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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행복 레시피 - 프랑스 요리사 로베르가 차려주는 행복한 부엌 이야기
로베르 아르보 지음, 조동섭 옮김 / 나비장책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사람들이 모이면 언제나 음식이 나오기 마련이다. 차 한 잔과 간식, 저녁 한 끼, 자판기 커피 한 잔을 함께 마시면서 우리는 행복을 나눈다. <오늘의 행복 레시피>는 이처럼 음식과 행복을 함께 이야기하는 책이다.
프랑스인이면서 뉴욕으로 건너가 프랑스 요리사가 된 독특한 이력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프랑스의 가정 생활과 음식 문화 속에 담긴 행복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이 책이 읽는 이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굳게 믿는다’고 밝힌다.
음식을 먹으면서 삶의 행복을 같이 언급할 수 있다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프랑스 식의 사고와 음식을 맛보면서 그들의 문화 속에 담긴 긍정적 힘을 발견하는 것은 책을 읽는 이가 얻을 수 있는 기쁨 중 하나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느낌으로 다가오는 프랑스 음식과 문화 이야기이다.
책의 앞 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내용은 프랑스의 아침 식사 이야기다. 언젠가 프랑스에 오랜 기간 거주하고 있던 친구네 집을 놀러 간 적이 있는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것과 똑같은 아침 풍경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아침 식사로 빵을 먹는 문화야 서구에서는 흔한 일이니 이해가 되지만 커피 마시는 스타일이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 때, 모든 프랑스 사람들은 커피잔이나 머그가 아닌 사발에 커피를 마신다. 미국인이 자기만의 컵이나 머그를 갖고 있듯, 프랑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발을 갖고 있다. (중략) 어른들은 큰 사발은, 아이들은 자기 이름이나 만화 캐릭터 혹은 등대나 다른 지역 명소 등이 새겨진 작은 사발을 쓴다. 모든 사람이 각자 매일 사용하는 자신만의 특별한 사발을 갖고 있다. 사발은 금이 가고 이가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완전히 조각나지 않고서는 바꾸는 법이 없다.”
무슨 사약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커다란 사발에 가득 부어진 커피는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이 사발에 커피와 뜨거운 우유를 부어 만드는 프랑스식 커피가 바로 ‘카페 오레’다. 지금은 우리 나라에서도 커피 전문점만 가면 이 즉석 카페 오레를 사서 마실 수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아침 식사에 꼭 이 커피를 마신다. 그것도 꼭 낡고 오래된 자기 사발에 마시는 풍습이 있다.
책을 넘기다 보면 독특한 프랑스의 전통과 풍습을 재미있게 만날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레스토랑 이름으로 잘 알려진 ‘마르셰’는 프랑스의 시골장터를 의미한다. 이곳은 금방 낳은 달걀, 갓 구운 빵, 맛있고 빛깔 좋은 야채와 과일을 판다. 시골 장이 서는 근방에는 푸줏간이나 꽃집도 위치한다.
프랑스의 시골 장은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갓 거둬들인 온갖 풍성한 먹거리로 가득하다. 뉴욕에서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한 요리사인 저자도 프랑스에서는 이 시골 장의 단골 손님이다. 그는 프랑스 시골의 집에 오랜 기간 거주하는데 그 동안 아이들과 아내를 위해 손수 장을 보고 식탁을 준비한다.
프랑스의 식사 준비 풍경은 여자 혼자서 음식을 마련하는 게 아니라 아이와 남편, 아내가 모두 동참하여 만드는 행복한 시간이다. 간단하지만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과 와인 한 병이면 온 가족이 만족하는 식탁을 꾸밀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워낙 빵집이 발달하여 마을 마다 베이커리나 파티세리가 있다. 그래서 집에서 빵을 굽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책 속에는 재미 있는 프랑스 문화에 대한 소개도 담겨 있다. 프랑스에서는 바게트의 양쪽 끝의 뾰족한 부분을 키뇽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매일 바게트를 사러 심부름 가는 사람의 몫이라고 한다. 만약 10대 자녀에게 바게트 심부름을 시킨다면 4분의 1은 이미 없어진 상태로 올 수도 있다. 빵집에서 매일 빵을 사는 사람은 이 키뇽을 염두에 두고 넉넉히 계획해야 한다고 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이야기 중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말은 바로 ‘부엌이 그 집의 심장’이라는 구절이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부엌일을 하찮게 여기고 가장 낮은 공간으로 여기는 잘못된 풍조가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는 음식이야말로 다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아니던가.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도 부엌은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비록 시간에 쫓기어 풍성한 식탁을 준비할 수 없을지 몰라도 온 가족이 두런두런 모여 식사를 준비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순간이 자주 있다면 그 가정은 행복할 것이다.
프랑스의 음식 문화가 지닌 장점은 바로 이런 데에 있는 듯하다. 가족을 중시하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행복을 나누는 것. 비록 그 음식이 그저 바게트 빵 한 조각과 금방 만든 카페 오레일 뿐이더라도 그걸 먹으며 즐거운 아침을 맞이하는 것. 소박하지만 맛있는 음식 그리고 그 음식을 함께 먹는 사람들, 그 속에 진정한 행복은 머무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