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쭉빼쭉 - 싫어 싫어 2 싫어 싫어 시리즈
세나 게이코 / 비룡소 / 2000년 3월
평점 :
절판


<삐쭉 빼쭉>은 워낙 출판된 지 오래되어 시리즈의 일부가 절판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이다. 내가 이 책을 구입하게 된 계기는 비싼 아이들 책 중 가격이 하도 저렴하길래 밑져야 본전이란 마음에서였다. 엄마가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책도 아이가 보지 않으면 허탕인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싼 맛에 산다는 생각으로 구입한 이 책은 우리 아이가 그 내용을 다 외울 정도이다. 오죽하면 이제 돌이 갓 지난 아이에게 책의 한 구절을 얘기하면 많은 책들 속에서 이 책을 찾아 올 정도가 되었겠는가.

 

이렇게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지만 엄마가 보기엔 이상하게 어설픈 느낌이 든다. 종이를 찢어 붙인 꼴라주 기법으로 아주 단순한 화보인데다가 내용 또한 강아지, 나무, 루루라는 한 아이가 삐쭉빼쭉한 털, 나뭇가지, 머리를 싹둑싹둑 잘랐다는 매우 짧은 이야기다. 출판된 지 오래되어서인지 종이 질도 좋지 못하고 인쇄 상태도 촌스럽기 그지 없다. 책의 내용 전체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삐쭉빼쭉 이게 뭐게?/ 우리집 정원 나무/ 우리집 누렁이/ 뒤엉킨 털실

우와 루루의 머리칼은 더 굉장하네 (뒤엉킨 머리를 가진 루루의 찡그린 얼굴이 표현되어 있다)

정원사 아저씨가 싹둑싹둑/ 누렁이도 싹둑싹둑/ 털실은 동글동글 말아요

그럼, 루루는? (삐쭉빼쭉한 머리의 루루 뒷모습이 나온다)

루루도 싹둑싹둑/ 거울에 비친 저 예쁜 아이 누구게? (예쁘게 머리를 자르고 리본을 한 채 루루가 웃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세나 게이코는 육아 체험을 토대로 하여 엄마가 직접 쓰고 그린 유아용 생활 그림책 싫어 싫어 시리즈로 산케이 아동 출판 문화상을 수상하였다고 한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머리 깎기, 당근, 잠자기 등을 소재로 하여 비록 싫어하는 일이지만 막상 하고 나면 멋지고 재미있는 것이라는 내용의 책을 만들었다.

 

아직 우리 아이는 어려서 한 번도 머리를 깎아준 적이 없지만 아이들은 대체로 머리 자르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 일이 닥치기 전에 미리 이런 책을 읽혀 두면 좋겠다 싶어서 구입한 것인데 의외로 잘 본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책의 단순함에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펼치면 왼쪽에는 글씨 오른쪽에는 찢어 붙인 그림이 있다. 그림은 너무도 단순하여 나무가 나오는 장면에는 연두색과 초록색 종이를 네모지게 잘라 붙인 나뭇잎 형상과 갈색 나무둥치가 전부다. 루루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만든 것처럼 검은 색종이를 동그랗게 오려 눈을 만들고 빨간 색종이로 입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이렇게 단순한 모양을 좋아한다. 단순한 것은 복잡하고 다채로운 것보다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아이는 만 10개월 정도부터 이 책을 보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책이 참 많지만 아이의 다양한 감각을 길러주기 위해 이렇게 꼴라주 기법으로 표현한 책 한 권을 보여주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그림뿐만 아니라 내용 또한 반복적인 리듬감을 주면서 몇 안 되는 어휘로 구성되어 막 말을 익히기 시작하는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 평소 나무, 가위, 멍멍이(책에는 누렁이로 표현되어 있으나 아이에게 친밀한 느낌을 주기 위해 멍멍이로 바꾸어 읽어준다), 이게 뭐게? 등의 단어에 익숙한 우리 아이에게는 책의 내용 귀에 쏙쏙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좋아하게 되었나 보다.

 

엄마 기준으로 보면 참 어설프기 짝이 없는 책들이 아이 눈에는 훌륭한 놀이감이 될 수도 있다. 가끔 대형 마트에서 보낸 전단지를 들여다 보며 바나나와 사과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과일을 손으로 짚으며 뭐라고 중얼거리는 아이. 이런 아이들에게 꼭 비싸고 질 좋은 책이 아니라 다양한 소재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엄마의 몫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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