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크레이머의 시장을 이기는 투자 - 펀드 1개, 주식 5개, 헤지 수단 1개면 충분하다!
짐 크레이머 지음, 이주영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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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술자리에서 동료가 툭 던진 말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 “개인은 절대 시장을 이길 수 없어. 월급쟁이가 어떻게 주식으로 돈을 벌겠냐?” 그 말은 투자에 무지했던 나에게 훌륭한 핑계였다. 어느덧 50대 중반, 내게는 번듯한 주식 계좌도 자산도 없다. 매달 월급으로 아이들 뒷바라지하고 공과금을 메우다 보니 인생의 황혼기에 섰다. 투자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게 돈을 지키는 길이라 믿으며 시장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살아온 세월이었다. 

하지만 은퇴가 현실로 다가오자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정말 안전한 선택일까?’ 자산은 없고 투자는 두려운 짐 크레이머의 <시장을 이기는 투자>를 읽게 되었다. 단순히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기술서가 아니었다.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소외되어 가던 평범한 개인이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하고 경제적 주체성을 되찾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자본가로의 체질 개선 지침서’였다. 

저자는 시장의 무서움을 인정하며 ‘5-1-1 법칙’을 제안한다. 자산의 50%는 시장 평균을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에 넣어두라는 조언은 “시장을 이길 수 없다”던 격언을 지혜롭게 품는 방식이었다. 자본주의의 장기 우상향에 내 자산을 편승시키라는 말에 확 끌렸다. 나머지 50%로 직접 고른 5개 개별 종목에 투자해 시장을 넘어서는 기회를 모색하고, 추가로 10%를 변동성에 대비할 1개의 헤지 자산에 배분하라는 공식은 투자가 ‘체계적인 위험 관리’임을 보여주었다. 

특히 ‘단기적인 시장 소음을 차단하고 본질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는 깊은 새겼다. 매일의 주가 등락에 일희일비하는 뇌동매매를 버리고 위대한 기업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는 철학은 묵직했다. ‘매수 후 보유가 아니라 매수 후 숙제를 하라’는 조언도 마찬가지였다. 주식을 방치하는 게으름을 버리고 매주 기업의 사업 현황을 점검하라는 조언이다. 

돈이 없어서, 시장이 험해서 안 한다는 핑계 뒤에는 공부하기 싫은 게으름과 두려움이 있었다. 회사 일에는 눈에 불을 켜고 매달리면서, 정작 내 삶을 지탱할 경제적 공부와 점검에는 무관심했다. 남들의 정보나 팁을 맹신하는 습관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투자의 본질임을 저자는 담담하게 짚어주었다.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나는 대박을 꿈꾸지는 않는다. 시장은 여전히 두렵지만 더는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 한다. 시장을 이긴다는 것은 타인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오만이 아니라, 파도 속에서도 내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용기임을 배웠기 때문이다. 시장을 이길 수 없다면 함께 걷는 법부터 배우면 된다.

이 책은 변동성 큰 시장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초보 투자자와 은퇴를 앞두고 길을 잃은 직장인들에게 권할 만하다. 장의 소음을 차단하는 단단한 투자 안목을 배우고, 즉시 활용 가능한 체계적인 자산 배분 전략을 확실하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리앤프리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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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할 수 있지만, 다 하지 않습니다
온선(온라인선생님) 지음 / 모티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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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는 ‘얼마나 더 할 수 있는가’만을 증명하며 살아왔다. 오십 대 중반에 접어들기까지 직장 안에서의 삶은 늘 더 많은 성과와 빠른 속도를 요구하는 경쟁의 장이었다. 새로운 기술이 쏟아지고 디지털 도구들이 발전할 때마다 뒤처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AI가 번거로운 작업을 순식간에 해결해 주는 시대가 왔을 때, 나는 잠시 숨을 돌리는 대신 ‘남는 시간에 무엇을 더 해내야 하는가’를 먼저 고민했다. 나에게 능력이란 언제나 한계를 시험하고, 빈 공간을 일로 빼곡히 채워 넣는 효율성의 다른 이름이었다. 

