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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는데 엄마가 되었습니다 - 모든 게 엉망진창, 할 수 있는 것은 독서뿐 ㅣ 걷는사람 에세이 3
김연희 지음 / 걷는사람 / 2019년 5월
평점 :
일단 저자가 이 책을 쓰기까지의 상황에 대해 이해하면서 뭉클했다. 엄마로서... 여자로서... 저자는 약사로서, 소설가로서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잘 살아왔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하면서 자신의 인생이 아이 중심으로 바뀌고, 몸 컨디션도 주체적일 수 없는 상황으로 진행되면서 많은 당황스러움을 느꼈을 것이고, 심지어 산후우울증까지 겪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행복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아이가 사랑스럽지 않은 것도 아닌데... 뭔가 삶이 공허해지는 느낌...
그래서 이 책을 한땀한땀 써내려 갔을 것이다. 그 알 수 없는... 그리고 생애 처음 겪어 보는 공허함 때문에.
그래서 이 책의 한 장 한 장이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비단 글지 않은 글들이지만, 그 안에는 참으로 많은 고뇌와 성찰이 들어가 있을 뿐만 아니라 몸부림도 있었다는 것을 알기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육아를 하는 동안 종종 그런 충동이 들었다. 그런 충동은 짓궂은 누군가가 던진 공처럼 갑자기 날아왔고, 나는 불쑥 떠오른 생각에 놀라고, 당황하고, 슬퍼졌다. 그럴 만한 이유가 없었다. 남편은 성실하고,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서 소설집이 출판되었다. 나쁘지 않은 상황인데, 종종 어딘가에서 날아오는 우울이라는 공을 맞고 나는 주저앉았다. 우울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마트에서 장 볼 때,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줄 때, 설거지할 때, 갑자기 공격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보았던 산후 우울증에 걸린 산모에 대한 기사를 떠올리곤 했다. 그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가 그녀들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까봐 두려웠다.(P4~5)
그 때마다 링거처럼 소설을 읽고, 소설 속 인물을 만나 위로를 받고 그 시간들을 버텨냈고, 그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여자들을 위해 육아에세이를 썼다.
그런 당황스러움과 공허함은 예고 없이 찾아와서일까? 어찌보면 약간 산만할 수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인데, 소설처럼 재미있는 순간순간이 있었다. 그렇게 소개한 책은 40권의 고전, 문학, 인문서 등이 있었다.
무엇보다 신기했던 것은 약사이기도한 저자가 건강 정보 팁까지 유용하게 담아두었다는 것이다. 임신한 여성과 육아를 담당하는 엄마라면 꼭 알아야할 약 이야기도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책은 타깃을 명확하게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육아에 의해 의도치 않게 찾아온 ‘우울’을 치료하는 책 소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임신한 여성 혹은 육아를 담당하는 엄마에게 1권으로서 감성에 대한 치료와 의학적 치료까지 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의 장르라고 본다면 의아할 수 있으나, 타깃을 입장에서 본다면 지극히 현실적이고, 가치 있는 책이 되는 셈이다.
저자의 엄마로서의 삶, 소설가로서의 삶,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 응원하게 되었다. 언젠가 나도 유사한 상황에 놓인다면 이 책을 통해 사랑하는 이를 더욱더 이해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