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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여자 - 2004 노벨문학상
엘프리데 옐리네크 지음, 이병애 옮김 / 문학동네 / 199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피아노를 치는 여자'를 읽으며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소설이다. 어제 밤부터 읽었다. 100페이지 좀 넘게 읽었다. 어머니는 주변 남자들이 그녀에게 접근할 까봐 늘 두려워 한다. 그녀에게 옷도 마음대로 못 입게 하고 치장도 못하게 한다. 그저 구속할 따름이다. 그녀는 점점 자신의 틀 속에 갇혀 간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독일에서 한동안 음악교육을 받고 피아니스트로 활동한 경력으로 쓴 것같이 자기 어머니와 그려 가는 삶과 주변 인물들의 풍경과 내면세계를 객관적이고 서술적으로 표현을 했다. 거의 관조적이다. 문장은 짧고 간단명료하다. 담담한 필치로 그려낸 이야기다. 남의 이야기를 보고 그대로 말하는 것처럼 드러낸다. 주관적인 감상도 없다.
그것이 이 작가의 매력인가보다. 끔찍한 장면이나 일도 아무렇지 않게 묘사한다. 성적인 부분도 건조하게 그려낼 뿐이다. 그래서 오히려 터부시될 만한 부분인데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작가의 말이 그대로 읽힌다.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그녀.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 아버지는 정신병원에서 돌아가시고 어머니를 부양하며 산다. 나이는 37. 사십을 바라본다. 어머니는 그녀를 늘 감시한다. 여자로서의 삶을 막는다. 주택부금을 위해 돈을 저축하고 아껴야 하는 생활. 그러는 가운데 자주 어머니와 싸운다. 그런 감금되다 시피 한 생활 속에 그녀는 거짓말로 어머니를 속인다.
그녀는 혼자 자해를 한다. 그러면서 즐긴다. 그러는 가운데 학생 하나가 그녀에게 접근한다. 그녀는 그 남자가 싫다. 물론 어머니는 주변 남자들이 그녀에게 접근할 까봐 늘 두려워한다. 그녀에게 옷도 마음대로 못 입게 하고 치장도 못하게 한다. 그저 구속할 따름이다. 그녀는 점점 자신의 틀 속에 갇혀 간다. 관음주의자처럼 거리에 가서 혼자 보는 것을 즐긴다. 집에서 조촐하게 음악회를 연다. 어머니의 자랑이다.
반면 그녀는 학원 주변에서 숨어 있다가 어슬렁거리는 남학생을 붙잡아 때리며 모욕을 준다. 다시는 그런 곳에 발을 못 붙이도록 한다
2.
책을 거의 다 읽어간다.
독일의 수도 비인은 아파트 입주금을 위해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돈을 모아 중도금을 치르고 잔금을 치르는 사람, 거리 곳곳엔 창녀촌이 있나보다. 언제든지 돈만 주면 갈 수 있는 그런 곳. 유달리 포르노(?)에 대한 묘사가 많이 나온다. 음악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피아니스트가 에술을 하는 그녀가 하필이면 왜 그런 성적인 것에 집착을 할까 의아하다. 빗나간 열정. 빗나간 집착.
스스로 절제된 욕망을 가지고 어떤 충동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느 그녀. 하지만 그럴수록 내면에 꿈틀거리는 욕망을 어쩌지 못하는 것 같다. 외부와의 단절된 삶이 그녀로 하여금 제 스스로 가해를 하게 만들고 스스로 고통을 느낄 때 그녀는 쾌락을 얻는 것 같다. 그것이야말로 잘못된 것 아닌가. 정상이 아닌 비정상의 모습. 관음주의자.
