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닫을 때 나는 삶을 연다 - 기본적인 송가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38
파블로 네루다 지음, 김현균 옮김 / 민음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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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일포스티노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될 수 있음)

네루다를 처음 접한 것은 시가 아닌 사춘기 때 본 일포스티노라는 소설 원작인 영화였다.
소설에 기반을 두긴했지만 일포스티노는 섬칫할 정도로 네루다의 일생과 공명하는 부분이 많다.
글을 모르는 우체부의 마음을 가장 아름다운 글의 형태인 시로 표현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 시를 통해 그 우체부가 단지 사랑을 노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더 넓은 세상으로 뛰어들며
그 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마지막 장면

어쩌면 이는 철도원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세상으로 나아가고 바로 가까이 있는 자신을 표현할 방법조차 없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대변하다가
너무 깊이 개입한 탓인지 세상을 재구성할 원소로 다시 돌아간 그의 신화적인 결말,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 자신의 시의 변천사와도 연관이 있어 보였다.

국내 그리고 미국에서도 파블로 네루다를 언급하면 주로
그의 젊은 시절의 명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초현실적인 혁신작'질문의 책', 사회를 향한 외침의 대서사시 '모두의 노래' 등을 손꼽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세계는 후기작품인 'Odas Elementales'가 없이는 완전하게 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시집과 후기작 등에서 좀더 보편적인 일상으로 다가간
세상에 뛰어들고 Cesar Vallejo 등의 시인들과 이상을 노래로 울부짖으며 온몸으로 부딪혀 싸우던 그는 과연 그의 현실참여에서 물러선 것일까?
아니다. 그는 다른 시각 다른 접점을 통해 현실에 더 긴밀하게 참여된 것이다.
이는 간간히 보이는 America, Guatemala, Leningrad 등에 대한 시, 그리고 기타 원소 및 에너지 등에 대한 시들은 상당히 날카롭게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영혼의 동지이자 친우였던 Vallejo에 대한 시는 일포스티노의 마리오처럼 찬란하게 사라진 영혼의 빛을 기린다.
무엇보다 과연 단지 J'accuse! 식으로 분노를 속사포처럼 쏟아붓는 것만이 현실 참여라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속내를 삶을 표현할 입을 잃어버린 서민들,
그리고 인간에게 짖밟혀 아예 고통의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자연의 모든 사물들,
문화의 이름을 내걸고 편파적이고 공격적인 비평의 잣대에 휘둘리는 시인의 목소리와 책들을 그는 대변한다. (ref. 단순함을 기리는 노래)
물론 어찌보면 비평가들의 화살을 뿌리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새로운 개혁을 사회 뿐만 아니라 그의 시에서도 추구하는 것이었다.
모든 보이지 않는 사람들, 목소리가 없는 사물, 스쳐 지나가는 것들에 귀기울이는 그의 관심과
무기력과 슬픔을 뿌리치는 그의 희망과 분노의 에너지
그것은 늘그막에 한발짝 물러나는 모습이 아니라 단순한 원소들이 이루어낼 새로운 생명의 재생력에 대한 믿음, 그리고 애정이
스피노자의 범신론처럼 모든 것에서 신성함을 발견하고 되살린다.

 

a little something extra:

보이지 않는 사람 (El hombre invisible) 외에는 모든 시들이 명조체(목차와 시 본문에서도)로 되어 있는 점에 주목. 그리고 모든 시들이 원제들의 알파벳 순으로 나열됨. 원소들의 Periodic table은 알파벳순이 아니지만.. 문자들로 이루어진 사전은 알파벳순이니까? 그리고 다른 세계시인선과 달리 bilingual이 아닌 점 주목. 시집이 워낙 길어서 이번에는 예외인 듯. 그러나 번역은 훌륭하고 원서의 어감과 운율을 듣고 싶으면 유튜브에 원제로 검색해서 들어보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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