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허수연 지음 / 토트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어떤 것이든 제목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상품이라면 그 맛과 제조공정에 대해 어필하고 있을 테고, 문화컨텐츠라면 그 스토리라인이나 주제 등을 언급하고 있을 것이기에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라는 글귀를 읽은 느낌은 책을 읽은 전과 후에 상당히 달라진다. 잃었다는 것은 결국 상실이고, 쉽게 그 상실감에 빠져들게 된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는 잃었음에도 잃지 않았다고 믿고 싶은 마음을 외쳤다고 생각이 되었다. 하지만 읽고 난 이후에는 다르다.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돌아보니 잃지 않은 것이었고 잃었다고 생각되는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소중한 것을 얻은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즉, '-'라는 결론은 '0'임을 알게 되고, 비록 '-'가 있었으나 '+'도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가 수치적으로는 의미가 없어지는 셈이다.

 

이 책은 몇 장만 들춰보아도, '이혼'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혼 과정 언저리에서 부터 시작된 하루하루 '떠나보내기'의 과정인 동시에, '홀로서기'의 과정이 묘하게 겹쳐져있다. "이혼은 결혼이 실패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어도, 두 사람의 사랑이 실패했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한다"는 태그라인처럼, 이혼한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

은 아닌 복잡한 남녀관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다. 이 섬세한 결을 살리면서 고백하는 이는 바로 작가 자신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다만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밝히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든, 작품으로서 쓴 것이든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책의 구절마다 표현되어 있는 절절한 마음과 상처 입은 자가 느낄 수 있는 깨달음이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아도 결혼할 수 있듯이, 사랑이 식지 않아도 이혼할 수 있다. 세상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해보는 것, 다른 방법이 없다. 내 쪽에서 먼저 여유있게 웃어 줄 수 있

다면 얼마나 좋을까. 설령 사랑하는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혼자 살고 싶다고 해도."

 

"상처란 주는 것이 아니라, 입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누구도 나를 아프게 할 수 없다."

 

"평생을 헌신하여 소중히 일궈온 직장이나 회사를 하루 아침에 잃는 경험을 하면서 사람들은 '직장과 나 자신을 동일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운다. 즉, 자신과 직업 사이에는 한걸음 정도 거리를 두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대상이라도 그것이 곧 나는 아니기 때문이다." 

 

등..

 

이토록 처절한 홀로서기가 강요되면서도, 상대방을 사랑하는 작가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헤어진 연인을 어떤 식으로 그리고 있는가? 진실로 사랑했다면, 헤어졌다고 해서 변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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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7일 전쟁 카르페디엠 27
소다 오사무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1985년 작품인 이 책은 20년도 지난 2011년 오늘날에 던지는 잔잔한 반향이 있다. 그 당시 먹고 살기 급급했고, 내일보다는 오늘이 중요했던 시절, 정의라는 것보다 생존이 중요했던 80년대... 하지만 고도성장의 파도에 몸을 실어 급속도로 그 원초적인 문제에서 어느정도 벗어난 현재, 정작 그 당시에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핑계를 대야만 했던 것들에 대해 얼마만큼 제대로 짚고 넘어가느냐 하는 점 때문이다. 그 당시 '타도'를 외치며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남는 것에만 목숨을 걸거냐면서 뜨거운 피를 끌어올렸던 젊은 층은 철이 없다며, 왜 굳이 니가 그래야 하냐면서 타이르던 그 어른들... 시간이 흘러 바로 그 연령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 어른들이 된 오늘날의 한국은 제법 먹고 살 만하기는 해졌지만, 그 젊은 층(혹은 학생들)에게 역시 똑같은 것, 아니 오히려 더한 현실의 순응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아이러니한 상황에 있어 이 작품은 퍽 가슴을 콕콕 찌른다.


어느날 13세의 도루는 친구들에게 1960년대 일본의 학생 운동, 전공투 이야기를 꺼낸며 반란을 도모한다. 하지만 딱히 정치의식이 있어서 반란을 도무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불만과 자신감 그리고 모험에 대한 기대가 전부이다. 마침 몸이 근질근질하던 아이들은 모두 이 선동에 이끌리고 20여명의 아이들과 함께 시작된다. 하지만 이렇게 진지한 아이들과 달리 부모들은 자신의 어린(?) 아이들이 유괴되지는 않았을까 하며 노심초사한다.


