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밀러 펭귄클래식 27
헨리 제임스 지음, 최인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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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달전에 충동구매로 펭귄클래식 1~50권 세트를 질렀다. 전부터 세계문학전집을 갖고 싶었는데 비싼 가격과 보관장소 때문에 구입하지 못했는데, 모 싸이트에서 특가로 나온김에 무이자 할부로 지른것.  고전 문학이라곤 거의 읽어본 적이 없어서, 이십년도 더 전 초등학교때 읽은 톰소여의 모험외엔 49권이 읽어보지 않은 책이라 중복걱정없이 마음편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놈들은 할부가 끝날때까지 거의 장식용으로 생활해야 했다. 밀린 읽을거리가 많다는 핑계로 피츠제럴드의 단편 몇편외엔 방치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드디어 처음 읽게된 장편이 데이지 밀러다. 1권부터 순서대로 읽으면 좋았겠지만 대망의 1권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딱봐도 골치가 아파보였기에 두께가 비교적 얇고 스토리가 단순해 보이는 놈으로 먼저 골른것이다. 펭귄씨리즈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가격도 있었지만 유토피아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자유론, 논어등의 철학고전들이 틈틈이 들어있었기 때문인데, 마찬가지 이유로 1권을 피하게 된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저자인 헨리 제임스는 심리학관련 서적들을 읽다보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유명한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동생이다. 그는 소설의 주인공 윈터본처럼 미국 출신이지만 당대의 유명인사 투르게네프, 플로베르, 에밀 졸라, 알퐁스 도데와 교우하며 유럽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속엔 구세계 유럽과 신세계 미국의 문화적 충돌과 갈등이 잘 어우러져 있다고 한다.

  소설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미국인이지만 유럽에서 오랜 세월을 지내 유럽인에 더 가까운 윈터본은 우연히 매우 아름다운 데이지 밀러라는 미국인 여성을 만난다. 유럽의 복잡하고 머리아픈 예의 범절에 아랑곳 하지 않는 데이지 밀러는 기질적인 바람둥이다. 윈터본은 그녀에게 매우 끌리고 지대한 관심이 있지만 한편으론 교양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데이지는 조바넬리라는 잘생긴 이탈리아인과 어울려 다니는데, 윈터본은 그녀곁을 맴돌지만 적극적이지는 못하고 한 여성의 유형을 연구하는 듯 관심있게 바라보기만 한다. 물론 티내지 않는 질투심도 느끼면서. 하지만 결국 그 마음을 접기로 하는데, 마침 데이지가 병에 걸리게 된다. 

 

  방문객이 그다지 많지 않은 내 블로그의 글을 몇명이나 읽을지 모르겠고, 결말이 무슨 큰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결말은 쓰지 않으련다. 줄거리는 비교적 짧고 단순하지만 심리학자의 동생답게 주인공의 내면묘사와 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이지 밀러의 모습, 유럽의 아름다운 자연묘사등이 즐거움을 주는 소설이었다.

 

  세계고전문학을 읽을 때 곤혹스러운 것은 그 나라의 문화나 용어, 풍습등이 생소하기 때문이다. 세계사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시적인 관점의 외국은 너무나 낯설다. 주석을 읽어도 잘 모르겠고 그런 설명조차 없는 용어들도 많다. 특히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을 읽을땐 매우 곤욕스러웠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이며 이런 장면은 왜 나오는 것인지 모호한 것들이 너무 많아 공들여 읽었음에도 이해가 잘 되질 않았다. 나만 그런것인가 하는 자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책벌레로 소문난 어떤 이웃의 평가도 나와 비슷했기에 조금 위안을 삼았었다. 

  세계문학 제일의 금자탑이라는 전쟁과 평화도 러시아의 귀족문화가 너무 생소해 읽기를 포기했었다. (언젠가 다시 도전할것이지만)

원전을 읽을 실력이 전혀 되지 않기에 내 무지를 탓하곤 했는데, 원서를 읽어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번역을 문제삼는 작품도 상당하다. 역자들이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을 하는 것보다 독자들을 위해 좀더 이해하기 쉬운 번역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작품은 인물에 중점을 둔 작품이라 읽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펭귄 클래식의 작품들이 대체적으로 쉽게 번역이 된 편이라는 이야기도 이 씨리즈를 선택하는데 참고가 되었다.)

