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유전자 - 선천적 지능을 압도하는 후천적 엘리트들의 환경 설계 법칙
다나트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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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형제라는 원석들을 보석으로 다듬어 주고 싶은 나는 매일 밤 나의 전공 서적을 뒤적이며 깊은 좌절의 늪으로 침잠했다. 수의사이자 약리독성학 석사인 나에게 세상은 늘 인과관계가 명확한 실험실과 같았다. 특정 약물이 체내에 들어가면 정해진 수용체에 결합해 독성을 내거나 치료 효과를 내듯, 나의 치열했던 유전자가 결합한 세 아이 역시 완벽한 엘리트의 궤도를 그리며 자라날 것이라 자만했다. 현실은 가혹(?) 하다. 첫째, 둘째, 막내 모두 소아청소년과에서 ADHD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밀려오는 죄책감 속에서 마주한 거울, 그 속에는 ADHD를 물려준 나 자신이 서 있었다. 겉으로는 수의사에 석사 학위까지 따내며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엘리트지만, 내면은 평생을 충동성과 과몰입, 극심한 주의력 결핍과 싸워 엉망진창을 조금 극복했던 것이다. 내가 물려준 유전적 결함이라는 무거운 부채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물려받은 자산이 전혀 없는 철저한 '흙수저'였다. 남들이 대치동의 값비싼 사설 인프라와 고액 과외로 아이들의 앞길을 비단길로 깔아줄 때, 나에게는 그들을 지원할 경제적 여력이 조금도 없었다. 오직 내 지독한 몰입과 뇌 하나로 흙수저의 한계를 뚫고 수의사가 되었듯, 이제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자산은 오직 나 자신의 '시간'뿐이었다. 대치동의 학원가 대신 아빠라는 가장 강력한 인적 자원을 아이들의 삶에 전부 갈아 넣고 '올인'해야 하는 상황. <엘리트 유전자>는 나와 우리 삼형제의 인생을 완전히 뒤흔드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전국 70여 개 대학 캠퍼스를 발로 뛰며 분석한 상위 1%의 삶을 통해, 그들을 빛나게 만든 진짜 원동력이 결코 타고난 DNA나 부모의 재력이 아님을 증명한다. 책 속에서 발견한 ‘유전자는 시작점일 뿐, 종착지를 결정하는 것은 후천적으로 구축된 시스템이다’라는 문장은 나를 각성시켰다. 생각해보면 흙수저였던 나 역시 돈이 많아서 사교육을 받아 쉽게 수의사가 된 것이 아니었다. 결핍이라는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 나 자신을 끊임없이 몰아붙였던 강제적인 시스템이 나를 만들었을 뿐이다. 생체 내 유전자 발현이 외부 자극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절되듯, ADHD와 흙수저라는 이중의 취약성을 가득 안은 우리 부자(父子)를 바꾸는 본질 역시 자본이나 타고난 뇌의 결함이 아니라, 그 결함을 완벽히 상쇄시키는 후천적 노력과 이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에 있었다.