분명 평범하지 않다. 그녀의 어머니와 때리고 머리를 뜯고 하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어머니 또한 그녀를 감시하고 가두는 데서 오는 잘못된 억압. 나이가 마흔 줄에 들어서는 딸을 결혼도 안 시키고 홀로 늙어가게 한다는 것. 그것 자체가 비정상이다.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이다. 뒤틀린 생활...정상으로 보이나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억누른 생활이 잘못된 욕망으로 나타난다. 그녀의 제자와 나누는 화장실에서의 행동은 가히 그녀로 하여금 변태적인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더구나 제자에게 보낸 편지속에 드러난 그녀의 요구는 포르노에서나 있을법한 변태적인 행위들이었다. 그녀를 고통스럽게 해야만 그녀는 쾌락에 즐거워 한다는 것.
작가는 왜 그런 글을 썼을까. 성적으로 억압받을수록 여성으로부터의 해방, 절제된 삶 속의 드러나는 여성의 욕구, 그런 것일까. 잘못된 여성에 대한 편견, 남성으로부터의 차별적 성 학대, 그런 불만들이 여성성을 불러일으킨 것일까. 주도적인 여성이 되어 남성을 오히려 제압하는 여성. 오래된 관념을 깨뜨리는 행위들...예술가들의 도덕성을 무시한 채 오히려 성적으로 타락하여 그 예술성을 부추기는 삶. 스스로 고통을 느끼는 것만이 쾌락을 부채질한다는 것.
거꾸로 생각해 보면 그 반대일 수 있다. 평범하지 않아서 사랑을 정상으로 받지 않으면 생각은 욕망은 뒤틀려지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 자연스럽지 않은 생활, 억압된 생활이 얼마나 자유를 저버리고 제 스스로 가두어 놓고 저를 얼마나 가혹한 형벌 속에 눕게 하는지. 그녀의 어머니는 곧 사회의 틀이지 않을까. 여성을 억합하는 사회의 규범들, 규정들...감시하고 따지고 잔소리하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 여성에게 그런 것들이 걸림돌이 되어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고 짓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성은 그런 사회 속에서 관음증 환자가 된다. 도덕적 일탈행위...그것은 병이다. 비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현실과 이상 속에 맞지 않는 자아. 괴로울 뿐이다. 현대인의 자화상이 아닐까.
주인공 : 에리카(37세.음악원의 피아니스트), 발터 클레머..(에리카에게 피아노를 교습받는 제자, 10살 연하)..에리카의 어머니...(에리카를 결혼 20년 만에 낳았다, 에리카와 부부처럼 한 침대를 쓴다.)
작가소개: 엘프리데 옐리네크 (1946.독일 출생. 빈에서 자람. 대학에서 연극 예술 음악 공부하며 작품 발표. 2004 노벨문학상 수상.)
3.
드디어 제자가 그녀에게 다가왔고 그녀는 편지를 통해 그녀를 다뤄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 편지를 읽은 제자는 놀라고 당황하여 그녀의 집을 찾아왔지만 결국 황망히 그곳을 떠난다. 그 날밤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때리고 키스하고 알수 없는 방식으로 서로 싸운다.
얼마동안 제자는 수업을 빼먹고 나타나지 않는다. 제자를 찾아나선 그녀. 어디론가 여행을 가자고 간 거지만 어떤 청소실에서 순간적인 행위를 하자고 제자가 제안을 한다. 그녀가 안 된다고 하자 그녀의 집으로 따라온 제자. 다짜고짜 그녀를 폭행한다. 그녀의 어머니조차 가두고 때리고 성폭행을 가차없이 한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녀.
다음날 복수할 생각으로 칼을 하나 갖고 제자를 찾아 학교로 간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웃고 있는 제자를 보고 그녀는 자기 어깨에 칼을 찌른다. 그녀는 유행이 지난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는데 지나는 사람들은 그녀를 비웃고 그녀는 내면이 비어있는 그들을 비웃는다. 그녀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곳에서 어깨를 부여안고 집으로 향한다.
이야긴 그렇게 비극적으로 끝이 났다. 폭력적으로 다뤄주길 원했지만 한편으로는 사랑스럽게 다뤄주길 거부해 주길 원했던 그녀. 도착적인 그녀의 일탈행위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갇힌 생활, 남들과 어울리지 않는 생활,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생활, 폐쇄적인 생활이 그녀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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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3일간 책을 다 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