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꽃의 상처 시에 詩
유진택 지음 / 시와에세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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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이 소재로 선택하는 것들을 보면 대부분 그가 처한 상황과 환경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신세대 작가라고 하는 젊은 시인들은 도회적인 삶과 인스턴트 문화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나이가 지긋한 시인들은 힘들었던 청년기의 삶을 회상한다. 시 속에는 그들이 처한 삶에서의 고뇌와 번민, 슬픔과 행복감이 그대로 녹아 있다.

 

시인 유진택의 시를 읽다 보면 그가 처한 환경이 농촌임을 극명히 느낄 수 있다. 시골의 풍경을 소재로 하여 그 안에서 느껴지는 삶의 노고를 그대로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화자 자신의 삶보다 농촌에 묻힌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우리 농촌의 서글픈 현실을 표현한다.

 

오리나무로 깎아 만든

지겟작대기 힘이 있었다

양무릎으로 구부리면 뚝 하고 부러질 것 같은 나무

아버지를 일으켜 세웠다

지게 위에 집채만한 꼴을 얹어 불끈 일어서는 아버지,

칠순 나이에도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힘이 아니었다

약골인 아버지를 대신해

한쪽 무릎을 대신한 지겟작대기였다.

(후략)

 

-         <오리나무 지겟작대기> 중에서

 

시인이 그리는 세계는 농촌의 위태로운 일상이다. 젊은 이들은 모두 떠나고 칠순의 아버지와 어머니만이 남아 쓸쓸히 지키고 있는 우리의 농촌. 그 처량한 풍경 속에는 지게 작대기에 몸을 의지하고 한평생 살아 온 나이 든 이의 힘든 삶이 담겨 있다.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어머니의 몸은 굴곡 많은 삶이다로 시작하는 시 <어머니의 몸>은 울퉁불퉁한 어깨, 돌부리처럼 굳어버린 몸, 숭숭 구멍이 뚫린 뼈를 가진 여든 일곱의 어머니에 대해 말한다.

 

천천히 일어서면 허리 굽어지고 앉으면 공처럼 말리는 어머니의 몸을 보는 자식의 마음은 죄송함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시의 마지막에 단물을 모두 자식에게 빼앗기고/ 마당 가 한 귀퉁이를 돌 지난 아기처럼 조심스레 걷는다/ 간신히 피어난 삐삐꽃 한 송이/ 눈곱 같은 꽃망울을 매달고 조심스레 하늘거린다는 말로 어머니를 보는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

 

농촌의 삶이 힘들고 고되다고 하여 늘 걱정스럽고 서글픈 것만은 아니다. 농촌에는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것들이 보여주는 낭만이 있다. 시의 화자들은 연못, 나무, 바람, 하늘, 풀섶 등 자연 속을 거닐며 자유롭게 시상을 펼쳐 보인다. <달빛에 젖은 개구리 알 I>은 도시에선 볼 수 없는 개구리 알을 소재로 하여 시골의 낭만적 정취를 마음껏 뿜어내는 시이다.

 

개구리 알 축축하게 벼 포기 사이 머물러 있을 때 봄 향기 섞인 엷은 바람 논두렁을 타고 온다. 그때마다 논두렁 풀들이 신나게 춤을 춘다. (중략) 이제 저 개구리 알들도 곧 깨어날 것이다. 봄바람이 던져주는 사랑의 설레임과 개구리들이 토해내는 사랑의 밀어를 타고 알들은 점점 더 부풀어 오를 것이다. 부풀어 오를수록 안개 더 두터워지고 논두렁에 핀 들꽃 몇 송이도 안개를 따라 사랑의 노래를 아득하게 부를 것이다.

 

-         <달빛에 젖은 개구리 알 I> 중에서

 

벼 포기 사이에 있는 개구리 알을 보고 봄 바람사랑의 설렘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인의 낭만성은 충분히 입증된다. 이렇게 시골의 아름다운 서정을 노래하는 시를 읽다 보면 마치 독자인 내가 달빛에 젖은 개구리 알을 보고 있는 마냥 마음이 들뜨고 기분이 좋아진다. 저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고 하여 지나친 낭만성은 경계해야 한다. 시인은 시를 통해 인생을 노래하고 세상의 부정적 측면을 엄중히 꾸짖는 막중한 임무를 지닌 이들이 아니던가. 유진택 시인의 시들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낭만성과 삶에 대한 자기 철학 못지 않게 현실에 대한 비판을 담은 시도 이 시집에는 존재한다.

 

재벌들이 사놓은 땅, 참 넓기도 하다

자벌레 한 놈이 꾸역꾸역 넓이를 잰다

(중략)

언젠가는 쌓아 올릴 러브 호텔

벌거벗은 가슴들이 붉은 등불 아래 신음할 때

가난한 사람들 마음이야 오죽하겠나

차라리 못쓰는 땅으로 묵혀두게나

하늘보고 치솟은 풀들 분한 마음 달랠 때

둥지 없는 산새들 날아와 노래 부르면

답답해진 가슴 속 확 뚫리지나 않겠나

 

-         <자벌레 한 놈> 중에서

 

점점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하는 젊은이들이 늘면서 문학 세계 또한 도시적이고 문명적인 것만 이야기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의 삶, 시골의 풍경을 노래한 시들을 만나면 반갑기 그지 없다. 우리의 삶은 이처럼 땅과 흙, 바다와 하늘을 토대로 하고 있지 않던가.

 

문학마저 시골을 등진다면 세상은 정말 각박한 철골 구조물과 같을 것이다. 답답한 콘트리트 건물과 아스팔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에게 한 송이 민들레 꽃 같은 휴식을 주어 보자. 잠시 쉬는 동안 농촌의 일상을 담은 시 한 편을 읽으며 한줄기 바람 같은 손길을 느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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