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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자치통감
사마광 지음, 푸챵 엮음, 나진희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4월
평점 :
동양철학서나 유흥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을 읽으면서
중국역사에 대해 너무 무식해서 언젠가 사마천이 사기와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큰맘먹고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만 해오다가 그 방대한 양을 한 권으로 축약해준 책을 얻게 되어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이렇게 간편하게 접하게 되었다.
기전체인 사기와 달리 시대순으로 된 편년체의 형식을 취한 자치통감은 일단 제목의 '통'에서 나왔듯이 통사를 볼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에서부터 후주까지 사마광이 살던 송나라에 이르기 전까지의 중국역사의 흐름을 따라가며 볼 수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자료가 되며 역대란 거울을 통해 현재를 비춰볼 수 있다는 취지가 제목에 담겨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종대왕, 마오쩌둥, 시진핑 등 많은 지도자들의 사랑을 받은 책이다.
하지만 나라를 다스리지 않고 그냥 중간관리 정도의 단계에서나 말단 신하의 단계에서나 교훈이 될 만한 이야기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우선 역사의 흐름을 보면서 대개 첫 시작이 웅장해도 그 성함에 취해 오만이나 태만, 방탕에 빠져 끝으로 가면 갈수록 기울어져 쫄딱 망하는 게 한 인간의 일생이나 한 나라의 국세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서 지도자 뿐 아니라 평범한 범인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거울이 될 것 같다.
다만 이 책에서는 명시해있지 않지만 원서에서는 신광왈(臣光曰)이라는 표현으로 사마광 자신의 commentary를 더했듯이 중간중간에 작가의 의견이 개입되어있을 뿐 아니라 역사적 자료를 수집하고 편집함에 있어서도 보수적인 작가의 bias가 들어간 것이 아닐까 싶다. 한과 당에 대하여 책의 배분을 많이 할당한 것 같고 대부분 그의 보수적 유교주의와 정통성에 의해 어떤 인물의 적합성이나 미덕을 평가하면서 그와 대치한 왕안석의 신법을 뒤엎기 위한 초석을 깔아놓는 것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마광이 역사가이기도 하지만 또한 현직 정치가였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윈스튼 처칠이 쓴 '제2차 세계대전'처럼 항상 역사가가 누구인지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 염두에 둬야하는 책이다.
예를 들어 평이 엇갈리고 역사의 판단에 맡긴 무자비(無字碑)를 남긴 측천무후는 사마광(또는 이 자치통감을 편역한 푸창)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 것 같은데 과연 그녀가 궁녀라고 해서 그녀의 자질이나 업적(정작 그녀가 다스린 시기에 대해서보다 그녀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녀가 총애하던 남자들에 대해서만 다룬 것도 좀 편파적이다)은 무시할 수 있나? 당나라 조정의 부패 속에서 반란자들이 과연 물리쳐야할 적이었나? 그리고 환관들의 일방적 문제였나 아니면 그 전에 환관들이 조정을 휘어잡기 전에 무능하고 방탕한 왕족과 대신들의 문제인가? 결국 싹다 갈아엎어야 할 정도로 썩은 조정이나 능력없고 해만 되는 왕에 대한 충성을 지키려고 싸우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수시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교조주의적으로 정통성과 충을 옹호하는 유교적 역사관이 통사를 통해 유지될 수 있는가? 마지막 송의 태조가 될 조광윤이 반짝하며 등장하는 후주의 세종이야기로 마무리하는 것에서도 그의 편집능력이 돋보인다.
특히 사마광의 원서를 안 본 상태에서 이 편역자인 푸창이 그 중에서 또 편역자의 의견에 맞는 부분만 발췌하고 편역할 가능성이 있어서 어찌보면 사마광의 원서도 이 짧은 축약본도 역사란 거울의 깨진 파편 중 하나 뿐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가 친숙한 고사성어들의 유래를 역사 속에서 접한 것, 그리고 삼국지에서 익숙했던 캐릭터들을 새롭게 접하는 점 그리고 내 자신이 여성이어서 중국사에서 그려진 여성들의 모습이었다. 당태조의 후궁들처럼 왕을 타락시키거나 (그런데 솔직히 왕이 국사를 등한시하고 후궁에 빠져 사는것은 그 여자들 탓만 하면 안되지 않나?) 자기 사리사욕만 챙기는데 급급한 호태후도 있는 반면 알코올중독이 되고 성격까지 변한 듯한 못난 왕에게 모욕받고서도 측은심을 느낀 누태후같은 여성도 있다. 그 외에도 공사구별이 확실하며 검소하고 현명한 국모라고 극찬받은 동한 명제의 마태후와 당 태종의 장손황후 등의 모습도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보수적인 현모양처를 옹호하는 사마광 입장에서는 좀 편파적으로 묘사되고 업적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여성으로서 유일하게 중국 황제가 된 무측천도 있으며 곽기를 해독하기 위해 희생당한 계집종도 있는 등 참 고대 중국에서 다양한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흥미로웠다.
마지막으로 사마광의 자치통감이 아닌 바로 이 책, '한 권으로 읽는 자치통감'에 대해 특별히 평하고 싶은 것은 한 권으로 짧게 묶여서 몇백권이나 되는 자치통감을 일주일 안에 읽을 수는 있어서 전체적 그림을 그릴 수는 있지만 실제로 조각들이 많이 빠진 퍼즐을 보는 것 같아서 아쉬웠다. (무측천 이후 갑자기 당 문종의 감로지변으로 넘어가는 등;;) 완역본은 못 읽을지라도 권중달 교수의 3권으로 이루어진 자치통감으로라도 다시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은 각 장마다 삽화들이 있어서 보는 즐거움이 있는데 그 삽화들을 넣는 배려로 인물 연대기와 고대 중국의 지도를 부록으로 넣어주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중국역사에 무지한 나는 심지어 중국 역사의 흐름도 확실하지 않아 유흥준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초반에서 저자가 알려준 중국사 흐름을 외우기 쉽게한 조선족 학생들이 만든 노래를 참고하기도 했다. 하물며 인물들이나 고대중국지도(아니 실은 현대중국지도도 자세히 모른다;;)는 더욱더 낯설다. 이왕 독자에 대한 배려를 하는 김에 좀더 인심을 썼으면 좋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