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 - 나의 야고보 길 여행
하페 케르켈링 지음, 박민숙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에게는 산티아고 순례 길로 알려진 야고보 길. 이 길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담고 있기에 많은 이들이 오르는 걸까? 이 길은 스페인 북부 지방에 동과 서로 길게 뻗어 있는 아주 긴 여정이다. 험난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배낭 하나 둘러메고 산을 오른다.




힘들게 이 길을 걷는 이유는 제각각 다르다. 종교적인 믿음을 위하여, 자신과의 싸움을 위하여, 깊은 사색에 잠기고 자기를 반성하기 위하여 등 사람들은 저마다의 고민을 지고서 산길을 걷기 시작한다. 평상시에는 한층 계단조차 오르기 힘들어 하는 독일의 유명 코미디언 하페 케르켈링. 그는 갑작스러운 충동으로 이 길을 오른다.




“누구든 산티아고까지 순례를 하게 되면 가톨릭교회는 친절하게도 그가 저지른 모든 죄를 사하여 준다고 한다. 내게 있어 이 사실은 여행을 통해 신을, 그리고 나를 발견하리라는 언약에 비하면 그리 큰 동기가 되지는 않지만, 한번쯤 시도해볼 가치가 있지 않은가!




나는 최면에 걸린 듯 여행 경로의 결정이라든지, 배낭이며, 침낭, 캠핑용 매트와 순례자용 패스를 마련하는 방법들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보르도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정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는 거야?”라는 내 안의 큰 소리를 듣고자 했다.”




이렇게 시작한 야고보 길 순례는 그가 짐작했던 것처럼 만만치 않다. 평소에는 거의 걸어 다니지 않는 뚱뚱한 독일 남자가, 그것도 담낭을 떼어내는 큰 수술까지 겪은 사람이 산행을 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겨우 세 시간을 걷고 나자 왼쪽 무릎이 쑤실 정도로 끔찍하게 아프기 시작한다. 그는 스스로를 ‘그래, 난 엄살쟁이다!’ 라고 말하는 유머를 잃지 않는다.




순례 길에서 머물게 되는 숙소나 음식은 형편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혼자서 투덜거리면서 이 괴상한 음식과 숙소 묘사에 치중한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도 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 남자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여자들 등 다양하기 짝이 없다. 직업이 코미디언인 만큼 그가 묘사하는 순례 길의 모습도 아주 유쾌하며 재미가 있다.




수도원에서 잠을 청하면서 뭔가가 자기를 물어서 근지럽다고 투덜거리는 남자. 그는 수용소와 같은 이곳에서 다른 50명의 순례자들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는 일에 부담을 느낀다. 여행 책자에서는 분명히 ‘순례자 숙박소에서의 끈끈한 인간적인 만남’이라고 했건만, 직접 부딪혀 보니 끈끈함은 불쾌감이 되어 찾아온다.




이렇게 온갖 투덜거림을 던지지만 저자는 특유의 유머와 따뜻한 인간애를 잃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투정이 귀엽고 재미있기만 하다. 이 남자에게 언제나 불쾌한 일만 생기란 법은 없다. 그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좋은 동지를 만나고 그들과 함께 걷기와 헤어져 생각하기를 반복하며 좋은 교훈들을 얻는다.




앤과 사라라는 두 명의 여인은 미모를 갖춘 사람도 아니고 이성적인 매력으로 저자를 유혹하는 이도 아니다. 게다가 저자는 동성연애자라 여자에게 그다지 큰 관심이 있지도 않다. 이 두 명의 여인과 함께 하는 길은 즐거움과 투덜거림, 사색과 배려가 공존한다. 여행의 동반자들은 길에서 느끼는 생각과 감상을 공유하며 성숙해간다.




“계속 걷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통찰은 바로 이것이다. 그 밖에도 내 자신의 판단을 최대한 불신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판단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신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불신과 신뢰 사이의 균형이 내가 배운 중요한 교훈이다. 기본적으로는 신뢰하되, 이런저런 작은 검토를 하는 일이 결코 손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략)




느낌 가는 대로 행동하라! 그렇지 않으면 결국에는 지금까지 내가 한 행동이 옳은 것이었는지 의심하는 시간이 오게 될 것이다. 스스로 좋은 느낌을 가지고 그것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너를 믿어라. 앤이 원래 옛날부터 가지고 있던 단순한 통찰은 바로 ‘버려라, 모조리 다!’이다.”




이렇게 세상과 마음가짐에 대해 배워가면서 길을 걷다 보니 드디어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 도착한다. 산티아고에 들어설 때 사람들은 각자 자신에게 합당한 방법으로 환영을 받는다고 전해진다. 저자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특이하게도 스페인 국무총리인 아스나르가 방문하여 국빈급의 환영 대열에 끼게 된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자신들의 도착과 국무총리의 방문이 딱 맞아 떨어진 것이 앤과 사라, 저자에게 모두 신기하기만 하다. 이들은 행복감에 젖은 채 자신들이 해냈다는 걸 증명 받기 위해 순례자 협회 건물로 간다. 이곳에서 긴 순례 길을 오로지 걸어서 다녔다는 맹세를 하고 나면 양피지로 된 콤포스텔라를 돌돌 말아 준다.




이 증명서를 받자 종소리가 물결치듯 계속 울려 퍼지는 것이 들린다. 순례 길에서 언제나 그렇듯 땀에 젖은 채 미사를 드리러 가니 성당 입구의 산티아고 상이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하나하나 모든 순례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환영 인사를 해 주는 미사. 이게 끝나고 나서 세 명의 동지들은 기념으로 종을 하나씩 나누어 갖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저자는 일상으로 돌아와 방송으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산티아고 순례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던 어느 날 우연히 방송에서 이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고 친구들과 나누어 가졌던 종을 울려 본다. 그 날 밤 저자는 여행의 동지였던 영국 친구 앤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우리의 종소리가 울리는 걸 들었어!”




이렇게 순례를 함께 경험한 이들의 마음은 서로 통하게 되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이 길을 걷는데 그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것은 각기 다르겠다는 생각. 문득 나도 배낭을 메고 머나먼 순례 길을 떠나고 싶어졌다. 내가 이 길을 가게 되면 어떤 걸 배우고 돌아올까? 언젠가는 떠나고 싶은 곳, 산티아고 순례 길. 그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