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소외된 계층을 대변하는 작가들에 대해 광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소련의 공산주의제도 아래에서 신음하던 사람들... 좋아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현실에 의해 억압당하고 압박을 받던 부류들이다.
그런 나의 편집증적인 집착 속에서 주목받은 작가가 있으니 바로 리처드 라이트다.
리처드 라이트는 1908년 9월 4일 미국의 미시시피주의 내처즈에서 태어났다.( 흠 그러고 보니 1800년대부터 1950년 사이의 작가들을 나는 주로 본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가난한 흑인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서 정규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라이트는 무려 15세에 나이에 사회에 입문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항상 이런 인생을 걷는다.
1.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다.
2. 일찍 사회 속으로 들어간다.
나 역시 정규 교육과는 담을 쌓았고 사회 속으로 빨리 들어간 셈이라서 그런지 리처드 라이트의 이력에 한결 더 마음이 끌린다.
그가 15세에 사회를 나가서 접하게 된 멤파스시는 미국의 남부 사회에 속하는 곳으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실로 극심한 지역이었다. 그곳에서 리처드 라이트가 꼭 지켜야 할 언어들로는 이런 것이 있다.
1. 백인 아이들과 싸우지 말 것.
2. 백인에게 말을 할 때는 반드시 '나리'를 붙일 것. 한마디로 존칭어를 써라는 뜻일 듯.
3. 백인 여자에게는 말도 걸지 말 것.
이상 '흑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윤리'를 배운 라이트는 숨조차 쉴 수 없는 사회에서 탈출을 결심하게 된다. 근데 나 역시 '공고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윤리'가 나름대로 존재했음을 느낀다.
1. 인문계 아이들과 싸우지 말 것.
2. 인문계 여학생과는 말도 하지말 것.
내가 지난 시절을 떠 올리면 흑백차별 속에서 라이트는 살아왔다면 나의 지난 날 인생은 학벌 차별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살아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흠...
하여튼 라이트는 남부 사회를 탈출 해 북부의 사회인 시카코에 정착하게 된다. 이 시카코에 정착한 시기에 대한 자신의 자전적인 소설이 바로 '아메리카의 굶주림'이다.
이 소설이 읽고 무척이나 끌리는 이유는 이러하다.
라이트는 차별 받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겉으로는 겸손한 척을 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듯한 얼굴로 생활을 한다. 혹시나 그가 진보적인 정치 잡지를 읽으면 사람들은 놀란다. 그가 그런 지식을 쌓을 수 있는 머리가 있는지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 그는 자신을 위장한다. 자신의 힘을 의식하지 않은 채 사회의 시선 속에 자신을 맞춘다. 무능하고 저능하며 머리가 텅 빈 흑인으로 말이다.
나는 이런 경험이 있다. 고 3 시절,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시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에 시험 공부를 하러 간 적이 있다. 공고를 다니는 우리들은 학교가 끝나고 가는 길이라서 우리 고교를 상징하는 회색의 교복을 입고 갔었다. 교복의 바지는 회색이고 윗도리는 체크 무늬가 섞인 갈색과 검정색 조합의 마이였다. 나름대로 교복의 색깔은 왜 그럴까라는 진지한 토론을 친구들과 한 적이 있었다. 공고생이 기계를 다루기 때문에 교복색도 기계색과 비슷한 것으로 디자인하지 않았나란 결론과 함께 디자인 감각이 없는 학교 선생들을 한바탕 욕을 하며 토론이 마무리된 기억이 난다.
아무튼 난생 처음 가보는 도서관이라 굉장히 떨리는 마음으로 입장을 했었다. 그리고 공고생이란 티가 나지 않기 위해 숨소리조차 참아가며 앉아있었다. 보는 책도 넘기면 소리가 날까봐 정말 아주 조심스럽게 책을 넘겼었다. 왜 그렇게 주위의 눈치를 보며 앉아 있어야 했는지는 아마도 공부 못하는 공고생이란 이미지 때문에 우리 스스로의 내부 윤리 의식이 발동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다를까 입장한지 30분이 지나자 마자 어떤 남자가 오더니 우리보고 자리가 없으니 나가라는 말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를 입장시킨 사람은 아르바이트 여학생이었고 우리보고 나가란 사람은 그곳을 담당하는 공무원이었다.
"야 너희들 나가야 겠다."
"왜요? 저희는 떠들지도 앉고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요"
"그런게 아니라 저기 밖에 학생들 보이지 고3 수험생들인데 자리가 없다고 하잖니. 너희들이 그렇게 중요한 공부가 아니면 좀 나가 줘야 겠다."
"저희들도 시험이라서 그런거에요. 조용히 할테니 앉아 있게 해 주세요"
"너희들이 공부해서 뭘할려고 그래. 집에 가서 해라. 기껏해야 기계나 만질텐데 설명서만 볼 줄 알면 되지"
거기까지 들은 내 친구는 얼굴을 험하게 붉히며 드러워서 간다고 하며 나가버렸다. 나 역시 더 이상의 대화는 더 비참해질 것 같아 나와 버렸다.
몇년이 지난 지금도 그 도서관은 분명 시에서 운영하지만 가지를 않는다.
리처드 라이트의 소설 속에서 나와 공명하는 것은 분명 '차별'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인간은 아주 못된 습성이 있다. 차별하는 것.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같은 인간을 차별할 수 있는 것일까.
지금도 삶의 순간 순간 마다 그런 차별을 경험하고 있지만 어린 시절에 받았던 그 상처는 깊숙하게 나의 기억 속에 아물지 않고 있다.
라이트의 생애는 마지막에는 비참하였다. 그런 것이 이 책을 읽으며 받았던 감동을 약화시키는 역할도 했다. 라이트가 마지막까지 투쟁했다면 패배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한결 깊이 가는 그런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