 매장량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들쑥날쑥한 그 양의 측정도 그리고 사이사이 쓴 만큼 상대방에게 충전하고 싶은 욕구.. 사랑받기 위해 사랑을 주는 이 묘한 에너지를 두고 우리는 머리로는 알면서도 늘 실수를 되풀이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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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허수연 지음 / 토트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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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든 제목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상품이라면 그 맛과 제조공정에 대해 어필하고 있을 테고, 문화컨텐츠라면 그 스토리라인이나 주제 등을 언급하고 있을 것이기에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라는 글귀를 읽은 느낌은 책을 읽은 전과 후에 상당히 달라진다. 잃었다는 것은 결국 상실이고, 쉽게 그 상실감에 빠져들게 된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는 잃었음에도 잃지 않았다고 믿고 싶은 마음을 외쳤다고 생각이 되었다. 하지만 읽고 난 이후에는 다르다.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돌아보니 잃지 않은 것이었고 잃었다고 생각되는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소중한 것을 얻은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즉, '-'라는 결론은 '0'임을 알게 되고, 비록 '-'가 있었으나 '+'도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가 수치적으로는 의미가 없어지는 셈이다.

 

이 책은 몇 장만 들춰보아도, '이혼'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혼 과정 언저리에서 부터 시작된 하루하루 '떠나보내기'의 과정인 동시에, '홀로서기'의 과정이 묘하게 겹쳐져있다. "이혼은 결혼이 실패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어도, 두 사람의 사랑이 실패했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한다"는 태그라인처럼, 이혼한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

은 아닌 복잡한 남녀관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다. 이 섬세한 결을 살리면서 고백하는 이는 바로 작가 자신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다만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밝히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든, 작품으로서 쓴 것이든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책의 구절마다 표현되어 있는 절절한 마음과 상처 입은 자가 느낄 수 있는 깨달음이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아도 결혼할 수 있듯이, 사랑이 식지 않아도 이혼할 수 있다. 세상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해보는 것, 다른 방법이 없다. 내 쪽에서 먼저 여유있게 웃어 줄 수 있

다면 얼마나 좋을까. 설령 사랑하는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혼자 살고 싶다고 해도."

 

"상처란 주는 것이 아니라, 입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누구도 나를 아프게 할 수 없다."

 

"평생을 헌신하여 소중히 일궈온 직장이나 회사를 하루 아침에 잃는 경험을 하면서 사람들은 '직장과 나 자신을 동일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운다. 즉, 자신과 직업 사이에는 한걸음 정도 거리를 두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대상이라도 그것이 곧 나는 아니기 때문이다." 

 

등..

 

이토록 처절한 홀로서기가 강요되면서도, 상대방을 사랑하는 작가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헤어진 연인을 어떤 식으로 그리고 있는가? 진실로 사랑했다면, 헤어졌다고 해서 변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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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7일 전쟁 ㅣ 카르페디엠 27
소다 오사무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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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작품인 이 책은 20년도 지난 2011년 오늘날에 던지는 잔잔한 반향이 있다. 그 당시 먹고 살기 급급했고, 내일보다는 오늘이 중요했던 시절, 정의라는 것보다 생존이 중요했던 80년대... 하지만 고도성장의 파도에 몸을 실어 급속도로 그 원초적인 문제에서 어느정도 벗어난 현재, 정작 그 당시에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핑계를 대야만 했던 것들에 대해 얼마만큼 제대로 짚고 넘어가느냐 하는 점 때문이다. 그 당시 '타도'를 외치며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남는 것에만 목숨을 걸거냐면서 뜨거운 피를 끌어올렸던 젊은 층은 철이 없다며, 왜 굳이 니가 그래야 하냐면서 타이르던 그 어른들... 시간이 흘러 바로 그 연령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 어른들이 된 오늘날의 한국은 제법 먹고 살 만하기는 해졌지만, 그 젊은 층(혹은 학생들)에게 역시 똑같은 것, 아니 오히려 더한 현실의 순응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아이러니한 상황에 있어 이 작품은 퍽 가슴을 콕콕 찌른다.


어느날 13세의 도루는 친구들에게 1960년대 일본의 학생 운동, 전공투 이야기를 꺼낸며 반란을 도모한다. 하지만 딱히 정치의식이 있어서 반란을 도무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불만과 자신감 그리고 모험에 대한 기대가 전부이다. 마침 몸이 근질근질하던 아이들은 모두 이 선동에 이끌리고 20여명의 아이들과 함께 시작된다. 하지만 이렇게 진지한 아이들과 달리 부모들은 자신의 어린(?) 아이들이 유괴되지는 않았을까 하며 노심초사한다.


<7일간의 전쟁> 속 7일간의 전쟁은 '나쁜' 어른들을 망신시키고, 물리적인 화를 당하게 한다. 그리고 꽤 속시원하게 통쾌하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느껴지는 작가의 의도는 이렇게 통쾌한 복수 일련의 과정과 그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발견한 지점은 이 아이들을 통해 반영되는, 한 때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섰지만 지금은 자기 안위만을 추구하는 아이들의 부모, 바로 "'전공투 세대' 돌아보기"다. 이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서 과거 자신들의 모습을 본다. 그러면서 자신이 뜨거웠던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어쩌면 저 애들이 우리 뒤를 이을 녀석들인지도 몰라."하며 기특해 하기도 한다. 그리고 생존을 위한, 역설적으로 그 생존 때문에 직면한 매너리즘에 대해 곱씹는 계기를 만든다.


한편 어쩌면 이 작품은 리얼리티를 배제한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볼 수도 있던 수준에서 나아가 2008년 한국을 예측한 미래소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몇 년 전 한국,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관련된 문제로 사회가 뜨겁게 달구어져, 촛불을 든 소년소녀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소년소녀들이 한국을 짊어지고 가기에, 미래는 밝을 수 있겠다는 안심이 된다. 어차피 그 전쟁의 승패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보다 제대로 된 "다이나믹 코리아"가 된다는 기대가 흐뭇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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