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맞춰 전진해 보라 -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의 달콤상콤 성장기
진보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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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열아홉, 모델 겸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 그녀의 특이한 이력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나는 ‘어떤 시건방진 아이 하나가 자기 잘난 척하는 책 하나 썼나 보다.’ 하고 선입견을 가졌다.




그래도 재즈를 위해 고등학교 진학마저 그만 두었다는 얘기에 도대체 피아노에 대한 열정이 어느 정도면 그럴까 하는 궁금증에 책을 펼쳐 들었다. 긴 생머리에 멋스런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겉표지의 사진은 그녀의 화려함을 드러내는 듯하다. 책의 다양한 화보들은 마치 패션 잡지를 보는 것처럼 모델 같은 진보라 양의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겸손하면서도 열정적인 태도로 재즈에 빠져 지내는 한 소박한 소녀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가진 평상시의 사소한 긴장감은 무대에서 실수를 용납하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 일상의 모든 게 내 음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숨 쉬는 지금도 내 몸 안 어딘가로 음악이 흘러간다. 내 안의 모든 기관들에 점차로 붉은 음악이 채워진다. 그것은 컵에 주스를 따르는 일처럼 단순하다.




그래서 나는 어느 것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 내가 이렇게 서 있으면 무조건 이 팔에 흐르는 혈관, 어딘가부터 항상 음악이 흐르고 있어 매 순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눈은 더 크게 뜨고 귀는 더 밝게 쫑긋 세운다. 겨우 열아홉 해 밖에 살아보지 않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건 음악 밖에 없다.”




이렇게 자신이 지닌 음악에 대한 열정을 토해내는 소녀. 그녀는 일상의 다른 것들에 대해서 지극히 무관심하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모두 음으로 형상화하며 놀기를 즐겨했다는 것. 그녀가 듣고 보고 경험하는 모든 세상의 것들은 음악이 되어 그녀의 손가락을 타고 흐른다.




연주회에서 핸드폰을 끄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독특한 음악가. 그것도 이렇게 나이 어린 소녀에게서 폭발적인 정열과 잔잔한 고요, 깊은 슬픔과 환희를 모두 경험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감동적일까? 그녀의 음악을 평가하는 사람들은 나이에 맞지 않은 성숙한 재즈 연주에 극찬을 보낸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갈 길이 멀고 성숙된 음악을 하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길을 위해서 다른 10대들과 차별화된 길을 걷고 있는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 그녀는 음악적 성숙이 이루어질 때까지 미루어 놓은 일들이 많다.




주변의 음반 취입 제의도 대부분 거절하고 연습에 매진한다. 술이나 미팅 같은 유혹에 쉽게 노출될만한 휴학생인데도 그런 유혹에 절대 빠지지 않고 피아노와 함께 먹고 마시며 산다. 이러기도 쉽지 않다. 그녀의 유일한 외도라고 한다면 바로 모델 일을 하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피아노 연주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자신감을 가지고 숨은 자신의 매력과 향기를 발견하여 남들 앞에 보여주는 것이 피아니스트와 모델의 공통점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일은 상충됨이 없이 잘 조화를 이룬다. 책의 화보에서 보이는 진보라 양의 모습은 일반적인 고등학생처럼 매우 어리고 순진해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은 그 나이를 뛰어 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비록 그녀의 연주를 직접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기회가 닿으면 한번 쯤 그녀의 연주를 들으러 가고 싶다. 즉흥 연주라는 재즈는 순간순간 연주의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한다.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그 때의 분위기에 따라 편곡이 달라지기 때문.




그래서 더더욱 재즈에 매료되는가 보다. 연주가는 그 순간을 포착하여 마치 놓치기 쉬운 사진 한 장을 찍듯 음악을 연주하고 감상자들은 매 순간 달라지는 연주자의 감정 변화를 느끼며 감상한다. 그러다 보면 연주가와 감상자들은 하나가 되어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함께 느낀다.




