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은 무죄
박혜선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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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텔레비전은 무죄’를 읽고


작고 아담한 사이즈의 동시집. 생긴 것도 이쁘게 생겼다. 겉표지 그림도 이뻤다. 제목 글씨체도 멋졌다. 들고 보기에 좋게 만들어졌다. 맨 처음 책장을 넘기니까 시인의 말이 써 있었다.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말이었다. 이 책은 5부로 나뉘어져 있다. 일상에서 만나는 이야기를 동시로 표현을 해냈다. 시와 그림이 이쁘게 잘 어우러져 표현되었다. 나는 이 시들을 읽으며 나 나름대로 시를 떠올렸다. 원래 책을 깨끗하게 보는 사람인데 기꺼이 나는 이 동시집에 낙서를 하였다. 매 장마다 나는 낙서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 한 편을 읽을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 시가 꿈틀거렸다. 그래서 그걸 꺼내놓아야 했다. 그래서 내가 구입한 이 동시집은 나 혼자만 보아야 한다. 내 마음이 담긴 동시들이 또 곁방처럼 붙어있으니까 말이다. 동시들을 참 즐겁게 또 생각하면서 읽었다. 한 편 한편 곱씹으며 음미하면서 읽었다. 나를 자극하는 시. 내 머릿속을 뒤집어 놓는 시. 내 마음을 뒤죽박죽 흔들어 놓는 시. 이런 시는 읽을 만하고 권할 만도 하다. 이 동시집을 추천해 주신 분께도 감사한다.  한편 정도는 외우려고 했으나 머리가 짧은 관계로 그리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가까이에 두고 자주 뒤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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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풍경
신경림 지음 / 문이당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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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의 산문집 < 바람의 풍경 >을 읽고


역시 사 놓고 조금 읽다가  끝까지 안 읽었던 책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내친 김에 읽기로 하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독서는 한 번 빠지면 계속 하게 된다. 한꺼번에. 어제 밤엔 읽는 것이 재밌고 푹 빠져 밤 2시가 넘도록 읽었다.  어제는 진짜 신경림 시인의 그 이력 같은 산문을 접하면서 그 시대의 문학인들은 지식인들은 그렇게 살아왔구나 하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실제로 겪은 일들을,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문예지에 발표한 것들을 묶어서 낸 산문집이었다. 어려서부터 90년대 후반까지의 삶이 씌어져 있었다.

 

암울하고 가난한 시절의 이야기, 문학은 하고자하나 생계가 어렵고 마땅한 직업도 없이 이리저리 떠돌다시피 산 세월, 가난에 술과 친구, 문학이 있었을 뿐이었다. 문제없이 무난하게 직장생활을 성실히 착실히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과외를 하다가도 얼마 못 가 술에 빠져 살고 떠돌아다니고 기복이 참 심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런 그 주변엔 그만 그만한 문학 동료들이 있어서 어려울 땐 서로 돕고 이야기 상대가 되어 정신적인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그렇게 어려운 세월을 보내며 살았다. 문학 때문에  방황을 하고 문학 때문에 살고 문학 때문에 끌려 다니기도 하고 참 많은 세월을 살았다 싶다. 많은 이야기가 있다. 가만히 편히 앉아서 시를 쓸 수는 없는 세상이었다. 물살에 쓸리듯 바람에 나부끼듯 시류에 이리밀리고 저리 밀리면서도 문학을 끝내 놓지 않아 이름 난 시인이 된 것이다.

 

그런 삶의 밑바탕이 있었기에 그런 시들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니 이해가 갔다. 시는 그냥 나오지 않았다. 삶의 가장 아픈 데서부터 나왔던 것이다. 절절한 삶을 살고 난 후에 아픈 시들이 나왔다. 그러고 보면 천성이 시인이었다. 타고난 재주, 끼, 그런 것들이 어울려 시인을 만들었던 것 같다. 나중에 이곳 저곳 시를 쓰러 여행을 다니며 토박이 사람들의 사연도 듣고 대화를 나누며 식숙도 한다. 그런 것들을 보며 시도 가만히 앉아서 쓰는 것이 다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찾아가서 사실을 확인하고 듣고 보고 해야 좋은 시가 나온다는 것을 깨닫았다.

