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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에 뉴욕을 담다 - 요리사 김은희의 뉴욕레스토랑 여행기
김은희 지음 / 그루비주얼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외국 여행을 갔다가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 헤매본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갖고 있을 것이다. 낯선 곳에서 근사한 음식을 대접받고 싶은데 엉망인 레스토랑에서 별로인 것을 비싸게 주고 먹으면 억울하기까지 하다.
책 <접시에 뉴욕을 담다>는 현재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일하고 있는 요리사 김은희가 뉴욕에서 요리 학교를 다니며 여러 레스토랑을 순회한 경험을 기록한 것이다. 남들이 가보지 못한 온갖 고급 레스토랑을 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으니 요리사나 푸드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은 참 부럽다.
책의 첫 장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고급 레스토랑을 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많은 사람들이 낯선 곳에 가면 주눅이 들어 주문하는 것도 어색하고 그렇다. 영어로 말하는 게 어색한 사람은 ‘오픈 테이블’이라는 예약 전용 사이트를 이용하면 좋다. 회원 가입도 무료고 웬만한 레스토랑은 다 뜨니 가고 싶은 곳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책에서 소개하는 레스토랑들은 특이한 곳이 많다. 스페인 요리, 퓨전 요리, 일식집을 비롯하여 정통 아메리칸 스타일의 음식점까지 뉴욕의 온갖 좋은 음식점을 총망라한 느낌이다. 뉴욕에서는 좋다고 소문이 나면 찻집도 예약을 해야 할 정도다. 1, 2층으로 되어 있는 뉴요커들이 사랑하는 찻집 ‘티 살롱 앤 티 엠포리엄’은 4백여 종의 차를 구비해 놓고 있다.
훌륭하다고 소문난 음식점이더라도 저자의 눈에 실망으로 비쳐진 곳도 있다. 어퍼 이스트에 위치하여 현대적인 미국 음식을 선보이면서 미국 음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데이비드 버크 앤 도나텔라’ 음식점은 미국 음식답게 양도 푸짐하고 신선한 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한다. 셰프 버크가 프랑스에서 배워 온 테크닉을 가미해 고급스러운 미국 요리를 만들어 내는 곳이다.
이렇게 소문이 났건만 저자가 방문했을 때는 수프에 생크림이 너무 많이 들어가 느끼하고 대충 썬 닭고기에 소금 간이 전혀 안되어 있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식사를 하다 보니 작업복을 입은 기술자가 왔다 갔다 하고 실내가 떠들썩하다. 키친 안의 에어컨이 고장 났는지 주방문을 모두 열어놓을 정도다. 결국 요리사들이 음식 만드는 일에 집중을 못하니 서비스의 질도 현저히 떨어지게 된 것이다.
꼼꼼하게 레스토랑 기행을 하다 보니 각 레스토랑의 인테리어, 음식의 특징, 맛있는 메뉴, 서비스의 질 등을 세밀하게 체크한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읽다보면 맛있게 접시에 담긴 음식들의 모습에 저절로 반해 침을 꿀꺽 삼키게 된다. 우리네의 먹을거리와는 또 다른 이국적 음식들은 그 명칭도 복잡하지만 같은 재료로 어쩜 이렇게 다르게 요리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원과 같은 길거리에서 파는 햄버거 하나도 정성껏 만들면 맛이 있다. 매디슨 스퀘어 공원에 항상 긴 줄이 늘어진 스낵 코너 ‘셰이크, 셰이크’는 야외에서 질 좋은 패스트푸드를 판다. 직업이 요리사인지라 패스트푸드를 멀리하는 저자도 이곳만큼은 칭찬할 정도로 훌륭한 햄버거가 나온다. 공원에 앉아 두툼한 고기와 야채가 잔뜩 들어 있는 햄버거를 맛보는 일도 행복할 것이다.
“뉴욕은 수년 전부터 일본 열풍이 한창이다. 가전제품도 ‘메이드 인 재팬’은 질이 좋음을 알리는 표상인데, 음식 쪽은 더 심한 것 같다. 배부를 때까지 스시를 먹는 게 소원이라는 뉴요커들을 많이 봤다. 확실히 다른 아시안 요리들과는 대우가 하늘과 땅 차이다. 프랑스 요리를 하는 키친에서 일하는 셰프들도 일본식자재를 즐겨 사용하고 ‘일본식’이라는 자체를 사랑하는 경향이 짙다.
한국인인 나로서는 좀 많이 부러웠다. 그들이 배우고 싶은 점, 묻고 싶은 점이 많아서 잘해주는 것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자기 나라 문화를 열광적으로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을 많이 만난다는 것만큼 신나는 일이 있을까 싶다. 그것도 자기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이니 말이다.”
뉴욕에서까지도 대우를 받는 일본 문화에 비해 우리 음식은 ‘맵고 특이하고 싼 아시아 음식’ 정도로 인식된다. 불고기나 비빔밥이 인기라지만 일본처럼 고급화된 것이 아니라 싸면서 특이한 것으로 알려진 게 아쉽다. 우리 음식 문화도 외국에서 보다 질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인기를 끌면 얼마나 좋을까?
시대가 변하면서 각 나라 음식들이 서로 만나 ‘퓨전’이 생기고 최근 음식의 대세가 퓨전이지만, 그래도 오래된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 프랑스 음식이든 아메리칸 음식이든 우리 음식이든 시골스러운 편안한 맛은 마음도 편하게 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뉴욕의 레스토랑 중에는 최신식 음식 문화를 선도하는 고급 음식점도 있지만 지극히 시골스러운 음식을 파는 소박한 곳도 있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뉴욕에 오면 이런 일들을 해보라고 권한다. 미술관에서 시간 보내기, 공원에서 한가롭게 시간 보내기, 맛있는 음식 먹기, 근사한 찻집에 앉아 차 마시기, 뮤지컬이나 오페라, 콘서트 관람하기 등등. 이 외에 식품 매장 같은 곳에 가서 뉴요커들의 먹을거리를 흥미롭게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무궁무진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도시, 뉴욕. 이곳에서 순전히 먹을거리만 찾아다닐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두 번 정도는 근사한 식당에서 뉴요커처럼 식사해 보는 건 어떨까? 뉴욕에 간다면 한번쯤은 해보고 싶은 경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