고전은 낯설고 이해가 어려우며되고 현대소설에 비해 반전이나 자극적인 면에서는 떨어지지만 나름대로의 깊은 매력이, 그것이 이질적이고 골아프게 하는 것이라도 계속 읽어 나가게 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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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디케이드 - 역사상 가장 중요한 10년이 시작되었다
조지 프리드먼 지음, 김홍래 옮김, 손민중 감수 / 쌤앤파커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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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직업은 있어도 평생직장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 청년실업율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비정규직이고, 임금은 물가변동을 감안하면 10년전의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물가상승과 사교육비등으로 결혼후 맞벌이를 해도 전세금은 오르고 자녀들의 사교육비등을 감당하기조차 힘들다. 부자는 점점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삶에 허덕이다 보니 그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미처 신분제도가 부활한것처럼 삶의 격차는 커지고 있다.
신세대 X세대도 아닌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고, 게다가 냉전시대는 한반도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불안함을 안고 미래를 준비해야만 한다. 2012년 종말론까지 가세한 탓인지 미래를 예측한 책들이 상당히 많이 나오고 인기를 끌고 있다.

  그들중에서 이책의 저자 조지 프리드먼의 경력이 눈에 띄는 이유는 그의 전세분석 적중률이 무려 80%에 달하고 미 국방부의 조간브리핑에서 조차 그의 정세예측 보고서가 올라가며 세계220만명의 사람들이 유료로 구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글은 처음엔 거부감으로 다가왔다.  '100년 후' 라는 그의 전작의 초반을 읽어 나가며, 미국인에 의한 미국을 위한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국제일주의와는 다르다는 것을 계속 읽어나가며 알 수 있었다. 전작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세계정세를 예측했다면 이번에는 전작 보다 작은 범위의 10년동안을 이야기 한다.

 

   소련의 붕괴이후 미국은 유일한 패자로서 21세기를 맞이했으며 전세계에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집을 좀처럼 꺽지않고 있는 북한마저도 미국을 가장 필요로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현실에 대응하려면 우리도 미국에 대한 긍정적.부정적 감정을 버리고 능동적으로 우리의 국익을 위해 미국을 활용할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좋던 싫던 전혀 상관없이 그들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전문가는 물론 미국의 전문가조차 중국이 미국을 앞질러 패권을 장악하리라는 예상을 하고 있지만 저자는 중국의 몰락을 예측하는 것이 눈에 띈다. 눈부신 성장을 했지만 그것은 일부일 뿐이고 대다수의 중국인들이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는 것과 해군의 약세를 그 원인으로 꼽고 있다. 저자는 중국의 현재 위상에도 불구하고 중국이라는 나라에 그다지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고 있다.  911테러 이후 중동문제나 러시아, 유럽의 정세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저자는 결국 미국이 이슬람 세력과 타협하고 소련 붕괴이후 유지해왔던 균형잡힌 전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저작 전반에 걸쳐 강조하는 - 미국에게는 적도 없고 동맹도 없다. 단지 국익만이 존재 할 뿐이다 - 라는 말은 저자가 맹목적으로 자신의 국가에 대해서 찬양하는 사람이 아니고 객관적인 분석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인인 저자 조차도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오히려 일부 한국인들은 감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일본의 강점기를 묵인한 것, 파리강화회의에서 미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기대를 걸던 한반도를 무시하고 1차대전 승전국의 식민지 해방은 제외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것, 한반도의 분단은 미국이 끼친 악영향이다. 6.25에 참전한것도 돕기 위한것이 아닌 미국의 이득과 미국의 방침에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이었지 돕고 자시고의 감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1,2차 대전 전쟁사를 대충 살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것이다. 거기에 우리가 감정을 실어 호감이나 적대감을 생성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에 불과하다. 그것보다 미군과 우리의 불합리한 조약을 우리에게 더욱 유리하게 조정하는 것에 신경써야 한다. 미국이 싫거나 좋거나 하는 감정따위는 우리의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철저하게 미국을 중심으로 쓰인 책이지만 미국이 강대국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반감을 많이 가지고 있다. 미국인들이 저지른 인디언 학살, 노예제도, 한반도에서 벌인 온갖 범죄들과 학살들, 미군범죄들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반대로 긍정적인 요소도 무척 많다. 노예제도를 폐지한 것 역시 미국인이고 민주주의나 인권문제등을 위해 애쓰는 것도, 인디언 학살의 역사를 밝힌 책을 쓴것도 미국인이다. 미국은 미워해도 미국인은 미워하지 말자는 말이 있지만 난 반대로 일부의 미국인은 미워해도 미국은 미워할 수 없는게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감정적인 점을 떠나서 미국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엄연한 현실인것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이고 여러번 이야기 하지만 감정을 배제하고 미국을 우리의 이익에 맞게 활용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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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강희진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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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폐인을 양상시킨 온라인 게임 '리니지'는 스타크래프트와 더불어 안해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인기가 있고, 그 인기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주위의 친구들이나 선후배도 그 거의 없는 사람중에 속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단 한번도 리니지에 접속해 본적이 없는 나는 스타크래프트도 거의 십년전에 몇번해본것이 다다. 게임이라곤 전혀 안하는 나지만 그런 나도 게임을 무척 좋아해서 폐인에 가까운 시절이 있었다. 286시절 삼국지2게임에 미쳐서 방학내내 그 게임만 할정도였다. 마우스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숫자로 진행되는 메뉴를 전부 외울 정도로 몰두해 있었다. 그때는 게임을 하는 사람이 그다지 없었는데, 그 시절 너무 몰두를 했기 때문인지 온라인 게임시대가 개막되었을 무렵 수 많은 사람이 게임을 할때 난 거의 하지 않았다. 일부러 안한것이 아니고 별로 흥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책의 저자도 리니지를 해본적이 없단다. 탈북자와 리니지가 소설의 주요 소재인데도 말이다. 해본적 없는 사람이 썼으니 해본적 없는 독자가 읽어도 무방하리라는 생각이 들어 이책을 읽게 되었다. 작가가 리니지를 많이 해봤다고 했다면 이책을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이 게임이야기를 할때처럼 딴세상의 이야기를 듣는 이질감이 느껴질테니. 실제로 게임을 좋아하는 녀석들은 열을 올리며 게임이야기를 하며 즐거워 하지만 그럴때마다 나의 반응은 내가 책이야기를 꺼낼때의 친구들의 반응과 같다.