 

그리고 시인은 문학인들과 계속된 등산을 통해 모임을 갖고 정보도 얻고 교제도 하였다고 했다. 시는 혼자서 쓰지만 혼자 문학을 할 수는 없다는 것도 알았다. 글을 쓰는 사람은 늘 깨어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혼자가 되어서는 안되고 세상을 바로 보아야 한다. 그래야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될 것이다. 문학인들과 계속 유대관계를 갖고 글을 써야 겠다. 그래야만 나아갈 방향을 알고 좋은 길도 모색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문학인들이 해야할 일이기 때문이다. 좋은 세상에서 마음놓고 글을 쓰는 시대, 시대를 바꿀 수 있는 그런 글을 써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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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반양장) - 아동용 사계절 아동문고 40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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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2001.5.지은이:황선미,출판사:사계절,출판년도:2000

알을 품어 병아리의 탄생을 보겠다는 소망을 굳게 간직하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잎싹의 이야기다. 양계장에서 주는 대로 먹고 알을 낳으며 살던 잎싹.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은 암탉으로서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양계장과 안전한 마당을 나온다.

 

나이가 많아 알도 더 이상 낳지 못하게 된 잎싹. 털도 다 빠져 보기가 흉하고 먹지도 못한다. 의욕도 없어 주인은 병든 줄 알고 구덩이에 갖다 버린다. 평소 나뭇잎을 좋아하던 잎싹은 자기를 스스로 잎싹이라 이름 부른다. 구덩이에서 있다가 족제비에게 잡혀 먹을 뻔한 잎싹은 마당에서 늘 외톨이였던 청둥오리에게 도움을 받고 살게 된다. 목숨을 건진 잎싹은 마당으로 오지만 마당에 사는 닭 내외와 개, 그리고 오리들이 반대하여 결국 하룻밤만 지내고 그곳을 나와 아카시아나무 밑에서 지낸다. 낮에는 들판을 다니며 먹이를 구했지만 밤이면 족제비가 살아있는 짐승을 언제나 노리고 있기 때문에 몸을 피해야 했다. 마당식구들과 어울려 지내보려 했지만 서러움만 당해서 그곳을 떠나기로 했다. 청둥오리도 밖에서 어떤 뽀얀 오리를 만나면서부터 마당에 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외로운 날을 보내던 잎싹은 가시덩쿨 속에서 알을 하나 발견한다. 그리고 그 알을 품기 시작했다. 그때 청둥오리가 나타나 먹을 것을 갖다주고 밤마다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하며 시끄럽게 굴었다. 잎싹은 청둥오리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잎싹은 알을 품고 있는 동안 청둥오리 때문에 살이 찌고 통통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청둥오리는 족제비에게 당하고 말았다. 뒤늦게 잎싹은 자기가 품은 알도 사실은 뽀얀 오리와 청둥오리의 알이라는 거, 그리고 청둥오리는 그 동안 자기와 알을 족제비로부터 보호해 주기 위해 애쓰다가 대신 죽었다는 것 등을 깨달았다.

 

청둥오리가 죽으면서 새끼를 낳으면 숲을 떠나서 저수지가 있는 데로 가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족제비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잎싹은 새끼를 데리고 마당으로 간다. 처음엔 다들 신기해했으나 마당 식구들의 반대가 있고 오리만 오리식구들이 원하는 것 같아 잎싹은 새끼를 데리고 마당을 나온다. 그리고 저수지로 가서 살게 된다. 그렇게 살던 잎싹과 새끼는 즐거운 나날을 보내다가 어느덧 오리가 커지면서  잎싹은 자기가 품은 새끼가 닭이 아니고 오리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지만 자기가 품어서 낳았기 때문에 애정을 가지고 끝까지 지키고 보호한다. 새끼오리가 멋모르고 마당에 가서 살겠다고 할 때, 사실은 마당으로 가면 날개 끝을 잘라서 집오리로 있게 될 것을 염려한 잎싹이 못 가게 말린 것이다. 오리는 자라면서 잘 날고 헤엄도 잘 쳤다. 청둥오리는 원래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서 어미 청둥오리도 다른 오리들에게 따돌림을 받았던 것이다. 그걸 안 청둥오리는 잎싹에게 저수지로 가서 살라고 한 것이다.

 

아무튼 마당의 식구들은 이기적이고 텃새가 심하다. 암탉은 욕심이 많아서 자기들끼리만 편안하게 살려한다. 그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굳은 의지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가는 잎싹은 정말 대단하다. 초록머리 아기청둥오리는 자기의 무리들을 따라 하늘로 날아갔다. 그것을 본 잎싹은 알을 품어서 병아리의 탄생을 보았으니 고달프게 살았지만 행복했고 그 소망 때문에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날고 싶다는 새 소망이 생겼다.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그 순간 잎싹은 족제비에게 물리고 만다. 눈이 아카시아 꽃처럼 흩날리던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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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김주영 지음 / 문이당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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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치>김주영 장편소설.문이당. /2002./270./8,500.


