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무렵 드래곤볼이란 만화를 처음 접하고 아이큐점프가 나올 때마다 동네 백화점 4층에 있는 서점으로 달려갔다. 만화책 코너 옆에는 만화책과 같은 가격과 크기의 1500원짜리 문고판 소설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과 추리소설들이었는데 그것들 보다는 구석에 있는 공포 괴기 소설들에 관심이 갔다. 그 씨리즈의 제목이나 출판사는 안타깝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시 보게 된다면 소장품으로 간직하고 싶다. 그 때 읽은 책들 중의 하나였건만 오랜 세월이 흘러서인지 청소년용 축약본이었기 때문인지 처음읽는것같다. 기억나는 거라곤 등장인물들의 이름뿐. 드라큘라 소설이 이렇게 분량이 많았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크기도 상당히 큰 책이라 요즘 주로 나오는 단행본 크기로 출간 하면 두권의 분량이 넘을 것이다. 양장재질의 두꺼운 책들을 좋아하지만 그것은 겉모양에 한하는 것인지 읽을때는 상당히 곤욕스럽기 마련. 게다가 19세기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 모르는지라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았다. 시대가 시대다 보니 등장인물들의 종교적 관념들도 고루하다. 고전 번역서들이 으레 그렇듯이 초반부를 잘 버텨내니 그 시대의 분위기에 어느정도 적응이 되었는지 초반에 느낀 지루함을 잊고 재미있게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서서히 세밀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구성과 상세한 묘사, 주인공들이 느끼는 공포의 묘사는 상당히 리얼하다. 급박한 전개가 없기 때문인지 자연스럽고, 설득력있고 흥미진진하다. 직설적이지 않고 에둘러 장황하게 격식을 갖추어 이야기 하는 대화는 그 시대의 분위기를 충분하게 느끼게 해준다. 호러소설에 잘 어울리는 찰스 키핑의 기괴하고 만화같은 일러스트는 흡혈귀의 이미지를 더욱 생생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호러물을 읽을 때 이런 일러스트가 없다면 매우 아쉬울거 같다. 드라큐라 하면 떠올랐던 게리올드만의 모습이 앞으로는 찰스키핑이 묘사한 모습으로 교체될듯하다. 품위와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게리올드만의 모습보다 찰스키핑의 일러스트가 소설의 묘사에 더 가깝게 느껴지고 더 강렬하기 때문이다. 책 전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기와 편지등의 기록으로 되어있는것이 특이하다. 어릴적 읽었던 문고본도 그랬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런 구성은 고전을 별로 읽어보지 못한 내게 무척 생소했지만 색다른 맛을 보여주기도 했다. 1인칭 소설의 구성이면서도 여러사람의 시선에서 볼 수 있는 점이 신선하달까. 저자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참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라 예상된다. 그만큼 구성이 적절하게 잘 짜여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수년전 어느 방송에서 각국의 사람들을 출연시키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들을 갑자기 등장시켜 다양한 반응을 관찰하는 쇼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난다. 흥미롭게도 인종마다 그 반응이 너무나 달랐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얀 소복을 입은 귀신을 보면 기겁을 하는 반면 흡혈귀나 강시등을 보면 그다지 놀라지 않고 오히려 웃기까지 했다. 반면에 서양사람들은 그 무시무시한 처녀귀신에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만져보기 까지 했다. 대신 흡혈귀를 보고 공포의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출연자 모두 당연히 그것들이 가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공포를 느끼는 대상이 다른것이다. 또 강시는 우리의 시선으로 보면 그 자세와 모양이 공포를 느끼기 보다는 귀엽게 느껴지기 때문에 중국사람들도 으레 그럴것이라 생각했다.그러나 중국사람들은 기겁을 한다. 참 재미있는 반응이었다. 드라큘라도 그래서 인지 암울한 분위기에서도 공포스럽다기 보다는 흥미로 다가온다. 실감이 나지 않기 때문일까?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렸을 때는 그래도 공포를 느끼면서 읽었던 그 느낌은 기억난다. 하기사 지금보면 유치하기 짝이없는 전설의 고향이나 공포특급도 전율과 소름을 돋혀가며 읽지 않았던가. 이젠 드라큘라도 그냥 하나의 고전 문학작품으로 읽히는 것이다. 그만큼 감성이 무뎌졌다는 증거가 아닐지 아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