 

 




 

  배고픔에, 억압에, 독재와 세습에 지쳐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있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탈북자는 약 20년전이다. 한 가족이 몽땅 탈북에 성공했는데 언론과 국민의 관심을 받으며 환영받았던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탈북자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 가족에게 상당한 정착금을 주고 백화점에서 필요한 물건도 선물하는 장면이 TV에 잡혔따. 그때 나와 비슷한 또래의 꼬마아이가 88올림픽의 마스코트인 호돌이 인형을 선물받는 것이 샘이 났는지, 철없게도 탈북자 가족이 우리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진심으로 부러워 했다. 그 후로 북한의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탈북자는 점점늘어났고 이제 그때와 같은 환영은 커녕 찬밥대우만 받는다. 그래도 그들은 남한으로 온다. 올때가 여기밖에 없는 것이다. 소설의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위험을 무릎쓰고 남한으로 넘어와 정착금을 받고 살아보려고 하지만 기다리는 것은 냉담한 시선과 차별, 멸시, 사기가 있을 뿐이다. 남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끼리 모여 살면서 어려운 생활을 한다. 죽은 친구의 이름 하림으로 살고있는 철주와 그 또래의 탈북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리니지는 비참한 현실의 탈출구다. 현실은 찌질하지만 게임상에서는 전사, 마법사등으로 화려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쿠사나기라는 닉네임으로 바츠해방전쟁을 이끈 철주는 게임상에선 영웅중의 영웅이다. 

 

  어쩌면 신이 이 세계와 우주를 창조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일에 신은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은 인간의 일에 관여할 능력이 없다. 처음 바츠 서버를 만든 프로그램 개발자들은 바추 공화국에서 이러한 전쟁, 혁명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프로그램 개발자들은 하나의 세계와 물리적 법칙들을 고안해 냈지만, 그 창조주는 서버 안의 독재에도 혁명에도, 반란에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들은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다. 그것은 유저의 몫이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점에서 신은 진정 공평하다.  