<더 많이 할 수 있지만, 다 하지 않습니다>는 이처럼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나에게 숨통을 틀 여유를 주었다. 저자는 무엇이든 더 빠르고 많이 해낼 수 있게 된 과잉 생산성의 시대에, 역설적으로 더 조급하고 지쳐가는 우리에게 ‘기술이 빈 화면을 채우는 시간을 줄여주었지만, 우리는 그 아낀 시간마저 또 다른 일과 조급함으로 다시 채우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질문을 준다. 타인의 속도에 내 보폭을 맞추느라 번아웃을 겪는 대신, 더 해낼 수 있는 순간에도 스스로 멈출 줄 아는 비움의 용기가 진짜 실력이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할 수 있는 기회가 무한히 널려 있는 시대일수록, ‘더 해내는 능력’보다 ‘하지 않을 것을 솎아내고 멈출 줄 아는 능력’이 진짜 실력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 앞에서 나는 오십 대 중반이라는 내 인생의 위치를 돌아보게 되었다. 정년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도 여전히 젊은 세대의 속도를 따라잡으려 조바심을 내고, 내 존재 가치를 오직 생산성으로만 증명하려 했던 모습이다.

책을 읽고 난 지금 나는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을 내려놓고 삶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다짐을 마음에 새겼다. 

첫째, 출근길에 무작정 투두 리스트를 채우기보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솎아내려 한다.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에너지를 낭비하던 불필요한 일들을 비워낼 것이다. 둘째, 회사에서 ‘더 많이 아는 선배’가 되려 애쓰기보다 후배들이 마음껏 역량을 펼치도록 한 걸음 물러서서 조력하겠다. 기술의 속도는 그들이 더 빠를지 몰라도 일의 완급을 조절하고 멈추어야 할 때를 아는 지혜는 경험 속에 축적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은퇴 이후의 어디까지 일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나만의 일 기준을 세워나갈 것이다. 직장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져도 세상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 속도대로 지속할 수 있는 단단한 힘을 기르겠다는 다짐이다. 

이 책은 성과 압박에 시달리는 직장인과 은퇴 후 일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중장년층에게 주체적인 삶을 살도록 이끌어주는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무한한 생산성의 굴레에서 벗어나 스스로 일의 크기를 결정하고, 멈춤을 통해 단단한 내면의 평온을 얻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얼마나 더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어디까지 할 것인가’를 스스로 정할 때 삶의 주도권이 찾아온다.” 이제는 세상의 속도가 아닌, 나만의 보폭으로 걸어갈 시간이다. 더 많이 할 수 있어도, 다 하지 않을 자유가 우리에게는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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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이 된다 - 돈의 본질을 꿰뚫는 담대한 선언
야마구치 요헤이 지음, 박선영 옮김 / 한빛비즈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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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돈이된다#야마구치요헤이_박선영#한밫비즈#리뷰의숲#리뷰의숲서평단
 