가장 강력한 해법은 바로 환경 설계다. ‘인간은 의지로 버티는 존재가 아니라, 환경에 지배당하는 존재다’라는 말은 나와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구원이다. 도파민 분비가 극도로 부족한 ADHD의 뇌는 인간의 유약한 의지나 아빠의 신경질적인 잔소리로 절대 통제할 수 없으며, 값비싼 학원에 보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특정 세포를 배양할 때 배지의 성분이 세포의 운명을 바꾸듯, 돈 대신 내 육체와 시간을 완전히 올인하여 우리의 공간과 인프라를 완전히 재설계해야했다. 나는 삼형제에게 "집중하라"는 무의미한 압박을 과감히 멈추고, 나와 아이들의 시야를 어지럽히는 집안의 모든 자극 요소를 '시각적 독성 물질'로 규정해 격리했다. 거실에는 오직 책과 은은한 조명만 존재하는 거대한 서재형 테이블을 놓았다. 약리독성학을 연구하듯 철저히 통제된 인프라 속에서, 아빠인 내가 퇴근 후의 모든 개인 시간과 주말을 포기하고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공부하는 페이스메이커가 되자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거실로 모여들었다. 돈을 바르는 대신 아빠의 밀착형 환경 통제를 적용하는 순간, 불안정한 집안의 생태계가 마침내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엘리트란 완성된 유전적 변이체나 거대 자본의 결과물이 아니라 매일 진화하는 성장 시스템 그 자체였다.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바꾸는 유일한 열쇠는 매일 반복되는 행동의 메커니즘을 시각화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키워드로 '도파민 최적화 시스템'을 만들고 실행하였다. 뇌의 호르몬이 항상성을 유지하듯, 즉각적인 보상이 따르는 '15분 타임박스 극단적 몰입법'과 매일 아침 수행할 일을 직관적으로 배치하는 '시각적 체크리스트'가 삼형제의 일상에 완벽하게 이식되도록 노력했다. 기억력이 취약하고 충동적인 나와 삼형제에게 아빠가 매일 밤 함께 체크해 주는 이 외재화된 시스템은 우리 가족이 취약한 ‘전두엽'의 대체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다. 막대한 사교육비 대신 아빠의 '시간 올인'이라는 피드백 루프가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리자, 나와 아이들의 정신 사납게 무기력하던 삶이 주도적이고 활기찬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임상 지침서이자 치열한 생존 전략서였다. 유전과 자본이라는 생물학적·사회적 결정론에 갇혀 절망하기보다, 아빠의 시간을 갈아 넣은 정교한 인프라와 시스템을 통해 후천적인 엘리트로 진화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나와 똑같은 취약성을 공유했기에, 나는 우리 아이들을 지구상에서 누구보다 완벽하게 가이드할 수 있다. 산만한 유전자가 오히려 거대한 창의성과 폭발적인 과몰입의 에너지로 발현될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나의 모든 시간을 기꺼이 바칠 것이다. 가난과 결함이라는 독성 물질을 이겨내고, 우리 아들 삼형제는 반드시 후천적 엘리트로 피어날 것이다.

이 리뷰는 리뷰의숲 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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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지만 로망 찾아 떠납니다 - 좋아하는 일들로 나를 채운 나트랑 한 달 살기
김세현(클로드) 지음 / 책과나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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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머릿속은 '해야 할 일'들로 가득 찬다. 그 안에 오로지 나를 위한 일을 몇 가지가 있을까? 사회적인 관계 속에 살기 때문에 ‘없다.’고 볼수 도 있다. 세 아들의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감당하느라 온몸의 진이 빠지고, 직장에서는 팀장으로 가정에선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채 숨 가쁘게 달려야 하는 일상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이름 석 자 대신 ‘삼형제 아빠’로만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어깨로 느껴지는 책임감이라는 무게, 번아웃의 문턱 어디쯤 에서 숨을 헐떡이던 내게 <엄마지만 로망 찾아 떠납니다>는 완전히 꺼진 줄 알았던 나의 꿈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고, 또 다시 타오르게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주었다. 또 저자의 경험과 경험을 통한 변화에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육아와 일에 치여 공황장애라는 마음의 병을 얻었던 저자가 베트남 나트랑으로 떠나며 시작되는 워킹맘의 번아웃 극복기, 자기 구제이야기 이다. 아이의 영어 캠프를 계기로 나트랑 한달 살기를 감행하며, 하루 하루를 무겁게 짓누르고 지치게 만든 의무 방어로서의 삶을 벗어난다. 요가, 산책, 카페 투어 같은 소소한 나만의 위시리스트로 채워 나간다.(to do list가 wish list로)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거실에서 홀로 나트랑의 푸른 바다를 걷는 저자의 발걸음을 쫓았다. 부러움과 함께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해야 할 일로만 가득 찬 삶에서, 하고 싶은 일로 하루를 채우는 연습을 시작했다.’ 이 말을 읽는 순간, 나의 공허함의 원인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 역시 삼형제를 위해, 가정을 위해 완벽한 아빠가 되려고 발버둥 치며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완전히 잊고 살았다. 엄마라는 이름 뒤에 숨겨두었던 로망을 꺼내 든 저자처럼, 나 역시 아빠라는 역할 뒤에 갇힌 나의 로망을 꺼낸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list를 만들고 행동하는 나를 다시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 결코 이기적인 현실 도피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가족을 위해 나 홀로를 지우고 나를 후순위로 미루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믿었던 나의 고정관념을 부셔버렸다. 내 마음의 창고가 텅 비고 여유가 없는데 어떻게 아이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줄 수 있을까. 나를 돌보는 시간은 가족을 더 많이 깊이 사랑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충전 시간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과 용기를 얻었다. 당장 나트랑으로 한 달 살기를 떠날 수는 없다. ‘삶을 바꾸는 것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내게 좋아하는 일을 기꺼이 허락하는 마음이다.’ 현실 속에서 작은 로망들을 허락하는 법을 배웠고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wish list 작성부터)

