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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강희진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7월
평점 :
수많은 폐인을 양상시킨 온라인 게임 '리니지'는 스타크래프트와 더불어 안해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인기가 있고, 그 인기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주위의 친구들이나 선후배도 그 거의 없는 사람중에 속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단 한번도 리니지에 접속해 본적이 없는 나는 스타크래프트도 거의 십년전에 몇번해본것이 다다. 게임이라곤 전혀 안하는 나지만 그런 나도 게임을 무척 좋아해서 폐인에 가까운 시절이 있었다. 286시절 삼국지2게임에 미쳐서 방학내내 그 게임만 할정도였다. 마우스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숫자로 진행되는 메뉴를 전부 외울 정도로 몰두해 있었다. 그때는 게임을 하는 사람이 그다지 없었는데, 그 시절 너무 몰두를 했기 때문인지 온라인 게임시대가 개막되었을 무렵 수 많은 사람이 게임을 할때 난 거의 하지 않았다. 일부러 안한것이 아니고 별로 흥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책의 저자도 리니지를 해본적이 없단다. 탈북자와 리니지가 소설의 주요 소재인데도 말이다. 해본적 없는 사람이 썼으니 해본적 없는 독자가 읽어도 무방하리라는 생각이 들어 이책을 읽게 되었다. 작가가 리니지를 많이 해봤다고 했다면 이책을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이 게임이야기를 할때처럼 딴세상의 이야기를 듣는 이질감이 느껴질테니. 실제로 게임을 좋아하는 녀석들은 열을 올리며 게임이야기를 하며 즐거워 하지만 그럴때마다 나의 반응은 내가 책이야기를 꺼낼때의 친구들의 반응과 같다.

배고픔에, 억압에, 독재와 세습에 지쳐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있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탈북자는 약 20년전이다. 한 가족이 몽땅 탈북에 성공했는데 언론과 국민의 관심을 받으며 환영받았던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탈북자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 가족에게 상당한 정착금을 주고 백화점에서 필요한 물건도 선물하는 장면이 TV에 잡혔따. 그때 나와 비슷한 또래의 꼬마아이가 88올림픽의 마스코트인 호돌이 인형을 선물받는 것이 샘이 났는지, 철없게도 탈북자 가족이 우리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진심으로 부러워 했다. 그 후로 북한의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탈북자는 점점늘어났고 이제 그때와 같은 환영은 커녕 찬밥대우만 받는다. 그래도 그들은 남한으로 온다. 올때가 여기밖에 없는 것이다. 소설의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위험을 무릎쓰고 남한으로 넘어와 정착금을 받고 살아보려고 하지만 기다리는 것은 냉담한 시선과 차별, 멸시, 사기가 있을 뿐이다. 남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끼리 모여 살면서 어려운 생활을 한다. 죽은 친구의 이름 하림으로 살고있는 철주와 그 또래의 탈북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리니지는 비참한 현실의 탈출구다. 현실은 찌질하지만 게임상에서는 전사, 마법사등으로 화려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쿠사나기라는 닉네임으로 바츠해방전쟁을 이끈 철주는 게임상에선 영웅중의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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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신이 이 세계와 우주를 창조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일에 신은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은 인간의 일에 관여할 능력이 없다. 처음 바츠 서버를 만든 프로그램 개발자들은 바추 공화국에서 이러한 전쟁, 혁명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프로그램 개발자들은 하나의 세계와 물리적 법칙들을 고안해 냈지만, 그 창조주는 서버 안의 독재에도 혁명에도, 반란에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들은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다. 그것은 유저의 몫이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점에서 신은 진정 공평하다.
-p149~150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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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츠 해방전쟁은 실제로 있었던, 아니 리니지 온라인 상에서 실제로 유명했던 전쟁이라고 한다. 소설속에서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 리얼했기 때문에 검색해본 결과, 바츠히스토리라는 리니지 바츠서버의 전쟁사를 다룬 책까지 출간되어 있었다. 그에 관한 글들도 많이 있었는데, 읽어봐도 잘 이해가 안되긴 하지만, 대충 정리하자면 게임상에서 성과 권력을 쥐고 세금을 올려 레벨이 낮은 유저들을 착취했던 DK혈맹에 대해 힘없는 유저들이 합심해서 그들을 몰아낸 사건이라고 한다. 그런데 웃긴것은 DK연맹을 몰아낸 반 DK연맹이 DK연맹이 했던짓을 반복했고, 그때를 틈타 DK연맹은 다시 권력을 장악했다. 이번에는 수많은 유저들, 일명 내복만 걸치고 있다고 해서 내복단인 유저들의 도움을 받지 못해 무너지고 말았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혁명에 성공한 뒤 투표로 나폴레옹의 조카가 대통령에 선출되자, 그가 나폴레옹 3세가 되어 다시 독재를 시작한것과 닮아있다. 게임상에서 조차 권력을 차지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집단이 생겨나는 것을 보니 인간이란 본능적으로 어딜가나 그런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는 것인지 재미있으면서도 씁쓸하기도 했다.
