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인생이 뭐예요?
피에르 프랑크 외 지음, 임정린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책 <아빠, 인생이 뭐예요?>는 참 독특하다. 독일의 유명 배우면서 감독이자 작가인 피에르 프랑크와 열세 살 난 그의 딸 율리아의 대화를 각색한 것도 색다르고 1983년생인 임정린이라는 어린 나이의 번역가도 특이하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독일 발도로프 학교를 거쳐 카셀 미대 비주얼 커뮤니케이션학과에 재학 중이라는 이 번역가는 꽤 젊은 감각으로 이 책을 재미있게 옮겨 놓았다.

 

책은 약간 썰렁한 듯하면서도 피식 웃게 되는 독일식 유머를 잘 살려 표현하여 읽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열세 살짜리 아이들은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을까? 내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니 나도 그맘때엔 참 많은 것이 알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인 율리아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 세대의 대부분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아빠와 그다지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고 자랐다. 다른 집에 비해 가족적인 분위기였지만 이 책의 율리아와 아빠처럼 속 깊은 얘기를 나눌 기회는 참 어려울 뿐이었다. 책의 두 인물이 나누는 대화는 이성 관계, 참사랑과 거짓 사랑의 차이, 어른 되기, 직업 찾기 등 매우 다양하다.

 

아빠, 그럼 이제부터 어른이라는 확실한 선이 없다면요, 그래서 어른이 되는 게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라면요, 얼마나 오랫동안 아이로 있어도 되는 거예요?

난 늘 아이일 수 있다면 좋겠는데. 아빠는 언제나 조금씩은 아이로 남아 있고 싶단다. 장난스럽고! 애교 있고! 순진하고! 창의적이고! 웃을 일이 아니야. 우리 어른들은 항상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행동하느라, 너희처럼 자기 감정대로 아주 솔직하게 다가가지를 못해. 그 점에선 너나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정말 부러워.

 

이렇게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아빠라면 어떤 아이라도 율리아처럼 쉽게 자기 속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아빠들이 가장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아이에게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하기 어려워한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아이들이 아빠의 솔직한 모습을 좋아하며 좀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한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지 어떻게 알아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되어 있단다. 상대방의 눈에서 사랑이 마구 뿜어져 나오거든.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너도 똑 같은 눈길을 그 사람한테 보내게 될 거야. 라고 낭만적인 답변을 하는 아빠.

 

그래도 그 사람을 못 알아보면 어떡해요?라는 딸의 궁금증에는 나도 그랬어. 나도 못 알아볼까 봐 두려웠단다 라고 솔직하게 대답하는 그의 모습은 아이의 호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율리아는 더 열심히 아빠에게 질문을 하고 아빠는 또 자신이 생각하는 여러 견해를 진솔하게 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남자 애들은 원래 허풍이 좀 심하다는 둥, 아빠가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은 상대역을 맡았던 어른 여배우였는데 바빠서 못 만나겠다는 편지를 받고 심하게 상처를 받았다는 둥 이 능청스러운 아빠는 못하는 말이 없다. 하지만 아이에게 교육적인 도움이 되도록 대화의 과정을 자연스레 이끌어가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아이는 아빠와 즐겁게 대화하면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려움이 닥치면 어떤 방법으로 극복해야 할지를 저절로 배우게 된다. 나도 우리 아이에게 이 책에 나오는 아빠처럼 좋은 상담자이자 유쾌한 대화 상대가 되고 싶다. 물론 엄마로서 할 수 있는 한계에서 말이다. 나머지 몫은 이 책에서처럼 아이 아빠가 함께 담당해야 할 것이다.

 

가장 감동적인 내용은 아빠는 영웅을 고를 때 뭘 가지고 판단해요?라는 율리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그 사람의 모든 면을 다 살펴본단다! 예를 들어 바이올린만 잘 켜는 사람은 아빠의 영웅이 될 수 없어. 하지만 예후디 메뉴인처럼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인 동시에, 아주 뛰어난 선생님이고,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싸운 현명한 사람이라면, 영웅이 될 수 있지. 그는 자신의 예술과 인생을 하나로 연결시켰어. 하지만 세상에는 아주 뛰어난 예술가지만 다른 사람들 덕에 겨우 살아갔거나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단다.

 

아이를 교육한답시고 너무 무거운 내용의 주제로 대화를 나누려 한다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저 멀리 도망가고 말 것이다. 어느 누가 답답하고 지루한 설교를 듣고 싶어 하겠는가. 그건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모두 마찬가지다. 자연스럽게 대화하면서 이런저런 교육적 가치를 전달해 줄 때 아이는 보다 쉽게 받아들인다.

 

이 책에 나오는 아빠처럼 아이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면서 긍정적인 삶의 가치들을 이야기해 보자.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커다란 창과 같다. 대화만 잘 이끌어 낸다면 아이도 부모의 마음, 세상살이의 이모저모, 추상적인 개념들을 모두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 믿음으로 아이와 대화한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비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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