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살다 보면 이런저런 책들을 만난다. 사람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명저가 있겠지만 나에게는 어린 시절에 꿈과 환상을 심어주었던 계몽사의 안데르센 전집이나 이솝 우화집, 100권이나 되는 어린이 전집 도서가 최고의 책들이다. 살아가면서 이만한 책들을 만나지 못했다기 보다는 가장 처음 접했던 도서였다는 점에서 나만의 명저가 되었지 싶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내가 최근에 읽은 책 중 단연코 최고라고 꼽을 만한 것이다. 한동안 뜸했던 글쓰기에 대한 욕구를 불러 일으킨 것도 이 책이고 잃어버렸던 문학 세계에 대한 꿈을 펼치게 해준 것도 이 책이기 때문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의 글을 읽고 서점으로 달려가 당신이 소개한 책을 사서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글을 써 달라.

 

조선일보사의 이런 주문을 받고 책 칼럼을 쓰기 시작한 장영희 교수. 그녀는 서강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학에 대한 자신의 소견과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불편함을 소박하게 쓴 에세이들로 유명하다. <내 생애 단 한 번>이라는 책은 잘 안 팔린다는 수필집 시장에서도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일반적인 에세이는 아니다. 이 책은 해묵은 서양고전들을 들춰내어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추억, 문학 작품이 지닌 가치 등을 조명한다. 일반인들이라면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만한 오래된 서양 작가의 시나 소설을 소개하는 것이 특징인데 의외로 전혀 고리타분하지가 않다.

 

워즈워스, 예이츠 등 시인들의 삶, 소설에 담긴 상징적 의미와 시대적 배경, 각각의 문학 작품에 얽힌 글쓴이의 추억들이 서로 겹치면서 책은 그 자체로 한 권의 문학 가이드북을 보는 듯하다. 지겨운 문학 작품에 대한 해설에 급급하기 보다는 일반인도 쉽게 서양 문학을 이해하고 접할 수 있도록 안내하여 읽는 이의 마음을 끈다.

 

저자가 학생들에게 서양 문학을 가르치면서 경험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작품에 대한 소개와 함께 에피소드 형식으로 제시된 것도 재미가 있다. 학생들에게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서로에게 편지를 써 보라고 했더니 편지의 상대에게 정말 연정을 느끼기도 했다는 일화나 너무나 영특한데 집안의 반대로 사랑에 실패한 나머지 실의에 빠져 학교를 그만 둔 제자에 대한 안타까움을 얘기하는 것 등은 저자가 속한 소박한 삶의 일부를 느끼게 해 준다.

 

장애인으로써 겪는 세상의 힘겨움도 문학이라는 낭만적 세계에 빠져들어 잊고 지내는 저자의 모습이 참 소녀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세상을 회피하는 비겁한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세상과 문학을 바라보는 눈이 마치 때묻지 않은 소녀의 그것과 같다고 할까.

 

외국 생활의 외로움을 느낄 때에도, 암이라는 병마가 찾아 들어 힘들게 지낼 때에도 문학은 그녀에게 큰 위안이 된다. 지금 현재 저자는 암이 퍼져서 투병 중이라고 한다. 삼 년 간 문학을 이야기하던 그녀의 글들도 이제 더 이상 신문 지면에서는 볼 수가 없다. 그간의 글을 모아 펴낸 것이 바로 이 책인 셈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여러 편의 시 중 거지 시인으로 유명한 윌리엄 헨리 데이빗의 <가던 길 멈춰 서서>는 이렇게 말한다.

 

별들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아름다운 여인의 눈길과 발/ 또 그 발이 춤추는 맵시 바라볼 틈도 없다면/ 눈가에서 시작한 그녀의 미소가/ 입술로 번지는 것을 기다릴 틈도 없다면,/ 그런 인생은 불쌍한 인생, 근심으로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이렇게 잠시 쉬면서 문학적 운치를 느껴볼 여유조차 없다면 그 인생은 정말 불행한 인생일 것이다. 많은 이들은 근심으로 가득 찬 하루가 아니라 문학적 낭만과 봄날의 나른함, 멋진 공상을 즐길 수 있는 삶의 여유를 소망한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 퐁퐁 샘솟는 문학적 상상력과 함께 소박하고 행복한 삶의 묘미를 전해 준다. 문학은 이처럼 많은 이들을 꿈꾸게 한다. 그래서 누구나 자기 머릿속에 뚜렷이 각인된 기억에 남는 명저가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나의 추억 속에 내가 꼽은 최고의 책으로 남은 <안데르센 동화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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