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에서 길을 묻다 - 혼자 떠나는 세계도시여행
이나미 지음 / 안그라픽스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과거 공산권 국가라 여행이 쉽지 않았던 프라하는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독립하고 체코 공화국이 성립되면서 많은 나라에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소설 <변신> <성> 등의 작가로 잘 알려진 카프카가 이곳에서 생활하며 글을 썼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작년에 전도연과 김주혁이 주연한 <프라하의 연인>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프라하의 낭만적이고 고풍스런 분위기가 많이 소개되었다. 오래된 유럽의 도시, 개발되지 않은 아름다움, 미술과 건축, 음악과 연극이 넘치는 곳, 프라하. 잘 보존된 옛 성들과 다리를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여성 월간지의 편집장 겸 아트디렉터를 맡아 정신없는 삶을 보내 온 저자 이나미는 책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글 쓰는 일에 관여하게 되고 잡지 일을 하면서 여행을 즐기게 되었다. 남편과 아이를 한국에 남겨두고 혼자서 프라하 여행을 감행한 그녀는 철저히 이방인이 되어 이곳의 모든 것을 경험하고 느낀다.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여행이 끔찍하게 여겨져서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곳을 자유롭게 다니기로 결정한 저자는 발길 닿는 대로 골목골목으로의 방황을 시작한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음악회를 가기도 하고 재즈 클럽에 들러 느긋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거리를 혼자 걷는 것도 운치가 있다.

 

세련된 모습으로 관광객 맞는 현대의 '카프카'

 

가이드를 동반한 여행이 다양한 지식을 한꺼번에 전달해주는 장점이 있다면 혼자의 여행은 깊은 사색을 가져다준다. 저자는 핀카소바 시나고가의 뒷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는 유태인 공동묘지를 보며 인간의 극악함에 대해 생각한다.

 

300년 동안 체코의 유태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묘지였던 이 공동묘지는 다른 땅이 허락되지 않은 관계로 무덤 위에 무덤을 겹겹이 쌓다 보니 높이가 무려 12겹이나 된다. 2차 대전이 종식될 때까지 약 12만 명에 이르던 프라하의 유태인들이 나치에 의해 완전히 몰살되었다고 하니 그 역사의 슬픔에 마음이 아프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남녀노소의 유태인들을 무차별하게 발가벗겨 원을 지어 돌게 하던 장면이 불현듯 떠오른다. 보아라. 너희 유태인들은 한낱 짐승에 불과하다. 수치심이나 모욕감 따위는 일찌감치 벗어 던져라. 어린아이와 여자를 보호하려는 의지가 남아 있다면 너 자신을 동정하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운운하려는 거냐? 어디 한 번 저항해 보아라…."

 

유태인의 피를 이어받고 태어난 작가 카프카가 정신적 혼돈과 정체성의 복잡함을 그려내는 소설을 쓴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프라하의 어두운 과거를 아는 사람은 카프카의 작품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의 프라하는 조금은 세련된 모습으로 관광객을 맞이한다.

 

거리를 가득 메운 콘서트 홍보들, 인형극으로 유명한 극장들, 유리 공예와 오래된 다리. 프라하를 대표하는 이런 것들은 혼자임을 선택한 여행객에게 따뜻한 느낌을 제공한다. 미로처럼 얽혀 있는 구시가의 좁은 골목길은 쉽게 길을 잃게 하지만 재미있는 환상도 제공한다.

 

프라하 밤거릴 걸으며 하는 흥미로운 체험

 

유럽에서 가장 많은 유령이야기가 있는 곳이 바로  프라하라고 하는데, 'The Ghost Trail'이라는 여행 가이드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다. 이 프로그램은 으스스한 프라하의 밤거리를 걸어 보면서 흥미로운 체험을 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컴컴한 밤거리를 거닐며 저자는 분열된 자아를 만나기도 한다.

 

혼자만의 여행은 두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한국의 지긋지긋한 휴대전화와 스케줄, 일로 인한 압박에서 철저히 자유로울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떠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이 들뜨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이 주는 묘미가 아닐까. 우유부단한 마음이었던 저자도 막상 떠나는 비행기에 오르자 그간의 스트레스를 과감히 털어버리고 마음을 가볍게 갖는다.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선사했던 까를루프 다리는 1357년 카를 4세의 명으로 건축되었다. 이 다리는 엄청난 대홍수에도 건재하여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었는데 이렇게 다리가 오랜 동안 무너지지 않고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건 바로 다리의 축조 당시 다리 강도를 높이기 위해 흙에 달걀 노른자를 섞었기 때문.

 

일상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보자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달걀 덕분에 후대 사람들이 오래된 다리를 건너고 그 위에서 낭만을 노래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으니 참 역사란 아이러니한 것이다. 프라하 성도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의 성으로 올라가 있으며 9세기 경 처음 설립되어 계속적인 재건축으로 역사 속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까지도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된다니 우리처럼 늘 새로운 것만 찾는 문화에서 모범이 될 만하다.

 

"살다 보면 누구나 삶의 막다른 골목에 지치고 망가진 채 방치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러다 문득 더 이상은 견디기 어려워지는 순간, 우리는 떠날 것을 결심한다. 일상을 벗어나 어딘가 먼 곳으로 나를 데려간 나는 그제야 정면으로 나를 마주할 기회를 얻게 되고, 나와 더불어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가정과 일, 복잡한 문제들,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면 얼마나 좋을까? 게다가 그 장소가 프라하라면 더더욱 영혼의 치유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는 날이 가끔은 필요하다. 혼자만의 여행은 살면서 '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나로부터의 선물'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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