진보라 양이 이렇게 성장하기까지는 부모님의 영향이 참 크다. 엘튼 존이 파산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경제관념을 키워주기도 하고, 다섯 살짜리 방에 장구와 피아노, 바이올린과 같은 악기를 놓아주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도록 한 부모. 그들이 없었다면 아마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도 없을 것이다.




교육가들의 말 중에 “물이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원 모양이 되기도 하고 사각형이 되기도 하듯이, 인간은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에 따라 그 모양이 달라진다.”는 명언이 있다. 부모의 틀에 맞추어 아이를 교육하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만 아이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자라도록 도와주는 것은 바로 부모의 몫이다.




아이에게 맞는 틀이 원 모양인지 사각형인지 찾아 주는 일, 그것이야말로 부모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일 것이다. 진보라 양은 세 네 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음악이 그냥 좋았다고 한다. 길에서 들려오는 잡음들이 음악으로 들릴 정도로 말이다. 그녀의 재능을 일찍 발견하고 키워 준 부모의 기대만큼 그녀가 좋은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길 믿고 또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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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 숨은 재능 찾기 - 타고난 재능이 없는 아이는 없다!
우타 라이만 횐 지음, 안장혁 옮김 / 알마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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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어떤 재능을 갖고 있을까?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보다 말이 빠른 편인 아이, 운동 신경이 좋아 돌 이전에 뛰어다니는 아이, 기억력이 좋아서 한번 갔던 길을 기억하는 아이 등 아이마다 갖고 있는 재능과 특징은 각각 다르다.

이렇게 각기 다른 재능과 특질을 엄마가 쉽게 파악하면 좋으련만 아이에 따라 제대로 발견하기 어려운 점들도 많다. 책 <내 아이 숨은 재능 찾기>는 아이들이 가지는 재능 영역을 크게 일곱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크게 언어, 수학-논리, 공간-시각, 육체-운동감각, 사회-감성, 실기-자연주의, 예술-창조적 영역으로 나뉘는 재능은 아이마다 각각 뛰어난 분야가 다르다.

저자는 서문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주변 인물, 특히 부모의 배려와 애정 어린 보살핌을 통해 많은 것을 체득한다고 말한다. 이때 부모는 자녀의 능력 향상과 적성 파악을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된다. 책은 이렇게 고민하는 부모들을 위해 쓰였다.

책의 앞부분은 취학 전 아이의 재능을 찾는 방법에 대해 나와 있다. 저자는 성장 과정에서 보이는 외적 징후만을 가지고 아이의 재능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지진아’라고 불리던 아이도 특출한 재능을 보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취학 전 연령층에 있는 아이의 특별한 재능이나 자질을 부모가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재능 테스트를 위한 검사표를 책에서 제시한다. 낱말의 뜻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고 언어적 기억력이 탁월한 아이는 언어 재능이 있는 것이다. 수학-논리적 재능이 있는 아이는 일찍부터 다양한 사건들 간의 상관관계나 상하위 개념 파악에 관심이 많다. 상징이나 기호가 갖는 의미도 쉽게 파악하고 응용한다.

다른 아이들보다 유달리 사회성이 좋은 아이도 있다. 돌전부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는 아이는 누구보다 운동 능력이 좋을 것이다. 이렇게 아이마다 가지고 있는 재능이 다르니 부모는 아이를 자세히 관찰해서 뛰어난 재능을 키워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취학 전 아동들의 경우 재능 프로필에 늘 변화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아이의 재능을 길러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무엇보다도 칭찬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추상적이고 너무 흔한 칭찬의 말보다 ‘우리 딸이 동화책을 또박또박 잘 읽는구나. 무슨 내용이었어?’ 라고 말하면서 확인시키는 것도 좋다. 수학-논리적 영역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보드 게임을 통해 흥미를 돋우고 논리적 사고를 키우면 된다.