삼형제와 함께 또는 나 홀로 한 달 동안 낯선 곳에서 살아보는 꿈을 꾼다. ‘아빠지만 로망 찾아 떠나고 싶다’

이 리뷰는 몽실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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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발자국이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리니 - 상하이와 하얼빈, 독립의 길 위에서 아이들을 지킨 교사들
전은경 외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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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 아이의 숨소리가 고르게 울려 퍼지는 깊은 밤, <나의 발자국이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리니>를 읽는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상하이에서 하얼빈으로 이어지는 독립운동의 길을 따라 걸은 여덟 명의 보건교사들의 기록이다.

어느덧 장난꾸러기 삼형제의 아빠가 되고 보니, 책장을 넘기는 내내 기행문 속 학생들의 모습에 내 아이들의 얼굴이 끊임없이 겹쳐 보였다. 특히 최근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과정에 도전하겠다며 두꺼운 기본서를 넘기던 중2 둘째 녀석의 진지한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시험 합격을 넘어, 녀석이 마주하고 있을 역사의 무게가 생생하게 다가왔고, 삼형제의 아빠로서 거대한 감사함과 책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거리를 마음껏 뛰놀고, 제 이름으로 당당하게 꿈을 꾸며, 자주 국가의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 평범한 일상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100년 전, 차가운 타국의 바람 속에서 오직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자신의 청춘과 목숨을 내던지고 희생하신 선열들이 계셨기에 가능한 선물이다.

단순히 과거의 흔적을 좇는 여행에 머물지 않는다. 상하이 임시정부의 비좁은 계단을 오르고 하얼빈의 매서운 추위를 견디는 여정 속에서, 교사들은 한 손에는 응급 약품을 들고 끊임없이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을 살핀다. 이처럼 역사를 배우는 일과 사람을 돌보는 일의 융합이라는 핵심 문장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사춘기를 지나며 부쩍 자아가 강해진 중2 아들에게, 그리고 인생의 큰 시험을 앞둔 고1 큰애와 한창 자라나는 초5 막내에게 역사를 가르친다는 것은 시험 문제나 연도를 외우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 담긴 뜨거운 인류애와 생명의 가치를 전하는 일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행한 세심한 돌봄과 아이들과의 동행은 거친 세상이라는 무대로 나아가는 아이들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주고자 하는 나의 마음과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었다.

