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강희진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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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적이라고 욕해도 좋다! 난 요런 소설이 좋다!^^

 

한국의 문학이란 순수문학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어느 순간 아주 간단히 이 순수문학의 뜻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문학이란 결국 글이라는 혹은 글에서 오는 감정으로 이미지나 메시지를 만드는 행위인데, 이것을 실험적으로 응용하거나 글에서 오는 감정으로 독자들에게 인상을 전한다는 뜻에서 순수문학이라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가장 소설다운 소설, 타 매체로의 사용되는 것을 고려하기 전에 소설이라는 매체에서 보다 더 그 가치가 잘 살아나는 작품이 곧 순수문학이 지향하는 바 아닌가 싶다. 

 

이러한 한국 문단계에 있어 트집 잡을 생각은 없다. 과학도 기초과학이 중요하듯이 문학에 있어서도 이러한 측면이 분명히 있어야 된다고 본다. 내가 짚고 싶은 것은 그 쏠림 현상이다. 소위 원로나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가진 분들이 지향하는 바가 그렇다 보니(이견이 있으신 분께는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신인 작가들도 그러한 잣대나 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다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지쳐만 가는 현대인들에게 문학이 무엇이냐, 어떤 점에서 의미가 있는가 하는 점에서는 조금 씁쓸하다. 문학성과 스토리성이라는 것은 결코 물과 기름의 관계가 아닐텐데, 결국 현대인이자 독자가 원하는 것은 어느 지점인지 궁금해진다.

 

이 소설을 보면 딱 2011년 최인훈 <광장>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싶었고, 영화적 용어로 표현하자면 그 <광장>의 리퀄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즉, 남 북 그리고 제3세계를 선택하지 못한 한 남자(<광장>의 주인공)이 만약 남한을 선택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하는 컨셉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옛날 남북냉전시기의 올드함은 없다. 그 탈북자이야기가 왜 새삼스럽게 다가오느냐를 고민해보니, 그게 결국 현대인 혹은 현대문명을 의미하는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사람들... 그게 바로 현대인의 모습이 아닌가?

 

대학생들이 등록금이라는 차가운 현실 앞에 좌절하며 꿈을 꾸어야 할 때 현실적응만 강요되고, 직장인 역시 입사후 포부를 실현하기 보다는 은퇴 후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시작과 끝이 함께 있는 그 경계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석의 시 '모닥불'은 어쩌면 이젠 점점 희미해져만 가는, 무릉도원의 세계만 되어가는지 몰라 가슴이 쓰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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