저자는 아이 개개인의 재능을 발굴, 보완하기 위해서 학교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이는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과 소질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 부모와 선생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아이들 개인의 재능을 살려주기 위한 수업으로는 ‘프로젝트 수업’을 들 수 있다.

“언어적 재능이 있는 아이라면 해당 테마에 대한 발표를 맡으려 할 것이고, 사회-감성적 재능이 있는 아이는 토론과 공동 작업을 통해 성과를 극대화하려 노력할 것이며, 활동적인 성향의 아이는 답사 여행을 기획할 것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여러 아이들이 저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참여 의식과 동기 유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아이의 학습 유형을 판단하기 위한 자료를 제시한다. 시각적 타입의 아이는 동물의 외관이나 나뭇잎, 나무의 색깔을 기억한다. 청각적 타입의 아이는 동물 사육사가 설명하는 내용을 잘 기억한다. 운동 감각 혹은 활동적 학습 타입의 아이는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거나 돌을 던진 일, 뛰어다닌 일 등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아이마다 학습 유형도 각각 다르다. 단어를 외우게 할 때에도 청각적인 아이는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것, 시각적인 아이는 글로 써 가면서 외우는 것, 의사소통적인 아이는 친구와 문제 내기, 행동 중심적 아이는 돌을 하나씩 던지면서 외우기 등을 활용하면 좋다. 아이마다 적적한 학습 방법을 활용하면 그 효과는 극대화될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 아이, 조카들의 행동 특성 하나하나를 살피게 된다. 딸아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말은 빠른 편인데 행동이 느리다. 걸음도 늦게 걸었고 달리기를 해도 재빠르지가 않다. 전에는 그게 걱정이 되었는데 이것도 아이가 타고난 자질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부족한 부분은 보충해 주고 잘하는 부분은 더 키워주면 되지 않을까?

많은 엄마들은 ‘우리 아이는 왜 말이 느리지? 다른 아이들은 시계도 잘 보는데 우리 아이는 시계 볼 줄도 몰라.’ 와 같은 말을 하며 아이의 능력을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마다 타고난 재능이 다르다는 사실만 인정하면 될 것을 엄마 욕심에 그게 쉽지가 않다.

하지만 한 발짝 물러서서 아이의 모습을 잘 관찰해 보자. 그러면 다른 아이보다 뛰어난 우리 아이의 숨은 재능을 발견할 수도 있으며 보석 같은 아이의 숨은 능력을 키워줄 수도 있을 것이다. 육아의 길은 멀고 험하고 정답도 없다. 그저 엄마와 아이의 상호 교류 속에 긍정적이고 행복한 마음과 사회에서 한몫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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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들을 위한 성교육
수잔 메러디스 지음, 박영민 옮김 / 세용출판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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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아직 어리지만 나중에 자라서 어떻게 성교육을 해야할지 막막하다. 이 책은 꼭 소장하면서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책이다.

엄마가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고 학교 교육을 통해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성교육을 아주 적절한 아이들의 용어로 설명하기 때문.

많은 성교육 책들이 '미화된 성'을 이야기해서 사실 교육적으로 과연 가치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미화성과는 거리가 멀다.

청소년이 되면 생겨나는 감정, 육체, 몸의 내부 변화까지 세밀하게 체크하여 이야기해 주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든다.

거기다가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까지 아주 흥미롭고 진지하게 설명을 해서 예비 엄마들도 사서 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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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에 뉴욕을 담다 - 요리사 김은희의 뉴욕레스토랑 여행기
김은희 지음 / 그루비주얼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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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여행을 갔다가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 헤매본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갖고 있을 것이다. 낯선 곳에서 근사한 음식을 대접받고 싶은데 엉망인 레스토랑에서 별로인 것을 비싸게 주고 먹으면 억울하기까지 하다.