나처럼 리니지의 세계에 대해서 눈꼽만큼도 모르더라도 이 소설을 읽는데는 별 문제가 없다. 게임을 주제로 한 소설이 아니라 탈북자들과 그들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이며 어려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남북한 젊은이들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가상현실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로 한심하게 여겨지곤 한다. 나 또한 어린시절 게임에 빠진적이 있었지만 요즘의 온라인 게임폐인들 만큼은 아니었으므로 그들을 한심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나니 그들이 가상현실에 빠지는 이유가 게임이 재미있고 즐겁기 때문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청년실업이 10%에 육박하는 치열한 경쟁시대에 낙오되고 뒤쳐진 사람들의 탈출구 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인생을 걸고 몰두할만한 일을 찾지 못했고, 그런 것들을 찾게끔 이끌어 주는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기 때문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게임에 몰두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약해서, 남을 누르고 올라서야 하는 경쟁구도가 싫어서, 모질지못해서,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런것은 아닐까. 약한것과 착한것은 다르지만 비슷하기도 하다. 마음약한 사람중에 못된사람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현실은 약한것과 무능력한 것, 모질지 못한것이 그냥 그런성향을 가진것이 아니라 죄다. 모질고 강하고 착취하고 나쁜짓을 해도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용서가 되고 대우받고 존경받는 세상이다. 아무 죄를 짓지 않았어도 직업이 비천하거나 가난하거나, 출신이 다르면 멸시받는 세상이다. 아무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도움도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탈북자나 외국인 노동자, 급료가 적은 아르바이트생은 무시하고 쉽게 화를 내고 멸시한다. 얻어먹을것도 없고 국물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관료나 재벌들에게는 굽신댄다. 그리고 그게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양심에 꺼려지지도 않는다.
어린이들을 악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다른 아이의 약점이나 문제들을 별로 생각없이 놀려댄다. 편부모인 아이, 몸이 불편한 아이, 혼혈아들은 그런 놀림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이성이 생기고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런 현상은 사라진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것은 지식의 많고 적음과는 조금 다른듯이 보인다.사람이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나 행위는 본능적일지도 모르나 나이가 들고 성숙해지면 이성적 의식적으로 그런 성향들을 잠재우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어른이 되어 성숙했다는 것일 것이다. 나이만 많이 먹었다고 어른이 아닌것이다.
한 교수님으로 옳을 의(義)자에 얽힌 이이갸에 대해서 들은적이 있다. 양 양(羊) 자와 나 아(我)로 구성된 이 한자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다.
한 목동이 양을 몰고가서 풀을 뜯어먹이면서 생각했다. 이 양은 나 때문에 먹고 산다고.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양의 젖을 먹고 양의 털을 얻어 먹고 사는 것은 '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가 '양'을 떠받드는 것이 옳다고 해서 '옳을 의'자가 나왔다고 한다.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기업에서 수출도 하고 월급도 주고 경기를 돌아가게 하니까 그때문에 나라가 살고 국민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삼성제품을 줄기차게 이용해주는 국민들이 없으면 삼성은 없다. 삼성이 해외수출로 많은 돈을 벌여들이기 전에 삼성제품을 팔아줬고 지금도 팔아주고 있는 것, 삼성이 돌아가게끔 일해주는 것은 평범하고 약자인 국민들이다. 삼성이 나라를, 국민을 먹여살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삼성을 먹여살리는 것이다. 한번 살펴보라, 집에 삼성, LG등의 국내 대기업 제품을 몇개나 보유하고 있는지. 우리집만 해도 TV, 냉장고, 휴대폰, mp3등 다양한 제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소외받는 사람들, 약자를 위하는 것이 바로 의롭다는 것이다. 사람은 의롭게 살려고 노력해야 할것이다. 하지만 의롭지 못해도 좋다. 최소한도 약자들을 멸시하거나 모진말로 상처는 주지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