                                         -p149~150중-


 

  바츠 해방전쟁은 실제로 있었던, 아니 리니지 온라인 상에서 실제로 유명했던 전쟁이라고 한다. 소설속에서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 리얼했기 때문에 검색해본 결과, 바츠히스토리라는 리니지 바츠서버의 전쟁사를 다룬 책까지 출간되어 있었다. 그에 관한 글들도 많이 있었는데, 읽어봐도 잘 이해가 안되긴 하지만, 대충 정리하자면 게임상에서 성과 권력을 쥐고 세금을 올려 레벨이 낮은 유저들을 착취했던 DK혈맹에 대해 힘없는 유저들이 합심해서 그들을 몰아낸 사건이라고 한다. 그런데 웃긴것은 DK연맹을 몰아낸 반 DK연맹이 DK연맹이 했던짓을 반복했고, 그때를 틈타 DK연맹은 다시 권력을 장악했다. 이번에는 수많은 유저들, 일명 내복만 걸치고 있다고 해서 내복단인 유저들의 도움을 받지 못해 무너지고 말았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혁명에 성공한 뒤 투표로 나폴레옹의 조카가 대통령에 선출되자, 그가 나폴레옹 3세가 되어 다시 독재를 시작한것과 닮아있다. 게임상에서 조차 권력을 차지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집단이 생겨나는 것을 보니 인간이란 본능적으로 어딜가나 그런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는 것인지 재미있으면서도 씁쓸하기도 했다.

 

 

  나처럼 리니지의 세계에 대해서 눈꼽만큼도 모르더라도 이 소설을 읽는데는 별 문제가 없다. 게임을 주제로 한 소설이 아니라 탈북자들과 그들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이며 어려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남북한 젊은이들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가상현실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로 한심하게 여겨지곤 한다. 나 또한 어린시절 게임에 빠진적이 있었지만 요즘의 온라인 게임폐인들 만큼은 아니었으므로 그들을 한심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나니 그들이 가상현실에 빠지는 이유가 게임이 재미있고 즐겁기 때문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청년실업이 10%에 육박하는 치열한 경쟁시대에 낙오되고 뒤쳐진 사람들의 탈출구 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인생을 걸고 몰두할만한 일을 찾지 못했고, 그런 것들을 찾게끔 이끌어 주는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기 때문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게임에 몰두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약해서, 남을 누르고 올라서야 하는 경쟁구도가 싫어서, 모질지못해서,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런것은 아닐까. 약한것과 착한것은 다르지만 비슷하기도 하다. 마음약한 사람중에 못된사람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현실은 약한것과 무능력한 것, 모질지 못한것이 그냥 그런성향을 가진것이 아니라 죄다. 모질고 강하고 착취하고 나쁜짓을 해도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용서가 되고 대우받고 존경받는 세상이다. 아무 죄를 짓지 않았어도 직업이 비천하거나 가난하거나, 출신이 다르면 멸시받는 세상이다. 아무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도움도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탈북자나 외국인 노동자, 급료가 적은 아르바이트생은 무시하고 쉽게 화를 내고 멸시한다. 얻어먹을것도 없고 국물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관료나 재벌들에게는 굽신댄다. 그리고 그게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양심에 꺼려지지도 않는다.  

 

  어린이들을 악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다른 아이의 약점이나 문제들을 별로 생각없이 놀려댄다. 편부모인 아이, 몸이 불편한 아이, 혼혈아들은 그런 놀림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이성이 생기고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런 현상은 사라진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것은 지식의 많고 적음과는 조금 다른듯이 보인다.사람이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나 행위는 본능적일지도 모르나 나이가 들고 성숙해지면 이성적 의식적으로 그런 성향들을 잠재우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어른이 되어 성숙했다는 것일 것이다. 나이만 많이 먹었다고 어른이 아닌것이다.

 

  한 교수님으로  옳을 의(義)자에 얽힌 이이갸에 대해서 들은적이 있다. 양 양(羊) 자와 나 아(我)로 구성된 이 한자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다.