어느덧 오십 줄에 접어들었다. 20대 청춘을 다 바쳐 들어온 직장에서 부장이라는 명함을 달고 있지만, 요즘 내 마음속에는 늘 서늘한 바람이 분다. 정년퇴직이라는 단어가 남의 일 같지 않게 다가올 때마다,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찍히는 월급에만 의존하고 안주했던 시간들에 대한 후회와 서늘한 현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고민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주식 차트를 들여다보고, 부동산 급매물을 찾아보며 노후 준비라는 이름의 재테크를 해보지만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돈을 쫓아갈수록 돈의 그림자는 더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야마구치 요헤이의 저서 <나는 돈이 된다> 마음을 사로잡는 제목의 책을 읽었다. 
'돈에 휘둘리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스스로 돈이 되는 것이다.' 책의 첫 장을 넘기자마자 마주한 이 대담한 선언은 마치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주었다. 지금까지 나는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 혹은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와 같은 외부적인 기술에만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으로 살아남는 법은 외부의 자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가치를 창출하는 자산 그 자체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때 문득 마음 한구석에서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스스로 돈이 된다’는 건, 결국 피카소처럼 타고난 창조적 재능이나 특별한 기술을 가진 천재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평생을 조직의 부품처럼 정해진 시스템 속에서만 살아온 나 같은 평범한 직장인이, 이제 와서 무슨 수로 창조성을 발휘해 스스로 가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막막함과 회의감이 밀려왔다. 기업가치 평가 전문가인 저자의 처방은 무척이나 현실적이고 정교했다. 핵심은 외형적인 ‘손익계산서’의 삶에서 내실 있는 ‘대차대조표’의 삶으로 시선을 전환하는 데 있었다. 매달 얼마를 벌고 얼마를 쓰는지 보여주는 손익계산서적인 삶은 직장인의 삶과 꼭 닮아 있다. 월급이라는 일시적인 수입에 기대어 살다가, 퇴직과 동시에 그 손익계산서는 멈춰버린다. 반면 대차대조표는 보이지 않는 내면의 자산, 즉 내가 가진 경험과 핵심 역량, 그리고 오랜 시간 쌓아온 사람들과의 신용을 뜻한다. 
저자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만이 창조가 아니라고 말한다. 나 자신이 진정한 자산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적 재테크보다 나만의 신용과 인간관계를 ‘자산화’해야 하며, 당장 눈앞의 수입에 집착하기보다 시간이 흘러도 고갈되지 않는 내면의 자산을 탄탄하게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사회적 시스템과 연결해 ‘가격’으로 치환하는 감각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생각한 창조성은 오해였다. 3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하며 온갖 위기를 넘기고, 사람들과 부딪치며 쌓아온 노하우와 문제 해결 능력, 성실함이야말로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대차대조표적 자산이자 진정한 창조성의 씨앗이었다. 다만 회사라는 간판 아래 묻혀 있어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는 이 보이지 않는 가치를 어떻게 세상이 필요로 하는 신용과 연결하고 가격으로 치환할 것인가, 즉 책이 제시한 가치 창출의 메커니즘을 배우면 되는 문제였다. 
이제 나는 주식 창을 닫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퇴직은 인생의 종말이 아니라, 회사의 대차대조표에서 독립해 나만의 대차대조표를 온전히 가동하는 시작점이다. 스스로 돈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천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주권을 다시 찾아오는 일이다. 돈의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서, 내 안에 잠든 가치의 원천을 깨우는 것. 50대의 늦깎이 공부는 이제 시작이다. 불안했던 노후가 비로소 내가 채워갈 나만의 자산으로 설레기 시작한다. 
이 책은 나와 같이 미래가 불안한 직장인이나 주체적인 부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싶은 이들에게 강력히 권하고 싶다. 책을 통해 막연한 재테크 요령 대신 내 삶의 무형 자산을 '신용과 시스템'으로 연결하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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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의 가장자리 - 부서진 유년의 파편에서 출현한 신경과학자 이야기
데이비드 수실로 지음, 이충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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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 과정 동안 내가 마주한 세계는 직경 수 센티미터의 투명한 플라스틱 웰 플레이트 속에 있었다. 태아 생쥐의 뇌에서 분리한 신경세포들을 체외 환경에서 배양하고, 그것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 그리고 그 유약한 신경망에 약물을 투여했을 때의 변화를 정량화하는 것이 내 석사학위 논문의 전부였다. 당시 나를 괴롭혔던 것은 생명체의 '불확실성'이었다. 세포들은 매번 동일한 조건에서도 어떤 날은 역동적이었고 어떤 날은 사멸했다. 통제 불가능한 이 무질서는 내게 스트레스의 근원이었다.

세계적인 계산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수실로의 회고록 <카오스의 가장자리>를 읽으며 나는 강렬한 데자뷔를 느꼈다. 부모의 약물 중독과 방임, 보육원을 전전한 저자의 유년기는 독성 약물에 파괴되던 나의 세포들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창발', 즉 ‘하위의 단순한 개별 요소들이 결합하여 상위의 완전히 새로운 고차원적 지능을 만들어내는 현상’을 통해 삶의 절망을 과학적 경외감으로 승화시킨다. ‘어떻게 그 악조건을 뚫고 성공했는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뇌 속 뉴런들이 얽혀 '생각'을 창발하듯, 유년의 상처와 우연, 호기심이 교차하며 '나라는 자아'를 창발해냈다고 답한다. 낡은 컴퓨터라는 질서 속에서 코딩을 배우며 구글과 메타의 수석과학자로 스스로를 진화시킨 것이다.

현재 바이오 스타트업의 품질관리(QC) 팀장으로 일하며 나는 매일 '질서와 통제'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의약품 안전성을 위해 모든 공정을 규격화하는 것이 내 일이다. 하지만 저자의 메시지를 마주하며 품질관리 이면의 본질을 깨닫는다. 인공 신경망이든 우리의 삶이든, 완전히 고정된 질서도 무너진 무질서도 아닌 그 경계면인 '카오스의 가장자리'에 있을 때 가장 풍부한 지능을 창발한다. 너무 많은 통제 속에서는 아무것도 창발하지 않으며, 통제가 없으면 무너진다. 생명과 인간의 영혼은 오직 이 위태로운 경계면 위에서만 역동적으로 성장한다.