<7일간의 전쟁> 속 7일간의 전쟁은 '나쁜' 어른들을 망신시키고, 물리적인 화를 당하게 한다. 그리고 꽤 속시원하게 통쾌하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느껴지는 작가의 의도는 이렇게 통쾌한 복수 일련의 과정과 그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발견한 지점은 이 아이들을 통해 반영되는, 한 때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섰지만 지금은 자기 안위만을 추구하는 아이들의 부모, 바로 "'전공투 세대' 돌아보기"다. 이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서 과거 자신들의 모습을 본다. 그러면서 자신이 뜨거웠던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어쩌면 저 애들이 우리 뒤를 이을 녀석들인지도 몰라."하며 기특해 하기도 한다. 그리고 생존을 위한, 역설적으로 그 생존 때문에 직면한 매너리즘에 대해 곱씹는 계기를 만든다.


한편 어쩌면 이 작품은 리얼리티를 배제한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볼 수도 있던 수준에서 나아가 2008년 한국을 예측한 미래소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몇 년 전 한국,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관련된 문제로 사회가 뜨겁게 달구어져, 촛불을 든 소년소녀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소년소녀들이 한국을 짊어지고 가기에, 미래는 밝을 수 있겠다는 안심이 된다. 어차피 그 전쟁의 승패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보다 제대로 된 "다이나믹 코리아"가 된다는 기대가 흐뭇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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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절밥 한 그릇 - 우리 시대 작가 49인이 차린 평온하고 따뜻한 마음의 밥상
성석제 외 지음 / 뜨란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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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절밥'의 의미...에 대한 책이다.

 

'밥'의 의미.. 에 대한 예찬이 많다.

밥은 먹었냐고 묻는 말에 괜시리 눈물을 흘려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밥은 먹고 하라는 말에 따뜻함을 느껴본 사람이 있다.

 

'집밥'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학교나 직장 때문에 외지에서 고생하는 남자들에게 있어 '집밥'의 의미는 다르다.

그래서 외지생활하는 자식들을 보며 어머님들은 집밥을 얻어먹지 못해서 마른다고 말하곤 하신다.

 

그렇다면 '절밥'은 무엇일까?

종교가 다른 이에게는 이색적인 공간에서 먹는 밥일 테고,

조부모 혹은 어른을 따라서 간 절에서 먹은 이들에게는 추억이 있는 밥일테고,

무엇인가 고민거리 때문에 절에 묵게된 이들에게는 깨달음을 주는 밥일테다.

 

이렇듯 이 책은 '절밥'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되, 단순히 불교 사상적 측면에서 보다 넓은 개념에서 작가들마다 에피소드를 쏟아낸다. 거기엔 '소박함'이 있고, '깨달음'도 있으며, '추억'도 있으며, '창피함'도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책은 참 희안한 책이다. 어떤 에피소드 하나가 딱 마음에 강하게 꽂힌다기 보다는 가슴 속으로 은은하게 져며들기 때문이다. 색깔로 친다면 파스텔톤이라고나 할까? 그런 책의 성격 때문에 어느 에피소드 하나가 가슴 속에 강하게 전달된다기 보다는, 전체가 하모니를 이루어 은은한 잔향을 남긴다.

 

어쩌면 책테라피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강하게 마음을 흔들고 나면 그 이후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기가 조금 어렵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가 빠져나올 수 있되, 그 감정이 무시할만큼 약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지친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해주는 뭉클한 절밥 한 그릇 이야기에 귀기울여볼만하기에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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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바꾼 사진들 - 카메라를 통한 새로운 시선, 20명의 사진가를 만나다
최건수 지음 / 시공아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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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관련 서적을 볼 때, 쉽게 흥미를 느끼면서도 쉽사리 망설이게 된다. 예술을 위한, 예술가들을 옹호한, 동시에 관객을 배제한, 일반인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글일까 싶어서이다. 제일 싫어하는 말이 비꼬는 '예술하냐~'인 나로서는 '예술'이 친근한 것일 때 비로소 100% 빠져들게 된다. 이런 우려는 책의 초반부에 나타나 있는 다음의 구절에서 마음을 놓았다.

 

"삶이란 알고보면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 우리가 세상에서 맡은 배역이란 대개는 속물이거나 잠재적으로 속물 지망자라는 작가의 인식에 동의한다면, 미술은 그다지 고상한 게 아니다."