한 목동이 양을 몰고가서 풀을 뜯어먹이면서 생각했다. 이 양은 나 때문에 먹고 산다고.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양의 젖을 먹고 양의 털을 얻어 먹고 사는 것은 '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가 '양'을 떠받드는 것이 옳다고 해서 '옳을 의'자가 나왔다고 한다.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기업에서 수출도 하고 월급도 주고 경기를 돌아가게 하니까 그때문에 나라가 살고 국민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삼성제품을 줄기차게 이용해주는 국민들이 없으면 삼성은 없다. 삼성이 해외수출로 많은 돈을 벌여들이기 전에 삼성제품을 팔아줬고 지금도 팔아주고 있는 것, 삼성이 돌아가게끔 일해주는 것은 평범하고 약자인 국민들이다. 삼성이 나라를, 국민을 먹여살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삼성을 먹여살리는 것이다. 한번 살펴보라, 집에 삼성, LG등의 국내 대기업 제품을 몇개나 보유하고 있는지. 우리집만 해도 TV, 냉장고, 휴대폰, mp3등 다양한 제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소외받는 사람들, 약자를 위하는 것이 바로 의롭다는 것이다. 사람은 의롭게 살려고 노력해야 할것이다. 하지만 의롭지 못해도 좋다. 최소한도 약자들을 멸시하거나 모진말로 상처는 주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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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브램 스토커 지음, 홍연미 옮김, 찰스 키핑 그림 / 열림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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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살무렵 드래곤볼이란 만화를 처음 접하고 아이큐점프가 나올 때마다 동네 백화점 4층에 있는 서점으로 달려갔다.  만화책 코너 옆에는 만화책과 같은 가격과 크기의 1500원짜리 문고판 소설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과 추리소설들이었는데 그것들 보다는 구석에 있는 공포 괴기 소설들에 관심이 갔다. 그 씨리즈의 제목이나 출판사는 안타깝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시 보게 된다면 소장품으로 간직하고 싶다.

 

  그 때 읽은 책들 중의 하나였건만 오랜 세월이 흘러서인지 청소년용 축약본이었기 때문인지 처음읽는것같다. 기억나는 거라곤 등장인물들의 이름뿐. 드라큘라 소설이 이렇게 분량이 많았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크기도 상당히 큰 책이라 요즘 주로 나오는 단행본 크기로 출간 하면 두권의 분량이 넘을 것이다. 양장재질의 두꺼운 책들을 좋아하지만 그것은 겉모양에 한하는 것인지 읽을때는 상당히 곤욕스럽기 마련. 게다가 19세기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 모르는지라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았다. 시대가 시대다 보니 등장인물들의 종교적 관념들도 고루하다. 

 

 고전 번역서들이 으레 그렇듯이 초반부를 잘 버텨내니 그 시대의 분위기에 어느정도 적응이 되었는지 초반에 느낀 지루함을 잊고 재미있게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서서히 세밀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구성과 상세한 묘사, 주인공들이 느끼는 공포의 묘사는 상당히 리얼하다. 급박한 전개가 없기 때문인지 자연스럽고, 설득력있고 흥미진진하다. 직설적이지 않고 에둘러 장황하게 격식을 갖추어 이야기 하는 대화는 그 시대의 분위기를 충분하게 느끼게 해준다.  

 





 

  호러소설에 잘 어울리는 찰스 키핑의 기괴하고 만화같은 일러스트는 흡혈귀의 이미지를 더욱 생생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호러물을 읽을 때 이런 일러스트가 없다면 매우 아쉬울거 같다. 드라큐라 하면 떠올랐던 게리올드만의 모습이 앞으로는 찰스키핑이 묘사한 모습으로 교체될듯하다. 품위와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게리올드만의 모습보다 찰스키핑의 일러스트가 소설의 묘사에 더 가깝게 느껴지고 더 강렬하기 때문이다.

 

  책 전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기와 편지등의 기록으로 되어있는것이 특이하다. 어릴적 읽었던 문고본도 그랬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런 구성은 고전을 별로 읽어보지 못한 내게 무척 생소했지만 색다른 맛을 보여주기도 했다. 1인칭 소설의 구성이면서도 여러사람의 시선에서 볼 수 있는 점이 신선하달까. 저자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참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라 예상된다. 그만큼 구성이 적절하게 잘 짜여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수년전 어느 방송에서 각국의 사람들을 출연시키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들을 갑자기 등장시켜 다양한 반응을 관찰하는 쇼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난다. 흥미롭게도 인종마다 그 반응이 너무나 달랐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얀 소복을 입은 귀신을 보면 기겁을 하는 반면 흡혈귀나 강시등을 보면 그다지 놀라지 않고 오히려 웃기까지 했다. 반면에 서양사람들은 그 무시무시한 처녀귀신에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만져보기 까지 했다. 대신 흡혈귀를 보고 공포의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출연자 모두 당연히 그것들이 가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공포를 느끼는 대상이 다른것이다. 또 강시는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그 자세와 모양이 공포를 느끼기 보다는 귀엽게 느껴지기 때문에 중국사람들도 으레 그럴것이라 생각했다.그러나 중국사람들은 기겁을 한다. 참 재미있는 반응이었다.