집에 돌아와 곤히 잠든 삼형제의 머리를 차례로 쓸어 넘겨본다. 고1, 중2, 초5라는 각기 다른 시절을 지나고 있는 세 녀석은 앞으로도 저마다의 속도로 자라날 것이다. 세상은 끊임없는 경쟁과 합격이라는 기준으로 아이들을 다그치겠지만, 나는 이 책의 고백처럼 우리 아이들이 속도에 매몰되지 않고 방향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하는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소망한다. 한능검 심화 시험을 준비하는 둘째에게도 ‘단순히 급수를 따는 결과보다, 독립운동의 길을 따라 걷는 것 같이 기억하고 가슴에 새기는 진짜 역사 공부’를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가 훗날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백범 김구 선생이 좌우명으로 삼았던 서산대사의 문장처럼, 이제 아빠인 내가 먼저 올바른 길을 걸어가겠다는 준엄한 다짐을 품는다. 발자국이 이정표가 된다는 것은, 결국 내 삶의 모든 궤적이 아이들이 평생 바라볼 나침반이 된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보다 뒷모습을 보고 자라기에, 말로만 바르게 살라 다그치는 아빠가 아니라, 눈 덮인 거친 길을 묵묵히 먼저 걸어가며 발자국을 남겨 세 아들에게 '이 길로 오면 안전하다'고 몸소 삶으로 증명하는 아빠가 되고 싶다. 훗날 세 아들이 삶의 갈림길에서 방황할 때, 아빠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바르게 걸어왔던 그 발자국들이 따뜻한 이정표가 되어줄 수 있도록 말이다.

아이들에게 이 땅을 지켜준 선열들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도록 잘 가르치는 것, 그리고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당당하게 걸어가도록 격려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이 삼형제 아빠인 나에게 남겨준 소중한 숙제이자 이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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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동안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
라비니야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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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지만 첫 문장 앞에서 늘 머뭇거리는 1인의 시선으로, <쓰는 동안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를 펼쳐 읽었다.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속에는 말로 다 뱉지 못한 감정과 상처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애써 모른 척 묻어두었던 슬픔과 외면하고 싶었던 기억들이 일상의 틈새마다 불쑥 튀어나와 나를 흔들곤 했다. 이 뒤엉킨 마음을 어떻게든 정리하고 싶어서,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 늘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있었지만, 혼자만의 글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누가 읽어도 거창하고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번번이 첫 발을 떼지 못했다.

‘글쓰기의 완벽함보다는 꾸준한 태도가 중요하며, 삶을 기록하는 것이 곧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문장은 마치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저 지금의 서툰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응원한다.

내가 왜 그토록 글을 쓰는 이유를 찾아 헤맸는지 알게 되었다. 나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내면의 아픔을 달래는 자기치유의 과정이고, 스쳐 지나가는 매일의 흔적을 붙잡아두는 기록이다. 머릿속에만 머무는 추상적인 불안과 분노를 하얀 종이 위에 솔직한 고백으로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시각화를 통해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성적인 힘이 생긴다. 결국 내가 글을 쓰고 싶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무너진 삶의 중심을 스스로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함이다.

저자가 끊임없이 글쓰기를 권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일상의 틈새에서 적어 내려가는 한 줄의 문장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 짐처럼 쌓여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나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으로 변화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과거의 상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용기를 얻게 된다. 거창한 문학적 재능이나 기술이 없어도 괜찮다. 매일 조금씩 나의 언어를 성실하게 쌓아가는 태도, 그 완벽보다 꾸준함이 우리를 어른으로 성장시킨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꺼내 쓰기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의 생각 주머니, 이야기 주머니가 바닥을 드러내는 메마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읽기가 중요하다. 타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과 지혜를 내 안으로 채워 넣는 과정이다. 좋은 글을 읽으며 내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마음의 근육을 키워 내 글도 더 깊고 풍성해질 수 있다. 읽기는 쓰기를 위한 화수분이다.