책 <접시에 뉴욕을 담다>는 현재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일하고 있는 요리사 김은희가 뉴욕에서 요리 학교를 다니며 여러 레스토랑을 순회한 경험을 기록한 것이다. 남들이 가보지 못한 온갖 고급 레스토랑을 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으니 요리사나 푸드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은 참 부럽다.

책의 첫 장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고급 레스토랑을 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많은 사람들이 낯선 곳에 가면 주눅이 들어 주문하는 것도 어색하고 그렇다. 영어로 말하는 게 어색한 사람은 ‘오픈 테이블’이라는 예약 전용 사이트를 이용하면 좋다. 회원 가입도 무료고 웬만한 레스토랑은 다 뜨니 가고 싶은 곳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책에서 소개하는 레스토랑들은 특이한 곳이 많다. 스페인 요리, 퓨전 요리, 일식집을 비롯하여 정통 아메리칸 스타일의 음식점까지 뉴욕의 온갖 좋은 음식점을 총망라한 느낌이다. 뉴욕에서는 좋다고 소문이 나면 찻집도 예약을 해야 할 정도다. 1, 2층으로 되어 있는 뉴요커들이 사랑하는 찻집 ‘티 살롱 앤 티 엠포리엄’은 4백여 종의 차를 구비해 놓고 있다.

훌륭하다고 소문난 음식점이더라도 저자의 눈에 실망으로 비쳐진 곳도 있다. 어퍼 이스트에 위치하여 현대적인 미국 음식을 선보이면서 미국 음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데이비드 버크 앤 도나텔라’ 음식점은 미국 음식답게 양도 푸짐하고 신선한 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한다. 셰프 버크가 프랑스에서 배워 온 테크닉을 가미해 고급스러운 미국 요리를 만들어 내는 곳이다.

이렇게 소문이 났건만 저자가 방문했을 때는 수프에 생크림이 너무 많이 들어가 느끼하고 대충 썬 닭고기에 소금 간이 전혀 안되어 있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식사를 하다 보니 작업복을 입은 기술자가 왔다 갔다 하고 실내가 떠들썩하다. 키친 안의 에어컨이 고장 났는지 주방문을 모두 열어놓을 정도다. 결국 요리사들이 음식 만드는 일에 집중을 못하니 서비스의 질도 현저히 떨어지게 된 것이다.

꼼꼼하게 레스토랑 기행을 하다 보니 각 레스토랑의 인테리어, 음식의 특징, 맛있는 메뉴, 서비스의 질 등을 세밀하게 체크한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읽다보면 맛있게 접시에 담긴 음식들의 모습에 저절로 반해 침을 꿀꺽 삼키게 된다. 우리네의 먹을거리와는 또 다른 이국적 음식들은 그 명칭도 복잡하지만 같은 재료로 어쩜 이렇게 다르게 요리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원과 같은 길거리에서 파는 햄버거 하나도 정성껏 만들면 맛이 있다. 매디슨 스퀘어 공원에 항상 긴 줄이 늘어진 스낵 코너 ‘셰이크, 셰이크’는 야외에서 질 좋은 패스트푸드를 판다. 직업이 요리사인지라 패스트푸드를 멀리하는 저자도 이곳만큼은 칭찬할 정도로 훌륭한 햄버거가 나온다. 공원에 앉아 두툼한 고기와 야채가 잔뜩 들어 있는 햄버거를 맛보는 일도 행복할 것이다.

“뉴욕은 수년 전부터 일본 열풍이 한창이다. 가전제품도 ‘메이드 인 재팬’은 질이 좋음을 알리는 표상인데, 음식 쪽은 더 심한 것 같다. 배부를 때까지 스시를 먹는 게 소원이라는 뉴요커들을 많이 봤다. 확실히 다른 아시안 요리들과는 대우가 하늘과 땅 차이다. 프랑스 요리를 하는 키친에서 일하는 셰프들도 일본식자재를 즐겨 사용하고 ‘일본식’이라는 자체를 사랑하는 경향이 짙다.

