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동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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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과학의 답변을 신뢰하는 것은 그것이 확실하기 때문이 아니다. 지식의 발전과정에서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최선의 답변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늘 우리에게 최선의 지식을 제공해왔지만, 그것이 곧 완전한 지식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불확실성이야말로 우리 인간에게 끝없는 지적 탐구의 동력이 되어준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에서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공자는 일찍이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진짜 아는 것(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이라고 말했다. 이 오래된 지혜를 현대적으로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모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라 생각이 든다. 과학의 출발점은 자신의 지식이 가진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과학을 단순한 지식 축적이 아닌, 세상을 대하는 마음가짐으로 정의합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정직하게 대면할 때 비로소 새로운 질문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과학의 길이다. 과학은 결코 멈춰 있는 진리가 아닙니다.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기존의 믿음을 기꺼이 수정하는 유연함,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가 과학을 진보하게 한다. 확증 편편향과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오늘날, 과학적 태도는 나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객관적인 근거를 찾는 태도는 과학자 뿐 아니라 합리적인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태도가 되었다. '과학하는 인간'은 정답을 맹신하기보다 정답에 다가가려는 정직한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다.

신이 아닌(신의 영역, 神話) 자연의 원리로 세상을 설명하려 한 아낙시만드로스는 인류 최초의 과학자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을 잘 설명하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자연적 실체의 존재를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만물의 근원이 물이나 불 같은 구체적인 물질이 아니라, 무한하고 규정되지 않은 어떤 원리(아페이론)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현대 과학이 '에너지' '입자' 같은 추상적 개념으로 현상을 설명하는 것과 비슷하다.

과학과 민주주의는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열매다. 동등한 사람들끼리 비판하고 대화하는 일이 가능하고 또 중요하다는 깨달음이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스승인 탈레스를 비판한 행동은 당시 밀레토스의 아고라에서 흔히 행해지던 관행을 지식 탐구 분야에서 실천한 것일 뿐이었다. 이론이나 현상을 무조건 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은 과학자가 갖는 가장 중요한 항목 중 하나이다. 반대 이론을 세우고 그 것을 증명하여 새로운 이론을 확립하거나 증명할 수 없음으로 기존의 이론이 옳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이 리뷰는 리앤프리 서평단의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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