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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동물의 죽음 - 인간은 왜 기꺼이 동물과 만나고 또 이별하는가
E. B. 바텔스 지음, 김아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9월
평점 :
저자 E.B. 바텔스님은 논픽션 작가이고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예술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여러 언론 매체의 기고 외에도 프리랜서 편집자이자 원고 컨설턴트, 글쓰기 코치, 웰즐리대학교의 커뮤니케이션 및 홍보 부서에서 선임 편집 작가로 일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외곽에서 남편 리치, 치와와-핏불 믹스견(시모어), 붉은발거북 한 쌍(테런스와 트와일라), 비둘기들(버트, 댄, 조지, 루실), 물고기 10여 마리(모두 밀턴이라는 이름을 가졌다)와 함께 살고 있다. 아는 동물을 많이 돌보고 계시네요.
“애완동물은 오래 못 살아. 어차피 죽을 텐데, 설마 안 그럴 줄 알았던 거야?” 피오나 애플이 자신의 반려동물을 마치 사람처럼 여겨 일을 쉬면서까지 슬퍼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p12) Pet loss 증후군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어쩜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못한 사람들 모두가 해당되기 때문에 공감, 동감이나 이해 받기 어려워 감추는 경우가 많다.
나는 사후 세계에서 내가 키우던 반려동물들과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하며 위안한다. (p37) 아무리 그래도 있을 때 곁에 있을 때 사랑하고 위로 받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교감하자.
“당신의 반려동물이 가장 좋아하는 세 가지 활동을 떠올려 보세요. 산책하고, 호수에서 수영하고, 공을 쫓아가는 일. 이런 활동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가 아마도 안락사를 선택할 때일 거예요.” (p88) 맞는 말인가? 생리적이고 자연스럽게 수명을 다하여 생명을 거두어 가는 것은 신의 영역이지만 안락사라는 표현아래 인간이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기준인가? 행복인가? 고통인가? 반려동물이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는 없다. 모든 걸 다, 생명까지도 반려인에게 맡긴다. 그래서 더 슬프고 더 신중하고 더 어려운 결정이다.
“항상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르죠.” 상당수의 보호자가 안락사에 대한 결정을 최대한 미룬다. 아마도 다가오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부정하려는 행동일 것이다. 안락사는 종종 최후의 수단으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다른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는지 확인한 다음 에야 그 주삿바늘을 고려한다. (p89) 반려인의 최선과 포기 하려하지 않는 의지가 반려동물에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정말 심각한 고통속에서도 반려 동물을 반려인에게 꼬리를 흔들고 소리를 내고 다가오고 핥는 등 사랑을 표현한다.
어떤 말이 특정한 종류의 장례를 치를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누가 결정한단 말인가? 어떤 동물이 매장될 가치가 있는지를 누가 결정하는가? (p188) 혈통이 좋은 말은 주인(?)에게 부를 제공했던 말들로(경마, 승마, 종마) 화려한 장례를 치를 수 있다. 누굴 위한 장례인가? 조랑말, 부상당한 말 등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말들을 초라하게 일부가 매장되고 나머지 부분은 가축의 사료가 되기도 한다. 말은 아직 반려동물의 반열에 확실히 올라서지 못한 듯하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저자는 물고기에서 시작하여 햄스터(?), 거북이 등 상당히 많은 반려동물을 돌보고 유대를 맺고 지냈다. 그들의 자연적인 수명이 저자 보다 짧은 게 일반적이다. 많은 장례식을 치렀고 본인도 잘 알지 못하고 배우지 않았지만 미이라를 만들기도 했었다. 매장을 하고 화장을 하고 골분을 모시는 분들도 있고 Gem stone이라고 고압을 보석처럼 만들어 몸에 지니는 분도 있다. 슬픔을 온전히 대체할 수 없지만 몸에 지니거나 가까이 두고 싶어 한다.
반려동물을 돌보며 슬픔을 반복적을 극복하고 또 다른 반려동물을 돌보는 사람이 바보인가? 그런 것들을 피하는 사람들이 바보인가? 반드시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얻을 것이고 다른 무엇으로도 채우지지 않는 사랑과 위안을 얻을 것이고 사랑과 위로를 배울 것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