내면을 채우는 읽기를 바탕으로, 꾸준히 오래 쓰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거창한 목표 대신 '매일 같은 시간, 책상 앞에 앉아 딱 세 줄만 적기'처럼 아주 작은 루틴부터 시작할 것이다. 글이 잘 써지는 날이든, 한 글자도 나아가지 않는 날이든 상관없이 그저 쓰는 행위 자체를 일상의 당연한 습관으로 만드는 것. 문장의 완성도에 연연하며 스스로를 검열하기보다, 서투른 문장마저도 내 성장의 기록으로 너그럽게 안아주는 것. 그것이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나만의 글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유일한 비밀임을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글로 채워질 빈 공간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글쓰기는 나를 증명하는 과정이 아니라 나를 다독이는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첫 문장이 투박하고 서툴지라도, 내 안을 책으로 채우고 그것을 다시 나만의 문장으로 온전히 기록하는 용기를 내본다. 매일 읽고 나의 삶을 기록해 나갈 때, 나 역시 쓰는 동안 조금씩 진짜 어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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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가만히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겠는가 ㅣ 고전부적 1
이방원 지음 / 흑막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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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회사 로비에 들어설 때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좋은 사람의 가면'을 고쳐 쓴다. 상사의 무리한 부탁에는 거절 대신 어색한 미소를 짓고, 동료의 무책임한 업무 떠넘기기 앞에서도 평판이 두려워 군말 없이 업무를 인수한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타협과 명분은 늘 그럴듯해 보였지만, 퇴근길 지친 내 모습은 그저 남의 일에 시간을 바치며 서서히 마모되어 가는 '조직의 구성원'일 뿐이었다. [1]

<고전부적 : 어찌 가만히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겠는가>는 내 화두인 가면에 균열을 내기에 충분했다. 이 책은 고려말 조선초의 거대한 혼란 속에서 가만히 앉아 운명에 순응하기보다, 스스로 판을 설계하고 과감히 움직여 시대를 뒤흔든 태종 이방원의 삶과 철학을 담고 있다.

그가 변방의 거친 무인 가문 출신이었음에도, 집안의 한계를 깨부수고 스스로 학문에 매진하여 형제 중 유일하게 문과 급제를 달성했다는 사실이다. 칼만 휘두를 줄 알았던 거친 가문에서 홀로 붓을 쥐고 중앙 조정의 판도를 읽어내며 철저하게 실력을 증명해 낸 그의 과거 급제 사건은, 조직의 환경이나 핑계 뒤에 숨어 성장의 기회를 포기하던 내 안일함을 거세게 흔들었다. 이방원은 단순히 칼을 잘 쓰는 혁명가가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생존 지형을 완벽히 파악하고 주도권을 쥔 인물이었던 것이다.

송곳 같은 문장을 말한다. ‘칼은 휘두를 때만 칼이다. 휘두르지 않는 칼은 그저 쇠붙이일 뿐이다.’ 그동안 내가 조직에서 웅크리고 있던 이유는 착해서가 아니라, 행동하지 않는 나약함을 숨기기 위한 핑계였음을 뼈아프게 깨닫는다. 직장에서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태도는 명분이라는 껍데기에 갇혀 정작 내 안의 칼을 쇠붙이로 썩히고 있던 것과 다름없었다.

이방원의 행적을 관통하는 핵심은 명분보다 철저한 실행과 실리였다. 그는 정몽주 제거와 왕자의 난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결코 망설이지 않았다. 만약 그가 세상의 비난이 두려워 타협하거나 착한 군자로 남으려 했다면 조선의 기틀을 세운 과감한 결단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철저한 현실주의자인 그의 행보는 내게 진짜 리더십이란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과감히 움직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이제 나는 이 지독한 좋은 사람의 가면을 벗고자 한다. 착한 구성원으로 타인에게 끌려다니는 것을 그만두고 내 삶의 주도권을 쥐기로 결심했다. 무인 가문의 이방원이 스스로 붓을 들어 관습을 깨고 길을 열었듯, 나 역시 부당한 요구에는 단호히 거절의 칼을 휘두르고 회사에서 진짜 내 커리어를 쌓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설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핑계를 대며 도망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스스로 판을 짜고 바꾸는 주도적인 삶을 되찾아 다시 시작하려 한다.

군주의 일대기를 해설하는 영웅담에 머무르지 않고, 거대한 조직 속에서 맹목적으로 살며 진짜 나를 잃어버린 직장인들에게 던지는 경고이다. 착한 직장인이라는 허영과 가면을 벗어 던지고, 주도권을 쥔 단단한 내면을 만들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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