드라큘라도 그래서 인지 암울한 분위기에서도 공포스럽다기 보다는 흥미로 다가온다. 실감이 나지 않기 때문일까?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렸을 때는 그래도 공포를 느끼면서 읽었던 그 느낌은 기억난다. 하기사 지금보면 유치하기 짝이없는 전설의 고향이나 공포특급도 전율과 소름을 돋혀가며 읽지 않았던가. 이젠 드라큘라도 그냥 하나의 고전 문학작품으로 읽히는 것이다. 그만큼 감성이 무뎌졌다는 증거가 아닐지 아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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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소설가의 고백 - 세상의 모든 지식을 읽고 쓰는 즐거움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혜원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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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흔이 넘은 세계적인 석학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움베르트 에코가 젊은 소설가라니 왠지 어울리지 않는듯 하다. 소설가가 되기전부터 기호학 미학 문학 역사에 조예가 깊은, 그의 책한권 읽지 않은 사람도 그 이름을 알만한 유명인인데 말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학자로서나 생물학적 나이로는 오래되었지만, 소설가로서의 나이는 젊다고 이야기 한다. 게다가 일흔일곱의 나이에도 50년 동안 훨씬 더 많은 책을 써내려갈 것이라고 말한다.
 




 

 

  명성이 자자한 그의 책을 보기엔 함량미달이라고나 할까? 참 더디게 읽은 책이었다. 책에 나오는 지식들을 주석을 몇번씩 읽어도 이해하지 못한채 무시하고 대충넘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빼더라도. 어렵지만 그래도 한번 잡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글쓰기에 관한 유머섞인 이야기들이 특히 재미있었다. 다만 쉬었다가 다시 잡기까지 약간의 마음의 준비, 조용한 환경이 필요했을 뿐이다. 소리에 민감한 편이라 소설책이라도 주변이 시끄러우면 집중을 못하는 편인데, 이렇게 집중을 요하는, 내 수준을 윗도는 책을 읽을 때는 주위가 소란하면 읽어도 거의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총 4장의 파트로 이루어져 있는데, 1~3파트까지는 글쓰기와 등장인물에 관해 철학적으로 파고드는 형식이다. 저자 자신이 쓴 소설들의 특정한 장면들이 어떻게 쓰여졌으며 어떤 준비가 필요했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소설가 지망생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정보들이 아닐까 싶다. 장미의 이름이 내방 책꽂이에 꽂혀 있지만 아직 읽지 못한 관계로 그의 저작을 처음 접하는 것인데, 소설들을 읽고 읽었더라면 더 많은 이해와 재미가 따라왔을 것이다. 후에 다시 한번 읽게 될것같다. 

마지막 4장 궁극의 리스트는 매우 읽기가 힘들었다. 목록에 대한 이야기인데 잘 이해도 되지 않고 접하지 못한 작품들의 목록이 나열되는지라 지루함도 느꼈던 것이다. 나의 매우 빈약한 독서경력이 첫째문제이고 예시로 든 열거의 목록들이 너무 길게 나왔기 때문인것이 둘째 이유일 것이다.

 

  작품마다 수준높은 독자를 위한 저자의 윙크가 담겨있다고 하는데, 저자의 지식수준으로 비춰보아 그런것을 알아채는 독자가 되려면 어마어마한 책을 읽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꾸준히 책을 읽어 수준높은 독자가 되고 싶은 의욕이 솟았다. 내 수준을 윗도는 책들을 읽다보면 그냥 지루하거나 머리아프다는 생각, 그리고 나중에 다시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곤하는데 이책은 후자에 속했다. 후에 지적 수준이 올라가면 왠지 더큰 즐거움을 안겨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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