비슷한 상처를 공유했으나 비선형적인 삶의 경로 속에서 비극적인 궤적을 살다간 저자의 누나 이야기를 보며 생명을 대하던 숙연함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저자는 우리의 상처가 성취로 지워지지는 않지만, 그 상처마저 나를 구성하는 복잡계의 일부로 껴안을 때 진정한 자아가 창발된다고 말한다.

이 책은 복잡계 과학의 언어로 인간의 영혼을 위로하고, 스스로 삶을 재창조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뜨거운 고백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과거의 불행이라는 초기 조건이 삶을 완전히 결정짓지 않으며, 인간은 혼돈 속에서도 스스로를 진화시키는 복잡계 존재라는 점을 배웠다. 그리고 품질관리 업무와 일상의 변동성 앞에서도 완벽한 통제 대신 '카오스의 가장자리'가 가진 역동성을 포용할 때 비로소 진정한 성취와 성장이 창발된다는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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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을 읽은 척할 수 있는 책
사라시나 이사오 지음, 이진원 옮김 / 까치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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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든 깊은 밤, 붉은 응급실 불빛 아래서 숨을 헐떡이는 반려견과 반려묘들의 눈을 바라보며 사투를 벌인다. 주말 야간당직 수의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의 가장 고요한 시간에 가장 치열한 생명의 전선을 지키는 일이다. 긴박한 응급 처치가 끝나고 잠시 숨을 돌리는 새벽녘, 동물의 생로병사를 돌보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생물학의 뿌리라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궁금하지만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시험을 치르기 위해 외웠던 ‘자연선택’이나 ‘핀치새 부리’ 같은 파편적인 기억으로만 남았고, 600페이지가 넘는 벽돌 책을 읽어볼 엄두는 내지 못했던 것이다. <종의 기원을 읽은 척할 수 있는 책>은 <종의 기원>에 대한 명쾌한 답으로 최고였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쓴 진짜 목적은 생물학의 모든 복잡한 수수께끼를 단 하나의 단순한 이론으로 설명하는 통일 이론을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다윈이 책의 전반부에서 사육 동물과 품종 개량 이야기를 지루할 정도로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인간이 목적을 갖고 형질을 솎아내는 ‘인위선택’을 징검다리 삼아, 대자연 역시 환경에 적응한 개체만을 남기는 단 하나의 원리인 ‘자연선택’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주말 야간당직을 서며 조우하는 수많은 품종견들의 유전적 다양성과 특이 질환들이 다윈의 품종 개량 논리와 겹쳐 보이며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과연 <종의 기원>은 종교를 부정하는 차가운 ‘과학’인가, 아니면 새로운 신의 섭리를 증명하는 ‘신학’인가? 저자가 요약해 준 다윈의 진짜 속내는 흥미롭게도 그 중간 어디쯤에 있었다. 다윈은 신이 지구상의 수백만 종을 일일이 빚어냈다는 문자 그대로의 신학을 반박했지만, 신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전능한 창조주라면 생명체 하나하나를 번거롭게 직접 만들기보다, ‘자연선택’이라는 단 하나의 위대한 법칙을 세워 생물이 환경에 맞춰 스스로 변형되도록 설계했을 것이라 주장했다. 즉, 다윈에게 진화론은 신의 설계를 정교한 과학의 언어로 번역해 낸 일종의 ‘새로운 신학’이었던 셈이다. 

저자는 이 거대한 과학적, 신학적 가설을 현대 멘델 유전학과 게놈(DNA) 데이터로 완벽하게 보완하며, 고전이 어떻게 현재진행형으로 살아 숨 쉬는 지성이 되었는지 보여준다. ‘이 행성이 중력의 법칙에 따라 도는 동안, 생명은 그토록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운 형태로 끝없이 진화해왔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종의 기원>의 이 최고의 한 문장이 주는 전율은 대단했다. 인간보다 수만 배 뛰어난 개나 고양이의 감각은 누군가 급조해 낸 열등하거나 우월한 피조물이 아니다. 그토록 단순한 시작에서 출발해, 대자연이 허락한 법칙 안에서 스스로 아름답게 적응해 낸 경이로운 진화의 증거들이다. 

<종의 기원>이라는 고전 읽기에 도전할 용기와 시간을 내지 못했던 바쁜 현대인들과 생명의 가치를 깊이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단시간에 진화론의 핵심 논리를 완벽히 마스터하는 지적 교양을 얻을 수 있고, 현대 과학으로 살아 숨 쉬는 고전의 가치와 생명을 향한 깊은 경외감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다윈이 꿈꾸었던 위대한 법칙 속에서 내 손을 거쳐 가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향한 깊은 겸손함을 다시금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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