한국인인 나로서는 좀 많이 부러웠다. 그들이 배우고 싶은 점, 묻고 싶은 점이 많아서 잘해주는 것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자기 나라 문화를 열광적으로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을 많이 만난다는 것만큼 신나는 일이 있을까 싶다. 그것도 자기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이니 말이다.”

뉴욕에서까지도 대우를 받는 일본 문화에 비해 우리 음식은 ‘맵고 특이하고 싼 아시아 음식’ 정도로 인식된다. 불고기나 비빔밥이 인기라지만 일본처럼 고급화된 것이 아니라 싸면서 특이한 것으로 알려진 게 아쉽다. 우리 음식 문화도 외국에서 보다 질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인기를 끌면 얼마나 좋을까?

시대가 변하면서 각 나라 음식들이 서로 만나 ‘퓨전’이 생기고 최근 음식의 대세가 퓨전이지만, 그래도 오래된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 프랑스 음식이든 아메리칸 음식이든 우리 음식이든 시골스러운 편안한 맛은 마음도 편하게 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뉴욕의 레스토랑 중에는 최신식 음식 문화를 선도하는 고급 음식점도 있지만 지극히 시골스러운 음식을 파는 소박한 곳도 있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뉴욕에 오면 이런 일들을 해보라고 권한다. 미술관에서 시간 보내기, 공원에서 한가롭게 시간 보내기, 맛있는 음식 먹기, 근사한 찻집에 앉아 차 마시기, 뮤지컬이나 오페라, 콘서트 관람하기 등등. 이 외에 식품 매장 같은 곳에 가서 뉴요커들의 먹을거리를 흥미롭게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무궁무진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도시, 뉴욕. 이곳에서 순전히 먹을거리만 찾아다닐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두 번 정도는 근사한 식당에서 뉴요커처럼 식사해 보는 건 어떨까? 뉴욕에 간다면 한번쯤은 해보고 싶은 경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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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길, 가슴을 흔들다 대한민국 보고보고 시리즈 2
임동헌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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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을 읽다 보면 왠지 그 배경이 되는 곳을 한 번쯤 방문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대학 시절 신경숙의 단편 소설 <깊은 숨을 쉴 때마다>의 배경지인 제주도 성산일출봉 근처를 방문해 보고는 그 낭만적인 풍경에 감동했던 적이 있다. 이외에도 시의 배경이 된 서정적인 공간, 현대 소설들에 등장하는 여러 도시들을 쉽게 가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의 길, 가슴을 흔들다>는 이처럼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장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의 첫 장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나희덕 시인의 <방을 얻다>라는 시다.

 

“-저어, 방을 한 칸 얻었으면 하는데요.
일주일에 두어 번 와 있을 곳이 필요해서요.
내가 조심스럽게 한옥 쪽을 가리키자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글씨, 아그들도 다 서울로 나가불고
우리는 별채서 지낸께로 안채가 비기는 해라우.
그라제마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 짓든 데라서
맴으로는 지금도 쓰고 있단 말이요.” - <방을 얻다> 중에서

 

이런 말에 세놓으라는 말도 못하고 돌아서는 시인. 이 시의 배경이 되는 곳은 이름부터가 곱고 운치 있는 지실마을이다. 담 대신 꽃밭이 펼쳐지고 명옥헌 정자 앞 동백이 붉은 마을. 이 마을에서 조선 중기의 인물 오희도는 사각형 모양의 연못과 정자를 만들고 벼슬에 나가지 않은 채 안빈낙도 했다고 한다.

 

글과 함께 담긴 풍경들은 책을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만큼 고즈넉하다. 나희덕 시인의 마음을 애타게 했던 사람은 감 농사를 짓는 정선임씨인데 이 시 얘기를 들려주니 “시인에게 책도 빌려 보고 괜찮을 뻔했다”, “집의 정기를 지키기 위해 요즘엔 내가 안채에서 잔다”는 말을 던졌다고 한다. 마을만큼이나 사람들의 마음도 평화롭다.