 

 

크게 이 책은 크게 두가지 챕터로 나뉘어져 있다. 사진의 변주라 볼 수 있는 챕터1. 그리고 사진 그대로의 사진을 담은 챕터2. 야구로 비유하자면 변화구와 직구! 이 두가지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생각보다 신선했다. 쿨~한 톤으로 진솔하게 써내려간 작가의 글과 그에 부응하는 사진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멋있는' 사진보다는 '독특한' 사진이 있었고, 그 속에 담겨진 의도와 스토리, 그리고 작가의 사연이 함께 담겨짐으로서 볼만했다.

 

디지털 시대에 필름 카메라로서 포착한 사진 무스깽이(?)를 논했다면 난 당장 이 책을 덮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기술에도 발전이 있었듯이 그 주어진 한계를 넘어서려는 작가의 노력과 대처한 방안으로서의 아이디어들이 담겨짐으로서 작품을 보다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가장 와닿았던 것은 예술지상주의로서의 예술가가 아니라, 생계 걱정을 하는 '일반인'으로서의 예술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전 김탁환 작가의 <천년습작>이라는 책을 읽다 보니, 전업작가로서의 고단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난 물질중심인 오늘날, 전업작가로서의 삶이란 피곤하고 크나큰 결심이 있어야만 된다고 생각해온터라 과거의 작가들은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인터넷이 없었기 때문에 정보의 습득에 있어서는 조금 폐쇄적일지라도 생계 문제에 있어서 지금보다는 나았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김탁환 작가가 '발자크'의 의야기를 하면서 생계형 작가로서 하루 16시간의 습작시간을 갖는 노동자라는 주장을 펼쳐갈 때 신선함과 함께 위로감을 얻기도 했다.

 

그래서 인지 '일반인'이자 '소시민'이자 '노동자'인 사진작가들의 삶을 조명하고, 그들이 어떻게 현실과 맞서면서 이 작품들을 그려냈는지 서술해놓은 작가의 이야기에 존경심이 갖게 된다.

 

사진을 넘어 예술로, 사진작가를 넘어 문화노동자로 진술한 이 책! 무척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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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강희진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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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적이라고 욕해도 좋다! 난 요런 소설이 좋다!^^

 

한국의 문학이란 순수문학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어느 순간 아주 간단히 이 순수문학의 뜻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문학이란 결국 글이라는 혹은 글에서 오는 감정으로 이미지나 메시지를 만드는 행위인데, 이것을 실험적으로 응용하거나 글에서 오는 감정으로 독자들에게 인상을 전한다는 뜻에서 순수문학이라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가장 소설다운 소설, 타 매체로의 사용되는 것을 고려하기 전에 소설이라는 매체에서 보다 더 그 가치가 잘 살아나는 작품이 곧 순수문학이 지향하는 바 아닌가 싶다. 

 

이러한 한국 문단계에 있어 트집 잡을 생각은 없다. 과학도 기초과학이 중요하듯이 문학에 있어서도 이러한 측면이 분명히 있어야 된다고 본다. 내가 짚고 싶은 것은 그 쏠림 현상이다. 소위 원로나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가진 분들이 지향하는 바가 그렇다 보니(이견이 있으신 분께는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신인 작가들도 그러한 잣대나 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다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지쳐만 가는 현대인들에게 문학이 무엇이냐, 어떤 점에서 의미가 있는가 하는 점에서는 조금 씁쓸하다. 문학성과 스토리성이라는 것은 결코 물과 기름의 관계가 아닐텐데, 결국 현대인이자 독자가 원하는 것은 어느 지점인지 궁금해진다.

 

이 소설을 보면 딱 2011년 최인훈 <광장>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싶었고, 영화적 용어로 표현하자면 그 <광장>의 리퀄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즉, 남 북 그리고 제3세계를 선택하지 못한 한 남자(<광장>의 주인공)이 만약 남한을 선택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하는 컨셉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옛날 남북냉전시기의 올드함은 없다. 그 탈북자이야기가 왜 새삼스럽게 다가오느냐를 고민해보니, 그게 결국 현대인 혹은 현대문명을 의미하는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사람들... 그게 바로 현대인의 모습이 아닌가?

 

대학생들이 등록금이라는 차가운 현실 앞에 좌절하며 꿈을 꾸어야 할 때 현실적응만 강요되고, 직장인 역시 입사후 포부를 실현하기 보다는 은퇴 후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시작과 끝이 함께 있는 그 경계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석의 시 '모닥불'은 어쩌면 이젠 점점 희미해져만 가는, 무릉도원의 세계만 되어가는지 몰라 가슴이 쓰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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