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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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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
◆지은이 : 하퍼 리
◆출판사 : 열림원
◆리뷰/서평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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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시간적으로는 1992년 미국 경제 대공황 이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 지역적으로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심했던 주 가운데 하나인 남부 앨라바마 주를 배경으로 실제로 있었던 일을 토대로 젊은 백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쓴 한 흑인 청년을 백인 변호사가 법정에서 변호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속에서 소녀(이름 : 스카웃)를 화자로 삼고, 그녀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부터 2학년까지 총 3년 동안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그리고 과정에서 세상을 배우고 깨달으며 정신적을 성장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나는 오빠와 내가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대수를 빼놓고는 이제 우리가 배워야 할 게 별로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리 커봤자 아직 초등학교 2학년 밖에 안된 소녀가 왜 이러한 노인네 같은 결론을 읊조릴까? 그 앞에 벌어지는 어른들의 세상과 이를 포함하고 있는 사회를 보는 소녀의 씁쓸함이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소녀의 아버지가 재판장에 선 흑인 청년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간다. 소녀와 오빠(이름 : 젬)는 전용석에서 재판을 지켜보고, 그가 무죄라는 정황적 증거가 있음에도 배심원들이 백인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뿌리 깊은 ‘차별’과 ‘배척’은 죄 없는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어른들의 이해할 수 없는 판단에 크게 실망한 젬에게 앞집 모디 아줌마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생각을 했단다. 애티커스 핀치는 이길 수 없어, 그럴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그는 그런 사건에서 배심원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 수 있는 이 지역에서 유일한 변호사야. 그러면서 나는 또 이렇게 혼자서 생각했지. 우리는 지금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거야, 아기 걸음마 같은 것이지만 그래도 진일보임에는 틀림없어.”
이 책의 제목이 '앵무새 죽이기'인 이유는 소녀의 아빠가 아이들에게 공기총을 사주는 일화에서 드러난다. 소녀의 아빠는 맞힐 수만 있다면 어치새를 모두 쏘아도 좋지만, 앵무새를 죽이면 죄가 된다고 주의를 준다. 앵무새는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농작물에 해를 입히지도 않는 무고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설에서 '앵무새'를 상징하는 상대적 약자이자 무고한 인물이 여럿 있다.
첫번째로는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편견 때문에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회적 낙인이 찍힌 부 래들리이다.
두 번째로는 감히 백인여성의 유혹에서 도망친 흑인이자 장애인, 그렇기에 누명을 쓰고 실제로 목숨을 잃은 톰 로빈슨이다.
이렇듯 작품 속 화자인 6살 소녀의 눈으로 작품의 핵심이 되는 사건을 관찰하며 1930년대 대공황의 여파로 피폐해진 미국의 모습과 사회계층 간, 인종 간의 첨예한 대립을 그리고 있다. 그 속에서 소녀는 사회적 약자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애쓰고, 차별을 없애려는 모습이 진정한 진보성향을 갖춘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숙녀’라는 게 단순히 드레스를 차려입고, 바느질을 하거나 요리를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야 말로 참다운 의미의 숙녀라는 것으로 성찰한다.
이는 찰스 디킨스의 작품 <위대한 유산>이 주인공이 ‘신사가 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라면, <앵무새 죽이기>는 주인공이 ‘숙녀가 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공교롭게도 WWE의 위대한 레슬러 ‘헐크 호건’이 인종 차별적 발언으로 명예의 전당에서 영구제명되었으며, 현재 진행하고 있던 레슬러 발굴 프로그램에서도 하차소식이 들려온다. 그렇게 본다면 1960년에 출판된 이 작품의 이전에 해당하는 1930년대부터 오늘날까지도 ‘인종차별’은 계속되고 있으며, 수많은 신사 숙녀들은 미처 미성숙된 단계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