 

아내를 잃은 슬픔의 시집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시인 도종환은 최근 들어 불교적 세계에 심취한 분위기의 시를 많이 짓는다. 그 이유는 법주리 깊은 산 속에서 명상과 철학적 정신 수양에 집중하며 지내고 있는 시인의 삶에서 근거한다. 구구산방이라는 작은 집을 짓고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사는 도종환은 시 속에 자연과 정신, 우주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의 저자가 소개하는 곳 중에 가장 가보고 싶은 장소는 바로 말무리 반도다. 말이 무리지어 달리는 것 같은 모습으로 파도가 치는 백사장, 남과 북의 경계, 통일 전망대와 이승만, 김일성의 옛 별장을 함께 둘러 볼 수 있다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싶다.

 

건봉사라는 절 아래에 위치한 마을의 이름은 바다에서 가깝다는 뜻에서 해상리로 불린다. 박상우의 소설 <말무리 반도>는 화가인 ‘나’가 해상리 처녀 ‘선애’를 만나 말무리 반도를 소개받는 내용이다. 이 마을은 민통선 출입 통제소 곁에 있어서 해가 뜨면 논밭에 들어갔다가 해가 지기 전에 검문소 밖으로 나와야 하는 비애를 갖고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말무리 반도는 휘황하다. 말무리를 곁에 두고 파도가 철썩인다. 소설 속에서 ‘선애’가 ‘나’에게 ‘이곳을 떠날 때 나를 데려가 달라’고 말한 대목이 떠오른다. 갇혀 있는 듯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그대로 말무리 반도 역시 이녘의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듯이 땅을 박차고 달릴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소설가 박상우는 실제로 이 작은 마을 해상리에서 몇 달을 보낸 적이 있다고 한다. 소설의 작가가 실제 체험한 일들, 실제 머무르던 곳을 토대로 하여 창작하는 일은 흔하다. 대학수학능력 시험에까지 출제되고 이청준이라는 작가를 더 유명하게 한 소설 <눈길>, 시골의 향토적 서정을 그대로 느끼게 하는 신경림의 시들 역시 그들의 고향 풍경을 배경으로 한다.

 

소설가에게 사색의 기회를 제공해 준 공간이 곧 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북한강 줄기를 따라 가는 길섶에 나타나는 모란 미술관. 그리고 미술관을 지나 숲 속의 길에 들어서면 그림처럼 아름다운 모란 공원이 나타난다. 모란 공원은 삶을 마감한 사람들의 묘지이고 미술관은 삶을 윤택하게 누리려는 사람들을 위한 지적 전시의 공간이다.

 

이 두 요소의 경계, 삶과 죽음, 이 둘을 모두 아우르며 인생의 허무함과 삶의 질곡을 드러내는 소설은 바로 이승우의 <목련공원>이다. 모란 미술관 위쪽의 산자락 전체가 공원묘지인데 작가는 미술관에서 가끔 야외 결혼식이 열리는 걸 목격하고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참 한국적이고, 참 소설적인 장소, 너무도 아름다워서 공간 하나가 바로 시 하나를 탄생시키는 곳이 꽤 많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 장소들은 모두 숨어 있어서 나처럼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작품을 읽고서야 비로소 우리나라 곳곳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

 

시인과 소설가는 이런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미학적 눈을 지닌 이들이다. 그들이 소설과 시를 통해 그려낸 세계는 평범한 시골 마을을 서정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거친 땅을 역사적 질곡의 공간으로 만든다. 그래서 문학은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책의 저자처럼 나도 길 위에 서서 소설과 시의 내용을 음미하며 우리 국토의 흙내를 맡고 싶다. 작품의 이미지들이 툭 튀어나와 손에 잡힐 것만 같은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 사계절 내내 땅과 산, 물과 하늘은 그 매력을 풍기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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