2년 전쯤 어머니가 집을 나가시고. 나는 사냥을 좋아하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는 열 네 살의 소년 대섭이다. 아버지가 안 계신 날은 외삼촌이 몰래 와서 밥을 말끔하게 해 놓고 가신다. 아버지와 외삼촌은 서로 앙숙이고 미워하면서도 대놓고 싸움을 하거나 만나 말을 한 적은 없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자 아버지는 외가댁 재산을 정리하고 그 돈을 챙겼다. 외삼촌은 이를테면 외할아버지가 재가를 하여 얻은, 두 번째 외할머니가 데리고 들어온 달구라는 당시 16살 먹은 남자애 였다. 그런데 그 외할머니도 죽고 외할아버지도 죽자 아버지와 외삼촌의 사이는 멀어졌다. 더구나 어머니와 외삼촌은 말로만 오누이지 실상은 서로 달라 아버지가 둘 사이를 의심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집을 나간 것은 아버지에게 다른 여자가 생기고 나서였다. 그 후로 나는 어머니를 기다렸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외삼촌도 행방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어느 날 아이들과 쥐를 갖고 장난을 치다가 불붙은 쥐가 학교 기숙사 창고로 뛰어들어 불이 난 관계로, 아버지에게 혼이 날까봐 삼촌이 살고 있는 움막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 후로 매일 아버지가 사귀는 여자가 점심을 날라다 주면서 어머니가 계신 곳을 채근했다. 그런데도 소식을 모르자.. 여자는 나타나지 않게 되었고 아버지는 외삼촌에게 사냥을 가자고 한다. 삼촌은 멧돼지가 사는 곳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날 밤 멧돼지를 잡았는데 외삼촌은 그날 후로 며칠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외삼촌이 사투를 벌여 멧돼지를 잡았는데 아버지가 잡은 걸로 대신하게 된 셈이었다.

대섭이는 그날 멸치 떼를 본다. 투명한 멸치 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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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김주영 지음 / 문이당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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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를 읽고

 //어머니의 슬픔 인내, 인품을 알 수 있다. 남편에게 버림을 받고 산다는 것이 싫어서 더 행동거지를 올바로 하고 살았다. 그리고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남에게 보였다.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걸 싫어해서 조금이라도 수상한 헛점을 남기지 않는 곧은 성격의 어머니다. 아들에게는 당차고 예의바르고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매를 때리고 냉정하게 대하는 법도와 예의를 가르치며 살았다. 그런 것이 싫었는가 세영이는 아버지가 돌아온다고 하자 평소 하지 않던 욕을 하며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알게 모르게 상처받은 부분이었을 것이다. 버릇없이 자랐다거나 흉허물 잡힐 까봐 전전긍긍하며 남의 눈치 보며 살았으니 얼마나 견디기 어려웠을까. 여자기 때문에 참고 견뎌야 했고 힘들게 먹고 살기 위해 밤낮없이 일을 했다. 그리고 현실이 두려워서 바람난 남편을 찾아가서 어쩌지도 못했다. 그리고 밖에서 낳아온 자식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은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다. 다 너그럽게 받아준다. 그러나 끝내 그는 집을 나가고 만다. 그 심정이 오죽 했겠으랴. 혼자 사는 여자가 참고 숨겨야할 본능조차 가리고 무조건 일방적으로 당하고 사는 모습, 그래서 또 주위  남정네들의 집적거림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고통. 힘든 점은 한 둘이 아니다. 세영이는 엄마가 너무 이뻐하는 걸 보고 관심을 빼앗겼다고 여기고 배신감도 느낀다. 삼례도 엄마가 떠나보낸 거라고 생각을 하고 미워한다. 그러나 참고 견디는 어머니의 마음을 세영이가 어찌알랴.//

----겨울을 주 무대로 그린 이 소설은 참 인상적이다. 시골 마을의 분위기도 있고 슬픔도 좀 있고 우울함도 있고 어둠도 있고, 고된 여인의 한 많은 생이 잘 녹아나 있다.  바람기 많은 남편을 잘못 만나 고된 인생을 살다가 비로소 떠나야만 했던 이야기....여자의 마음. 어머니라는 존재, 아내의 역할, 주위 환경,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감한하면 한편의 서정적이면서도 한스런 이야기인 것 같다. -----------

아기의 목에 걸려 있던 가오리...액을 막아준다는 의미에서 아버지가 아기의 목에 걸어주었다던. 아버지 홍어는 그렇게 돌아왔지만 인내하던 어머니는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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