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베네치아 - 꿈꾸면 신나는 그곳...
뒤르크 쉬머 지음, 장혜경 옮김 / 푸른숲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베네치아'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물의 도시, 곤돌라의 도시, 야경의 도시. 하지만 독일에서 막 이사 짐을 날라 온 이사짐 센터 직원의 눈에 비친 베네치아는 도대체 어떻게 짐을 옮겨야 할지 막막한 괴상한 곳이다.

책 <베네치아>의 저자는 처음 이곳에 도착해서 철저히 이방인의 시각으로 베네치아를 바라본다. 하지만 점점 녹아들어가는 이곳의 풍광에 자연스럽게 베네치아 사람이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밖에서는 이국적이고 특별해 보이는 그런 것들이 이곳에서는 지극히 일상적인 삶이 되고 마는 독특한 곳, 베네치아.

많은 관광객들은 베네치아라는 역사적 유원지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정상적인 일상을 보낸다는 사실에 놀란다. 외부 사람들에게 베네치아는 곤돌라와 궁전이 초현실적인 경계를 형성하는 낭만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다 위에 자리 잡은 건물의 눅눅함, 안개, 홍수, 부족한 주차 공간 등의 온갖 불편 요소가 시민의 생활을 방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네치아는 일반적인 시민들이 사는 공간이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넘치는 관광객의 홍수에 짜증내면서도 그들이 뿌리고 가는 관광 경비들로 생계를 유지한다. 관광객들은 이런 낭만의 도시에서 정치 논쟁이 과연 있을까 의심하지만, 절대적으로 좌파가 우세한 도시가 바로 베네치아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무서운 건 바로 '모기'다. 이곳의 날씨가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시작하면 골목마다 도시의 아름다움에 눈길을 줄 틈 없이 괴로워하고 있는 관광객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계속 걸음을 멈추고 바지를 훑어 내리고 피가 날 때까지 다리를 긁거나 얼굴에 침을 발라댄다.

소금기가 많지 않은 석호는 모기 유충이 살기에 이상적이어서 이곳 베네치아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모기의 습격을 받기 쉽다. 특이하게도 베네치아를 활보하는 비둘기나 쥐 이야기는 있지만, 어떤 안내 책자에도 모기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래서 대비 없이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모기의 습격을 감내해야만 한다.

책의 저자는 베네치아의 멋지고 낭만적인 모습이 아니라 구질구질한 뒷골목 이야기를 꽤 많이 늘어놓는다. 이 책을 펼치는 사람이 기대하던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너무 솔직하게 그려져 칙칙함과 화려함, 지저분함과 멋짐이 뒤섞여 있다.

저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자신의 길을 가로막을 때마다 싸구려 관광 프로그램을 저주하고픈 충동에 휩싸인다고 한다. 하지만 오래 전 아무것도 몰랐던 수줍은 15살, 독일에 살았던 자신이 난생 처음 버스 관광에 참여하여 베네치아의 거리를 헤매며 인생의 꿈을 펼친 생각을 떠올리면 마음을 달랠 수 있다. 다른 곳에 사는 사람에게는 이 도시가 진정한 꿈과 낭만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습한 해양성 기후는 베네치아에 엄청난 양의 비를 몰고 온다. 이 시기에 이곳을 찾은 관광객은 참으로 불행하다. 홀딱 젖은 꼴을 하고 도로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운하와 건물 사이의 경계를 건너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상 도시 베네치아를 제대로 정화해주는 것은 바로 이 반가운 '비'다. 비가 없다면 운하에 쓰레기가 쌓여 지금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른다.

현재 베네치아에서 운하의 위기를 몰고 올 것이라고 예견되는 물체는 바로 '모터보트'다. 이 현대 문명의 이기는 곤돌라와 충돌하는 사고를 종종 내기도 하고 오래된 건물의 기둥에 흠집을 내면서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급증하는 유동 인파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결국 일정한 통제와 제재를 가하기로 결정했지만 그래도 모터보트로 인한 문제는 여전히 골치 덩어리라고 한다.

전에 베네치아를 방문한 적이 있지만 관광객 수준으로 대충 훑어보았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이곳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베네치아의 숨은 아름다움과 지저분함, 구석구석 숨어 있는 베네치아 시민들의 숨결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 아름다운 도시를 방문할 기회는 평생 몇 번 있을까? 아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마감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베네치아 시민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이다. 비록 여름이 아닌 계절에도 모기에 뜯기며 관광객들이 버리고 가는 온갖 쓰레기와 모터보트 엔진 소리에 시달리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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